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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
전화 : 061-433-1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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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싼 가격과 음식은 만족이지만,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사전 예약을 받든지, 아니면 순번표를 배부하든지 음식대기 시간을 줄이는 게 필요할 듯....
영랑생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 영 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 부처꽃과 원추리 그리고 영랑 생가
영랑 김윤식은 이곳에서 대지주 집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가 떠난 후 몇 차례 집주인이 갈리면서 원래의 모습이 바뀌기도 했지만
1985년 강진군에서 사들여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전라남도기념물 제89호)
# 대문에서 안채로 가는 길에 자연석을 깔아 보도를 만들었다.
# 안채 마루를 한 칸 더 올려 좁은 마루가 조금은 시원스레 보인다.
# 우물
# 소담한 장독대와 대숲, 동백나무
장독대 뒤로 동백나무가 몇 그루가
집 마당으로 쏟아져 내릴 듯 하다.
'북도에 소월이라면 남도에 영랑'이라는 말도 있듯
영랑은 우리나라 순수시, 서정시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힌다.
#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사랑채
넓은 사랑채 마루 가장자리에는 나지막한 난간을 둘렀다.
사랑채 왼편의 화단에는 원래 육중한 시비가 있었으나,
미관상의 문제로 철거되었다.
초여름이 되면 모란꽃이 마당 구석구석에 피어나건만
지금은 철이 지나 잎만 무성할 뿐이다.
# 사랑채 앞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화단과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물이 말라
마치 화단이 그 여백을 살려 조성된 것처럼 착각이 든다.
# 은행나무
# 은행(열매)
# 사랑채에서 본 안채
# 안채에서 본 행랑채
# 담장 위의 예쁜 초가는 사실 화장실이다.
# 영랑 생가 입구의 탑골샘
아직도 깨끗하고 찬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완도는 이번이 세번째이다.
완도에 도착하니
낮에 푹푹 찌던 날씨가
시원한 바다바람에 한 풀 꺽인 모양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쏘이며
오늘 저녁에 먹을 조개구이집을 찜했다.
다도해회구이센타!
작년에 한 번 들른 이후
그 감칠난 조개맛을 잊지 못해
오늘은 사전답사까지 감행했다.
완도읍내에 도착하다
이 많은 조개들이
어둠이 내리면
맛있는 구이로 변신을....
마침 완도에는 해변축제를 하고 있었다.
큰 행사는 아니었지만
여행 중에 잠시나마 흥겨울 수 있었다.
완도읍은 해안에 위치한
조그마한 읍이지만
이리저리 볼 것도 많고
맛있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휘영청 밝은 달이
밤을 한청 흥겹게 만드리라.
드디어 본격적인 조개구이를 먹다.
바닷바람을 쏘면서 조개를 구워먹을 수있도록
해변가에 간이구이대(식탁)가 열지어 설치되어 있다.
조개구이는 대, 중, 소 각각 3만원, 4만원, 5만원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大자 하나면 배부를 정도로 충분하다.
키 조개만 자그만치 10개 정도 나오고
조개 종류만 해도 10여 종이 훨씬 넘는다.
숯불에 지글지글....
왼쪽에 있는 뚝배기에
조개가 익고 나서
조개국물을 따라 부어 넣은 후
팔팔 끊여 먹으면
그 국물맛이 진국이다.
여행 이튿날
아침 식사로 우럭매운탕을 잘한다는 모식당에 갔으나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말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식당이었다.
'ㅈ'일보가 추천했는데, 이 언론사와 또 다른 'ㅈ'일보는 맛집을 무더기로 추천하여
이전부터 맛집선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더니 이번에는 결국 모든 신뢰를 저버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럭 생선 자체는 쫄깃 쫄깃하니 맛이 좋았다.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
해안 백사장이 말그대로 십리이다.
백사장이 워낙 넓고 끝이 보이지 않아 사람이 많은데도 전혀 비좁지 않다.
그런데, 턱없이 부족한 샤워시설은 정말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완도군에서는 무얼 하시는지....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문제지만, 물이 찔끔찔금, 그나마 샤워기도 몇 대 안되고
어찌나 불결하던지..
맛집을 선정할때
항상 고민스러운게 있다.
정말 맛있는 집 위주로 소개를 해야하지만
때로는 맛이 덜해도
지역적 특색이 강한 음식을 소개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의 고민은
개인마다 음식취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먹지 않는 음식이 번데기인데,
주위에서 어떨때에는 맛있다 하고 또 다른 때에는 맛없다 하는 것이
번데기 맛을 모르는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그저 번데기일 뿐이니...
