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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일어나면 신문부터 챙긴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신문을 펼쳐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신문을 통해 반갑지 않은 사건사고 기사와 식상한 정치인 소식 사이에 사회의 따뜻한 이면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직업보다 사이비와 가짜가 많은 직업도 기자일 것입니다. 기자에게는 어떤 매력과 힘이 있기에 그런 것일까요.
사이비 기자의 출현으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오보(誤報)나 왜곡된 기사로 비난여론이 쏟아질 때도 있겠지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추고 밝은 면은 더 환하게 부각하는데서 기자의 직업적 성취감과 매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 기자는 굳이 비중있는 배역이 아니더라도 사건과 인물을 취재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초능력의 사나이로 변신하여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슈퍼맨이 평소에는 어눌하고 굼뜬 평범한 기자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진지한 드라마에만 어울릴 것 같은 기자는 액션, 스릴러, 호러, 에로,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 등장합니다.
기자의 얼굴로 변장해 사람들을 현혹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공포영화 영화
<판토마, Fantomas>에서는 기자의 얼굴로 변장해 사람들을 현혹하여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어느 멋진 날, One Fine Day>, <러브 앤 섹스, Love & Sex>, <키스할까요> 등 우리에게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에는 기자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의 티격태격하는 사랑이 주요 소재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기자는 사회의 어두운 곳을 들추기 위해 거대세력과 맞서는 모습, 기사거리를 위해 최소한의 양심까지도 저버리는 모습, 그리고 취재원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 등 다양합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칼보다 강한 펜을 볼때 많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입니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기자의 역할은 무엇보다 약자의 입장에 서서 이 사회를 지키는 일일 테니까요.
특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기자라는 직업의 키워드는 뭐니뭐니해도 ‘특종’일 것입니다.
사전에서 ‘특종’을 찾아보면 ‘어떤 특정한 신문이나 잡지사에서만 얻은 중요한 기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른 매체, 혹은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기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직업이고 보면 기자는 특종을 위해 산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던 영화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은 많은 영화팬들이 기억하는 명작 중의 하나입니다. 신문기자인 죠(Gregory Peck 분)는 우연히 만난 여인(Audrey Hepburn 분)이 왕실의 앤 공주임을 알고 특종을 잡기 위해 동료기자와 전략을 세워 그녀를 유도해 로마거리를 즐겁게 돌아다닙니다. 죠가 신문기자인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앤 공주는 죠의 자상함에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그리고 죠도 왕실을 나와 거리를 다니면서 서민생활을 누린 공주에 대한 특종감을 잡아냈지만 공주의 순수한 마음에 이끌려 결국 특종보도를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특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기자들의 특종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또 필요하다면 기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리기도 하니까요.
영화 <페이퍼, The Paper>, <매드 시티, Mad City>, <미공개사건, Not for Publication>. <FBI 특종, Caught in the Crossfire>, <살인특종, Eyewitness> 등 수많은 영화에서 특종을 잡기 위한 기자들의 경쟁, 스트레스, 그리고 비열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페이퍼, The Paper>는 미국 뉴욕의 작은 신문 「SUN」의 편집부장 헨리(Michael Keaton 분)의 바쁜 하루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와 신문기자들이 겪을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들, 이를테면 특종과 마감시간에 대한 스트레스, 편집회의를 통한 기사선택, 경쟁신문사 머리기사에 대한 관심, 경찰의 인용구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가족과 기자역할간의 갈등, 기사에 대한 취재원의 항변, 그리고 1면에 특종을 게재하기 위해 급기야 윤전기를 세우는 모습까지 나옵니다.
헨리는 「센트럴」지의 스카웃제의를 받아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편집장의 책상 위 메모를 훔쳐 보고 인종문제로까지 비화된 백인 증권투자가들의 살인사건이 당초 알려진 것처럼 흑인소년들의 범행이 아니라는 특종을 낚습니다.
하지만 마감시간까지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하면 그 소년들이 범인이라는 오보가 나갈 판이지요.
결국 경찰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하여 돌아가는 윤전기를 세워 1면 머리기사에 흑인소년들이 결백하다는 특종을 싣습니다.
