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최용혁이다.
2001년 7월쯤일까? 난 그 학교에 입학하였다.
낯설은 경주 땅에서, 그리고 그 축복의 현장에서 많은 훈련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안 후, 그곳을 졸업하였다.
2004년 9월17일. 나의 졸업식때 나를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던 많은 동생들이 생각난다.
일단 미리 졸업해 현장에 나가 있는 형들을 만나고 인사드린 다음 집으로 돌아가 현장 속에서 많은 일들과 세상을 체험하였다.
예상대로 많은 흑암의 역사도 있었고, 그만큼의, 아니 더 큰 하나님의 역사도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시대가 지나 지금은 2020년 10월.
벌써 내가 졸업한지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 세월 참 빠르다.
며칠 전 박성호 전도사님께 연락이 왔다.
문제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우리들이 보고 싶다고...
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 중에서 제일 연락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브라질의 재호형과 미국의 데니스, 스페인 선교사가 된 진호형 이었다.
이러다가 연락이 영영 안 되는 걸까 싶기도 했는데 다행이 하나님의 은혜로 연락이 되었다.
다행이, 데니스와 재호형과 진호형은 서로 연락을 하고 지냈었고, 덕분에 한국으로 와 졸업생 모임이 있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쉴 수 있게 해드렸다.
성민이 형과 대식이 형은 목사여서 그런지 자주 만난다고 해서 쉽게 연락할 수
있었다. 밖에 나가면 개인 일 에 바뻐서 연락을 안하고 지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팀이 많아서 2020년 10월10일날 많은 졸업생들이
'경주 미래 지도자 훈련원'에 모이게 되었다.
나와 진호형, 데니스, 재호형은 하루 일찍 내려왔다.
대안학교 시설도 많이 바뀌었고, 아이들의 얼굴도 전부 낯선 얼굴이였다.
대안학교 23기생들...(나는 4기생인데^---^)
드디어 하루가 지나고, 졸업생 모임 날 이 되었다.
아침 일찍 눈을 떠 학교 옥상으로 기도하러 올라갔다.
잔디로 쫙 깔린 운동장에 모여 아침 운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니 예전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눈곱도 안 띈채 사자머리로 운동장에 모이곤 했었지...
기도를 마친 후 기지개를 폈다.
많은 발전으로 경주 땅도 변해 있었지만, 시원한 아침 공기에 기분이 좋았다.
그때, 멀리선가 하얀차 한 대가 유연하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누굴까?
기대로 꽉 찬 내 마음을 진정시킨 뒤 눈여겨 살펴 보았다.
하얀 차의 주인공은 정민이 형 이였다.
너무 반가웠다.
난 급하게 뛰어내려가 씻고 있는 형들에게 정민이 형이 왔다고 외쳤다.
그러자 형들은 머리도 감다 말고 뛰어나갔다. 나 역시 뛰었다.
순간 예전의 내가 된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정민이 형에게 안기게 되었다.
정민이 형은 일찍 도착하려 밤에 출발하였다고 했다.
우리 다섯 명은 오랜만에 권사님과 집사님이 차려 주신 맛있는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 권사님, 집사님도 검은머리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흰머리 셨고,
주름살도 많이 늘어 계셨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아주 건강하셨다.
아침밥을 먹고 얼마나 흘렀을까?
'서울 예수 생명 교회'라 써있는 큰 대형 버스가 들어왔다.
그 차 안 에는 서울 경기 지역에 사는 형, 누나, 동생들이 타고 있었다. 우린 보자마자 서로를 끌어 안으며 안부를 물었다.
그때, 저쪽 뒤에서 두명이 쑥스러운 듯 천천히 걸어 내렸다.
대식이 형과 성민이형 이였다.
정말 반가웠다.
도명이 형과 무림이 형은 각자 자기 차를 타고 30분 쯤 뒤에 들어왔다.
우리의 후대인 '경주 미래지도자 훈련원' 23기생들이 먹을 간식을 시내에서 사가지고 왔기 때문이였다.
여전히 예배는 7시 30분에 있었다.
아이들과 예배를 드린 후 운동장에 모두 모였다.
