최근 전라도의 한 갯벌 마을을 지나다 큼직한 양은 주전자를 들고 나선 아주머니를 만났
다. 호미로 낙지 구멍 입구를 넓힌 뒤 손을 밀어 넣는데 어깨까지 쑥 들어갔다. 불의의 습
격을 받은 낙지는 한동안 요동을 쳐보지만 주전자 속으로 던져지자 체념한 듯 이내 잠잠
해진다.
요즘 갯벌이 부산하다. 낙지들이 산란기인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나기 위해 영양분 비축
에 나서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가을에 잡히는 낙지를 '꽃낙지'라고 부른다. 그 맛이 얼마나 각별했으면 '꽃'자
를 붙여 미화했을까. 발이 가늘고 긴 세발낙지의 참맛이 5~6월 무렵 새끼 때라면, 성숙한
낙지 맛을 제대로 보려면 중추(中秋)에 잡히는 꽃낙지가 제격이다. 그래서 '봄 조개, 가을
낙지'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맛이 달콤해 회나 국, 포를 만들기 좋다고 했다. 갈낙(갈비살과
낙지), 낙새(낙지와 새우), 낙곱(낙지와 곱창) 등 낙지는 다른 재료들과도 두루 어우러져
맛갈스런 궁합을 연출해낸다. 또 조방낙지, 무교동낙지, 목포 세발낙지 따위처럼 지역별
로 별미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한다. 부산의 명물, 조방낙지는 일제 강점기 때 동구 자유시
장 자리에 있던 조선방직 앞 낙지 음식점들에서 유래됐다. 당시 조선방직 근로자들이 하
루의 피로를 얼큰한 낙지볶음을 안주 삼아 들이키는 한잔 술로 달랬다 한다.
그러면 낙지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자산어보에는 낙지를 한자어로 낙제어(絡蹄
魚)로 쓰고 있다. 얽힌(絡) 발(蹄)을 지닌 물고기(魚)라는 뜻이다.
8개나 되는 발이 어지럽게 얽힌 낙지의 특성을 적절하게 포착한 작명이다. 낙지는 강장
작용에 좋은 타우린과 히스티딘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농가에서 농사일로 탈진한
소의 원기 회복을 위해 먹일 정도였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같은 음으로 읽히는 '낙제(落第)'를 경계, 수험생이 피해야 할 금기 1
호 생물로 취급했다. 낙지의 탁월한 보신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부당한 대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