영화 <페이퍼>에는 헨리이외에도 여러 유형의 기자들이 등장합니다.
가족들보다 기자들을 더 챙겨 가족들로부터 소외 당한 편집국장 버니(Robert Duvall분), 여성으로서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헨리의 경쟁자 알리샤(Glenn Close 분), 뛰어난 취재기자이지만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할지도 몰라 불안해하는 헨리의 동료이면서 아내인 마샤(Marisa Tomei분) 등이 그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기자들은 특종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양심은 물론이고 신분까지도 위장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영화 <문나이트, On a Moonlight Night>에서는 AIDS환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신문기자 스스로 AIDS환자라고 속여 취재를 하기까지 합니다.
신문사나 방송사에는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 각 부서별로 기자들이 소속되어 있고 또 각 부서 내에서도 자신의 전문분야가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미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에는 신문사마다 ‘맛기자’들이 있기도 한다는군요. 주로 (대중)문화부 기자들이 하고 있다는데요. 음식점을 다니면서 맛있는 집을 기사화하여 소개하는 기자입니다.
맛있는 것 많이 먹어볼 수 있어서 참 좋을 것 같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도 크답니다.
마감시간에 맞추느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같은 메뉴를 계속 먹어야 할 때도 많아 고역이라는군요.
어떤 일이건 취미가 아닌 ‘노동’이 되는 순간부터 재미가 다 날아가 버리나 봅니다.
기자, 권력과 맞서다
영화 속에서 권력과 정면대응전을 펼치는 기자들은 진실보도라는 기자로서의 책임감과 권력이 주는 보호막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진실보도를 선택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기자의 역할은 무엇보다 약자의 입장에 서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들추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음모와 오해를 풀어 진실을 파헤쳐 보도하는 것이 기자, 혹은 언론 본연의 임무 아닐까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 <자유의 절규, Cry Freedom>, <제트, Z>, <살바도르, Salvador>,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등에는 정치권의 압력에 맞서 왜곡된 사실을 대중에게 폭로하는 기자들이 등장합니다.
단순한 사건을 취재하던 중 뜻하지 않게 특종을 잡아내고 급기야 일파만파 퍼진 사건의 실마리는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기도 하지요. 그때는 이미 권력도 대중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최대의 정치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워싱턴포스트지의 두 신참기자가 워터게이트사건을 추적해 보도함으로써 정치권의 음모를 밝혀내고 결국 닉슨 현직 대통령의 사임까지 불러온 취재기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입사한지 9개월 된 신참기자 칼 번스타인(Dustin Hoffman 분)과 그의 동료기자 밥 우드 워드(Robert Redford 분)는 민주당사에 도둑이 든 것이 단순한 절도사건이 아닌 배후에 정치적 음모가 있음을 눈치채고 취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편집회의에서는 정치세력에 의해 신문사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므로 기사화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취재에 협조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편집장(Jason Robards 분)의 결정에 따라 두 기자는 정치세력에 맞서 계속 취재를 하지요. 영화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취재원 몰래 휴지, 성냥갑 등에 간신히 메모를 해와 기사작성에 참고를 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언론을 상징하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사무실은 밝게 표현되는 반면 신문사 밖의 풍경과 인물은 어두컴컴하게 묘사가 됩니다. 이는 정치권의 부정부패 등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수선한 책상, 손바닥만한 취재수첩이 요즘의 신문사나 기자들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컴퓨터가 아닌 타자기로 기사를 작성하는 모습은 요즘과 많이 달라 보입니다.
요즘은 기사작성 후 마감시간에 맞춰 바삐 신문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해 기사를 전송합니다. 실시간 살아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발빠르게 움직이는 기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과 밥 우드워드(Bob Woodward)두 기자는 정치권의 압력으로 결국 신문사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역시 실제 사건과 인물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자유의 절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무자비한 인종차별실상을 폭로한 백인 신문기자 우즈(Kevin Kline 분)의 이야기입니다.
우즈는 체포된 흑인 지도자 비코(Denzel Washington 분)가 단식투쟁으로 사망하였다고 정부에서 발표하자 시체의 사진을 찍어 고문사였음을 밝혀내고 이 사진을 각국의 언론사에 보냅니다.
