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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말씀> 2014년 3월호, pp.34-47
겸손과 따뜻한 마음으로 온 세상을 품은
베드로의 비전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베드로는 갈릴리 호숫가의 한 작은 마을인 벳새다에서 태어나 동생 안드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요 1:44). 그러다가 베드로와 안드레는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여 고기잡이를 하였다. 이사하게 된 계기는 베드로의 결혼으로 생각된다. 그는 가버나움에 있는 한 부잣집 딸과 결혼하여 장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마 8:14; 눅 4:38). 안드레도 같이 산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으로 불리기도 한다(막 1:29).
베드로와 안드레는 세배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가버나움에서 고기잡이를 하였다. 가버나움에서 고기잡이를 하면 벳새다에서 하는 것보다 여러 모로 유리하였다. 첫째로 세금 문제가 있었다. 벳새다에서 고기를 잡으면 가버나움으로 넘어올 때 관세를 물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벳새다는 분봉왕 빌립이 다스리는 영토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가버나움 옆에 막달라가 있는데 거기에는 훈제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버나움에서 잡은 고기는 그곳에서 훈제를 해서 예루살렘과 다른 도시로 보낼 수 있었다.
I. 베드로의 부르심
이렇게 고기를 잡으며 소박하게 살고 있던 베드로에게 일대 전환점이 찾아왔다. 베드로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난 일이었다. 나사렛에서 온 청년 예수와의 만남은 베드로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3년 동안 따라다니다가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과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행 2장). 또 최초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으며(행 10장), 후에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보통 생각하듯이 단 한 번에 일어난 사건은 아니었다. 사전에 많은 준비가 있은 후 때가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부르셨다. 베드로는 먼저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예배드리며 율법을 듣고 배웠다. 안식일에는 고기잡이와 모든 일을 쉬었다.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안드레는 요한의 제자라고 분명히 나오는데(요 1:35-40), 동생과 늘 같이 다니는 베드로의 모습을 볼 때 그도 같이 세례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던 어느 날 안드레가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때 그는 제일 먼저 형 베드로를 찾았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시므온)이며, ‘베드로’는 예수님이 지어주신 ‘게바’(아람어로 바위란 뜻)의 헬라어 이름이다. 안드레는 제일 먼저 형 베드로를 찾아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면서 예수께로 인도하였다(요 1:42). 이 만남 후에도 베드로는 안드레와 함께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다. 특히 그물을 씻고 손질하고 있는 동안에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배웠다(눅 5:1-2).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동생과 함께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냥 해변에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엄청 많은 무리가 몰려와서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에 올라 앉아 육지에서 조금 떨어져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눅 5:4). 이것은 상식을 깨는 것이었다. 고기를 잡으려면 물이 얕은 데로 가야 하는데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신 것이다. 게다가 베드로는 지난밤에 헛수고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이 말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줄곧 들어서 그분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고기가 심히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질 듯하였다.
이때 베드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보통 사람들 같으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것이지만, 베드로는 오히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다(눅 5:8).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의 고백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기 앞에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모든 죄와 허물이 드러나게 되어서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본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고 말한 것과 같다(사 6:5).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셨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마 4:19; 막 1:17) 그러자 베드로와 안드레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아내와 의논하지 않고 부모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즉각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 거역할 수 없는 신적 능력을 나타내 준다. 그래서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같이 고기잡이하던 야고보와 요한은 같은 날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II. 베드로의 정직성과 겸손함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공부를 잘했다거나 모범생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성격에 기인하는 바 크다. ‘수제자’(首弟子)란 표현은 성경에도 없고 신학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겠지만, 베드로는 자연스럽게 ‘반장’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이 물으실 때 스스럼없이 나서서 대답하는 모습에 잘 나타난다. 다른 제자들은 “틀리면 어떡하나? 야단맞으면 어쩌나?” 두려워하여 눈치 보고 있을 때에 베드로는 용감하게 나서서 대답하였다. 이것은 숨기지 않고 자기 자신을 내어 놓은 소박함과 순진함, 야단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용성과 개방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말상대가 되면서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칭찬도 받았다.
