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언젠가 어떤 사석에서 저는 참으로 서글픈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우연히 동창 한분을 만났는데 제가 송설 38회로 소개했더니, 듣고 있던 그 동창생이 자기는 송설 24회라고 하면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이는 저를 보고 안타까워한 일이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동창생은 고등학교 24회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이 일이 있고난 후 보다 적극적으로 송설의 역사를 재구 동기생들과 사무국장 김종업 선배와 심도있게 의논하여 총동창회에 인터넷을 통해 말씀 드린 일이 있었는데, 오늘 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번 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학원의 기수(期數,횟수回數)를, 부끄럽게도 상당한 동문들이 잘 계산도 못하는 중0회, 고0회, 송설0회라는 식으로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계속 사용할것이 아니라 더욱이 잘못된 고등학교 기수 산정을 심도있게 논의하여 통일된 하나의 기수(期數,횟수回數)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송설학원의 일제 때 정확한 명칭은 김천고등보통학교(金泉高等普通學校)로 지금의 경북고등학교의 전신인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와 더불어 한강 이남에서 유일하게 중등교육(中等敎育)을 실시하던 몇 안되는 4-5년제 학교였습니다. 잘 알고 계시다시피 1931년 5년제 김천고보(金泉高普)가 설립된 후 몇 번의 학제개편과 타의에 의해 명칭이 바뀌다보니, 1940년 한때는 중학교라는 이름으로 고쳐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 고등보통학교의 성격은 지금의 중·고등학교와 동일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현재의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구분할 수 없는 중·고등학교 복합교육기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지금의 잣대로 구분하자면 중학교보다는 오히려 고등학교에 더 가까운 교육기관이었습니다.
1950년에 제도가 바뀌면서 기존의 고등보통학교는 오늘날 명칭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구분되 개편되는데 이 법령에 따라 모교 역시 1951년 고등학교가 구분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 제1회 고등학교 졸업생의 회기를 고등보통학교를 전신으로 하여 연결해서 제 17회로 규정했어야 함에도 고등보통학교를 중학교의 전신으로만 취급하고 고등학교는 새로 신설되는 경우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여 결국 오늘과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를 제외한 전국의 다른 학교는 새로운 제도 하에 설치된 고등학교를 신설된 학교가 아닌 기존의 고등보통학교에서 분리된 제도상의 명칭이 바뀐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모두 하나같이 고등보통학교의 회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우리 송설만 달리 해석하여 오늘날까지 한 학원을 두고 중0회, 고0회, 송설0회 등 3분화하여 복잡하게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뭐 그리 사소한 것 가지고 그럴 필요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절대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들의 시대가 지나면 누가 나서서 과연 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우스운 예로 우리 경북의대(慶北醫大)동창회 모임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각자 김고(金高) 0회 누구라고들 소개하다보니 원로 선배 한분은 고등학교 학제가 생기기 전에 졸업하신 분이셔서 하는 수 없이 김고(金高) 마이너스 0회라고 하시며 그 이유를 매번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만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나마 이 경우는 원로 선배님이 계셨기 때문에 송설의 역사를 매번 교육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다수 동문들이 송설의 역사를 황당하게 대충 알고있거나 아예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바와같이 회기를 복잡하게 해 오다보니 생긴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기가 찬 일은 송설이란 단어를 그저 폼으로 사용하는 양, 김고 0회도 아니고 송설에다 고등학교 기수를 혼합하여 송설0기라고 하는 동창도 여러번 목격했습니다. 참으로 웃기는 일 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이며 어리석고 무지한 역사의식이자 자기 비하적이며 어쩌면 모교설립자이신 최송설당(崔松雪堂)여사님을 모독하는 발언으로까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관행대로라면 저는 김고(金高) 22회입니다. 경북고(慶北高) 관행대로라면 저와 같은 또래의 경북고 졸업생이 55회랍니다. 과연 우리의 역사가 경북고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깁니까? 아니면 일일이 김고(金高)회수에 16년을 더한 것이 송설의 역사라고 설명해야 되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잘못된 김고 횟수와 엇비슷한 학교는 대구 경북권만 해도 부지기로 많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관행으로 그들이 역사를 맞먹으려 합니다. 황금같은 16년의 역사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최소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만큼은 이런 생각들을 한번쯤 하셨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아니면 영원히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송설의 얼을 깊이 간직하신 원로 선배님들이 떠나시고 우리의 시대가 지나가면 과연 누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영원히 숙제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모교에 역사관을 건립하고 자료수집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이 잘못된 관행부터 바로잡는 것이 시급한 현안이자 쉽게 역사를 되찾는 방법이라고 판단됩니다. 앞으로 몇몇 자료와 우리와 유사한 다른 학교들이 해오고 있는 방법을 비교하여보고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을 외람스럽게 촉구드립니다.
☆고등보통학교(高等普通學校)-일제 강점기의 중등교육기관.
일제는 1906년 식민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대한제국 정부가 1899년 설립한 중학교를 고등학교로 개명하였다. 수업 연한도 종전의 심상(尋常)과 4년, 고등과 3년, 도합 7년인 것을 본과 4년, 예과 및 보습과 1년 이내로 하였다가 본과를 1년 단축할 수 있게하고 예과는 폐지하였다.
1911년-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고등학교를 다시 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하고, 입학 자격을 12세 이상으로 4년제 보통학교를 졸업했거나 그와 동등한 자격을 소지한 자로 규정하였다.