이 두 가지를 극복할 수 있는 음식이
완도의 전복회덮밥과 장어주물럭이다.
전국 전복 생산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전복으로 만든 회덮밥이 완도의 특색이 강한 음식이라면
회덮밥을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 맛깔스런 전복죽이나 부드러운 장어주물럭을 권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완도에서 이틀째
일전 인터넷 블로거 맛객님의 소개를 보고 이 식당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마다 맛집 소개를 하지만
그 음식들이 정말 맛집인가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당 블로그에서 소개한 맛집을 내가 먹어본 경험과 일일이 대비하여
그 블로거의 맛에 대한 감각과 정보를 판단하여 그 맛집 진위를 가렸었다.
맛객!
아, 이 분은 맛집 블로그 중에서 현재로선 내가 가장 신뢰하는 분이다.
그 분의 남다른 감각-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음식을 최고로 친다.-
풍부한 맛의 묘사, 음식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 무한정 신뢰가 갔었다.
그래서 여행 이튿날 저녁식사는
무작정 아시나요식당으로 결정했다
아니, 일행에게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 완도읍 사거리에 진입하여 여객터미널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터미널 못미처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좌회전하여 20m가면 왼편에 있다.
가게 바로 앞에는 주도라는 섬이 보인다.
# 메뉴판에는 장어주물럭이 없다.
일행 중 한 명이 메뉴판에 장어주물럭이 없으니 다른 걸로 먹자고 한다.
그래서 내가 주인을 불러 장어주물럭이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메뉴판에 없어도 먹을 수있다고 한다.
여행을 떠날때 발 다음으로 고생해야 하는 것이 입이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상책!
어떤 여행지의 처음 가는 식당에서 뭘 먹어야 될지 모를때는
주인에게 음식 추천을 하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해산물을 주문할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날 무엇이 가장 싱싱한지는 주인마큼 잘 아는 이는 없다.
이 황홀한 자연색에 놀란다.
1인분에 1만원인데, 전복 한 마리, 해삼 한 마리, 멍게 한 마리와 갖은 야채가 들어간다.
이 집의 특징 중의 하나가 음식이 계속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이다.
맛객님의 2006년 사진에는 야채가 다소 부족한 듯 하였다
참기름과 초고추장을 휘휘 둘려 충분히 뿌려야 한다.
사진이 흔들려서 조금 보기가 거시기한데
실제 눈으로 보면 그 색상이 황홀하다
# 전복죽
전복죽도 전복이 큼직큼직하게 죽 곳곳에 박혀 있다.
아이들에게는 딱!
# 장어주물럭
양념이 은은하여 장어 맛을 해치지 않는다.
보통 장어 양념구이는 양념이 너무 강해 장어맛으로 먹기보다는 양념맛으로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설적이게도 그 집 장어가 맛있는 게 아니라 그 집 양념이 맛있어서 먹는 경우다
마치 회맛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회에 초고추창을 듬뿍 찍어 먹는 것과 같다.
회덮밥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들에게 장어주물럭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개인의 음식취향에 맞아야 그 맛이 제대로 평가되는 법이다.
장어가 너무 부드럽다.
뜨거운 장어를 입안에서 데일라 후후 불면서 먹는데
질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입안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몇 번 씹어 주면
달콤한 맛만 남기고 제 갈길을 가니
장어의 마지막 길이 아름답지 않은가!
앞에 있는 허연 물건은 장어 내장
잘 먹는 이들은 내장 맛이 쥑인다고 난리다.
건데 나로서는 그다지.....
장어의 마지막을 내장까지 먹어 없애는 야박함이 왠지...
장어주물럭은 30,000원이다
3~4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전화 : 061-554-3049
위치 : 완도 여객터미널 옆
갯돌소리 아름다운 구계등
완도를 세 번 여행하는 동안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한 낮 무더위를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날려 버린 후,
구계등을 어둠이 내리기 전에 갈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오후 4시가 지나도 이놈의 더위는 식을 줄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전복회덮밥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어둠이 내려서야 구계등으로 향했다.
이렇게 더위가 무서워 여행 일정을 변경하기는 난생 처음인 것 같다.
구계등은 모래 하나 없이 갯돌만 있다
갯돌을 함부로 가져갈 수 없다.
압수된 돌과 갯돌 채취 단속 경고문
한적한 숲길을 한동안 걸어가니 탁트인 바다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올려는지 달빛이 바다에 붉게 불기둥을 만들어 드리워져 있다.
아이들은 연신 밤하늘에 폭죽을 쏘아댄다.
갯돌해안 한가운데에 큰 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밤바다에 떠 있는 점점 조각배들...
