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여자
햇살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가지런한 이목구비
오월 햇살 같이 투명하고 흰 피부
아름다운 여자가 사는 집은 초라했으나
그로 인해 아름다운 여자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사랑했음으로 소유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여자를 소유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집에 놀러온 아름다운 여자를
보내지 않으면 되었으니까
아름다운 여자의 집은
고래 고래 고래적에 양반의 집안이었음으로
결혼할 것을 권했고
아름다운 여자는 그렇게 사내의 것이 되었다
그래야만
남자들의 세상이 조금 더 잘 유지됨으로
사내는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했지만
사랑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사내를 삼킨 건
열정으로 불타는 사랑의 심장이 아니라
폐 속의 고름덩어리였다
아름다운 여자의 집은
고래 고래 고래적에 양반의 집안이었음으로
일부종사 할 것을 권했고
아름다운 여자도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피덩이들을
버릴 만큼 모질지 못하였으므로
아름다운 여자는 그렇게 청상이 되었다
그래야만
남자들의 세상이 조금 더 잘 유지됨으로
아름다웠던 여자가 있다
세월의 거친 비바람 속에 깎이고 달아
앙상한 뼈에 거죽하나 덮어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슬픈 얼굴로 앉아있다
아름다웠던 옛날의 모습을 그리워하는가
너무나도 쉽게 결정난 자신의 운명에 한숨 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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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아름답다는 형용사는 무려 16번이 사용되고 있다.
하여 이 시의 대립요소는 남자대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의 세상"대 "아름다운 여자"이다. 즉 여자라는 성을 지칭하는
명사 앞에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를 빼먹지 않고 삽입함으로 인하여
"여자 = 아름답다" 라는 작가의 의식을 강변한듯 보인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세상을 겪으면서 뼈에 거죽하나 덮어 놓은것 처럼
변했다고 한다. 남성중심의 사회유지를 위해서 아름다운 여자는 희생
당했고 그것은 슬픈 현실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런 슬픈 현실을 통하여 남성중심의 사회를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시의 주된 감상 포인트인것 같다. 일종에 페미니즘적인 내용과 주장의
시라고 판단된다.
문제는 무수히 반복된 아름답다라는 용어가 이 시에서 얼마만큼 설득력을
얻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인데, 이건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 시는 일단, 그 내용의 구체성으로 보았을때 가족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을 시의 소재로 삼고 있는듯 보인다. 이 시의 구체성은 즉 리얼리즘적
요소는 남성의 폐병을 지칭하는 듯한 "폐속의 고름덩어리"라는 표현이라든가
여성의 출신을 나타내는 듯한 "고래 고래 적부터 양반"이라든가
놀러온 여자를 집에 보내지 않았다는 구절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의 소재로 삼고 있는 여성은 여성일반이 아름답다는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의 소재로 택하였던 여성이 그 어떤 특정 미적기준에
비추어 아름답다라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여성이 남성중심의 세상때문에
아름다움이 희생당했고 결국 추해져서 슬프다는 것이다. 만약 그 이 시의
소재인 여성이 아름답지 않고 보통의 얼굴이였으면 이 시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 이 시에서 여자라는 명사 앞에 붙은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
를 제거하여 버리면 될것이라 판단된다. 하여 난 그렇게 해보았다.
여자(그녀)
여자(그녀)가 있었다
가지런한 이목구비
오월 햇살 같이 투명하고 흰 피부
여자(그녀)가 사는 집은 초라했으나
그로 인해 여자(그녀)의
향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그녀)를 사랑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사랑했음으로 소유하고 싶었다
여자(그녀)를 소유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집에 놀러온 여자(그녀)를
보내지 않으면 되었으니까
집은
고래 고래 고래적에 양반의 집안이었음으로
결혼할 것을 권했고
여자(그녀)는 그렇게 사내의 것이 되었다
그래야만
남자들의 세상이 조금 더 잘 유지됨으로
사내는 여자(그녀)를 사랑했지만
사랑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사내를 삼킨 건
열정으로 불타는 사랑의 심장이 아니라
폐 속의 고름덩어리였다
여자(그녀)의 집은
고래 고래 고래적에 양반의 집안이었음으로
일부종사 할 것을 권했고
여자(그녀)도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피덩이들을
버릴 만큼 모질지 못하였으므로
여자(그녀)는 그렇게 청상이 되었다
그래야만
남자들의 세상이 조금 더 잘 유지됨으로
여자(그녀)가 있다
세월의 거친 비바람 속에 깎이고 달아
앙상한 뼈에 거죽하나 덮어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슬픈 얼굴로 앉아있다
옛날의 모습을 그리워하는가
너무나도 쉽게 결정난 자신의 운명에 한숨 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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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내가 생각하기엔 아름다운이라는 구차스러운 형용사를
계속 사용하였던 것보다 시가 좀더 간결하고 낳아 보인다.
그리고 여기 여자라는 일반적 명사 대신에 "그녀"라는 지칭
대명사를 대신하여 넣어 보는것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독자 백학이 애초에 제기하였던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가
이 시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가 하는 이 시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난 이 시가 그 내용적
측면에서 시적인 요소를 상당히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시속에서 어느정도 작가의 심성이 읽혀 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문적이다. 뭔가 내용을 따라갈만한 시적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
된다. 그건 시적 표현이 문제인데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내 능력
이상이다.
그리고 고쳐진 시의 마지막 구절 검은색으로 처리한 부분은
내 생각엔 사족처럼 보인다. 그냥 빨간 부분까지로 시를 끝내도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는 전혀 영향을 미칠것 같지 않다.
사족을 달아 버림으로 인하여 시적 흐름의 패턴을 잃어 버리고
독자의 상상력을 빼앗아 버림으로 인하여 시를 망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이 시도 그런 경우라 생각된다.
애고 어찌...감상을 하다보니 너무 시간이 늦어 졌다.
묘하게도 게시판의 실랑이가 있는 와중에 이리 감상이란 것을 끄적이게
되어 좀 그런감이 있지만 어쨌든 치열한 시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갈것으로 생각하며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