베드로가 칭찬받은 대표적인 것은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마 16:16). 이 고백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고백이다. 예수님에 대해 간결하게 핵심 내용을 잘 고백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 이 둘은 기독론의 핵심이요 뼈대이다. 이 고백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고(롬 1:3-4; 행 9:20,22; 딤후 2:8), 오늘날 기독교회의 기초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고 칭찬하셨으며(마 16:17), 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다(마 16:18).
그러면 이런 칭찬을 들은 베드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마가복음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설교를 마가가 듣고 기록한 것이다. 2세기 전반의 파피아스(Papias)는 말하기를, 베드로를 따라다녔던 마가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주님의 행적들을 기록하였는데 아무것도 빠뜨리거나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한다(Eusebius, Hist. Eccl. III,39,15). 따라서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한 것인데, 거기에는 이상하게도 베드로가 칭찬받은 내용이 빠져 있다. 마가복음 8장 30절에 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해 예수님이 칭찬하신 내용은 나오지 않고 그냥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로 이어진다.
왜 그랬을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고 하신 주님의 칭찬을 마가가 알고 있었다면 그것을 생략했을 이유가 없다. 베드로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마가(벧전 5:13)가 그것을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 베드로가 이 부분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베드로는 이 사건에 대해 설교할 때마다 자기가 칭찬받은 부분은 쏙 빼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가가 이 부분을 듣지 못해서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추론을 강화시켜 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그것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은 사건이다. 오병이어의 이적 후에 예수님은 산으로 가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다. 그러나 풍랑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밤 4경(오전 3시~6시)에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 오셨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지만, 베드로는 용감하게 나서서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였다. 예수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마 14:29). 이것은 예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어떤 사도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사건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가복음에는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마가복음에 보면 베드로가 물 위로 걸은 사건은 없고 그냥 예수께서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고 되어 있다(막 6:51). 왜 그랬을까? 마가가 알았다면 일부러 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오직 하나, 베드로가 이 부분을 한 번도 설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이 드러나고 영광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베드로가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가는 이 부분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 같으면 물 위로 걸은 놀라운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입이 가려워서 결국 말하고 말 것이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 하면서 길게 늘어놓았을 것이다. 한국의 목사들 같으면 가는 곳마다 간증한다면서 이 이야기를 부풀려서 말했을 것이다. 심지어 “물 위로 걸은 능력의 사자 로마에 오다”라고 포스터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광고했을 것이다. 가는 곳곳마다 ‘능력의 사자(使者)’로 추앙을 받고 대접받고 영광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반면에 베드로는 자기가 책망 받은 것은 숨기지 않고 다 말하였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을 만류했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는 엄청난 책망을 들은 것은 그대로 말하였다(막 8:33).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수치스런 사건도 다 말하였다(막 14:66-72). 또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믿고 교만하게 말한 것도 숨기지 않고 다 말하였다(막 14:29-31). 이것은 베드로의 정직성과 겸손을 나타내 준다. 이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자 흐레이다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정직성과 겸손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그는 그의 설교에서 자신의 잘못을 미화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잘한 것을 드러내지도 않았다.”(S. Greijdanus, Bizondere Canoniek, I, Kampen: J. H. Kok, 1947, p.111) 이런 점에서 볼 때 베드로는, 설교자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되며 오직 주님만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좋은 모범이 된다.
III. 사랑과 포용의 리더십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품었다. 대표적으로 마가를 생각할 수 있다.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의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 그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 넓은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행 12:12).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는 아니었으나,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보고 설교를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최후의 만찬을 가진 집이 마가의 어머니 집이었을 수도 있다(막 14:13-16; cf. 행 1:14).
마가는 또한 바나바의 ‘사촌’이었다(개역개정판의 ‘생질’은 오역임).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구제하는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올 때 마가 요한을 데리고 왔다(행 12:25). 그러다가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 마가를 ‘수종자’로 데리고 갔다(행 13:5). 정식 선교사가 아니라 그냥 도우미 정도였다. 그러나 밤빌리아 버가에 이르렀을 때에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행 13:13). 아마도 선교여행이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것 같다.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청년 마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후에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였으나 바울은 반대하였다. 바나바가 볼 때, 마가가 이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볼 때, 마가는 선교 도중에 제 마음대로 돌아갔으니 영적 군대의 탈영병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은 심히 다투어 헤어지고 말았다(행 15:36-41). 마가는 바울에게 퇴짜를 맞은 것이다. 그래서 마가는 바나바를 따라 구브로(Cyprus)에 가서 전도하였다.
