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환영 만찬에서 남쪽의 기관원으로 오해받은 나
동명왕릉 관람을 마치고 평양으로 출발할 때는 이미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날씨도 꽤 쌀쌀해져 으스스 떨린다. 평양시내는 여전히 캄캄하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평양역전 광장에조차 불빛이 거의 없다. 언제쯤 전력난에서 벗어나게 될지 안타까울 뿐이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식당으로 모이란다. 북녘의 민화협에서 환영 만찬을 베풀기로 했단다. ?남이랑북이랑? 일행 다섯이 한 테이블에 자리잡은 가운데 처음 보는 남쪽 사람 한 명과 북녘 안내원 두 명도 합석을 하게 되었다.
앞에 썼듯이 간밤엔 잠을 설치고 아침엔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이젠 콧물이 줄줄 흐른다. 평양시내 관광에도 빠지고 싶었지만 마지못해 따라나서 온종일 강행군을 한 터라 만찬도 반갑지 않다. 점심을 먹는 듯 마는 듯했는데 저녁 역시 잘 넘어가지 않는다. 집에 쌀 떨어질 날은 있어도 술 떨어질 날은 없고 밥 남기는 꼴은 봐도 술 남기는 꼴은 못 본다는 내가 술 한 모금도 입에 대기 힘들다. 호텔 꼭대기층의 회전 식당에서 평양시내의 야경을 즐기며 술 한 잔 나누자는 일행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겠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만찬장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책방에 들러 책 몇 권 샀는데 거스름으로 유로를 내준다. 지난번엔 유로를 내도 거스름으로 달러를 주었는데 유로 사용을 늘리며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 걸까. 방에 들자마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뒤 평양에서의 첫날밤을 맞았다.
다음날 일찍 일어났더니 조교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준다. 전날 저녁 내가 환영 만찬 자리에서 일찍 떠나자 옆에 앉았던 북녘의 안내원이 내가 혹시 기관원인지 묻더란다. 대학교수라고 알려주었는데도 당국에 보고하러 일찍 나가는 게 아니냐고 의심을 품더라는 것이다. 아마 내가 일행에게 이래저래 안내를 하고 자신들에게도 원래 소속이 어디냐고 묻는 등 북녘에 관해 좀 아는 체했던 게 거만하게 보였을까. 남북 사이에 순수한 학술 회의가 열려도 북녘에서는 이른바 기관원들을 몇 명씩 보내기 마련인데 남쪽도 그러하리라 믿는 탓이리라. 남쪽에서 기관원들의 감시나 주목을 받아온 내가 북녘에서는 기관원으로 오해받는 일이 벌어졌으니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18. 대동강변의 골프연습장
10월 17일 월요일, 평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맞이한 이른 아침, 조교와 함께 호텔 주위 대동강변 산책에 나섰다. 7년 전 처음 북녘 땅을 밟아 고려호텔에 머무를 때 나 홀로 평양시내 뒷골목을 기웃거리고 싶어 아침 산책을 핑계로 호텔을 나서려 하자 북녘 안내원이 가로막는 바람에 가볍게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그 기억 때문에 2년 전 여기 량각도호텔에 들었을 때는 산책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 호텔은 조그만 섬에 자리잡고 있는데 굳이 막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나선 것이다. 6시경이라 어스름하고 쌀쌀하지만 듬성듬성 나룻배들이 떠있는 대동강을 옆에 끼고 평양의 옛이름 류경 (柳京)의 상징인 수양버들이 주욱 늘어선 산책로를 거니는 게 참 상큼하다.
호텔 뒤편에 유람선 한 척이 떠 있다. 마침 그 안에서 한 노인이 나오기에 요즘 운항되는 유람선인가 물으니 완공되지 않은 배라며, 저 아래쪽에 큰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배를 지나치자 산책로 옆으로 골프 연습대가 10개쯤 설치되어있는 게 눈에 띈다. 강변의 골프연습장이라. 앞으로는 강이요 뒤로는 호텔이니 공을 강쪽으로 칠 수밖에 없는데 강물에 빠진 골프공을 어찌할꼬. 조금 전 만난 노인에게 또 물어보니 저만치 강 가운데 그물을 쳐놓았단다. 연습장 부지가 전혀 필요 없는 대단한 발상이다.
