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인천산악회.
 
 
 
카페 게시글
산행후기방 스크랩 2011년 9월 25일 희양산 (충북 괴산)
바위산 추천 0 조회 140 11.09.28 10:19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2011 925 희양산 (충북 괴산)

 

일정: 은티마을-지름티재-희양산-성터-시루봉-은티마을

 

 

기다리면 만난다.

희양산을 기다렸다.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그냥 그랬다는 게 더 맞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은티마을로 걸어가는 포도엔 코스모스가 뭉터기로 피어있다.

그 여리고 예민한 꽃들이 닿지도 않는 바람을 지래 짐작으로

마치 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흔들린다는 듯이 스스로를 흔든다.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지나면 은티마을이다.

우아하게 구부러진 소나무 밭에 넓적한 바위 하나로 동네가 설명된다.

원래는 의인촌이었는데 한일합방 후 진짜 의인이 날까 봐

두려워한 일본인들이 은티마을로 이름을 바꾸었다나!

얼마나 이쁜 이름인가??

이유야 유치하지만 덕분에 시인이 사는 마을이름 같은 걸 얻었으니

그냥 은티마을로 남아있음이 좋겠다.

 

은티마을을 지나면 코스모스가 다시 피고

야산의 얕은 능선은 붉은 사과밭이다.

젊은 사과나무들이라 겁이 없다.

푸른 잎들이 어느 순간에 내릴지도 모르는 서리에게 운명을 맡기고

붉어지는 열매들을 지키고 있다.

들국화가 피고

옅은 가을이 나직한 능선에 그렇게 내렸다.

그래 나도 내가 살아낸 세월을 짚고 가을이 내리는 산을 올라보자.

 

은티마을에서 지름티재까지는 5리가 안 된다,

그나마 반은 얕은 능선으로 왔으니 그저 1km만 올라가면 된다는 말인데

지름티재는 괴산의 은티마을과 희양산 능선을 건너

남쪽 경북 문경의 봉암사를 연결하는 지름길에 있는 가장 얕은 재라고 한다.

지름티재까지 가는 건 쉽다는 말이다.

돌밭에 터를 잡은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과

그 그늘에 터를 잡은 조릿대 사이를 헤집는 바람을 만지면서

가만히 가기만 하면 지름티재다.

그 언덕에서 봉암사쪽으론 오지 말라고 한다.

스님들이 공부를 하고 참선을 한다고…….

그러마

열심히들 하여 성불하시라.

 

지름티재가 희양산을 지나는 백두대간의 어느 접점이다.

이 재가 백두대간을 연결해 주는 말하자면 잘록한 허리같은 것이겠지.

가파르게 올라서는 정상과 구왕봉 사이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험한 산행이 될 거라고 경고를 주는 자리가 지름티재다.

지름티재에서 정상은 1.6 km 떨어져 있다.

먼 거리가 아니다.

대신에 무척 가파르다

가파른 경사에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돌길을 오른다.

산이 알을 까듯이 바위를 끊임없이 토해내고

가파른 경사에서 태어난 바위는 불안하게 자기 자리를 찾느라 어지럽다.

 

 은티마을 입구

 

은티마을의 꽃길을 따라서

 

코스모스길

 

 

여기서부터 산길

 

 

돌밭에 우거진 나무 그늘을 오른다.

 

지름티재, 봉암사쪽으로 오지말라는 안내문

 

지름티재에서 본 구왕봉 

 

지름티재에서 정상을 오르는 중, 바위를 이고 수도하는 나무

 

격한 비탈에서 어떻게든 살아낸다. 그게 생명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돌밭 비탈길

 

수직 비탈도 지나고 

 

 

그 경사를 올라내면 오직 산과 하늘밖에 없는 산의 세상이 드러난다.

희양산 정상을 구성하는 바위로 된 볼록한 능선에 올라서면

산이 모여서 겹겹이 꽃을 이룬듯하다.

마치 장미 꽃송이처럼 한꺼풀의 산이 한꺼풀의 산을 둘러싸고

또 그러길 반복하고

사방으로 산 하나하나가 낱개의 장미잎처럼 포개져

마치 내가 거대한 꽃송이의 중심에 있는듯하다.

