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버스 떠나요, 버려진 늙은 이?
새벽 5시 전에 논산의 찜질방에서 나왔다.
호전의 기미가 전혀 없는 몸이 걸을 하루치로 공주시내는 벅찬
거리라 시간이라도 충분해야 하니까.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일 하루 동행하기 위해 오늘 공주로
오시겠다는 충북 옥천 도덕봉농원(www.peachland.co.kr)의
한방이님과 상봉하려면 그래야 했다.
미명인데다 안개마저 자욱해 시야가 전혀 없는 새벽은 은진에서
사교(沙橋:은진면과 부적면의 논산천 옛다리) ~ 초포교(草浦橋:
광석면 항월리 노성천 다리) ~ 노성면의 30리 옛길(대동지지)을
버리고 23번 국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차량들의 전조등이 길 안내는 잘 하고 있지만 넓은 공간 두고도
아쩔하게 스치고 달아나는 대형 트럭들은 장난꾸러기인가.
간이 콩알만 해지기를 반복하게 하던 국도를 벗어나서 노성면
(魯城) 소재지에 당도했다.
버스정류장마다 논산 8경중 하나라고 노성산성 자랑이다.
백제시대에 건설한 퇴뫼식 산성이란다.
성내에서는 백제와 신라, 이조까지의 다양한 토기편과 와편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봉수대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조선시대까지
군사요충지로 사용되었던 성지라고 판단된단다.
강원도 평창의 노성산성(도기념물80호)과는 동명이성인데 평창
에는 자랑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별무관심인 듯 한데.
200ml우유 1팩으로 아침을 때우고 하도리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는 동안 백일홍, 봉숭아 등의 씨를 받고 있었다.
등교학생들과 출근길의 남녀가 서둘러 탄 버스가 떠났다.
얼마후 또 한대가 왔다.
이른 아침에 웬 나들이인지 한 노파가 차에 오르면서 꽃씨 받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내게 소리쳤다.
"할아버지! 버스 떠나요"
노파는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았나 보다.
버스가 정류장을 깨끗이 비우고(승객을 다 태우고) 떠날 때마다
혼자 남는 길나그네의 감정은 묘해진다.
마치 버려진 늙은 이?
그러면 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길!
홀로인 늙은 길손에게 인사하는 듯 해 마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종종 다녀 주기를 바랄 때는 또 한적하니 도대체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삼남대로 시작 이후 처음 맛보는 행복감이 헤일 수 없이
자주 포기를 고려했던 일을 부끄럽게 했다.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그랬으랴 마는....
코스모스 신장이 더 길고 길은 더 좁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정안 밤아줌마
상월면(上月)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듯 했다.
고구마아가씨를 뽑는 등 고구마축제 준비에 바쁘단다.
고추아가씨(영양)는 고추처럼 맵고 날씬하고 참외아가씨(성주),
사과아가씨(문경 외), 딸기아가씨(삼례 외), 감아가씨(청도 외),
포도아가씨(모서 외), 기타 과일아가씨들은 달고 탐스러울까.
그렇다면 고구마아가씨는?
'고구마' 하면 해남인데 해남만은 못해도 그에 버금가도록 품질
향상을 위해 온 면이 애쓴다고 하나로마트 여직원이 설명했다.
우측의 계룡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공주시 계룡면에 들어섰다.
역참(驛站)이 있던 경천(敬天)이다.
천황봉이 우뚝하고 연천봉에서 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스라하나 위용스러웠다.
저 계룡산을 보고 있는 동안 금남정맥 종주때 일이 스쳐갔다.
그 때, 비(雨)를 내세워 끝내 모습을 감추려고만 하는 천황봉을
우격다짐으로 보려 했다가 야멸차게 냉대받고 신원사 초입의
신들(神) 마을로 떨어지는 실수를 했다.
