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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정의 핏속, 순교적 뜨거움과 애국심이 흐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목숨 걸고 목회를 하셨고 나라를 사랑하셨다. 그 분들을 보며 목회와 나라 사랑을 향한 의지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작년 11월 은퇴하시고 거의 1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근황을 소개해 주세요. 은퇴한 후로도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아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일정이 없는 날에는 가까운 상당산성에 오르거나 무심천을 걸으며 건강을 챙기고 있고, 되도록 아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하고 있다.
조부인 구연영 목사는 일제 강점기 때 의병대장이셨다. 경기도 이천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아 일제에 무력으로 대항하다, 무장투쟁의 한계를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시켜야 겠다’는 생각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감리교 목회자가 되었다. 할아버지 설교를 듣고 감동 받은 일본인들이 경찰이 할아버지를 잡으러 올 때 피신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경찰에 잡히셔서 순교당하셨다. 충북에서는 독립운동하신 목회자로 유명한 분으로 국가에서 유공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아들 구자민 목사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고 절대 남에게 싫은 소리, 안 좋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진짜 목자와 같은 성품이다. 어딜 가든지 목회 승리할 것이라 믿는다. 동양선교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신자들이 참 많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설교를 복음적으로 은혜롭게 잘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다.
할아버지 구연영 목사로 시작해서 아들 구자민 목사까지 내려져 오는 가족의 자랑스러운 내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할아버지가 순교자이셨고 그 피가 신앙과 함께 내려오게 되어서 우리 가족에게는 순교적 마인드가 강한 것 같다. 애국심도 투철하다. 내 속에도 어른들의 그런 내력이 흐르는지 불의한 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아버지도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크신 분이었다. 해방공간에서 아버지는 충주지역의 태극기 보급운동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 태극기를 직접 만들어 보급하고 아이들에게 태극기의 의미와 그리는 법 등을 교육하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목숨 걸고 목회하셨고 나라사랑하셨다. 그 분들을 보며 목회와 나라사랑을 향한 의지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교단의 원로로써 우리 교단의 자랑을 하신다면? 또한 요즘 교단을 돌아보며 후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린다. 누가 모라고 해도 우리 교단은 타 교단과 비교해 성결하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또한 우리 교단은 교단연합활동에서 평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해왔다. 타 교단끼리 싸움이 있을 때 우리교단이 중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며 평화를 가져오는 교단이라는 자랑스러움을 많이 느꼈다.
목사님의 목회생활 46년을 평가하신다면 어떤지요? 그리고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아쉽다고 하는 것은 하나 밖에 없다. 보다 더 열심히 해서 교회를 더욱 부흥시켰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이다. 그 밖에는 감사한 것뿐이다. 문 닫게 된 내덕교회를 일으키고 신자들을 잘 양육해 좋은 일꾼들이 된 것이 가장 감사하다. 또한 자랑하고 싶은 것은 책 읽지 않던 성도들이 17년간 한 달에 책 1권씩 총 200여권의 책을 잃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외에 선교센터 30개 세운 것도 감사하다. 활천문학회? 교육위원회? 중화복음신학교 이사회를 창립한 것도 큰 보람이다.
<출처: 기독교성결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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