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의 놀라운 선전을 지켜 보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2 가지를 늘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한국의 이런 선전이 차기 대회에서도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한국의 월드컵 4 강 신화는 단순한 홈 텃세의 결과인가 아니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한국 축구의 새로운 시작인가?
둘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표팀 성원에 열광적이었던 국민들이 국내 프로 축구에는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이상과 같은 반문을 제기해 보면서 한국 대표팀을 중심으로 2002 한.일 월드컵 전반에 대해 스케치해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7 월 3 일 작성 분 입니다.
◆ 2002 월드컵에서의 한국 대표팀
2001년 초 Hiddink 체제 가동과 함께 한국 대표팀에 대한 대폭적인 체질 개선이 단행되었고 그 결과 고정된 포지션이 없는 네덜란드 식 Total Soccer 가 한국 대표팀의 전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체질 개선 과정에서 한국은 프랑스와 체코에 내리 0:5로 지는 등 혹독한 참패를 겪기도 했지만 이것은 월드컵 4 강 입성의 값진 밑거름 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Power program 이란 체계적 체력 훈련을 5 개월 이상 쌓아온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 직전 세계적 강호인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대등한 경기를 보여 주었고 그 결과 유럽 팀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감의 귀결로 나타난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 7 개를 스케치해 보기로 하죠..
(1) KOREA : POLAND (D 조 조별 예선 첫 경기 , 2002. 06. 04 부산)
6월 4일 , 20시 30분 부산에서 시작된 폴란드와의 월드컵 첫 경기 에서 한국은 황선홍, 유상철의 릴레이 골로 폴란드를 2:0으로 쉽게 격파함으로써 15 게임 만에 월드컵 첫 승을 이루어 냈습니다. 참고로 이 전 대회까지 한국의 역대 월드컵 전적은 4 무 10 패
그런데 경기 내용은 스코어 이상이었습니다. 한국이 전반 10 여 분을 제외한 나머지 70 여 분의 경기를 압도적으로 지배했으며 폴란드는 한국의 강력한 압박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후반 막판에 폴란드의 수비가 무너지면서 여러 차례 좋은 기회를 잡은 한국이 3:0 내지는 4:0으로 달아날 수도 있었던 경기 내용이었습니다.
참고로 폴란드가 보여준 전반 시작 10 여 분은 매우 날카로왔습니다. 만약 이때 한국이 실점하였다면 경기 내용과 결과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을 것 입니다. 아무튼 전반 초반을 제외하고는 한국이 경기를 지배해 나갔습니다.
폴란드 언론들은 “지는 것은 둘째 치고 라도 이렇게 힘 한번 제대로 못 써 보고 무너지는 폴란드 축구”를 심하게 질타했습니다.
(2) KOREA : USA (D 조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 , 2002.06.10 대구)
6월 10일 , 15시 30분 대구에서 시작된 미국과의 두 번째 경기는 한국의 우세 속에 경기가 진행되었으나 전반 중반 황선홍의 이마 부상 으로 대표팀이 잠시 집중력이 해이해진 상황에서 한 골을 허용, 경기를 어렵게 풀어나갔습니다.
전반 끝나기 직전에 한국은 PK기회를 얻었으나 이을용이 이를 실축…
후반에 들어서도 한국의 파상 공격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후반 32 분 경 안정환의 천금 같은 헤딩 골로 한국은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참고로 안정환의 헤딩 골은 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헤딩 골이라고 함.
이후에도 한국은 파상 공세를 펴며 여러 차례 결정적인 역전의 기회를 잡았으나 골 결정력 부재로 인해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한국이 치른 월드컵 경기 7 개 중 득점 찬스가 가장 많았던 경기였습니다. 6~7 개의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친 터라 우리의 히딩크 감독도 망연자실하듯 입만 연신 벌리고 말았죠..
(3) KOREA : PORTUGAL (D 조 조별 예선 세 번째 경기 , 2002.06.14 인천)
6월 14일 , 20시 30분 인천에서 있은 포르투갈과의 마지막 D조 조별 예선… 상승세의 포르투갈에 지면 한국은 16 강에 탈락하는 어려운 상황… 해외 언론들은 백중세를 예상했으나 정평 있는 도박사들은 모두 세계 랭킹 5위인 포르투갈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외 도박사들의 예상과는 달리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허리에서부터의 강력한 압박으로 경기를 지배해 나갔으며 세계 3대 게임 메이커라는 Luis Figo는 송종국에게 꽁꽁 묶여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밀리는 경기 내용에 당황한 포르투갈 선수들은 급기야 파울을 남발, 레드 카드를 받으면서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비기기만 해도 이탈리아를 피해 멕시코와 16 강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포르투갈은 후반 들어 비기기 작전으로 나왔으나 한국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이는 후반 25 분 박지성의 그림 같은 결승 골로 연결 되어 한국이 1:0으로 앞서나가게 됩니다.
지면 탈락이기에 포르투갈은 막판 공세를 폈으나 시간이 부족해 결국 1:0으로 무릎을 꿇어 프랑스 (1위) , 아르헨티나 (2위) 와 함께 16 강에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4) KOREA : ITALY (16 강 , 2002.06.18 대전)
16 강에 진출한 한국의 상대는 세계 랭킹 6위인 이탈리아.. 해외 시각은 한국에서의 준결승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붙을 것이라고 예상할 정도로 이탈리아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습니다.
6월 18일 , 20시 30분 한국의 첫 축구전용구장 경기가 대전에서 kick off 되었습니다.
한국은 경기 초반 경기를 압도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이탈리아 수비수 Panuti의 파울로 페널트 킥 기회를 잡습니다. 그러나 안정환이 이를 실축 하면서 경기의 흐름이 급 반전 됩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파울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는 것을 일깨우듯 세리에 A에서 갈고 닦은 교묘한 파울 (이를 테면 심판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상대를 팔꿈치로 가격하는 것 ) 을 남발하면서 기선을 제압하려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이런 위압적인 非신사적인 행위와 한국의 PK 실축으로 경기의 흐름은 이탈리아 쪽으로 넘어갔고 Totti의 코너 킥을 Vieri가 헤딩 골로 연결시켜 이탈리아가 한 발 앞서나가게 됩니다.
이탈리아는 이때부터 공격수 Del Piero를 수비수로 교체하는 등 빗장을 잠그는 전통적인 수비 정책으로 전환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전반 중반 이후부터는 한국이 비록 허리는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공격을 주도 했고 이탈리아는 역습 위주로 대응했습니다.