호텔 옆에 구멍 9개 짜리 조그만 골프장이 있는데 아마 거기 들어서기 전에 여기 연습대에서 몸을 푸는 모양이다. 지난 2차 방북기에 썼듯, 북녘에서도 1980년대 후반부터 가장 자본주의적이랄 수 있는 골프장이 몇 군데 들어섰다고 하는데, 2년 전 이 호텔에 머무를 때 아침 일찍 골프장에 외국인 대여섯 명이 거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골프장이 외화 벌이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19. 사회주의 의학의 기본, 예방의학
오늘 첫 공식 행사는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 병원’ 참관. 사단법인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의 지원으로 작년 6월 문을 연 어린이 설사 치료 전문 병원이다. 3층 짜리 건물에 병상이 30개쯤 된다고 한다. 병원에 들어서니 1층 대기실에 놓인 큰 TV에서 만화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1시간 정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나올 때까지 만화 영화가 나왔는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이라서 그랬을까.
대기실 벽에 나란히 걸린 액자 2개의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하나는 김일성 주석의 말이고, 다른 하나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이다. 김주석은 “사회주의 의학에서 기본은 예방, 다시 말하여 근로자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대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의학은 곧 예방의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 했고, 김위원장은 “사회주의 의학은 본질에 있어서 예방의학이며 병을 미리 막고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 증진시키는 것은 사회주의 의학의 기본 임무입니다”고 했다.
사회주의 의학의 기본이 예방의학이라는 것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북녘의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사회주의 헌법 제 56조는 “국가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공고 발전시키며 의사담당구역제와 예방의학 제도를 강화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근로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헌법에도 나와 있듯이, 북녘이 자랑하는 보건의료 정책의 주요한 특징으로 전반적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 예방의학 제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첫째, 무상치료제는 1946년 정책이 만들어져 1947년 전체 노동자와 사무원 및 부양 가족에 대해 시작되었다가 1950년대 전반 거의 모든 주민에게 확대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는 온 국민을 대상으로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북녘 헌법 제 72조에 따르면, “공민은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를 가지며 나이 많거나 병 또는 불구로 로동 능력을 잃은 사람, 돌볼 사람이 없는 늙은이와 어린이는 물질적 방조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무상치료제, 계속 늘어나는 병원, 료양소를 비롯한 의료시설, 국가사회보험과 사회보장제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인민보건법은 진찰, 실험 검사, 치료, 수술 등이 모두 공짜이며, 약값, 입원 환자의 식사비, 요양을 위한 여비까지 국가나 협동단체가 부담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둘째, 의사담당구역제는 “전 주민의 일생 동안 담당구역 의사들로부터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서 1960년대부터 실시되었다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주치의 (主治醫)를 두고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를 실시하면서 예방의학적 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조치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의 병원이나 진료소에 이중으로 등록하여, 그들의 모든 건강 기록이 담당의사들 사이에 인계인수되도록 하고 있다니, 의사가 담당하는 환자들이 많아 진료 내용이 부실하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남쪽이 본받을 만한 대목인 것 같다.
셋째, 예방의학 제도는 병이 생긴 뒤 치료를 잘하는 것보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을 잘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는 취지에서 나온 방침이다. 이는 김일성 주석이 1956년 로동당대회 보고를 통해 “인민 보건 분야에서 전염병을 비롯한 모든 질병을 미연에 방지하여 주민들의 발병률을 계속 낮추며 근로자들의 일시적 노동력 상실을 줄이며 인민들의 건강을 보호 증진시키는 것은 우리 당의 중요한 과제입니다”고 발표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일련의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급격히 퍼지고 있었는데, 일제의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몸에 밴 인민들의 비위생적인 생활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고, 병이 생긴 뒤 치료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었던 터여서 예방의학을 강조했던 것 같다. 물론 한국전쟁 이후 5개년 경제계획을 시작하고 기술 문화 사상의 3대 혁명에 착수하는 등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과정에서 질병에 따른 노동력 상실을 줄이는 것도 예방의학의 큰 목표였을 것이다.