 

비탈에 바위는 거칠지만 능선의 바위는 부드럽다.

부드러운 능선의 바위를 건너뛰면서

사방으로 펼쳐진 산의 거대한 꽃을 들러본다.

산맥들이 쏟아낸 산들이 누구인지를 구별할 수도 없었고

구별할 이유도 없다.

모두가 한 개 한 개의 꽃잎 같은 걸!

정상을 구성하는 부드러운 바위능선을 타는 것이 희양산행의 절정이다.

가까운 산은 가깝게 먼 산은 멀게 수천 개의 산들이 울렁거린다.

저기 산자락에 가만하게 놓여있는 터가 봉암사이겠구나.

봉암사에서 동쪽 아래로 내려가면

산자락 좁은 터에 심겨진 벼가 강물처럼 흐른다.

 

 

정상으로 가는 바위능선에서~

 

산의 나라

 

포개진 산들

 

 

 

 

저기 아래 골짜기의 봉암사

 

 

 

정상

 

 

 

갔던 길을 돌아 내려와 어느 바위에서 점심을 하고

북동쪽의 시루봉을 향한다.

능선을 내려오면 비탈에 박힌 세상 맛을 못 본 버릇없는 바위는

다시 거칠어지고

나무가 올라서고 그 밑엔 사각거리는 조릿대가 자리를 잡는다.

우거진 숲에 돌담들이 줄을 선다.

저걸 어찌 성벽이라 부르는가?

차라리 돌담이라고 하지.

이곳이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로

옛날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접전지라 한다.

저 성들은 929년 신라 경순왕 때 쌓은 거라고 한다.

어쩌면 망해가는 나라의 백성들이 쌓아서 성의가 없었을까?

마음이 떠나는데 돌로 만든 성이 뭘 얼마나 막을까?

깊은 산이라 누가 애를 써서 성을 허물 일도 없으니

옛 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성벽의 능선을 따라 능선을 오르내리며 시루봉으로 향한다.

시루봉을 20분 남겨둔 넓은 공터에 배낭을 두고 시루봉으로 오른다.

시루봉은 그저 그랬다.

워낙에 희양산에서 정경이 좋아서 시루봉에서 한쪽으로만 터진 풍경이

고생하며 오른 것에 대한 보답으로는 별로다.

하지만 산이 그렇게 이름을 갖고 있는 한은 찾아가 만나야 한다.

그게 예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렇게 해야 한다.

적어도 한번은 그래야 하는 걸…….

 

시루봉 오르는 길에서 딴 야생 오미자를 씹으며 내려온다.

이젠 은티마을로 내려가야지.

그늘사초가 자라는 음지를 지나고 투구꽃이 피는 양지의 비탈을 지나고

부스러지는 얇은 편상의 잔돌의 비렁길을 지난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찮게 가파르다.

거기다 정착하지 못한 얇은 돌들이 발 디딜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을 괴롭힌다.

 

그렇게 내려온다.

농부의 밭이 나오고

깨를 거둔 빈 밭에서 농부의 아내들이 민들레를 캐고

두벌 심는 자주감자가 막 꽃을 피운다.

난 저런 농부의 밭이 좋다.

익은 조가 고개를 숙이고 가을배추가 자라고

가을배추랑 같은 색깔의 메뚜기가 배추를 조금씩 갉아먹는 그런 정경.

은티마을로 내려오면 다시 코스모스가 흔들린다.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코스모스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게  아니야.

스스로 흔들리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거지.

아득한 기억에 남은 너무나 짧았던 행복이 서러워서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서리를 모르는척하면서

온 몸과 영혼을 흔들면서

아무하고나 사랑을 하고 싶어 하지.

하지만 백 번을 천 번을 생각해도

기다리는 건 단 한 개의 사랑이었지.

결코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이라 해도

코스모스가 기다리는 건 단 한 개의 사랑인걸!“

 

내려오면서 첫 번째 사과밭에서 사과를 샀다.