카데나치오 (빗장 수비)로 잘 알려진 아주리 군단의 수비는 견고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수비가 강한 이탈리아에 한국이 한 골을 넣는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역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잘 아시다시피 유로 2000에서 이탈리아는 홈 팀 네덜란드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는데 이는 탁월한 수비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입니다.
네덜란드의 파상적인 공격을 잘 막아내 승부차기 승으로 결승에 올랐고 결승전에서는 프랑스와 맞붙어 프랑스의 예봉을 잘 막아내다가 연장전 에서 프랑스의 트라제거에게 골든 골을 내주어 준우승에 머문 “수비 축구의 대명사”인 나라 입니다.
그러나 이탈리아도 허점이 있기는 마련.. 패색이 짙어가던 한국은 후반 43 분 집중력이 떨어진 이탈리아 진영의 틈새를 파고 들어 설기현이 기적 같은 동점 골을 작렬 시키고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갑니다.
연장전에서 한국과 이탈리아는 서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많은 득점 기회를 가졌으나 모두 무위에 그쳤고 연장 전반 말미에 이탈리아 게임 메이커 Totti 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인한 퇴장으로 이탈리아는 수세에 몰리게 됩니다.
승부차기가 임박한 연장 후반 12 분, 이영표가 센터링해준 것을 안정환이 다시 한 번 헤딩으로 골을 터트림으로써 한국은 대망의 8 강에 올라서게 됩니다.
한편 이 경기는 역대 월드컵 사상 가장 극적인 경기중의 하나로 기록될 정도로 명승부였습니다.
경기 종료 3분 전에 극적인 동점 그리고 승부차기로 가기 3 분전에 기적과 같은 역전
이와 아울러 전 세계 네티즌이 뽑은 “이번 대회 가장 멋진 경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 수 아래라고 여겼던 한국에 발목을 잡힌 이탈리아는 패배를 인정 하지않고 자국 여론과 네티즌을 총동원하여 편파 판정 시비 논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국민들의 불만을 진화 시키려 하였습니다.
(5) KOREA : SPAIN (8 강 , 2002.06.22)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에서 붙게 된 나라는 세계 랭킹 8 위인 스페인
문제는 체력이었습니다.
한국은 이탈리아와 117 분을 싸웠으며 스페인보다 이틀을 덜 쉬었기 때문에 체력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광주에서 열리는 8 강전이 무더운 시간대인 오후 3시 30분 경기라 한국에게 여러모로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상과 달리 한국은 경기 초반에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리드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전반 15 분이 지나면서 김남일이 부상으로 허리에서 제 몫을 해주지 못하게 됨에 따라 경기의 주도권은 스페인으로 넘어갔고 이런 상황은 90분 게임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다만 연장 전후반 30 분은 게임 내용이 대등했습니다.
90 분 게임은 득점 없이 0:0으로 끝났고 승부차기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게 되었습니다. 승부차기는 한국과 스페인 국민 모두에게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이탈리아 전에서 페널트 킥을 모두 실축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승부차기가 한국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은 키커 5 명이 모두 페널트 킥을 성공시켜 스페인을 5:3으로 누르고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4 강에 진입하게 됩니다.
스페인의 신성 Raul이 결장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 역시 전력의 누수가 크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참고로 월드컵 4 강 무대는 유럽과 남미 국가들 만이 독식하던 곳으로 월드컵을 두 번이나 유치한 북중미의 맹주 멕시코조차도 밟아보지 못한 곳이며 신흥 축구 강호의 반열에 올라선 아프리카 국가들조차도 오르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곳이죠. .
한국은 아시아를 대표해서 제 3세계 국가로는 처음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월드컵 4 강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6) KOREA : GERMANY (4 강 , 2002.06.25)
준결승전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결승 진출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의 체력 소모가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죠
한국은 16 강에서 이탈리아와 117 분 그리고 8 강에서는 스페인과 뙤악 볕에서 120 분을 싸웠습니다. 반면 독일은 16강과 8강에서 파라과이와 미국을 90 분 경기로 끝냈습니다.
특히 8 강전에서 한국은 낮 경기를 그것도 120 분 간 뛴 반면에 독일은 한국보다 하루 전에 밤 경기를 90 분 가졌습니다.
결국 독일보다 57 분을 더 뛰고 또 하루를 덜 쉰 한국 여기에 핵심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전력 누수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한국 대표팀이 체력이 강한 독일을 꺾는다는 것은 home advantage 가 아무리 작용한다고 해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경기 초반은 한국의 페이스 였습니다. 선수들의 위치 선정이 좋았고 몸 놀림도 아주 경쾌해 보였습니다.
전반 8분 이천수의 기습적인 슛은 Oliver Kahn 이 아니었다면 막아내기 힘든 멋진 슛이었습니다. 한국이 또 한번 이변을 연출해 내는가 싶었습니다.
참고로 이천수의 슛을 막아낸 올리버 칸의 선방은 이번 대회 최우수 선방으로 뽑혔다고 함
압박 수비로 초반의 몇 차례 위기를 잘 넘긴 독일 전차군단은 전반 15 분이 지나면서 한국의 누적된 체력 소모에 편승하여 경기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고 이런 양상은 후반 20 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독일의 전술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Neuville의 발 빠른 우측 침투 그리고 센터링 신장에서 앞선 Ballack , Klose 의 헤딩
독일은 이렇게 장신 공격수들의 머리를 겨냥한 단조로운 고공 폭격을 쉴새 없이 감행하였는데 최진철 이하 한국 수비진들은 지친 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잘 막아내었습니다.
후반 20 분 경 서부터는 한국의 공세로 상황이 일진 일퇴로 바뀌게 됩니다. 한국이 드디어 승부수를 띄운 것이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수비 막이 엷어졌고 독일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후반 30 분 경에 결승 골을 얻게 된 것 입니다.
대진운이 한국에 불리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독일과 비슷한 일정으로 휴식을 갖고 미드 필더의 핵 김남일이 결장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후반 중반에 부상으로 최진철이 교체되어 나가지만 안 했어도 한국에 충분히 승운이 있었던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7) KOREA : TURKEY (3~4 위전 , 2002.06.29)
한국의 마지막 경기 상대는 하필이면 형제의 나라라고 자칭 되던 터키…
터키가 조별 예선에서 중국을 3:0 , 16 강전에서 일본을 1:0으로 제압 하는 등 東아시아 국가를 모두 이기고 올라왔다는 점
그리고 1954 년 스위스 대회 때 한국에게 0:7의 수모를 안겨주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강한 체력에 바탕을 둔 조직력 축구를 구사해 한국과 비슷한 스타일의 축구를 한다는 점
비록 친선 경기의 성격이 짙은 3~4 위전이지만 전 세계는 이 두 나라 간의 승패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한국 역시 과거의 설욕과 東아시아의 자존심이 어우러져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전반 시작 11초 만에 홍명보의 실수를 틈타 이번 대회에 극도로 부진했던 하칸 쉬쿠르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만 것이죠..