참고로, 이런 예방의학 제도와 관련하여 북녘의 고려의학 (동의학 또는 한의학)이 발달한 측면도 있다. 북녘에서는 1954년부터 국가 치료기관에 고려의사를 두고 규모가 큰 병원에는 고려치료과를 설치하였으며, 의학대학에는 고려의학부를 만들고 약학대학에도 고려약학과를 두어 고려의사와 고려약사를 양성해오는 등 1950년대 전반부터 고려의학을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육성해왔는데, 고려의학이 서양의학보다 병을 예방하는데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의학이 북녘에서 중시되어온 배경엔 예방의학에 효과적이라는 장점 이외에, 고려의학이 우리 민족의 생활 습성과 신체 구조에 맞게 발전되어온 민족의학이라는 특성, 그리고 인민의 건강과 보건에 관한 문제는 외국의 힘이 아닌 북녘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체의식이 곁들여져 있다.
이런 취지에서 김일성 주석은 1980년대 초반 고려의학의 육성을 직접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의학은 주로 수술을 하거나 균을 죽이는 방법으로 치료하지만, 동의학은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여 병에 걸리지 않게 하며, 병을 치료하는 것도 사람의 원기를 돋구어 병을 이겨내도록 하는 방법으로 합니다.” 여기서 신의학은 서양의학을 일컫는데, 그렇다고 북녘에서 서양의학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아니고 고려의학 (전통의학)을 바탕으로 신의학 (서양의학)을 받아들여 주체의학으로 발전시켜왔다고 한다.
아무튼 북녘의 보건의료 정책에서 가장 기본적인 방침은 예방의학으로, 병이 생긴 뒤 치료를 잘하는 것보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을 잘하는 데 일차적인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몇 해전 나의 통일운동을 도와주던 학생들에게 무슨 얘기 끝에 이러한 북녘의 의료정책을 소개하자, 한 한의대학생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중국 위 (魏)나라 문공 (文公)이 유명한 의사 편작 (扁酌)에게 “너희 3형제 가운데 누가 최고의 의사냐”고 물었더니, “큰형이 최고요, 둘째형이 그 다음이고, 제가 셋 중 가장 못합니다”고 대답했단다. 문공이 이유를 묻자 편작이 설명하기를, 큰형은 몸에 증상이 생기기 전에 병을 없애버리니 명성이 집 밖을 넘지 못하고, 둘째형은 병이 아주 미세할 때 치료해버리니 이름이 마을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데, 자신은 중병이 든 사람들에게 돌로 된 침과 독한 약을 써서 낫게 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회남자 (淮南子)??에도 “훌륭한 의사는 언제나 질병의 징후가 나타나기 전에 병을 치료하기 때문에 질병이 현실로 드러나는 일이 없다”는 구절이 나오고, 한의학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으로 지금까지도 한의학이론의 뿌리가 되고 있다는 ??황제내경 (黃帝內徑)??에도 “최고의 의사는 병이 생기기 전에 그리고 환자가 되기 전에 치료를 시작한다”는 말이 있으니, 북녘에서 강조하는 예방의학이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의료 정책이리라.
20. 훌륭한 의료정책, 그러나 안타까운 현실
그러나 무상치료제와 예방의학 제도 등 북녘의 보건의료 제도나 정책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를 받쳐줄 수 있는 경제력이 약한 게 심각한 문제다. 앞에서 소개했듯, 이 병원은 어린이들의 설사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기관인데, 북녘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가장 큰 병이 설사라는 점은 먹는 데에 문제가 많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 같다.
병원 1층 대기실 앞의 ‘처방받는 곳’에서도 북녘 경제난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남쪽식으로 말하면 진찰실일텐데 벽 선반에 누런 색의 서류가 쌓여있다. 마침 안에 아무도 없어 서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아과 외래 병력서’라는 제목의 진찰 기록부인데 종이의 질이 어찌나 조잡한지 인쇄된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먼저 “환자 이름, 성별, 난날 (생년월일), 주소, 탁아소 유치원 학교명, 부모 이름” 등의 인적사항을 적고, 날짜별로 “예방 접종, 진찰 소견, 처방 검사의뢰 치료래원, 처방 처치 영양 간호” 등의 항목을 기록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누런 종이가 가슴아프게 만든다. 북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남북의 현실을 비교하며 북녘이 남쪽보다 몇십년 뒤졌느니 하는 투로 얘기하는 것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남쪽에선 이렇게 거칠고 누런 갱지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에 쓰이던 것 아닌가.