구계등 입구에 있는 나무인데 하얀 꽃이 너무 예쁘다.
그 향기도 밤공기에 진하게 묻어 나온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주위 가게 주인에게 물어 봐도 잘모르시겠단다.
밤이 제대로 깊어 다음을 기약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낮에 꼭 한번 와서 파도에 부서지는 갯돌소리와 해안풍경을 제대로 즐겨야겠다.
이 곳은 완도읍에서 4km쯤 떨어진 곳이다.
완도읍 정도리에 있는 길이 800m, 폭 200m의 갯돌해변이다.
이 갯돌을 주민들은 용돌 또는 청환석(靑丸石)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바다속에서부터 해안의 상록수림에 이르기까지
아홉개의 고랑과 언덕을 이루고 있어 구계등(九階燈)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의 갯돌들은 몇 만년 동안 파도에 씻기고 깎인 탓에
표면이 아주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형용도 모난 데 없이 동글동글하다. (한국관광공사)
여행 마지막날
돌아오는 길에 아침 겸 점심으로 완도대교 주위의 맛집을 찾아 헤매었으나
그 집은 가게 영업을 안한 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우럭매운탕을 먹기로 하였다.
이 집은 어제 그 집보다 탕은 맛있으나 생선이 허물허물하였다.
# 완도와 달도를 잇는 다리 - 완도대교의 일부인 듯(달도는 육지와 완도 본섬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있는 섬이다)
# 다산초당과 백련사 가는 길 - 도암면 석문 부근에서
강진 백련사
백련사는 만덕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문성왕 1년에 무염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절이 없어지고 터만 남았는데,
고려 후기 무신정권시절 요세가 중창하고 천태종의 수행결사인 백련사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거찰이 되었다.
백련사는 조계종의 정혜결사로 보조국사 지눌이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연 수선사와 함께 고려 후기 불교 수행결사의 양 갈래를 이루었다.
# 만경루 - 절 앞에 만경루가 장대하게 서 있어 다소 갑갑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건물배치가 갑갑하지만
부처님이 앉은 자리에서 보면 멀리 구강포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이전에는 만경루 누각 아래가 막혀 있어 돌아서 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누각 아래를 뚫어 절 진입로를 만들었다.
대웅전 현판은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이광사는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신지도에서 귀양살이로 말년을 보냈다.
대웅전 현판 양 옆 기둥에는 용머리 장식이 달려 있다.
대웅전 네 귀퉁이에는 지붕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활주를 받쳐 놓았다
# 명부전
붉은 동백 대신 백일홍(배롱나무)이 그 화사함을 대신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서면 멀리 구강포가 내려다보인다.
# 백련사사적비
숙종 홍문관 수찬 조종저가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7호)
아래의 돌거북과 비신 위의 머릿돌은 고려시대의 것이다.
고려의 문필가 최자가 비문을 지은 원묘국사의 부도비의 비신이 훼멸된 후 나중에 이렇게 다시 사용된 것이다.
# 동백숲속의 부도
절을 에워싸고 있는 1,500여 그루의 동백숲이 가장 아름다운 곳.
동백꽃이 필 때는 점점 떨어진 동백꽃이 부도 주위에 깔려 황홀한 붉은 양탄자를 만들어낸다.
동백숲속에는 4기의 부도가 흩어져 있다.
이 곳의 동백나무는 워낙 커서 그 굵기가 엄청나다.
# 원구형부도
강진 백련사 하면 제일 먼저 떠 올리는 게 동백 숲이다.
이전에는 절로 이르는 길이 절 바로 앞까지 가는 찻길 밖에 없었다.
근래에 동백숲 사이로 산책로를 내어 절집 가는 길을 한층 흥겹게 한다.
# 동백열매
강진읍에서 18번 국도를 달리다
귀리라는 마을 삼거리에서 해남 가는 길과 완도 가는 길로 나누어진다.
813번 지방도,
우리나라 길 중에서 가장 예쁘고 정다운 길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드넓은 평야에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기암괴석의 산들이 줄지어 서 있어
푸른 들판을 애써 외면한다면
내가 금강산 어디 산중을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푸른 들판, 기암괴석의 산들은
석문의 좁은 협곡에 이르러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다시 드넓은 평야와 산들은
쉬임 없이 대둔산으로 이어진다.
끊일 듯 끊어질 듯한 이 내달림은
남해의 푸른 바다를 만나서야 땅끝마을에서 멈춘다.
