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③/ (1995년 5월..)
鄧麗君傳記 덩리쥔 전기(11) (1953년1월29일~1995년5월8일) 쁘리비엣 飜驛
[제9장3편 237p]
등장희는 태국 시간으로 10일 저녁 11시에 치앙마이(淸邁)에 도착했다.
분홍색 잠옷을 입고 있는 등려군을 보고 등려군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국제적 스타의 병원 빈소에는 단지 간단하게 몇 개의
"쮜씽쑨러워"(대 스타가 돌아갔다.), "南天星損"(남천성이 떨어졌다), "융화이차이이" 등
현지 친구가 보낸 꽃다발이 놓여져 있었다.
또 간단한 불교 예단을 놓아 법사가 등려군을 위해 불경을 읽고 불교식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등려군의 특수 신분으로 인해 태국 당국에서는 완전한 규칙에 따라
유체는 사망 증명서를 발급하고 방부 절차를 거친 후에야 국외 운구가 가능하였다.
단지 간단히 태국의 지위 높은 스승이 예식을 치른 후, 바로 해부하지 않은 유해를 鄧씨 가족으로 보냈다.
등려군의 유해는 하얀색의 태국식 목관에 놓여져 있고,
5Kg의 드라이아이스로 냉동시켜 방부 처리하여 비행기 편으로 타이뻬이로 운송했다.
타이뻬이 시간으로 11일 밤, 10시 반에 토우웬 중쯔엉 공항에 도착했다.
태국항공 633편 비행기가 2번출구에 멈추었다.
등장희가 "누나, 집에 도착했다.."고 한마디 했다. 등려군의 유해가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스타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기 위해 대만 측에서는 일체 수속과 규정을 생략하고
공항에다 조화와 과일을 놓고 간이 빈소를 설치하여 등려군의 가족들이 현장에서 장례식을 하게 하였다.
현장에 鄧씨 가족, 슬픈 팬들과 대만 관원들 외에 국내외 기자들이 수백 명이 넘는다.
모두 현장에서 이 세계에서 인기 있는 스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鄧麗君의 유체는 제1 시간에 영구차로 타이뻬이 제1 영안실로 운구되었다.
등려군의 어머니께서 보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연달아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아 눈은 울어서 빨갛고 부어올라 온 과정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 가족들이 등려군의 장례에 대해 상의할 때, 등려군 어머님께서는 매장할 것을 견지하며
자신의 예쁜 딸을 불태워 버릴 수 없다고 했다.
등려군의 어머님도 장례 7일 되는 날, 등려군의 오빠더러 딸에게 쓴 편지 한 통을 불태우라고 했다.
鄧麗君이 말을 안 듣고 자신의 건강을 잘 돌보지 않은데 대해 상심해 하고 하지만,
등려군의 불행으로부터 많은 가정과 팬들이 자기와 가족들의 건강을 주의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등려군이 편히 눈감을 것을 바라며 다시는 고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38p]
치앙마이(Chiang Mai)로 가서 누나 유구를 배웅하러 간 등장희가
등려군이 죽기 3일전에 전화를 했다고 했다.
[치츠완]과 사업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누나가 이렇게 갈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등려군의 큰 오빠 등장안도 등려군이 9살 때부터 [치츠완]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집에 의사에게 진찰할 돈이 없어 단지 중약을 사서 찻주전자(茶酒煎子)에다가 끓여서
등려군은 약의 뜨거운 증기를 맡아 치츠완을 억제했다. 커서는 다시 발작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외에도 등려군의 큰 오빠께서는 등려군이 생전에 마음속에 걸렸던 일이 바로
유독 그녀가 1979년에 발생한 [가짜 여권 사건]이라고 했다.
당시 등려군은 한 인도네시아(印尼) 상인 친구가 도와서
정식의 印尼 여권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한 번은 대만에 입국할 때 처리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 여권을 사용했다고 했다.
생각지 못하게 일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또 매체들의 비평을 가득 받아야 했다.
심지어 일본 정부에서 등려군이 1년 동안 일본에 입국하지 못하게 처분을 내렸다.
또한 매체에서는 쫓겨났으며 영원히 입국 금지라고 썼다고 했다.
이 일은 등려군에게 많은 고통을 받게 했으며 또한 여태껏 매체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등장안]이 또,
하느님이 만약 등려군은 서방세계에서 가장 듣기 좋은 노래를 하늘에 전파하도록 안배했으면
가족들은 등려군과의 42년의 정을 끊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등려군은 온 가정을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희생했다.
물질적인 조건이나 정신적 기쁨이든지 물론하고 절반 이상의 인생은 모두가 떠돌아 다니며
분투했지만 힘들다고 절대 하지 않았다.
이후, 그들은 계속하여 어머님을 모시고 등려군을 위해 뒷처리하고 이로 인하여 아름다운 길을
등려군이 이미 다 걸었다면 헌신자는 다른 사람이 있지 않기에 등려군이 잘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239p]
등려군을 위해 만든 영당이 그녀의 친구와 팬들이 그녀에게 준 이 세상 마지막 배웅이다.
온 영당은 하얀색과 분홍색 천 커텐으로 장식했고 3층의 영패는 마치 가요계 같고
가장 높은 한 층은 성모 동상을 놓았다.
미국에서 특별히 운송해 온 동으로 된 관목에는 수정이 박혀있고,
내부에는 거위 비단으로 된 침대가 설치되어 있다.