이는 역대 월드컵 대회 최단시간 골… 1962 년 체코슬로바키아가 16 초 만에 멕시코 골 문을 연 것이 역대 최단 시간 골이었는데 이 기록이 40 년 만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전열을 빨리 가다듬고 한국은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터키를 몰아 부쳤고 전반 9 분 이을용이 그림 같은 프리킥을 성공시킵니다.
그러나 한국은 경기를 리드함에도 불구하고 수비 불안을 드러내며 터키의 스트라이커 일한 만시즈에게 내리 두 골을 허용하여 전반을 1:3으로 마칩니다.
참고로 한국은 터키 전에서 부동의 three back 중 김태영과 최진철 두 명이 부상으로 결장하였습니다. 여기에 홍명보의 초반 실수로 인해 수비 라인이 한번에 무너진 것은 당연지사..
한국은 후반 들어서 더 날카롭게 터키를 몰아 부쳤고 힘에서 밀린 터키는 수성에 바빴습니다. 경기 종료가 임박하던 후반 48 분 송종국의 땅볼 중거리 슛이 차두리를 스쳐 각도가 바뀌면서 한국은 3:2까지 따라 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경기의 끝이었습니다.
경기 종료 후 한국과 터키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한국과 터키를 함께 연호하던 관중들에게 화답했으며 역대 월드컵 3~4 위전 중 가장 우호적인 경기로 평가 받게 되었습니다.
◆ 한국 경기와 관련된 심판 판정에 대하여
이번 대회도 여느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오심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잉글랜드 : 아르헨티나 戰에서 잉글랜드의 Owen 이 헐리우드 액션을 취하며 넘어졌는데 이탈리아의 외계인 심판 콜리나가 이에 속아 잉글랜드에게 PK 기회를 준 점
일본 : 러시아 전에서 일본의 이나모토가 넣은 골은 오프 사이드 상황 이었는데 골로 인정된 점
브라질 : 벨기에 16 강 전에서 벨기에의 첫 골을 오프 사이드로 판정한 점
그러나 한국과 관련된 경기에서 심판 문제가 유독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오심이 아니라 편파 판정이라는 점.. 이 문제 제대로 짚고 넘어가기로 하죠..
한국의 첫 두 경기는 심판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포르투갈 전서부터 시작됩니다.
KOREA : PORTUGAL
2 명이 퇴장 당하면서 포르투갈은 수적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게 되는데 과연 두 명까지 퇴장 시킬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 입니다.
비록 카드를 받을 상황이었지만 이미 받은 것을 고려하여 경고나 주의로 끝냈어야 하는데 아르헨티나 주심은 포르투갈에 너무 가혹했다는 것 입니다. 사실 저도 이 점은 동의합니다.
KOREA : ITALY
이탈리아 전 역시 편파 판정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탈리아 언론은 자신들이 편파 판정의 희생양이라며 경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전반 초반에 한국이 얻은 페널트 킥은 편파 판정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유상철과 설기현을 옷을 붙잡으면서 이들을 땅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이 부분은 경기 화면이 증명해 줍니다.
연장 전반 막판 Totti는 simulation action으로 퇴장 당하는데 이 부분은 좀 석연치 않습니다. 비록 토티가 유럽에서 Hollywood action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고는 하지만 이 상황은 좀 민감합니다.
이것이 헐리우드 액션인지 정말로 송종국에게 걸려 넘어졌는지 저도 잘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40 미터 후방에 있던 시력이 1.5 라는 에콰도르 주심 모레노는 토티에게 노랑 카드를 꺼내 들었고 토티는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고 만 것이죠..
결국 이탈리아 역시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수적 열위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전패 당합니다.
KOREA : SPAIN
스페인 전은 편파 판정의 극치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언론의 심한 질책에 시달리는 모레노를 보면서 스페인 戰 심판을 맡은 이집트 주심은 어떠한 생각을 가졌을까?
그것은 개최국에 대한 역차별로 나타났습니다. 같이 파울을 해도 한국이 파울 했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휘슬을 불었고 스페인이 파울 했을 경우에는 비교적 관대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 스페인은 두 골을 잃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후반에 스페인은 헤딩으로 골을 넣는데 이미 헤딩하기 전에 휘슬이 울렸고 휘슬 소리를 들은 이운재가 공을 잡으려다가 그냥 팔을 내려 골인되도록 방관했고
연장전에 골 라인 선상에서 띄운 센터링이 골로 연결되었는데 부심이 골 라인 넘어갔다고 해서 이를 무효화 시켰죠!
골 라인 넘어가지 않은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골로 연결될 수 있었던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이 역시 이운재가 공이 그냥 들어가도록 방관했죠..
마지막으로 주심은 스페인에게 코너 킥을 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지 않았다? 네!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편파 판정 아닙니다.
연장전은 90 분 경기와 달리 lose time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15 분이 되면 끝납니다. 코너 킥을 차려고 할 때에는 이미 15 분이 지난 상황 이었습니다.
편파 판정을 의식한 듯 심판은 오히려 한국에게 불리하게 휘슬을 불었고 이런 역차별 속에 한국은 4 강에 진출하게 됩니다.
KOREA : GERMANY
독일 戰 주심은 미국 戰 주심을 맡았던 스위스 사람 문제는 그가 독일계 스위스 인이라는 점! 이는 조선족이 한독전 심판을 맡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
비교적 공정하게 보긴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독일에 관대했습니다. 황선홍이 돌파하려다 몸싸움에 밀려 넘어져도 심판은 오히려 황선홍에게 주의를 줬죠..
독일에 좀 치우치는 판정을 내리는 것이 좀 겸연쩍어서 그런지 아니면 한국에게 결정적인 advantage 상황을 인정할 수도 있었음에도 휘슬을 불어 미안해서 그런지 주심은 발라크에게 yellow card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처럼 주심의 판정은 독일에게 우호적이고 관대했으며 한국에게는 다소 불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KOREA : TURKEY
마지막으로 터키 戰 주심은 쿠웨이트 사람
아시아 국가 : 유럽 국가 경기에 아시아 사람이 주심을 맡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쿠웨이트 주심은 우리와 같은 아시아 사람이기도 하지만 터키와 같이 이슬람을 함께 믿는 유대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아시아와 유럽의 대결인 한독전의 주심은 유럽인이었으며 그것도 독일계 유럽인이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큽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3~4 위전 판정 내용이 무난했다는 점 입니다.