많은 형과 누나들, 동생들, 그리고 우리를 언제나 친 자식처럼 봐주시던 양꼬봉과, 박꼬봉도 왔다 ㅋㅋ....
알고보니 박전도사님 아들이 이 학교에 있었다.(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모두 모여 보니 잔디가 촘촘히 새겨진 쌔끈한 운동장이 시끌벅적 했다.
모두 둘러앉자 찬양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강당에
있는 악기를 모두 끌어내었다.
15년 전에 있던 망가진 베이스와 당장이라도 조율이 필요한 피아노, 드럼과
는 비교도 안 돼는 쌔끈한 드럼, 베이스, 신디 였지만, 우리에겐 15년전 느낌 그대로 였다.
먼저 부끄러움이 많았던 성민이 형을 앞세워 모두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성민이 형은 부산 고신대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홍제동에 교회를 세웠고, 그곳의 목사님이 되어있었다. 그 교회에는 연신내에 사는 소라누나와 무림이형, 한 동네에 사는 록이 누나가 다니고 있었다. 주로 무당 사역을 많이 하는데,
성민이 형 덕분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무당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그 다음 나온 것이 스페인 선교사가 된 진호형.
어느샌가 진호형은 한국말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였고, 답답했는지 막대기 하나를 주어와 운동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다. 안 좋은 조건 속에서 한국 땅을 다시 밟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너희들을 만난것도..."
진호형이 써 내린 글을 보면서 모두 가슴이 찡해지는걸 느꼈다.
귀여운 막내였던 데니스는 미국에 다시 돌아가 마약 유혹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했다. 복음이 없었다면 다시 마약에 손을 댔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vision을 맥도날드 종업원이 아닌 '청소년 마약 퇴치 사범'로 정했다고 했다.
기특한 놈...^^*
데니스 다음에 나온 사람은 정민이 형이였다.
갑자기 의성이 형이 벌떡 일어나 '우~쟈니'를 외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정민이 형은 기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세상이 점점 악으로 물들어 가
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절실히 체험하고 기도로 꺽고 있었다.(이제 더이산 여자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명이 형은, '서초 임마누엘 교회'에서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청소년 전국 수련회 같은 곳 에 가면 100%볼 수 있는 형 이였다.
찬양도 많이 작곡하고, 사단음악이 판치는 이때에 찬양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할 것이라는 vision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후대들에게 많은 걸 가르치고, 언약 있는 Remnant로 키워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림이 형은 꽤 큰 무역회사에 다니며 소라 누나와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둘 사이에는 딸도 하나 있었는데, 굉장히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딸을 바라보는 무림이형 눈빛에선, 예전의 그 날카롭던 눈빛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소라누나는 연신내에서 알아주는 큰 미용실을 하고 있었는데, 3~4년 정도 후에는 호텔 경영을 해 볼 계획이라 했다.
애 엄마(-_-;;)인데도 불구하고 소라 누나의 꿈은 이제 막 시작하려는 듯 보였다.
성환이 형은 대식이형 교회에 다니며 자폐아 사역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세상 것 에 눈 돌리지 않고, 모든 의사소통을 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자폐아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성환이 형이였다. 성남에 세운 대식이형 교회는 큰 부흥의 역사를 본 대표적인 교회이기도 했다. 기독교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대식이 형도 어느새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있었다.^-^
원경이 누나는 학교를 나가서 피아노로 대학, 대학원까지 모두 졸업한 뒤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며칠 뒤 세종 문화 회관에서 독주회가 있다며 꼭 오라고 당부를 하였다.
예술, 예능인중 95%가 정신병, 음란에 잡혀있는 이때에, 원경이 누나가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되었다.
홍철이 형은 복음이 아직까지도 들어가지 않은 곳에 돌아다니며 선교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모슬렘 전도에 힘쓰고 있었는데, 계속 늘어 20억 가까이 된 모슬렘들 중에 수많은 모슬렘들에게 참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려놓고 있다는 홍철이 형은 여전히 평안해 보였다.
희락이는 유도를 달란트로 준비한 후, 전세계에 유도장을 세웠다. 유도를 가르치며 우리 뒤를 이을 Remnant들에게 언약을 전하고 있었다.
내년 봄 쯤 에는 공식적으로 나라에서 인정해 주는 유도 학교를 세운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학교를 한국 뿐 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세우려는 vision을 품고 있었다.