밀봉이 잘 되어 있기에 시체가 썩지 않고 50년 동안 보존할 수 있다.
등려군의 얼굴에는 꽃분지 하고 가느다란 눈썹을 그려서 보기에는 조금 똥똥해 보인다.
그녀는 청색 둘레인 연분홍색 [치파오]를 입었고
또 등어머니께서 그녀에게 준비한 진주 목걸이를 걸었다.
장례식 현장에서 대만 육군 음악단에서 연주를 책임졌고 대만의 모든 매체는 생방송을 했다.
그리고 대만과 해외에서 온 팬과 스타 연예인들이 등려군과 작별했다.
고별식 현장 근처는 붐비어 교통이 막혔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려군의 마지막 얼굴을 한 번 보려고 전날 저녁부터 줄서기 시작했다.
온 영결식장은 이미 교통이 막혔다.
장례식이 끝난 후, 등려군의 관목은 타이뻬이현 금산향의 금보산 묘원 [균원]으로 옮겼다.
아버지의 유골과 함께 묻었다.
묘지 현장에도 수백 송이의 팬들의 생화로 등려군을 위해 마지막 인생의 길을 전송했다.
[240p]
하지만 등려군 생전 마지막 단계의 남자 친구 보우로우는
사적으로 등려군의 마지막 얼굴을 본 후, 고별식이 시작하기 전에 속상해서 먼저 대만을 떠났다.
[균원]은 금보산 묘원의 사장님이 형식적으로 새로운 대만 돈 일元의 댓가로 기증해서 만든 곳이다.
위치는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으며 유명한 작가 [싼모우:三毛]도 근처에 묻혀 있다.
그래서야 등려군의 어머님더러 근심을 놓게 했다.
등려군을 위해 전문적으로 마련한 기념묘원 내에서 등려군의 묘비는 검정 대리석으로 새겨 있고,
또 하얀색의 등려군 사진이 박혀 있다.
자연으로 만든 풍경을 강조한 탓으로 등려군의 묘원은 기념공원으로 디자인이 되어 있고,
안에는 온 몸이 동으로 된 조각상이 있고 자동으로 노랫소리를 낼 수 있는
적외선 반응 스위치와 흑백으로 된 키보드가 있었다.
묘비는 묘지 중간에 있지 않다.
묘비에는 간단히 몇 가지 문자로
"여기에는 노래 예술을 위해 일생을 바친 위대한 스타 한 분이 묻혀 있습니다."라고 씌여져 있다.
이 역시 등려군의 빛난 일생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다.
[241p]
鄧麗君은 화인(華人)의 귀중한 보배이다. 그녀의 죽음은 대단한 소란을 일으켰다.
매체에서는 대량으로 관련 소식을 보도하고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계속 그녀의 노래를 방송하고
등려군의 앨범은 더욱 인기 상품이 되었다.
말레이시아 팬들은 등려군이 젊은 나이로 돌아간데 대해 아쉬워 하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통곡하며 기절했다.
화인 문화의 사막이라고 형용된 인도네시아에서 마저 등려군의 노래도 아주 유행이었다.
또한 중국어를 선전하는데 일정한 작용을 일으켰다.
그녀의 죽음은 당시 화인 중에서 자발적인 애도 활동을 일으켰다.
일본에서는 그녀의 죽은 소식을 들은 후 더욱 크게 놀라워하고 아쉬워 했다.
일본에서 등려군의 앨범 독점 에이젼트 회사는
그녀를 가족처럼 예식을 차려주고 전 직원이 일주일 애도하는 걸로 규정되었다.
등려군을 위해 작사 작곡한 [황무휭저우]는
회사에서 등려군의 [황혼은 슬프게 한다]란 신곡을 데뷔하는 것을 상의하는 회의 중 등려군의 죽은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두 다리가 떨렸다.
한편으로는 전화를 한 앨범회사 직원을 보고 “너, 무슨 허튼소리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등려군의 죽음은 대륙에서 더욱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5월 10일 저녁 CCTV는 [뉴스 방송]에서 등려군이 병으로 죽은 소식을 방송했고
그녀가 콘서트와 생활에 관한 열 몇 개 화면을 방송했다.
이런 규모는 대륙에서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것도 대륙이 등려군의 노래를 "소란스런 소리"로 취급한 이래 처음으로 공개적인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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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곡] 노래曲, 노래의 곡조. (북한어)
[발췌]☜쁘리비엣님 글번 784 787 805 815 961 957/ 487 494 495 496
[鄧麗君紹介年譜 등려군소개연보]☜등려군 약력보기,
[愛國藝人鄧麗筠小姐墓誌銘]☜묘지명 번역 두류봉,
病逝記錄(1995)
첫댓글 우리등님 계실때도 떠나실때도 알지못하고 멀고 먼곳에 계신 지금에서야 그리움을 품고삽니다......청량하고 고요한 오월의 저곳에는 맑고 정다운 우리님의 노래만이 맴돌고있을뿐!....
가슴 이 너무 시려요..눈물이 날거 같아요 타지에서 혼자 쓸쓸히. 얼마나 외로웠을까....흑흑..먼곳에서나마 지켜주고 그리워하는 팬들의 외침 소리라도 들으시면 좋으련만 그곳에서는 아프시지 말았으면~~~
정말 너무 안타까운 기사 입니다~
鄧님의 사망 관련 소식은 어느정도 알고있었지만 오늘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