석문,
강진땅의 드넓은 평지에 오는 길 편안하였다면
이 좁은 절경의 협곡앞에서
아홉고을의 물줄기에 어린 다산의 마음을
옷깃 한 번 여미는 공경함으로
그 첫 걸음을 내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다산초당
# 다산초당 초입 귤동마을
마을 뒤의 만덕산 기슭에 다산의 유배지와 학문의 산실인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茶山)은 원래 차가 많은 만덕산의 별칭으로 정약용의 호 다산은 여기서 유래했다.
이 길은 다산 초당 들어가는 귤동의 옛길이다.
지금은 이 곳 약간 못 미쳐 초당 가는 새길이 닦여져 있다.
초당이 있는 산이 만덕산인데,
가게이름이 '만덕수퍼'이다.
옛 간판과 은행나무, 빨간우체통이 70, 80년대 분위기 같아 한 샷 했다.
# 다산초당 가는 길
나무뿌리가 길에 드러나 자연이 층계를 이루고 있다.
여름의 초당 가는 길은 소나무와 대나무가 빼곡하여
그늘이 제법 짙다.
이 그늘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그러나, 그 그늘과 습기로 인해
모기가 기성을 부린다
# 서암
다산초당은 원래 귤동마을에 터잡고 살던 해남윤씨 집안의 귤림처사 윤단의 산정(山亭)이었다.
다산의 어머니가 공재 윤두서의 손녀이고 윤두서는 다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니, 해남윤씨들은 다산의 먼 외가쪽 친척들인 셈이다.
서암은 윤단의 아들과 손자로 이루어진 제자들의 거처로 주로 사용되었다.
서암에는 다성각(茶聖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평소 차를 즐기던 다산의 모습이 그려진다.
# 다산초당 샘
초당 뒤에는 당시 다산선생이 물을 마시던 샘이 있다.
여전히 물은 시원하다.
# 정석(丁石)바위
다산이 손수 써서 새긴 돌이라고 한다.
글씨에는 다산의 단아한 성품이 엿보인다.
# 다산초당
원래는 말 그대로 초당이었는데,
1957년 복원하면서 기와 지붕을 이었다.
다소 육중한 맛이 없지 않다.
# 다산초당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해 만든 것이다.
앞 마당의 바위는 다조(茶竈)라 불리운다.
다산선생이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이던 곳이다.
다산의 후학들
강진 인근의 학생들인 듯 서예 공부가 한참이다.
# 초당 옆의 연못
연못을 네모나게 파고 가운데에는 돌을 쌓아 둥근 섬을 만들었다.
산속의 흐르는 물을 대나무로 끌어 들여 폭포수가 되게 하였다.
연못 뒤편에는 단을 만들어 각종 꽃나무를 심었다.
# 동암
동암 근처에는 소나무들이 무성하여 솔바람이 불어오는 암자라 하여 송풍암(松風庵)이라고도 불리었다.
다산선생은 주로 동암에서 기거하며 '천여권의 책을 쌓아 놓고 즐겼다.'고 한다.
1801년에 시작된 그의 유배생활 중 마지막 10년을 보낸 곳으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을 저술하여 우리나라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물론 목민심서는 다 써 갈 무렵인 1818년 유배가 풀려 고향에 가서 완성했고, 흠흠신서는 그 다음해에 완성하였다.)
# 보정산방 현판은 '정약용을 보배롭게 모시는 산방'이라는 의미로
추사 김정희가 존경하는 다산을 위해 쓴 글씨다.
# 다산동암 현판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해 만든 것이다.
# 천일각
다산이 잠시 쉬거나 유배지의 외로움을 달래던 자리에 누각을 지었다.
다산초당 주위가 짙은 숲으로 습하고 어두운데 비하여,
천일각은 양지바른 산기슭에 있어 멀리 구강포를 시원스레 바라볼 수 있다.
# 귤동 마을 입구에서 초당 가는길을 물어 보던 수녀님들을 다시 천일각에서 마주쳤다.
다산은 천주교 인물들과 관련이 많다.
누나의 남편인 이승훈, 큰형수의 아우인 이벽과 사귀었고, 그들을 따라 이가환(성호이익의 종손)과 교류를 했다.
...............
다산이 성호 이익이 남긴 책을 읽으면서
' 박학하신 성호선생을 백세의 스승'으로 삼아 평생을 통해 추구할 학문의 방향과 뜻을 세웠다고 한다.
원대한 꿈은 아닐지라도
오늘 이 아이들이 다산선생의 흔적을 기억하여
항상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이 천일각 뒤의 오솔길로 곧장 가면 백련사로 이어진다.
이 산길이 다산과 혜장선사가 儒와 佛의 경계를 넘어 오고 갔던 길이었다.