◆ 한국 대표팀에 대한 평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부족한 개인기를 강한 체력으로 극복한 쾌거!
한국 대표팀에 늘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수비 불안과 골 결정력 부족 그리고 후반에 나타나는 급격한 체력 저하 였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골 결정력 부족은 여전하였지만 수비 불안과 후반 체력 저하 문제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팀에 비해 수비가 강했으며 역대 취약 포지션 중의 하나였던 골키퍼는 실력이 탁월하여 Yachine상을 넘볼 정도였습니다. 이와 아울러 체력 역시 본선 진출국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렇게 전력이 안정된 상태에서 대표팀은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뒤에 업고 월드컵 4 강 입상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되는데 여기에는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조련이 뒷받침되었습니다.
체력이 뛰어났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으며 역전을 불허하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기적과도 같은 역전 승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 입니다.
한국은 이탈리아와의 16 강전 까지는 제 실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페인과의 8강전 그리고 독일과의 4 강전은 실력보다는 투혼이 발휘된 시합이었습니다.
한국은 스페인보다 2 일을 덜 쉬고 스페인과 경기를 가졌고 독일보다 57 분을 미리 더 뛰고 또 하루를 덜 쉰 상황 (독일은 21 일 저녁 경기 90 분인 반면 한국은 22 일 낮 경기 120 분) 에서 경기를 가졌기 때문에 우리의 태극 전사들이 아무리 홈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뛰더라도 유럽의 대표적 강호인 스페인과 독일에 경기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하죠
만약 한국이 비슷하게만 쉴 수 있었다면 어디서 경기를 갖든 예컨대 유럽에서 시합을 갖더라도 한국은 스페인과 독일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선수 구성
히딩크 체제 출범 이후 생소한 이름들이 태극 전사로 등록됩니다.
이을용, 송종국, 김남일,
당시만 해도 신뢰가 가지 않는 풋내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들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을용은 폴란드와 미국 전에 assist를 하나씩 기록했으며 송종국은 field player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의 7 경기 모두를 쉬지 않고 뛰었으며
김남일은 미드필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는 한국 공격의 시발 점이자 상대 공격의 1차 저지선이었습니다.
그가 있었기에 한국은 허리에서 밀리지 않았으며 그가 없었기에 스페인 전 그리고 독일 전에서 한국이 밀렸습니다.
특히 독일 전 패배 원인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진공 청소기 김남일의 결장 때문이라는 외국의 분석이 있을 정도 였습니다.
이처럼 히딩크는 K리그에서 평범한 선수로 사장될 뻔 했던 유망주를 발굴해 한국의 대표적인 선수로 키워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프리 킥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낀 점인데.. 비록 이을용이 마지막에 멋진 프리킥을 우리에게 선사하긴 했지만..
제가 감독이었다면 프리킥의 달인 하석주를 엔트리에 넣었을텐데.. 그런데 히딩크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아마! 체력이겠지만.. 하석주를 엔트리 23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축구 천재 고종수의 부재도 정말 안타깝습니다. 부상만 아니었으면 이번에 큰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 텐데.. 말 입니다.
한편 이동국의 슬럼프도 정말 아쉽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스트라이커 인데 말 입니다.
私見입니다만 현영민 대신에 최성국을 엔트리 23에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가집니다.
엔트리 23에 포함된 최용수가 부상 중이라는 점도 안타깝습니다. 최용수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이동국을 엔트리 23에 포함시키지.. 라는 생각까지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게임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꾀돌이 윤정환을 마지막까지 외면한 점도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막판에 기용되어 펄펄 날던 모습을 보인 최태욱 이를 부상 등의 이유로 초반부터 활용하지 못한 점도 아쉽군요!
상암 경기장에서 첫 골을 넣은 바 있는 최태욱이를 독일 전에 기용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가집니다.
◆ 2002 한국 대표팀의 전형
상대에 따라 전형이 3.4.3 혹은 4.4.2로 바뀌기는 하였지만 기본 formation은 3.4.3이었습니다.
☞ 괄호는 출생 년도를 의미
설기현 (79) / 황선홍 (68) / 안정환 (76)
이영표 (77) / 유상철 (71) / 김남일 (77) / 송종국 (79)
김태영 (70) / 홍명보 (69) / 최진철 (71)
이운재 (73)
여기서 GK 와 수비수 3 명은 부동이었습니다.
다만 미드필더를 보는 왼쪽 side attacker인 이영표는 부상으로 자리를 이을용에게 잠시 내주었으나 다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머지 미드필더인 유상철, 김남일 그리고 송종국은 부동이었습니다.
공격수들은 상황에 따라 기용되었으나 설기현 / 황선홍 / 안정환 라인이 원칙이었습니다. 설기현 자리에는 이천수가 기용되었고 황선홍과 안정환 자리에는 박지성과 차두리가 기용되었습니다.
4.4.2 전술을 쓸 때에는 김남일이 수비로 내려오고 안정환이 미드필더로 내려 왔습니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돋보인 경기를 펼친 이유는 다음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GK 와 수비수들이 안정된 수비력을 보여준 면도 높이 사야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미드필더들의 역할이 더 컸다는 점..
이들은 특유의 협력 수비로 상대방의 공격을 1차 저지선에서부터 잘 막아내어 최후 수비 라인이 받을 부담을 최소화 시켰으며 발 빠른 공수 전환으로 모두 공격에도 참여하여 상대 수비 라인을 뒤 흔들었습니다.
많이 뛰는 사람 앞에 기량이 출중한 사람도 속수무책이긴 마련.. 한국은 많이 뜀으로써 상대방에게도 극심한 체력 소모를 가져다 주었으며 이는 상대방의 집중력 저하를 가져왔고 체력에서 앞서는 한국은 이러한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과 이탈리아 전 입니다.
◆ 집고 넘어가야 할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
한국의 4 강 진출! 비록 개최국이란 이점이 있긴 하지만 한국의 열악한 풍토에서 이런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은 분명 기적입니다.
한국이 예상 밖의 순항으로 4 강에 입성했을 때 우리 국민들은 독일을 누르고 결승에서 브라질마저 꺾어 우승하길 바랬습니다.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한국이 우승하길 바랬던 간절한 이유는 이렇게 좋은 기회가 앞으로 당분간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죠..
