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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민요에는 ‘이여’라는 말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과연 ‘이여’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어도’는 무엇일까요? 대학 강의시간에 교수님께서 던진 질문입니다. 이때 취미로 맺은 ‘이여’와의 인연이 이렇게 소리 쪽으로 갈 줄 몰랐지요.” 제주 민요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민요패 소리왓 대표 안민희씨. 안씨는 1985년 제주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제주 민요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국문과에 ‘구비분과’라는 민요분과가 있었어요. 제주 구비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들어가게 됐고, 제주 민요와 접하게 됐지요.” 그러다가 1987년 그가 3학년이 됐을 때 섬에서 빈다는 뜻으로 ‘섬비나리’로 이름을 바꿔 본격적인 민요 부흥 활동을 하게 됐다. 제주대에 문화의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이는 1970년대 서울대에서 시작된 탈춤부흥운동이 그 뿌리인데 서울에 비하면 10년 정도 늦게 우리대학에 꽃핀 것이다. 탈춤이 부흥하면서 이어 민요 연구회도 꽃을 피웠고 민요의 부흥기를 맞게 됐다. 민요 붐이 일던 당시 안씨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충남대 민요연구회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국문과에서는 배운 것들을 학술지로 ‘국문학보’를 만들어 이론화시켰다. 제주도내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제주 민요와 사투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등 구비문학에 대한 정리를 주로 했다. 그러던 중 충남대 민요연구회에서 제주도에 민요를 선보이기 위해 왔고, 그 자리에 사투리 통역으로 국문과 학생들이 초청됐다. 충남대 민요연구회에서는 전라도, 진도 아리랑 등을 선보이며 전수받은 지방 민요를 노래와 탈춤으로 표현했다. 안씨는 “우리는 이론적이고 문학적인 요소로 구비문학(설화, 신화, 민요)을 공부했는데, 이미 서울 민요연구회 등 다른 지역에서는 신명 중심의 노래와 탈춤으로 이를 이어가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5년 간의 시간 동안 우리 민요의 전망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고, 1990년 제주문화운동협의회의 우리노래연구회 민요분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1992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민요패 소리왓으로 독립해서 초창기 대표를 역임하면서 그의 소리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소리왓에서 ‘왓’은 제주도 사투리로 밭을 말하는 데, 모든 민요가 밭에서 시작되고 재생산 된다는 데서 이름을 따왔다. 1992년도 판굿 행사를 중심으로 소리왓은 성장해 갔고, 민요교실 등 대중 활동을 하면서 대학에서 강습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국문과에서 배워온 이론 정리가 큰 도움이 됐다. 소리왓은 제주 민요가 육지 민요와는 다른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는데도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빨리 사라지고 있는 실정을 안타깝게 여겨 제주민요지킴이를 자처해 사라져 가는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자는 취지로 ‘우리 할망넨 영 살았수다’라는 이름의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 작품은 4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뤄지는 노동의 과정을 제주민요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서 담아내 전국적인 찬사를 받았으며, 민요계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안씨는 “노동요의 땀 흘리며 부르는 노래의 진정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며 “노동이 사라진 현대에는 자기 밖에 몰라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제주도의 정체성을 찾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문화의 진정성을 알게 하기 위해 민요를 가르치고 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올해 소리왓은 작은 학교를 찾아가는 신화여행 ‘신화야 놀자’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제주민요를 알고,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또 어린이 국악단 ‘소리나라’를 운영하고 있으며, 창작 국악 동요제도 진행해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안씨는 “할 일은 많고 무리하게 진행해 힘들기도 하지만 모두들 끝까지 열정을 갖고 임해 줘 힘을 얻는다”며 “특히 타향에 가 있는 제주사람들이 직접 찾는 등 큰 관심을 가져주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등지에서 공연하면서도 큰 호응을 얻어 가능성을 찾았다는 안씨는 그러나 젊은 인재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끝내 아쉬운 모양이다. “오히려 전문대학생들이 ‘우리문화 연구회’를 조직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제주대학생들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 안씨의 어깨가 무겁다. 그러나 그는 곧 마음을 비운다. 그는 아직도 대학생들의 열정이 그때 못지않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큰 욕심은 없어요. 민요패 소리왓이 사람들이 언제나 편하게 들락날락거릴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제주 민요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소리왓을 찾아 주세요.” 약력 1990년 제주대 국어국문 학과 졸업 |
©2006 제주대신문 Updated: 2006-05-11 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