그후의 마가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베드로전서에 보면 ‘내 아들 마가’란 표현이 나온다(5:13). 여기서 ‘아들’은 육적 의미가 아니라 영적 의미이다. 유대 사회에서 제자가 스승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를 향해 “내 아버지여”라고 불렀다(왕하 2:12). 그리고 이스라엘 왕 여호람(요람)은 엘리사를 가리켜 “내 아버지여”라고 불렀다(왕하 6:21).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랍비 또는 선생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많이 불렀다(마 23:9). 이런 맥락에서 베드로가 제자 마가를 ‘내 아들’이라 부른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부른 것은 담임교역자와 부교역자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제시해 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성경에서 사랑의 관계, 기쁨의 관계를 나타낸다(마 3:17; 17:5; 벧후 1:17 등). 베드로는 마가를 따뜻하게 사랑으로 감싸고 돌보았다. 그래서 마가는 베드로를 따라다니며 시중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역사에 길이 남을 마가복음을 기록해 주었다. 바울에게 퇴짜 받은 마가를 베드로가 따뜻하게 품어서 훌륭한 일꾼으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베드로의 위대한 리더십이 있다.
베드로의 리더십은 머리가 뛰어나거나 행정력이 뛰어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바울처럼 총명하지도 못했고, 마태처럼 문서 정리를 잘한 것도 아니다. 헬라어가 부족해서 편지를 쓸 땐 실루아노의 도움을 받았다(벧전 5:12). 그렇지만 베드로는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지도자였다. 한 번 실패한 마가도 따뜻하게 품고 아들처럼 사랑으로 대하여서 마침내 마가복음을 저술하게 해 주었다. 베드로의 이런 따뜻함과 포용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담임교역자와 부교역자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마치 기업체의 회장과 비서의 관계처럼 되어 있지는 않은가? 명령과 월급에 의해 움직이는 관계가 아닌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닌가? 이런 관계가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관계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담임목사에게서 CEO의 모습이 아니라 베드로와 같은 참 목자의 모습을 보기 원한다. 사랑과 포용으로 감싸고 돌보는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를 원한다.
IV. 넓은 마음으로 포용한 베드로
베드로의 따뜻한 마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그의 동료들도 넓은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먼저 바울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바울에게 공개적으로 책망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면전에서 책망 받았다(갈 2:11).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갈 2:14). 이것은 베드로의 위선(僞善)을 지적한 것이다. 복음의 진리대로 바로 행하지 않은 것을 질책한 것이다. 곧,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야고보에게서 어떤 사람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두려워하여 식탁에서 떠나 뒤로 물러간 것이다. 말로는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다고 해 놓고서 행동으로는 차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베드로가 고의로 행한 것은 아니고 엉겁결에 행한 실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공개 책망한 것은 자칫 심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베드로가 잘못했다손 치더라도 공개적으로 무안을 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중에 따로 조용히 만나서 권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같이 있던 바나바와 다른 사람들도 베드로의 외식(外飾)에 미혹되었기 때문에 바울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복음의 핵심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만일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교단의 지도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어떤 지도자가 다른 지도자를 공개적으로 책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람은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앙심을 품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교단이 나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편지 어디에도 바울에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을 나타내는 구절은 없다. 오히려 베드로는 바울에 대해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라고 말한다(벧후 3:15). 자기를 공개 책망한 바울을 가리켜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라고 말한다. 얼마나 넓은 마음인가? 우리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베드로는 마음속에 바울에 대한 어떤 원망이나 앙심도 품지 않았다. 도리어 바울이 쓴 글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16절)고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말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베드로는 안디옥 사건에 대해 바울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다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허물이 많고 부족한 사람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총명하지도 못했고 배운 것도 없었고 그저 고기잡이하던 어부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스승에 대한 의리(義理) 하나만은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 자부심마저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자기의 스승을 세 번이나 연거푸 부인하는 대죄를 지은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에게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깊이 깨달았다. 전적으로 주님의 용서와 은혜에 의해 세움 받은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닷가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왜 나를 부인하였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요 21:15-17).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고 현재의 사랑을 물으시는 주님 앞에 베드로는 겸손히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고 고백하였다. 그런 베드로이기에 안디옥에서 공개 책망을 받았을 때에 그는 조금도 변명하거나 항변하지 아니하였으며 바울에 대해 앙심을 품지도 않았다. 베드로의 이런 넓은 마음이 있었기에 초대 교회는 분열됨이 없이 하나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V. 온유한 리더십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오순절 날 성령 강림 때 무리 앞에 나서서 설교한 사도는 베드로였다. 그의 설교로 말미암아 그 날에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역사가 있었다(행 2장). 뿐만 아니라 성전 미문(美門)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걷는 이적도 일어났다(행 3장). 산헤드린 앞에 잡혀 가서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 담대하게 말하였다(행 4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때에도 베드로가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행 5장).