사실 한국은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독일과 준결승전을 가졌고 75 분을 무실점으로 막아내었습니다. 이것 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일 대표팀이 역대 최약체 팀으로 평가 받고 있었기에 한국은 또 다른 기적을 기대했던 것 입니다.
☞ 잉글랜드 그리고 프랑스와의 평가전은 체력 손실의 서막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만 한국의 월드컵은 5 월 31 일이 아닌 21 일에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평가전이긴 하지만 대표팀은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월드컵 본선에서 경기하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월드컵 직전에 치러진 유럽의 두 강호와의 평가전이 비록 한국에 자신감 획득이란 큰 결실을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월드컵이란 장기 레이스에서 체력을 소모 시키는 악재로도 작용했고 이와 아울러 한때는 부동의 two top이라고 불리던 최용수의 부상까지 가져 왔습니다.
물론 평가전의 최대 피해 국가는 프랑스 입니다. 한국과 평가전에서 프랑스 팀의 정신적 지주 Zidane이 부상당했고 그 결과 프랑스 팀 분위기가 뒤숭숭해져 무득점에 16강 탈락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니까 말이죠
아무튼 한국이 잉글랜드 그리고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좀 더 일찍 가졌다면 한국은 준결승전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 입니다.
☞ 독일 전에서는 후보 멤버들을 선발로 기용했어야…
태극 전사들은 all round player 혹은 multi player로 집중 조련 되었습니다. 주전, 후보가 따로 없을 정도로 훈련 받았습니다.
연일 강행군으로 선수들이 탈진 직전 상황이었음에도 히딩크는 주전과 비슷한 기량을 갖춘 벤치 멤버들을 외면했습니다.
상암 구장의 첫 골 주인공인 최태욱이나 게임에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윤정환을 스타팅 멤버로 기용했어야 된다고 봅니다. 사실 이 점은 정말로 아쉬웠습니다.
제가 보아도 예전의 독일 전차 군단이 아니었습니다. 발 빠른 Neuville의 우측 돌파를 통한 센터링 ,그것을 Klose를 비롯한 독일 장신 공격수들의 골문으로 헤딩!
독일의 전략.전술…너무 단순했습니다.
아! 안타깝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준결승전입니다.
한국! 여분의 체력만 있었다면 또 벤치 멤버들을 선발로 출전 시켰다면 게임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발라크에게 골을 허용 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결국은 한국이 이길 수도 있었는데… 말 입니다.
평생을 가슴에 안아 둘 가슴 아픈 경기였습니다.
◆ Guus Hiddink 감독 스스로의 평가 및 진로
2002 월드컵을 통해 히딩크 감독은 역대 월드컵 감독 중 유일하게 준결승에 연속으로 2 번 오른 명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1998 년도 프랑스 대회에서는 모국 네덜란드 팀을 이끌고 준 결승에 진출하여 브라질에 승부차기에 패한 후 3~4 위 전에서 크로아티아에 패해 4 위에 머물렀고 2002 대회에서도 개최국인 한국을 4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1998 대회 때보다 이번 2002 대회에 더 큰 만족과 성취 감 그리고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1998 네덜란드 팀을 맡을 때에는 이미 네덜란드는 강력한 우승 후보 중의 하나였으며 자신은 단지 선수들을 조합하여 월드컵에 대비했을 뿐인데 반해 한국의 경우는 1998 네덜란드와는 상황이 달랐다는 것 입니다.
히딩크 자신이 한국 선수들의 기본기부터 조련했고 훈련이 아무리 힘들 더라도 선수들은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지 않고 강훈을 묵묵히 소화해 내어 이런 대업을 이루었기에 히딩크가 뿌듯한 성취 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한국 대표팀은 無에서 有를 창출했고 그것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 창조 였으며 그것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히딩크 자신이었기에 히딩크가 느끼는 희열은 대단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히딩크 감독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본인의 의사에 맡길 수 밖에 없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 한국을 떠나는 것 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2006 월드컵 대표팀 지휘봉을 2004 년 경에 잡는 방안이 가장 좋은 대안 이라고 봅니다. 히딩크가 앞으로 계속 4 년 동안 지휘봉을 잡으면서 어린 선수들을 발굴, 육성해 내는 것도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좋기는 하지만 축구의 본 고장 유럽에서 선진 축구를 계속 체험하고 이를 2 년 후에 한국 대표팀에 투영시키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2004 아테네 올림픽이 끝나는 시점에서 히딩크는 반드시 한국으로 복귀해야 하고 그것을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 입니다.
만약 히딩크 체제로 2006 독일 월드컵을 맞게 된다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 입니다.
(1) 검증된 지도자
2002 월드컵 4 강 달성으로 그의 탁월한 지도력이 검증을 받았습니다. 목표를 향한 과정에서 그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2002 월드컵을 준비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국민들과 언론 그리고 대표 선수들 모두 전폭적으로 감독을 신뢰할 것 입니다.
(2) 성실하고 예의 바른 지도자
히딩크 처럼 명성 있는 유능한 지도자가 해외에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성실함과 예절.. 히딩크는 이 모두를 겸비했습니다.
前 일본 대표팀 감독이었던 Trussier처럼 인지도도 낮으면서 오만한 감독들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명장의 반열에 올라 있는 히딩크는 겸손하기까지 합니다.
(3) 한국 축구 스타일에 맞는 지도자
이와 아울러 빼 놓을 수 없는 점이 한국 축구 스타일에 맞는 나라의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아야 한다는 점인데 공교롭게도 네덜란드 축구는 한국 축구가 예전부터 지향했던 스타일 입니다.
ㅡ 강한 체력에 바탕을 둔 기동력 있는 압박 축구, 토탈 싸커 ㅡ team work를 중시하는 조직력 축구 ㅡ 중앙 돌파보다는 발 빠른 side attack 을 선호하는 날개 축구
한국과 네덜란드 축구가 공유하는 부분입니다.
(4) 이제는 한국 축구에 정통한 지도자
그리고 한국에서 1년 반을 생활하면서 그 어떤 외국인에 비해 한국 축구에 정통하고 있습니다. 다시 복귀할 경우 한국 축구가 어떤지? 에 대한 분위기 파악도 할 필요 없이 바로 실전으로 돌입할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히딩크 감독님!! 2년 후에 서울에서 다시 뵙죠.. 그리고 독일 대회에서도 4 강 신화 재현해 주시길..