이곳에 사과나무를 심은 지 오래지 않아서

젊은 나무들이 낳은 사과들이 싱싱하고 맛있다.

은티마을도 지나고 주차장으로 오면서

초등학생, 중학생의 꼬마들이 사과를 팔고 있다.

얼마나 꾸밈이 없고 귀여운지…….

낼 시험인데 공부도 못하고 이렇게 사과 팔고 있어요,

아저씨 사 가세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표정은 티 없이 맑다.

! 세상에 그런 표정으로 살 수만 있다면!!

희양산을 떠올리면 맑은 그 놈들도 생각이 날 거 같다.

 

성벽길 

 

 

시루봉 표지판

 

 시루봉 가는길의 작은 평원

 

시루봉에서

 

시루봉

 

시루봉에서 은티마을로 내려오는 비렁길

 

민들레를 뜯는 농부의 아내들, 자주감자가 가을 햇살에 꽃을 피우며 계절을 잊은듯이~ 

 

 

코스모스길

 

가을 김장배추밭

 

은티마을로 다시 ~

 

 

사과를 파는 꼬마들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11.09.28 10:28

    첫댓글 훌륭한 대장 엔돌핀님, 똘똘하고 야무진 총무 해성님, 꼴찌에서 비실거리는 나를 기다려준 산촌님, 그리고 같이 한 친구님들께 감사와 행복을 드립니다.

  • 11.09.28 12:49

    함께 하진 못했지만 멋진 산행기와 사진 잘 감상하고 갑니다.

  • 작성자 11.09.28 15:41

    예 감사합니다.

  • 11.09.28 14:27

    오랜만에 바위산님의 후기글!! 감사드립니다. 자주 좋은 후기글좀 올려주세요 ㅎㅎ

  • 작성자 11.09.28 15:42

    올갱이국이랑 복분자주 잘 먹었습니다. 잘 지내시고요 감사합니다.

  • 11.09.28 17:37

    다음에 감산다고????

  • 작성자 11.09.28 21:31

    ㅎㅎ 행님이 감 하나 못사줄라고~감 사께~

  • 11.09.29 01:35

    바위산님의 후기글을 읽노라니 그날의여정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그냥 스쳐지나간 코스모스길이며 생명의끈을놓지않고 땅에 뿌리깊게넣은나무믿둥 하나하나 너무 예쁘고아름답게 표현을하셨는지? 감동이고..바위산님의글을보면 늘 감탄이절로..함께해서 즐거웠구여 수고많으셨습니다~^^

  • 작성자 11.09.29 09:37

    예 산을 보는 것도 좋았고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어떤 님이 라일락님이라는 걸 안 것도 좋았습니다. 답글 해주셔서 감사드리며 기쁨으로 잘 지내시길...

  • 11.09.29 16:25

    몇자의 글로써 이렇게 그날 하루를 곱게 마무리 해주시는 바위산님의 후기글 .. 글귀마다 아름다운 향기가 묻어납니다. 담에도 좋은글 많이 부탁 드리겠습니다

  • 작성자 11.09.29 19:11

    에휴~ 감사합니다. 플랭카드 훌륭했습니다. 애써 답사까지 하시고 우정도 훌륭하시고 덕분에 산행 잘 했습니다. 나중에 막걸리 한잔 사겠습니다.

  • 11.09.30 15:58

    똑같이 걷고 보고 느끼고 했는데...글재주가 대단하십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 11.09.30 18:31

    감사합니다. 글재주가 있는 것도 별로 아니고요. 사실은 칭찬을 받고 싶지요. 이렇게 "당신은 가슴으로 쓰는 사람이군요" 전 재주라기 보다 가슴으로 보고 느낀 걸 쓰는데 그걸 알아주시는 분이 있으면 제한테 가장 큰 칭찬이지요.

  • 11.10.24 14:01

    못갔어도 간것 같은 느낌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11.10.24 19:57

    뵌지 일년은 넘었지요? 이런게 쌓이면 금방 늙겠네요. 둘 다 산을 골라서 가는데 골르는게 다른 모양입니다. 아무튼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이렇게라도 뵈니 좋으네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