또 하나의 친구 원이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컴퓨터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정장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 전 세계 컴퓨터에 'Jesus is Christ' 라는
바이러스를 쫙 깔아 버리는게 꿈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상 요즘 들어 심해진 인터넷 범죄와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프로그램을 연구 하는게 원이의 일이었다. 부업으로 PC방도 하나 하는데 주일이 되면 인터넷으로 위성 예배를 드릴수 있게 준비 하고 있었다.
경영이는 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의외로, 아~~~~~~~~~~주 아주 의외로
수학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15년전 고졸 검정고시때 수학 때문에 끙끙 앓던
경영이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반 아이들 몇 명과 토요일 방과 후에 다락방도 열고 있다며 많은 기도를 부탁했다.
그다음에 나온 사람은 재호형.
국제 변호사가 되어 한국에는 자주 왔다갔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우리를 만날 시간조차 없었다며 미안해 했다.
이번 모임을 반가워하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재호형은 돈과 권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자들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 날마다 체험하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다고 했다.
은영이 누나는 꿈이었었던 유치원 교사를 지금 하고 있었고, 200평 남짓한 땅에 고아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었다. 더욱 악해진 세상 속에서 부모에게 버림받는 아이들이 날로 늘어가는 이때에 은영이 누나가 하는 일은 빛을 발하는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다음 은영이 누나와 친구 였던 미경이 누나는 한의사가 되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불구 하고 한달에 한번은 꼭 은영이 누나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가서 무료로 아이들의 건강을 체크해 주고 진찰해 주는 모양이었다.
정말 복음안에서 만남의 축복을 누리는 누난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드디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의성이 형이 나왔다.
의성이 형은 전도사가 되어 제2의 대안학교인 '서울 미래 지도자 훈련원'에
사역자로 들어가 있었다. 그곳 아이들도 우리들이 그랬던 것 처럼 의성이 형을 박꼬봉이라 부른다는 말에 모두 웃었다. 아무도 예상치는 못했지만 의성이 형은 세상에서 상처 입고 온 아이들을 치유해 주는 영적인 아버지의 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박전도사님이 우리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지연이 누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어하더니 꿈을 이룬 것 같았다. TV에서 지연이 누나 패션쇼가 나오는걸 두어번 본적이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지연이 누나는 끝내주는 모델을 소개 시켜 주겠다며 장난을 쳤다. 임마누엘 부산 교회당을 더 넓히는 공사에 5억 정도를 선뜻 내었다는 말에 모두 감탄하였다.
소명의식을 가진 지연이 누나 옆에는 인수가 있었다.
인수도 지연이 누나 만 큼은 아직 아니었지만 'I.S'라는 유명 메이커를 세워 놓았다. (In-Su의 약자란다....^-^) 복음을 위해 세계로 나아가는 인수와 지연이 누나는 대안학교 23기생들한테 교복을 만들어 입히자고 끝없는 말장난으로 우리를 웃겨 주었다.
우리 학교 제일 막내였던 상호는 키도 커져 있고 살도 많이 빠저있었다.
다이어트 비디오를 츨시해서 공인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유명해 졌지만 그래도 자만감 없이 사는 듯 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안경도 벗었다. 이제보니 좀 생겼군...) 결혼할 여자도 있다는 말에 아직 결혼 못한 형, 누나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다.
그다음 나온 사람은 민수였다. 경인 지교회 전도사로 있는 민수는 조금 이른나이에 결혼을 해서인지 애가 둘이였다. 힘 좋은놈.....불쌍한 제수씨...
민수는 청소년 사역자와 결혼을 했는데 민수의 결혼식에 내가 사회를 봐주었다. 복음안에서 주의종으로 쓰임받는 민수가 자랑스러웠다. 제수씨 영향인지 15년전 이곳 훈련원의 영향인지 청소년 현장에 온몸으로 뛰어 들어 힘쓰고 있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강 건너편에서 보고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간 것 처럼.
문화 누나는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학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이었는데 성취시킨 모양이었다.