◆ 2002 한일 월드컵의 의의
(1) Inter Atlantic Ocean Cup 을 탈피한 진정한 월드컵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주를 오가며 개최되어 왔던 Inter Atlantic Ocean Cup 이 21 세기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개최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World Cup으로 승화, 발전되었습니다.
(2) 첫 공동 개최 월드컵
2개의 주권 국가가 공동으로 치룬 첫 월드컵입니다. 유치 과정에서 한일 양국간의 과도한 경쟁과 유치 실패 時 그 국가가 받을 엄청난 타격과 후유증을 우려하여 FIFA 는 공동유치를 결정 하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다른 이유로 인한 공동 유치를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습니다.
월드컵의 규모 확장으로 월드컵을 단독으로 유치할 수 있는 국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 유치를 추진함으로써 부족한 부분 을 상호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것이 경기장입니다. 경기장 수는 10 개 정도면 되므로 개막식과 결승전을 치루는 6 만석 이상 경기장 하나에 4 만석 이상 경기장 9 개를 갖추면 되는데 小國들이 공동 유치할 경우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EURO 2000을 공동 유치한 벨기에 & 네덜란드 조합 그리고 그리스 & 터키 조합 , 스위스 & 오스트리아 조합 , 칠레 & 페루 조합 등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3) 역대 우승팀 7 개국이 모두 참가한 첫 월드컵
우루과이 (1930, 50) , 이탈리아 (1934, 38, 82) , 독일 (1954, 74, 90) , 브라질 (1958, 62, 70, 94) , 잉글랜드 (1966) , 아르헨티나 (1978, 86) 그리고 프랑스 (1998) 이렇게 역대 우승팀 7 개국이 모두 참가한 첫 월드컵입니다.
역대 대회의 경우 우루과이나 잉글랜드 그리고 프랑스는 종종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이들 나라가 모두 참가했습니다.
특히 우루과이 같은 경우 호주와의 play off로 간신히 이번 대회에 막차를 타고 입성했습니다.
(4) 준준결승전에 5개 대륙이 모두 입성한 첫 월드컵
역대 월드컵 8 강은 유럽과 남미 2 개 대륙, 보통 6:2 비율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비약적인 축구 발전으로 유럽과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편성된 8 강, 보통 5:2:1 비율이 주류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북중미의 미국 그리고 아시아의 한국이 모두 8 강에 진출함으로써 5 개 대륙 모두에서 8 강에 진입하는 진 기록이 나왔습니다.
(5) 한국의 단합된 힘 과시
16 강을 목표로 했던 한국이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톡톡히 보면서 4 강에 진출한 것은 전 세계적인 뉴스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뉴스 거리는 한국의 성숙한 옥외 대규모 응원 문화!
온통 붉은 물결로 도배된 경기장 그리고 광화문, 시청 등과 같은 옥외 지역에서의 수 십만의 붉은 인파 물결.. 무질서해 보이면서도 경기가 끝나면 주변 지역을 깔끔히 청소하고 해산하는 한국민들의 성숙한 모습
수준 높은 한국의 경기와 더불어 이렇게 단합된 붉은 물결이 전파를 타면서 세계 곳곳에 방영되었고 이는 TV를 시청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렇게 성숙한 한국의 옥외 대규모 응원 문화는 전 세계의 보편적인 축구 관전 문화로 정착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6) 이변이 가장 많았던 월드컵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주를 오가며 개최되어 왔던 월드컵이 21 세기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개최되었고 이런 새로운 환경에 편승하여 여러 가지 이변이 양산되었는데 그 정도가 역대 대회 중 최고였습니다.
우선 역대 대회의 이변을 잠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950 브라질 대회에서 미국이 잉글랜드를 1:0으로 승리 1954 스위스 대회 결승에서 독일이 헝가리를 3:2로 누른 것도 이변
1966 잉글랜드 대회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누르고 8 강에 올라 전반 25 분 만에 전 대회 우승팀 브라질을 누르고 올라온 포르투갈에 3:0으로 앞서나가다가 하마터면 준결승에 진출할 뻔 했던 것도 大 이변
1978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튜니지아가 멕시코에 3:1 역전승하고 독일과 0:0으로 비긴 것도 이변
1982 스페인 대회 개막전에서 벨기에가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이기고 알제리아가 독일과 칠레를 각각 2:1 , 3:2로 이긴 것도 이변
1986 멕시코 대회 조별 예선에서 모로코가 포르투갈을 3:1로 이기고 16 강전에서 독일과 비겨 승부차기까지 간 것도 이변
1990 이탈리아 대회에서 카메룬이 개막식에서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루마니아, 콜롬비아를 차례로 격파하고 8 강에 진출한 것도 대 이변
1994 미국 대회에서 사우디 아라비아가 모로코와 벨기에를 격파하고 16 강에 진출한 점 그리고 여태까지 16 경기 무승 국가였던 불가리아가 아르헨티나와 독일을 누르고 4 강에 진출한 것도 이변
1998 프랑스 대회에서 모로코가 스코틀랜드를 3:0으로 격파한 것 그리고 신생 팀 크로아티아가 8강에서 독일을 3:0으로 격파하고 4 강에 오른 점 모두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제 2002 월드컵의 이변을 보기로 합시다.
가장 큰 이변은 한국의 4 강 진출이요 그 다음은 유럽의 변방인 터키와 아프리카 대표로 처음 출전한 세네갈의 돌풍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대 약진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한편 무득점을 기록하며 1무 2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16 강에 오르지 못한 점 前 대회 우승국 프랑스 , 죽음의 조에 편성되어 1승1무1패로 16강에도 오르지 못한 아르헨티나 , 미국과 한국에 덜미를 잡혀 1승 2패로 16 강 입성에 실패한 포르투갈..
이 모두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7) 월드컵 사상 처음 만나는 남미와 유럽의 두 강호간의 결승전
월드컵 역사 72 년 동안 브라질과 독일은 서로 술래잡기라도 하듯 한번도 경기를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기의 브라질과 조직력의 독일이 월드컵에서 만나면 과연 누가 이길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만남이 다른 곳도 아닌 결승전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미와 유럽이 아닌 제3 대륙에서 비교적 공정하게 치루게 되어 최고의 흥행을 수반하는 결승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4 위전은 신흥 축구 강호인 한국과 터키의 대결! 과거에 한번도 준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나라들간의 대결이기에 또 스타일이 비슷한 국가간의 대결이기에 결승전에 준하는 세계적 관심을 받았습니다.
◆ 기록으로 본 2002 월드컵
(1) 관중 수
한일 월드컵에 2,705,566 명의 관중이 입장 한국은 10개 경기장 (총 수용능력 490,891 석)에 1,266,929 명, 일본은 10개 경기장 (총 수용능력 489,971 석)에 1,438,637 명이 입장.