# 초당 입구의 찻집
예쁘게 꾸민 찻집이다.
땀이 비오듯 하였는데,
찻집의 시원한 바람에 몸도 마음도 다시
.......
다산초당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 몸이 녹초가 되었다.
애초에 계획은 되어 있었으나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갑론을박하다 결국 목소리 큰 사람들의 위대한 승리로
여행의 마지막 식사는 떡갈비로 정해 졌다.
이전부터 알려진 유명한 식당이고
담양의 떡갈비를 종종 먹어 온 터라
항상 별 기대 없이 지나치곤 했었던 '천일식당'
그래, 일단 한 번 먹어는 보자
역시나 입구부터 거실 벽에 방송출연한 액자가 빼곡히 차 있다.
방송출연이 잦은 업소는 항상 위태위태하다.
초기 입소문으로 번창하던 식당들이 방송타고 초심을 잃어 손님들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 이 집도 그럴 수 있겠다.
현재 오는 손님들은 방송과 소문으로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일테고
단골들이 얼마나 될까?
건데,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오후 4시 인데도 방마다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방으로 안내하는 남자사장님도 친절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은 맛을 보고 판단하자.
음식점 오면 집의 구조나 마당을 먼저 살펴 보는 것이 습관이다.
이 집도 남도 식당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사방으로 방이 위치해 있는 가옥 구조이다.
화단에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 비좁은 마당의 답답함을 조금은 풀어준다.
방 이름을 '청해진', '땅끝' 등 지역의 특색을 나타내는 말로 지었다.
대체로 소담하다.
방안에는 맛집에서 흔히 볼 수있는 간단한 메뉴판이 걸려 있다.
떡갈비 정식 2인분이 기본이고 1인분에 18,000원이다.
불고기한정식은 떡갈비대신 불고기가 나오고 나머지 반찬은 같이 나온다.
역시나 상채로 들어오는데
음식이 깔끔하고 정갈하다.
젓갈 종류가 4~5종이 되고 고등어 조림, 청어구이, 계란찜, 명태찜,해파리 등에 각종 나물류가 나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떡갈비를 먹어 보자
색깔이 무척 구미를 당기게 한다.
젓가락으로 한 모금 입에 넣어 본다.
아!
떡갈비로 유명한 담양에서도 먹어 보았는데,
달콤한 맛과 고소한 맛이 조금 더 강하다
전체적으로 만족!
아이들도 무척 좋아한다.
이리 저리 음식추가를 해 본다.
다들 친절한 편이다.
특히나 떡갈비하고 잘 어울리는 이집의 음식은 고추소박이가 아닌가 싶다.
보통 소박이 하면 오이소박이가 익숙한데,
이 집에는 오이소박이처럼 싱싱한 풋고추 안에 소를 넣어서 상에 내 놓고 있다.
육고기인 떡갈비에 야채 소가 들어간 고추소박이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상큼한 맛이다.
전체적인 평을 해 본다면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음식도 정갈하고, 서비스도 이만하면 괜찮은 편,
처음 가졌던
너무 상업화 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이런 것들로 순식간에사라졌다.
방송을 많이 타고 상업화 되더라도,
음식점은 뭐니뭐니해도 맛과 서비스로 승부를 거는 프로정신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떡갈비 외에는 18,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특징적인 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떡갈비가 워낙 맛이 있고
재료비가 비싸 가격이 높다손 치더라도
이 지역에 풍부한 어패류반찬이 적은 게 다소 흠이다.
아니면 떡갈비 중심으로 가지 수를 줄여 가격을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
실제로 젓가락 한 번 가지 않는 일상적인 반찬이 많다는 것이다.
떡갈비를 다 먹고 나면 갈비 뼈 네 개가 나온다.
진짜 갈비 부위로 만들었다는 증표이다.
천일식당을 다녀간 연예인들이 남긴 글들이 벽에 걸려 있다.
김수미, 쿠웨이트 박, 사미자 등의 사인이 보인다.
전화 : 061-535-1001, 536-4001
위치 : 해남읍 군청방면 해남매일시장입구
안동의 긴 겨울을 침묵으로 지내다
내달리듯 이른 식당
-예의 그 입소문, 오늘은 추억만 남길 뿐이다.
지난 번 갔던 남도의 맛집들
# 강진해태식당
완도 읍내
평범하기 이를 데 없지만
사투리가 걸쭉한 화교.
쏨뱅이 탕수, 삼선짬뽕, 사천짜장이
비길 데가 없다.
- 추억은 없어도 여전이 남고 싶은 곳
# 완도읍 태화각
# 완도읍 광주식당
출처 : 김천령의 바람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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