장발, 장염(長髥)에 배낭멘 곤색 레인 코트의 영감을 대단하고
신통력 있는 도사로 착각한 이들의 어이없는 환대에 대해서는
<백두대간과 아홉정맥>코너에서 자세히 얘기하겠거니와 옛길
노상에서 그 해프닝의 현장을 올려다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계룡산 천황봉이 우뚝 / 관음봉 자연성릉 삼불봉이 아스라하다.
국도변의 판매대는 전국적인 명물(?)이다.
주로 여인들이 자기 고장의 특산물을 팔고 있다.
판매의 활황 여부는 차치하고 국도에 편입된 삼남대로 상에서는
전남 영암의 무화과와 충남 공주의 밤이 특히 유명하다.
상성리(上城) 교차로 옆의 밤아줌마는 정안면의 자기 농장 소출
이라며 찐 밤 한우큼을 내 앞에 내놓고 먹기를 권했다.
"이 더위에 영감님이 웬 고생이래유"
나를 걱정해 준 그녀는 밤은 요기가 된다며 판매중인 날밤도 한
자루 배낭에 넣고 가다가 시장할 때 꺼내어 자시랬다.
배낭이 무거워 그럴 수는 없지만 얼마나 고마운 마음씨인가.
조금 전 경천리의 아줌마는 판매대 그늘에서 잠시 쉬는 것조차
장사에 지장된다고 멀찌기 떨어지라 했는데.
이같은 후덕(厚德)과 인색은 체질(천성)일까 찰나적 우발일까.
상대적 반응일까.
만일 상대성이라면 내게도 절반의 공과가 있는 것 아닌가.
인심에 대해 종종 혼란스러워지곤 한다.
아무튼 그녀가 싸준 찐 밤 까먹으며 쉬고 걷고를 반복했다.
제법 걷도록 허락될 때는 기회다 싶어 왕창 가곤 했다.
해 안에 도착할 듯 해서 긴장이 풀린 탓인가.
널티고개(板峙:鳳鳴)를 지나다가 맥이 빠져가는 것을 막겠다고
식당에 들렸으나 처방이 틀렸다.
비싼 음식 국물만 마시고 말았으니까.
삼남대로에서 처음 맞은 성찬
계룡면을 벗어나 공주시가에 들어섰다.
효포초등학교(孝家里) 이후 곧 참새골에서 길을 바꿔야 하는데
신설된 신공주대교를 걸어보려 했다가 낭패한 꼴이 됐다.
차량 위주로 건설되어 보행자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으니까.
춘하추절에는 배(舟)로, 결빙된 동절에는 걸어서 건넜을 공주의
금강에도 육중한 다리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사람과 차량이
상생하는 교량 건설은 과연 난공사란 말인가.
한방이님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마구 위반하여 택시를 타야 했다.
오늘도 종일 모우워(mower) 소리 들으며 걸었다.
추석이 임박해서 조상 이발해 주는 소리다.
그러니까 이 때는 한방이님네에겐 아주 분망한 추석 대목이다.
그런데도 한방이님은 안방이님(婦人)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싣고 달려왔다.
안방이님도 동참하려 했으나 워낙 여의치 않아 불참하게 됐다는
한방이님의 변명(?)은 나를 더욱 송구스럽게 했다.
우리는 버스터미널 인근 신관초등학교 교문 앞에 자리를 폈다.
만반의 준비를 해온 그는 밤중에 가스램프 아래에서 고기 굽고
나는 막걸리를 곁들여 포식했다.
삼남대로 시작 이후 처음 갖는 성찬이었다.
대간, 정맥 종주중에는 혼자서도 대식가 행세를 한 적들이 있다.
고기는 거의 모든 경우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2인분
정도는 혼자 먹어치워야 하며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아직 60대였다.
그러니까 지금, 70대 중반의 식욕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으므로
섭취하는 것이 늘 빈약하거나 부실할 수 밖에 없다.
한방이님과 함께 보낸 신관동 '삼우불가마찜질방'은 여러 해 전
금남정맥 공주지역 종주중에 들른 적이 있어 구면이다.
역시 대간, 전맥 종주 유산의 재활용인 셈이다.