이 사건으로 우즈와 그의 가족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협박이 계속됩니다.
결국 우즈는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걸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탈출하여 영국으로 망명하여 비코의 전기를 출간합니다.
진실과 정의를 위하여
어떠한 압력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편에 서는 기자의 모습을 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아닐까요? 기자의 존재이유도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비록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참신한 기사는 아니더라도 인위적이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이야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발견합니다.
영화 <트루 크라임, True Crime>에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 신문기자에 의해 한 흑인의 생명까지도 구하게 됩니다. 에버릿(Clint Eastwood 분)은 알콜과 여자문제로 항상 말썽을 피우는 신문기자입니다. 에버릿은 동료여기자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녀가 취재하던 흑인 사형수 사건을 취재하게 됩니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 신문사에서는 최후의 심정을 물어 최대한 인간적인 이야기로 기사를 작성할 것을 종용합니다. 그러나 백인 임산부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흑인 범죄자 비첨(Isaiah Washington 분)은 에버릿에게 결백을 주장합니다. 사건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비첨이 범인이 아니라는 단서를 잡은 에버릿은 사형집행을 불과 12시간 앞두고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결국 진짜 범인을 찾아내어 사형대에 누운 비첨을 가까스로 살려내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영화 <언더 화이어, Under Fire>에도 아프리카 독재 군부정권의 만행을 고발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취재에 나서는 기자들이 등장합니다. 러셀(Nick Nolte 분)과 알렉스(Gene Hackman 분), 그리고 클레어(Joanna Cassidy 분)는 전쟁이 터진 곳이면 세계 어느 국가든 달려가는 기자들입니다.
니카라과의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민중들의 시위가 거세고 정부군 역시 대량학살로 맞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러셀은 정부군에 피살된 민중의 영웅이 살아 있는 것처럼 기사화 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잘못된 기사를 쓸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러셀은 결국 진실보도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호연과 빠른 극전개를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들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실왜곡, 여론조작, 방송기자의 힘
TV의 극단적 시청률 경쟁을 그린 영화 <네트워크, Network>에서 인기가 시들해져 해고통보를 받은 앵커맨 하워드 빌(Peter Finch 분)은 방송도중에 자살할 것을 공언하고 그 이후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수직 상승합니다.
미디어의 부품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방송종사자를 날카롭게 비판한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는 시청률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못하는 오늘날의 방송풍토와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문과 TV뉴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현장감과 속보성일 것입니다.
그리고 신문의 특종이 구독률을 상승시킨다면 방송의 특종은 곧 시청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송기자는 사건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취재를 하여 시청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보도국에 소속되며 신문기자와 마찬가지로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 담당 부서가 있습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신문이나 잡지기자와 별반 다를게 없지만 TV를 통해 기사를 전달하므로 방송기자는 채용 시 카메라테스트의 실기시험을 통해 순발력과 언어구사력을 평가받습니다.
영화 속 방송기자는 <네트워크>의 앵커맨 하워드 빌처럼 시청률상승을 자신의 최대 과제로 여기고 거기다 방송을 통해 자신의 인기를 다지고 싶어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뉴스를 전달하던 사람들이 방송의 인기와 힘을 빌어 어느 날 뉴스 속의 정치인이 되어 있는 경우도 많지요.
영화 <매드 시티, Mad City>와 <브로드캐스트 뉴스, Broadcast News>에는 특종과 자신의 인기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방송기자들이 등장합니다.
<매드 시티>의 맥스(Dustin Hoffman 분)는 촉망받는 방송기자였지만 순간의 실수로 작은 도시로 발령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실추된 자신의 인기와 명예를 되찾을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지요.
어느 날 박물관장을 인터뷰하러간 맥스는 그곳에서 직원이었다가 해고된 샘(John Travolta 분)이 박물관장에게 호소하려왔다가 우발적으로 총을 쏴 사람이 맞는 상황을 보게 됩니다.
때마침 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이 단체견학을 와 있었고 샘은 순식간에 인질범이 되어버립니다.