이는 98년 프랑스 월드컵대회의 10개 경기장(총 수용능력 482,275 석) 64 경기의 2,774,891 명에 비해 2.5%인 69,325 명이 줄어든 것 입니다.
경기 당 평균 입장관중은 한국이 39,592 명인데 반해 일본은 44,957 명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경기 당 평균 입장관중도 한일대회가 42,274 명으로 프랑스의 43,357 명에 비해 1083 명이 적습니다.
월드컵 티켓판매 대행사 바이롬 社의 어이없는 행정실수로 대회 초반 공석 파동이 생기는 바람에 경기 당 35,698 명이 입장한 82 스페인 대회 이후 20년 만에 흥행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경기장 수용능력에 따른 입장 객과 게임 수에서도 일본은 90% 이상 입장한 경기가 19 게임, 80% 이상이 8 게임 그리고 70% 이상이 5 게임 인데 비해
한국은 90% 이상이 10 게임, 80% 이상이 6 게임, 70% 이상이 7 게임, 60% 이상이 6 게임, 50% 이상이 2 게임, 40% 이상이 1 게임으로 대부분의 국내 팬들이 한국경기에만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평균 90% 이상 관중이 들어찬 경기장은 한국의 경우 51,000 석 규모인 인천문학경기장이 3 게임에 140,638 명(게임 당 평균 91.9%)으로 유일하며
일본은 46,071 석인 오사카 나가이 경기장이 3 게임에 134,310 명으로 게임 당 평균 97.2% 의 높은 관심을 보이는 등 오이타(92%) 미야기(93.2%) 시즈오카(93%) 요코하마(95.1%) 등 모두 5 개 경기장에 이릅니다.
최대 관중은 한국이 5 월 31 일 개막식에 이어 프랑스-세네갈의 개막전이 열린 수용 규모 64,728 석의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 62,561명이 몰려 96.7% 의 입장 율을 보였으며
일본은 6 월 30 일 브라질-독일의 결승전과 폐막식이 열린 7 만석 규모의 요코하마 종합경기장으로 69,029 명이 운집, 98.6% 의 입장 율을 나타냈습니다.
이밖에 양국의 최소관중 및 최소 입장률은 한국의 경우 지난 6 월 7 일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B조 스페인-파라과이 경기에 24,000 명,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B조 파라과이-남아프리카공화국 경기에 25,186 명이 입장해 46.7% 의 입장 율을 보인 것이며
일본은 6 월 5 일 고베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H조 러시아-튜니지아 경기에 30,957명이 입장해 73.7% 의 입장 율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2) 시청자 수
월드컵 주관 방송사인 HBS 는 전 세계 15 억 명의 시청자가 결승전을 지켜봤다고 밝히며 모두 64 경기를 치르면서 TV 를 통해 월드컵을 즐긴 연 인원은 줄잡아 400 억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참고로 월드컵 시청자는 94년 320 억 명에서 98년 370 억 명으로 증가추세를 보여왔습니다.
(3) 골 기록
64 경기에서 기록된 총 골수는 161 골로 경기 당 2.51 골 경기 당 평균 2.21 골에 그친 90 이탈리아 대회 이후 12 년 만의 골 흉작 94 년도에는 2.71 골 , 98 년도에는 2.67 골에 이어 하향세
(4) 개인 기록
☞ 터키 하칸 쉬쿠르가 한국 상대로 11초 만에 골을 넣음 (월드컵 72년 역사상 최단시간 골로 기록됨)
☞ 브라질 카푸는 3 회 연속 월드컵 결승전에 오름
☞ 브라질 호나우도는 8 골을 기록함으로써 1974 이후에 깨지지 않던 6 골 징크스를 깸
☞ 독일의 클로제는 90년 체코의 스쿠라비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사우디를 상대로 헤딩 해트트릭의 진기록을 수립.
(5) 팀 기록
☞ 한 경기 최다 자책 골 기록 포르투갈-미국 전에선 자기편 골문에 각각 한 골을 넣어 한 경기 최다 자책 골을 기록.
☞ 한 경기 최다 경고 기록 독일-카메룬 전은 8 명씩 옐로카드를 받아 한 경기 최다 경고의 불명예를 자초.
(6) 그 밖의 각종 기록
레드 카드 : 이번 대회 퇴장 수는 17 회로 98 년 22 회보다 줄어들었습니다. 옐로 카드 : 98 년 258 장에서 272 장으로 다소 늘었습니다.
헤딩 골 : 161 골 중 35골(21%)이 헤딩 골. 이는 94년 25골(17%),98년 31골(18%)보다 훨씬 높은 수치
자책 골 : 98 년과 같은 4 개 PK 골 : 98 년 보다 4 개가 적은 13회 해트트릭 : 2 회 90분 이후에 승부가 난 경기 : 골든 골 승부가 3회 , 승부차기가 2 회.
(7) 태극 전사들의 성적표
2002 월드컵에서 4 승 1 무 2 패의 성적을 남긴 태극 전사들은 모두 8 골을 뽑았고 6골을 허용했지만 자책 골은 없었습니다.
89 차례의 슈팅 가운데 44 번이 유효 슈팅이었으며, 두 차례의 페널트 킥 기회는 모두 무위로 끝났습니다.
한국이 범한 파울은 133 개, 상대팀으로부터 당한 것은 125 개. 한편 모두 14 개의 옐로 카드를 받았는데 김태영이 2 번, 최진철,김남일, 유상철 등 12 명이 각각 한 번 씩 이었고 레드 카드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코너 킥은 53 차례 얻었으며, 오프사이드는 12 번 범했습니다. 태극전사 23 명 가운데 이운재, 송종국 만이 전 경기 687 분을 소화해 강철 체력 임을 입증했고 박지성이 634 분, 홍명보 596 분, 설기현 594 분, 유상철 574 분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 2002 월드컵에서 나타난 개최국 한국과 일본의 위상 비교
역대 월드컵 대회와는 달리 이번 월드컵은 유럽과 미주 지역 이외의 지역에서 열린 첫 월드컵이요 첫 공동 개최 월드컵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 세계 제전 입니다.
특히 공동 개최는 개최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에게 상호 경쟁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색다른 묘미도 함께 찾아볼 수 있는 월드컵 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1) 반드시 월드컵 16 강에 진출한다. (2) 공동 개최국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최소한 비슷한 성적을 거둔다.