광주 전대 부속병원에서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 거의 꺼져가는 생명의 빛 앞에 눈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태우형은 제주도로 돌아가 현진이와 함께 전도자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상으로 뒤덮힌 제주도 땅에 교회를 세우고 제주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며 매일 바쁘게 뛰고 있는 태우형과 현진이가 정말 멋져 보였다.
태우형네 교회에는 많은 교인이 있는 모양이였다.
모임중에도 태우 형 핸드폰에 끊임없는 교인들의 전화가 온걸 보니...
그다음은 소현이 누나.
소현이 누나는 대안학교 있을 때 시작했던 미용기능을 살려서 헤어 디자이너가 되어있었다. 학교에서 실기 시험까지 통과하고 서울 서초 미용실에 얼마간 일하다가 유학을 갔다 왔다 하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서울 미래지도자 훈련원에 미용 수업을 하러 일주일에 한번씩 들어 간다는 것이였다.
바쁜 와중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형, 누나들의 모습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규원이 형은 인터넷 사역자가 되어 있었다. 'Genesis' 라는 홈페이지로 많은 청소년 혹은 성도들에게 복음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인터넷 접속자가 제일 많은 홈페이지 1위로 잡지에 난적도 있는데 그 이후로 접속자가 더 늘어서 많은 사역자들이 동참 하고 있다고 하였다.
희정이는 살도 많이 빼고 얼굴도 많이 예뻐져서 20대 초반에는 가수도 했었다. 2002년에 우리가 좋아했던 장나라 못지 않은 인기를 끌었었던 희정이는 지금은 청소년을 중심으로 찬양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같은 사역을 하는 도명이 형이랑은 거의 매일 보는 모양이였다.
도명이 형이랑 같이 작업중인 찬양 음반도 곧 완성된다며 하나사서 돌려 듣지 말고 하나씩 사라고 당부하는걸 잊지 않았다.
록이 누나는 학교에서 검정고시를 통과 한 뒤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온 뒤 통역관이 되어있었다. Vision이 확실히 잡히지 않아 많이 고민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지교회가 하나도 서지 않았고 역사상 복음앞에 무릎 꿇은 적이 없는 나라 프랑스에 류광수 목사님의 설교를 통역한 테잎들로 프랑스
사역에 힘쓰고 있었다. 누나는 자신의 직업이 하나님께서 내려준 것이라 믿고 감사하고 있었다.
양도사님은 현재 가족과 함께 선교지에 나가 계셧다. 어디서나 어떻게든 복음을 한마디라도 더 전하려는 양도사님의 머리도 조금씩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은진이는 이미 아가씨고 도현이도 유빈이도 다 커있었다.
박성호 전도사님은 지금 현재 부산에 계시며 목사님이 되셔서 이제곧 지교회를 세운다 하셨다. 흰머리가 많이 나서 회색으로 염색하신 박도사님은 이제 탈색약이 필요 없어서 15년 전처럼 실패할 일 없다며 웃으셨지만 나는 왠지 눈물이 핑도는걸 느꼈다.
박도사님 옆에도 곱게 생기신 사모님이 서 계셨다. 지금은 박목사님 이지만 우리의 마음속엔 15년 전 박성호 전도사님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걸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남은 사람은 나였다.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유명한 요리사가 되었다. 내가 된 것 이 아니고 하나님이 시켜 주신 것이었다.
워낙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느라 바쁘지만 짬이 나는데로 고아들과 노인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도울 수 있는 경제력 까지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15년전 학교에서 같이 생활할 때 우리들이 이런 모습으로 만날 것 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문제아 취급 하였고 인간되기 포기한 놈들이라며 손가락질도 했었다.
만약 우리중 한명이라도 경주 청소년 미래지도자 훈련원에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복음을 듣지 못했더라면 이런 모습으로 이 자리에 모여 감사할 날은 평생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같이 세상을 이기게 도와 주신 영적인 아버지 박꼬봉과 양도사님께 감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창세전부터 오늘을 미리 계획해 놓으신 하나님께도...
우리는 3개월에 한번씩 오늘처럼 모이자고 약속 하였다.
잡초로 무성했던 운동장, 비새는 천장, 퀘퀘한 개집, 이끼껴 있던 샤워실....이제는 볼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 이곳은 어느곳 보다 아름다운 곳 그리스도를 알게 된 곳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