맥스는 곧바로 방송국과 연결해 단독 생중계를 하게 되고 샘을 설득해 인터뷰를 유도하지요. 샘의 이미지를 이용해 특종과 시청률, 그리고 자신의 실추된 인기까지도 되찾고자 하는 계산이 깔려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맥스는 엉뚱하게도 샘이 흉악범이라는 쪽으로 계속 여론이 흘러가자 샘의 진실됨을 알리기 위해 애씁니다.
그 덕분에 샘은 방송을 통해 영웅이 되고 많은 사람들의 동정의 대상이 되지요.
반면 맥스의 옛 동료이자 경쟁자인 홀랜드(Alan Alda 분)는 샘을 정신병이 있는 인질범으로 호도하고 총을 맞은 사람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문제로까지 비화시킵니다.
방송사에서는 샘이 자수를 하더라도 밤이 아니라 시청률이 높은 프라임타임에 하도록 유도하는 등 경박한 시청률 지상주의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지위가 향상되면서 명예와 인기에 점점 집착하는 신참기자 로리(Mia Kirshner 분)까지 영화에는 추악한 방송인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국 샘이 대중과 미디어의 희생양으로 자살함으로써 진실왜곡이 어떻게 한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지를
반성하게 합니다.
기자, 앵커 등 방송인들의 바쁜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에서도 ‘뜨고 싶고’, ‘튀고 싶은’방송기자의 일그러진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지방에서 워싱턴의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긴 방송기자 탐(William Hurt 분)은 기자뿐만 아니라 뉴스앵커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탐은 성폭행 당한 여성을 인터뷰하면서 일부러 눈에 안약까지 넣어가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연출하는 등 자신의 인기상승을 위해서 시청자를 우롱하는 일도 서슴치 않습니다.
탐처럼 야망 있는 기자 아론(Albert Brooks 분) 역시 방송기자로 재능을 인정받고 있지만 돈과 명예를 위해 뉴스앵커가 되고 싶어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방송사의 예산 삭감에 따른 기자들의 정리해고, 인기앵커에 의존하는 방송의 스타시스템, 카메라조작과 진실의 왜곡 등 방송기자의 고민과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허상, 죄의식보다 자신의 경력과 출세, 인기를 우선시 하는 방송기자의 가식을 꼬집습니다. 카메라 뒤의 숨겨진 비리를 조목조목 훑어낸 이 영화는 1988년도 아카데미상 7개 부문 노미네이트를 비롯해 그해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쓸기도 하였습니다.
언론의 허구와 위상을 비판하는 영화 <리틀 빅 히어로, Hero>를 보면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이 아들에게 ‘TV가 떠드는 말을 다 믿지 말아라’고 충고하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시청자 혹은 독자의 눈과 귀를 자극하기 위해 ‘기사거리’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과장되게 전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현실의 기자들도 한번쯤 되새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말한다
한 컷의 사진으로 진한 감동과 생생한 사건현장, 그리고 진실을 전달하는 사진기자. 방송을 통해서도 취재를 위해 우루루 몰려다니고 몸싸움을 하는 사진기자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한 사진기자는 체력도 많이 소모가 되겠지요? 그런 점에서 여성 사진기자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나 실제 우리나라 일간지 사진부에는 소수이긴 하지만 여성 사진기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기자들 중에는 여성들도 많다고 하는군요.
예전에는 기사를 부연 설명해주는 차원에서 사진이 필요하였으나 최근에는 감각적이고 시각적으로도 화려한 신문을 추구하고 있어 예술사진에 버금가는 사진들이 간혹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고 있습니다.
요즘 신문들은 비쥬얼 페이퍼(visual paprer), 즉 읽는 신문이 아닌 보는 신문을 지향합니다.
읽을거리 못지 않게 볼거리를 제공하는데도 주력하고 있고요. 그런 만큼 독자들의 눈도 점점 높아져 가고 있고 사진기자의 어깨도 무거워질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감각적인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진기자들도 일반기자들처럼 눈에 띄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특종, The Public Eye>은 프리랜서 사진기자 번지(Joe Pesci 분)가 주인공입니다. ‘셔터벌레’라는 별명이 붙은 번지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뉴욕 밤거리를 헤매면서 사건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언론사에 보내고 사진 값을 흥정합니다.