월드컵이 시작하기 1년 전만 해도 대다수 해외 시각은 일본이 한국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국내에서도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000년 ASIAN CUP에서 일본은 아시아 수준을 넘어선 기량을 과시 하며 우승하였고 2001년에는 CONFEDERATION CUP (대륙간 컵) 에서 준우승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내다 봤습니다.
반면 한국은 비틀비틀 거리면서 2000 아시안 컵에서 3위를 겨우 차지 했고 2001 대륙간 컵에서 호주와 멕시코를 격파했지만 프랑스와의 첫 경기에서 0:5로 대패해 2 라운드에도 못 오르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2001년 12 월에 있은 조 편성도 한국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일본은 유럽의 중위 권 수준인 벨기에, 러시아 그리고 비교적 약체라고 평가되는 튜니지아와 같은 조에 편성된 반면 한국은 시드배정국 이나 다름없는 포르투갈, 동유럽의 전통 강호 폴란드 그리고 북중미의 신흥 강호 미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지요..
일본은 아무리 못해도 조 2위로 16 강에 진출할 수 있어 보인 반면 한국은 16 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해외 언론들은 일본의 16강 진출 가능성이 제일 높고 벨기에와 러시아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16 강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고 한국이 속한 D조에서는 포르투갈이 조 1위로 무난히 올라가고 폴란드와 한국이 2위 자리를 놓고 싸우는데 그래도 폴란드가 더 유력할 것이다 라고 전망했습니다.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벨기에와 겨뤄 2:2로 비긴 반면 한국은 폴란드를 2:0으로 격파하면서 일본 보다 한 발 앞서 나갑니다.
두 번째 경기에서 일본은 그들의 16 강 최대 걸림돌이었던 러시아를 1:0으로 누름으로써 그리고 이길 줄 알았던 벨기에가 튜니지아와 비기는 바람에 일본의 16 강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왔습니다.
반면 한국은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로 생각해 온 미국과 겨우 비기고 포르투갈이 폴란드를 4:0으로 대파함으로써 한국의 16강 진출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습니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일본은 최약체 튜니지아에 2골 차로 지지만 않으면 16 강에 진출하는 반면 한국은 상승세를 타고 있는 포르투갈에 지지 않아야만 16 강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포르투갈에게 지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 라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죠.
일본이 속한 H조는 원래의 예상대로 경기가 진행되었으나 D 조는 이변의 연속 (한국에 패한 폴란드, 미국에 진 포르투갈) 으로 인해 예측이 어려운 상황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의 해외 도박사들과 유수 언론들은 미국과 포르투갈이 16 강에 선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은 튜니지아를 2:0으로 쉽게 격파하고 조 1위로 16 강에 진입합니다. 한편 D조에서는 이변이 계속 속출합니다.
무득점에 6 실점으로 탈락이 확정된 폴란드가 자존심 회복을 부르짖으며 미국을 3:1로 붙잡았고 한국 역시 포르투갈이란 대어를 낚게 되었죠!
이리하여 한국과 일본 모두 16강에 진출합니다. 한국은 이탈리아와 , 여기서 이기면 스페인 : 아일랜드 승자와 붙으며 일본은 터키와 그리고 여기서 이기면 스웨덴 : 세네갈 승자와 붙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대진운 역시 일본에게 유리해 보였습니다. 터키는 세계 랭킹 22 위, 스웨덴은 19 위,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는 하지만 42 위에 불과한 세네갈..
일본 언론은 터키는 안중에도 없는 양 일본이 8 강에서 스웨덴과 격돌 하게 될 것이며 (참고로 스웨덴이 조별 예선에서 나이지리아를 이겼으므로 보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세네갈도 이길 것이라고 가정함) 월드컵 직전에 있은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1:1로 비긴 전례에 비추어 제 실력만 발휘하면 준결승까지도 오를 수 있겠다며 환호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산 넘어 산… 월드컵 3 회 우승에 준우승을 두 번 했던 이탈리아 (6 위)가 16강전에서 버티고 있고 설령 여기를 통과한다고 해도 스페인 (8 위) 이나 아일랜드 (15 위) 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주 험난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제의 나라 터키는 일본의 순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투르크 전사를 맞이하여 일본이 0:1로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다소 뜻 밖의 결과에 일본 열도는 망연자실… 아시아 국가나 다름없는 유럽의 변방에 일격을 당하고 말았으니까요..
한편 한국 역시 이탈리아와의 90 분 경기 종료 직전까지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습니다. 전반 초반에 헤딩 골을 먹고 이를 만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상황! 대체로 비슷합니다.
“아시아 국가가 월드컵을 개최하더라도 그들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2 라운드인 16 강이 최고다” 라는 유럽과 남미의 일반적 시각이 기정사실화 되던 그 순간에 2002 월드컵 최대 이변의 서막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후반 43 분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 그리고 연장 종료 3 분 전에 안정환의 기적과도 같은 역전 헤딩 골! 한국은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습니다.
안정환의 이 역전 골 하나로 한국과 일본의 균형은 단번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일본이 유럽에서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는 축구 변방 터키에 일격을 당해 꿈의 행진이 16 강에서 멈춘 반면 한국은 유럽의 축구 강호 이탈리아를 격침시키고 8 강에 진출하였기 때문이죠..
16 강 전 이후 일본은 월드컵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홀로 남은 다른 공동 개최국인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하여 외로이 고군분투하면서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됩니다.
8 강에 진출한 한국은 아시아를 대표해 외로운 행진을 계속했고 스페인 마저 격파하고 4 강에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켰습니다.
한국의 4 강 진출 & 일본의 16 강 진출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現 축구 위상을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아시아 축구의 맹주이자 중심에 선 신흥 축구 강호임을 전 세계에 널리 확인시켰고 일본 역시 이런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경기 외적인 부문 예컨대 장외 대결에서도 일본은 한국에 완패 당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경기장 밖의 옥외 응원 문화!
옥외 응원 문화에서 한일 양국의 열기 차이가 쉽게 감지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도심의 대형 스크린 앞에 수 십만의 붉은 인파들이 운집해 월드컵을 즐긴 반면 일본 사람들은 집에서 조용히 TV를 시청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월드컵 열기를 외부로 발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완패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기장에 모인 관중 수..
한국 국민들은 우리 나라 경기에는 열광했지만 제 3국간의 경기에는 다소 무심했습니다. 10 개 경기장 관중석 수는 일본보다 많았지만 실제 입장 관중 수는 일본보다 적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에 비해 경기장에 관중이 덜 입장했다는 점은 옥의 티라고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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