뿐만 아니라 최초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도 베드로였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이사랴에 내려가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행 10장). 이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향하여 그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고 비난하였을 때, 베드로는 화를 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고 그 일을 차례대로 설명하였다. 그러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한다(행 11:18). 베드로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효과를 발한 것이다.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주의 천사가 내려와서 그를 풀어 주었다(행 12장). 베드로가 옥에서 나와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찾아갔는데, 그때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말하고 나서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행 12:17). 이때부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권은 주의 동생 야고보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야고보에게 지도권을 넘겼다. 그리고 후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는 화합하여 좋은 결론을 끌어내는 것을 보게 된다(행 15장).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다고 한다(9절). 이처럼 베드로는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다른 사도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VI. 로마에서의 복음 전파
언제부터인가는 모르지만 베드로는 말년에 로마에 와서 복음을 전하였다. 이레네우스가 쓴 『이단논박』(Adv. Haer.)에 보면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의 기초를 놓고 있을 때에, 마태가 히브리인들 가운데서 그들 자신의 언어로 복음서를 출판하였다.”고 한다(III,1,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기사 계급에 속한 가이사집의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증언을 하였다.”고 한다(cf. Th. Zahn, Einleitung3, II, 218 Anm. 9).
그러나 로마에 핍박이 일어났을 때에 베드로와 바울은 로마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마가에게 와서 베드로가 전했던 것을 기록해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기록한 것이 마가복음이다. 그런데 나중에 베드로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그것을 금하지도 않았고 추천하지도 않았다고 한다(Eusebius, Hist. Eccl. VI,14,7).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태도에 대해 생각할 것이 있다. 베드로는 우선 그 책을 금하지 않았다. 만일 금했다면, 그의 제자 마가를 꾸짖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왜 쓸데없이 이런 것을 적었나?”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추천하지도 않았다. “이 책은 참 잘 썼다. 좋은 책이다.”라고 추천하지도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베드로는 그 책을 선전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책을 선전하며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서 홍보하고 있는가? 그러나 베드로는 일체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의 제자를 무안하게 하지도 않았고 홍보하지도 않았다.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얼마나 올바르고 고상한 태도인가? 우리 같으면 도무지 참지 못하고 뭔가 말했을 것 같은데, 베드로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자신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영광만 바라보는 삶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VII. 베드로의 순교
베드로는 네로 황제 치하 때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였다고 한다. 로마의 대화재(64년 7월 18일)가 있고 나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이 일어났는데, 베드로는 그 해 가을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cf. Zahn, Einleitung3, II, 18).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릴 때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한다(외경 베드로행전). 베드로의 순교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이미 예언하셨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에 아마도 자신은 예수님처럼 바로 달려 죽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자신은 철저하게 무가치하고 부족한 죄인임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달려 죽기를 자청한 것이 아닐까? 이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쇼가 아니었다. 소위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요즘은 쇼와 퍼포먼스가 너무 많다. 요즈음 한국 교회가 타락했다고 해서 말들이 많은데, 이런 와중에 인터뷰하고 비판해서 뜨는 사람들이 있다. 전에 한국 교회가 회개해야 한다고 하니까 ‘회개위원회’를 조직한 적이 있었다. 회개마저도 감투가 된 세상이다. 이런 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며 참된 겸손이 아니다.
