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생강나무꽃) 점순이 -(조각의 꽃은 일반 동백꽃)(모래조각- 沙友 김길만 모래조각가)
동백꽃 점순씨에게
메마른 도회지의 일상이 이렇게 가슴을 짓누를 때면 알싸한 동백꽃 향기가 정말 그립습니다. 그 날 점순씨가 소작인의 아들과 몸뚱아리가 겹쳐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오란 동백꽃 속으로 쓰러질 때 저도 고만 정신이 아찔하여 책장을 놓쳤는데..... 참, 그 날 저녁 (이년이 바느질하다 말구 어딜 쏘다니냐)며 어머니께 큰 꾸중을 들었다지요? 생각해 보면 그 꾸중도 알싸하니 향긋한 게 얼마나 달콤했을까요. 점순씨! 전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섬짓하다가도 그만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소작인의 아들(지금의 점순씨 애인)이 점순씨의 애정을 알아 차리지 못하니까 (이 놈의 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게를 주먹으로 콕콕 패 주던 장면 말입니다. 사실 그 볼기짝게를 패면서도 점순씨의 온 정신은 그 에게 가 있었다는 걸 저는 압니다. 닭에게 고추장을 퍼 먹이며 쟁그러워 죽겠다던 점순씨 애인의 그 모습도 가끔 싱그러운 웃음을 주니 기쁩니다.
*노란 동백꽃 (생강나무꽃)(사진-향초)
참, 점순씨! 제게 점순씨를 인사 시켜준 유정이는 아직도 건강을 찾지 못한 채 박녹주에게 답장없는 긴 편지를 쓴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빨리 건강도 되찾고 글도 써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가 (총각과 맹꽁이)의 덕만이가 들병이에게 자신을 소개했던 아랫말 그 주막에서 코다리찌게를 해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강원도 아리랑)을 흥겹게 불러 볼텐데-- 머지않아 그런 기회가 오리라 믿지만--
점순씨! 전 궁금한 게 참 많습니다.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애를 낳지유) (봄봄)의 속도 무던한 머슴이 그리도 애를 태웠는데 그 점순이의 키는 좀 컸는지? 지금도 (소낙비)가 내리면 동이배를 가진 이주사란 작자는 지우산을 받쳐쓰고 쇠돌이네 집을 향하여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내려 가는지? (금따는 콩밭)을 만들겠다고 몸부림을 치던 영식이는 거짓말을 하고 달아나버린 수재를 지금도 증오하고 있지는 않은지? 복만이가 일금 오십원에 안해를 팔던 그 (가을)! 응고개에서 응오가 형 응칠에게 도적아닌 도적으로 몰려 어이쿠쿠! 처참한 비명을 지른 후 (내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라고 절규했던 (만무방)의 그 가을! (산골 나그네)가 짓밟고 간 덕돌이의 슬픈 꿈은 아직도 그 물방앗간의 쓸쓸한 달빛으로 남아 있는지?
점순씨! 메마른 도회지의 일상이 제 가슴을 짓누른다고 말했지만 그 원인은 욕심으로 가득찬 제 마음때문입니다. 저 혼자만 편하지고 하나밖에 없는 (솥)을 빼낸 근식이처럼 말입니다. 덕순이는 무지했지만 중복의 허리를 녹이는 (땡볕)에 차오르는 숨을 헐떡이며 얼른 안해를 갖다 눕히고 죽이라도 한 그릇 얻어다 먹이는 게 남편의 도리일 것이라고 절규했는데- 점순씨! 우린 얼른 마음속에 부끄러움을 키워 욕심을 하나씩 지워야겠습니다. 나의 욕심이 남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슬픈 눈물을 준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럼, 노오란 동백꽃처럼 늘 향기로운 여인이시길 빕니다.
첫댓글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거운 손, 가슴 속 울려주던 눈물젖은 편지------
ㅎㅎㅎ 김유정의 '봄봄'웃음이 절로 나오는군요...단편 속에서 어떻게 맛깔나게 담을 수 있는지 김유정 만의 끼라고 볼 수 있겠지요.참 대단한 작가이지요.
봄에 사랑의 씨를 뿌렸으니 지금은 사랑의 열매가 탄생 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