특종사진을 찍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엔 목숨을 걸고 몰래 마피아 조직원들의 싸움을 촬영하는데 성공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 사진들로 본인이 언론의 특종감이 되고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뉴욕시민들의 음영을 찍어 자신의 사진집을 출판하고자 했던 꿈을 ‘대중의 눈(The Public Eye)’이라는 사진집으로 이룹니다.
이 영화에서 ‘사진기자들은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를 보면 사진 값으로 1달러를 더 받기 위해 옷 핀으로 찔러 아이를 울린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부러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는 뜻이겠지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지만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오히려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는 것이 사진의 힘일 것입니다.
영화 <빙하의 추적, Condor>의 마크(Daniel Greene 분) 역시 특종을 찍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진기자입니다. 그리고 리얼리티를 살린다는 미명아래 사진을 연출하거나 조작하는 것도 서슴치 않습니다. 마크는 상원의원을 미행하여 성적 스캔들을 카메라에 담는 특종을 낚지만 상원의원의 압력과 정치권력을 두려워하는 신문사의 만류로 사진게재를 거절당하고 결국 외국으로 추방당합니다.
반면 영화 <살바도르, Salvador>에는 내전이 한창인 엘살바도르에서 민간인에 대한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양심적인 종군 사진기자 리차드 보일(James Woods 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화 속 사진기자는 특종과 진실보도, 혹은 자신의 인기상승이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신문에 실리는 사진들은 예술작품이 아닌 만큼(최근에는 예술사진에 필적할 만한 사진들이 실리고 있지만) 일정한 형식이 있다고 합니다.
인물, 즉 사람이 있어야 하고 여백이 없이 꽉 차야 하며 수직수평이 안정감 있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가 크게 부각되어야 하는군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한 장에 보여줘야 합니다.
중앙일간지의 사진기자는 수시로 공채광고로 모집하는데 시험과목은 일반 취재기자와 동일하게 대개 국어, 영어, 상식, 면접을 치르고 사진 실기시험을 치릅니다. 예술적인 사진실력보다는 현장에 혼자 나가서 흐름을 파악하는 기자로서의 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노출이나 초점정도를 맞출 줄 아는 정도면 된다고 합니다.
기자는 노동자인가, 전문가인가
기자는 노동자인가, 전문가인가는 오래되고도 식상한 논쟁거리입니다.
노동력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점,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점,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해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기자는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고학력, 고임금으로 무장한 지식인 집단이라는 점, 또 과감히 펜대를 버리고 정치인 같은 사회 상층부로 계층이동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전문가라는 의견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노동자인가 전문가인가에 대한 저울질은 기자, 혹은 언론을 평가하는 잣대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요인들일지도 모릅니다.
언론사들의 탈세사건을 시발로 어느 때보다 언론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습니다. 언론사의 중심에 기자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자 역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보와 무책임한 보도, 선정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독자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권위주의와 보수주의까지 언론의 횡포와 폭력성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만 해도 기자라면 으레히 투철한 사회의식으로 중무장한 채 날카로운 눈과 펜으로 사회의 정곡을 찌르는 것이 연상되었지만 최근에는 보다 감각적인 기사를 작성하는 사람쯤으로 생각됩니다.
과거의 비판 기능을 상실한 채 권력의 소리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나팔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닌지, 언론이 행사하는 막강한 폭력중의 하나인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언론수용자의 역할도 큽니다. 주체적으로 언론을 받아들여야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바른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겠지요. 비평의 힘, 대중의 힘이 크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과연 우리나라 영화 속의 기자는 어떤 모습일까요? 노트 만한 취재수첩을 들고 나오는 등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모습이 자주 눈에 띌 뿐 언론이나 기자들의 책임과 역할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하얀 전쟁>,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퇴마록> 등의 영화에서 기자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극 전개를 위해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역할을 맡거나 나레이터로 등장하는 정도이지 기자들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 영화는 없습니다.
관객들이 영화 속의 기자들을 보며 무릎을 치는 날도 멀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