‘처방받는 곳’ 옆으로 ‘약내주는 곳’이 있는데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니 그 사무실 문 안쪽에 A4용지의 약 절반 크기로 포스터가 붙어있다. 총이나 활의 과녁 그림과 아울러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글이 담겨져 있는 포스터다. 나중에 병원을 한 바퀴 돌아보니 다른 사무실이나 진료실 문 안쪽에도 붙어있다. 2년 전 백두산에 오를 때 천지에 있는 삭도인차 (케이블카) 정거장인 향도역 안에서는 “미국에서 보내온 선물”이라고 조선글로 큼지막하게 쓰여진 쌀포대들을 보기도 했는데 미국에 대한 대접이 극과 극이랄까.
2층의 병실을 죽 둘러보니 대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함께 입원해있다. 북녘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정말고도 일터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터 대신 병원을 지키는 걸까. 여기서 또 가슴아픈 현실을 발견한다. 보호자인 어머니들은 환자복을 입고 있는 반면 환자인 어린이들은 모두 평상복을 입고 있는데, 까닭을 물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어린이용 환자복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자 출신의 한 여성 친구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점을 나중에 다음과 같이 귀띔해주었다. “병원에 환자가 왜 그렇게 적은지 너무 의아하다. 진료 받는 환자들도 없고 기다리는 환자들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입원 중인 아이들의 보호자인 엄마들이 엷게 화장을 하고 머리도 어느 정도 손질을 한 것 같은 게 좀 수상쩍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마음 편한 환경을 제공하려는 병원 측 의도도 있겠지만, 모든 간호를 엄마들에게 떠맡겨 버리는 듯한 측면엔 조금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병원 안에는 콩우유 (두유) 생산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여기서 만든 ‘어린이 젖’은 평양시내는 물론 외곽의 아이들에게도 제공된단다. 우리 일행들 가운데는 이제 막 만들어진 두유를 신기한 듯 만져보기도 하고 하나씩 챙겨 가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호기심 차원에서 가져가겠지만 여기서는 배고픈 아이들의 한 끼니도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21. 11년의 의무 무상 교육
어린이병원 다음의 목적지는 평양 제 4소학교. 소학교란 남쪽의 초등학교에 해당되는 교육 기관으로, 남쪽에서는 1996년부터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고쳐 부르고 있듯이, 북녘에서는 2002년부터 인민학교를 소학교로 바꿔 불러오고 있다. 남북 사이에 이름만 다른 게 아니라, 남쪽의 초등학교가 6년제인데 반하여 북녘의 소학교는 4년제라는 것도 큰 차이다.
참고로 북녘의 교육 제도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남쪽에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어 있지만 북녘에서는 합쳐져 있는데 과거엔 고등중학교로 부르다 역시 2002년부터 중학교로 바꿔 부르고 있다. 북녘의 학제는 유치원 2년,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 그리고 대학교 2-7년으로 이 가운데 의무 교육 겸 무상 교육 기간이 11년이다. 유치원 2년이 낮은반 1년과 높은반 1년으로 나뉘는데, 높은반 1년과 소학교 및 중학교 전 과정이 무상 의무 교육인 것이다.
북녘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의무 교육 및 무상 교육제를 실시해 왔다고 하는데, 헌법 제 49조에서 “국가는 학령 전 어린이들을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키워준다”고 밝히고 있고, 헌법 제 47조에서 “국가는 모든 학생들을 무료로 공부시키며 대학과 전문학교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준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치원 낮은반 1년과 대학 과정도 무상 교육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지만, 이 과정이 의무 교육 기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 이 방북기는 2005년 1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매주 월요일 통일뉴스 (www.tongilnews.com)에 연재되었으며, 2006년 1월부터 월간 ??열린전북??에도 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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