베드로의 겸손은 진정으로 자신의 무자격을 고백한 것이었다. 자기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다는 고백이었다.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한 그를 다시 일으키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신 주님, 디베랴 바닷가에서 말없이 생선구이를 대접해 주시던 주님을 생각하면 도무지 그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을 통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서 붙잡혀 죽을 때에도 “내가 순교한다”는 생각은 감히 엄두도 못 내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서 그를 사랑하신 주님께로 간 것이다.
베드로는 머리가 좋거나 많이 배운 사람은 아니었다. 계산이 빠르지도 않았고 글을 잘 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참된 겸손과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었다. 그를 공개 책망한 바울도 품었으며 앙심을 품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지혜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바울에게 퇴짜 맞은 마가도 넓은 아량으로 품어서 훌륭한 제자로 만들었다. 주의 동생 야고보에 대해서도 경쟁의식을 가지지 않고 기꺼이 예루살렘 교회를 부탁하고 떠나갔다. 마지막에는 로마제국의 중심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베드로는 겸손함과 따뜻한 마음으로 온 세상을 품었다. 그에겐 못 품을 사람이 없었다. 유대인들도 품었고 이방인들도 품었으며 로마인들도 품었다. 동역자들도 품고 제자들도 품었다. 이렇게 온 세상을 품을 수 있었던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비법은 없었다. 오직 마음을 비운 것뿐이었다. 그것은 유교적 ‘겸양(謙讓)’도 아니며 도교적 ‘허(虛)’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자기가 높아지기 위한 처세술에 불과하다. 베드로의 겸손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본받아 자기 자신을 비운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죄와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에서 온 것이었다. 주님 앞에서 낮아지고 자기를 비운 마음에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런 마음이다. 허례허식과 외적 치장, 각종 종교의식과 거짓 지식의 허울을 벗어버려야 한다. 또한 겸손을 가장한 교만, 윤리를 가장한 위선, 복음을 이용한 자기 영광을 벗어버려야 한다. 베드로처럼 참되게 주님 앞에 나아와 자기의 무능과 무자격을 고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온 세상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첫댓글 목사님, 감사합니다.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바울이야말로 진짜 목사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는데, 목사님 글 일고 보니 '베드로야말로 진짜 목사가 아닌가' 싶네요. 그 누구보다 진정한 목자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베드로 사도... 귀한 글 일게 해주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존경하는 교수님! 참으로 많은 은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귀한 글 잘 읽겠습니다.
(신철균전도사 드림)
귀한글 잘 읽었습니다
읽고 느낀바가 많습니다 몇가지 정리하자면
1.베드로는 자신이 부족한 죄인임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온유하고 겸손한 리더가 되었습니다. 지금 목사후보생인 저에게 가장 분면하게 인식해야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2.베드로가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은 예수님이 참 주님이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또는 성령님을 체험했다고 하지만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경험은 부족한 체험이라 생각합니다
3.저자에 대한 생각입니다. 신약성경을 한 맥락으로 꿰고 있음을 느낍니다.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복음서 뿐만 아니라 서신서를 넘나 들면서 베드로에 대한 내용과 교훈을 제시합니다.
좋은 글로 깨달음과 도전하는 의지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후보생 윤웅열)
교수님 감사합니다
어제 Th.m 요한 복음 강해 너무 좋았습니다. 어제는 몸이 아프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강의를 들으면서 침체되어 있던 영혼과 육체가 회복되었습니다. 좀 신기합니다. 그리고 부흥사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신대원 다닐때는 로마서와 요한 계시록 강해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는 요한 복음으로 은혜받습니다.~~ 매주 월요일이 기대가 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 제가 성경인물 가운데 구약은 갈렙, 신약은 베드로를 좋아하는데 베드로에 대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어서 기쁨니다. 감사합니다. 늘 강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