우리는 금강교(錦江橋) 앞에서 627번 지방도를 타고 의당(儀堂)
면소재지로 가는 새벽길을 재촉했으나 주저앉는 일이 너무 잦아
그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7번 시군도로로 바꿔 수촌초등학교 앞 정자에 또 앉아야 했다.
오인리의 '五仁' 에는 필시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데도 누군가 면전에 있어야 물어보기라도 하지.
한방이님과의 동행을 후회했다
정안면(正安)에 접어들어 모로원(毛老院)터라는 모란, 양달마을
(上龍里)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것은 내딴에는 동행자에 대한
배려였으나 깨질거리다 말아 오히려 더욱 미안했다.
하지만 아침 9시쯤에 식사해본 적이 없는데 먹힐리가 있겠는가.
석송초교(石松) 화봉분교(花鳳) 앞 23번 국도를 잠시 따르다가
옛길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버렸다.
정안천 뚝방길의 인력(引力)이 워낙 강했다 할까.
아무리 옛길 걷겠다고 나섰지만 천하태평인 물길따라 걷는 황금
들길의 소요(逍遙)에 당할 수 있겠는가.
옛 선인들도 이런 경우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궁원(弓院 : 현長院里와 雲弓里間) 시오리길(十五里 :
모로원~궁원까지 : 대동지지)은 통째로 우리의 것이니라.
오순도순 편한 이야기 나누며 뚝길을 걷는 동안 한방이님이야
어떠하든 나는 참으로 여유롭고 행복했다.
제백사 하고 동행해 주는 그가 마냥 고마울 뿐이었다.
여유작작하니까 주저앉는 빈도도 줄어드는 듯 했다.
북계리(北溪) 지나 장원리(長院)에 들어서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내 막내의 처가였던 집터를 어림해 보았으나 짚어지지 않아서.
사돈 상사때 문상한 적이 있건만 오래 전이 돼서 그런가.
건물이 망실됨으로서 시각적 기준 부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접고 도착한 우주농원의 주인 이범희는 인심이 좋은가.
막걸리 독을 찬 물에 담가놓고 방문하는 이들로 하여금 마구 퍼
마시게 하는 것도 하나의 PR이겠지만 늙은 길손의 갈증을 풀어
주어 더 없이 고마웠다.
밤 철이 되면 밤따기 관광이 기획상품으로 등장한다.
이 농원에 오는 관광버스들도 아마 그런 목적인 듯 한데 주인의
성실하고 인심 후한 이미지가 방문객들에게 호감을 줄 것 같다.
농원 주변이 아무래도 생소하지 않아서 아스라한 기억을 다시금
추스려 보았으나 여전히 긴가민가 할 뿐이었다.
주인에게 물어보기도 뭣해서 그냥 나온 후에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추석에 온 막내에게 물었더니 자기 처가의 밤나무단지를
위탁 관리하고 있단다.
내가 느낀 대로 근면 성실해서 그(이범희)에게 맡겼다는 것.
자기와의 관계를 밝혔으면 극진하게 대접했을 사람이란다.
나는 이끼가 끼어 미끄러운 정안천 수중보를 조심스레 건넜다.
얇디얇은 유리판 다루듯 극히 조심해야 하는 허리라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
저만치 앞서 가는 한방이님께 자꾸 더 미안했다.
노상에서 수시로 업무를 보아야 할 만큼 분망한데도 격려동행을
고집한 그가 고맙기 그지없으면서도 몸둘 바를 모르도록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아예 단호히 사양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 까지 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운궁리가 빤히 바라보이는 뚝방 옆의 정자에
또 주저 앉아야 했다.
낭만의 뚝길을 벗어나면 또 다시 부닥뜨려야 하는 번잡하고 위험
천만인 차도의 중압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쉬는 김에 한방이님이 가져온 간식을 즐겼다.
이 때쯤이면 식욕이 기지개를 펴는데 달리 먹거리가 없었으니까.
<계속>
(공주 ~ 정안 간의 사진들이 왜 달아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