수업연한은 고보(高普,고등보통학교) 4년, 여 고보(女高普,여자고등보통학교)3년으로 ···
1922년-개정 조선 교육령을 제정하여 고보(高普)의 수업연한을 4년에서 5년으로, 여 고보(女高普)의 수업연한을 3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1938년-3차 조선 교육령을 제정하여 고보 와 여 고보를 중학교와 고등 여 학교로 개칭하고···
☆고등 여학교(高等女學校)-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여성 중등교육기관
1908년(융희2년) 4월 '고등 여학교령'이 공포됨에 따라 그 해 최초로 관립 여자 중등교육기관으로 한성 고등 여학교가 설립되고, 1909년에는 1906년에 설립된 명신(明新) 여학교가 사립 숙명 고등여학교로 재발족 하였다. 수업연한은 3년제본과(지방에 따라 4년), 2년제 예과 2년 이상의 기예전수과(技藝專修科) 등이 있었다. 본과의 교과목은 수신, 국어, 일본어, 역사, 지리, 산술, 외국어 등 이었다. 1911년에는 일본인의 고등 여학교와 차등을 두어 한국인 여학교를 3년제의 여자 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1938년 3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되어 여자 고등보통학교는 다시 고등 여학교로 되고 수업연한은 2∼3년의 고등과와 전공과 2년의 보습과(補習科)를 두어 1945년 광복 당시까지 존속하였다. 교과 과목은 수신, 공민, 교육, 일본어, 역사, 지리, 외국어(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수학, 이과, 실업, 도화, 가사, 재봉, 음악, 체조 등 이었다.
☆교육법 시행령 제103조(고등학교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 인정)
2항, 1922년 이전의 고등보통학교 4학년 졸업자
6항, 1938년 이전의 고등보통학교 5학년 졸업자
8항, 1944년 이전의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5학년 졸업자
☆교육법 시행령 제104조(종전의 사범학교 졸업자와 동등한 자격 인정)
1항, 구 고등보통학교 사범과 졸업자
7항, 고등보통학교 부설 임시 교원 양성소 본과 졸업자
◇신명여자고등학교
1907, 신명여자중학교
1912, 제1회 졸업생 3명 배출
1913, 신명여자 고등보통학교
1927, 대구 신명 여학교
1944, 대구 남산 여학교
1945, 신명 고등 여학교
1948, 신명 여자 중학교
1951, 학제변경 신명 여자 중학교와 고등학교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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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고등학교 80주년 기념
◇계성 중고등학교
1906, 미국의 애덤스 선교사 부부가 설립한 미션 school
1912, 6 사립계성학교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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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중고등학교 60회 졸업
2003, 중고등학교 93회 졸업
◇경기고등학교
1899, 4 중학교 심상과 4년, 고등과 3년 관제공포
1900∼1906-관립중학교 졸업회기(1∼2회)
1906∼1911-관립한성고등학교 졸업회기(3∼7회)
1911∼1921-경성고등보통학교 졸업회기(8∼17회)
1921∼1925-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졸업회기(18∼21회)
1925∼1938-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졸업회기(22∼34회)
1938∼1950-경기공립중학교 졸업회기(35∼47회)
1951∼1970-경기중고등학교 졸업회기(48∼68회)
1971∼1975-경기고등학교 졸업회기(68∼72회)
1976∼ - 졸업회기(73∼현재)
1980∼ -경기고등학교 80주년 기념
1990∼ -경기고등학교 90주년 기념
◇국립 경북대학교
1926년에 설립된 대구 사범학교와, 1932년에 설립된 대구 의학 전문학교 및 1944년에 설립된 대구 농업 전문학교를 전신으로 하여 1951년 국립 종합대학인 경북대학교 발족
1952-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제20회 졸업식
1980-경북대학교 의과대학 48회 졸업식
2003-경북대학교 의과대학 71회 졸업식
▣김천중고등(송설)학교
1931.3. 최송설당여사님 김천고보설립(5년제)
1931.5. 88명 입학하여 1936년 제1회 졸업
1938. 김천중학교 개명
1951.9. 중학교 6년제에서 중·고로 분리되면서 김천고등학교 인가
◎졸업 횟수 조정표
◎졸업 횟수 조정표(계속)
♧역대 교장의 수정된 시대
♧요약.
Ⅰ. 1951년 교육법령에 의해 김천 고등학교가 설립되었으나 1931년 3월 최송설당여사님께서 설립하신 김천고등보통학교를 당시 교육제도와 교과내용 및 당시 사범학교와 교원양성을 두차례 할 정도의 학교수준등을 감안하고 교육법시행령 제103조에 근거한다면 지금의 김천고등학교의 전신으로 보고 졸업 회기(횟수)를 연결해서 사용해야 한다. 즉, 1931년 5월에 입학하여 1936년에 졸업한 졸업생이 김천고등학교 제1회(송설1회)이고, 1951년 입학하여 1953년에 졸업한 현 고등학교 제1회 졸업생이 김천고등학교 제17회 겸 송설 17회로 규정되어야 한다.
Ⅱ. 비록 중학교만 졸업한 동문이라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고등학교 졸업기수(횟수)에 정회원으로 예우되어 동문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게 해야한다.(우리와 동일한 제도를 가진 모든 고등학교의 공통으로 통용되는 사항)
♧대책.
이 제도와 취지가 빨리 정착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제안을 드리면,
Ⅰ. 모교와 동창회는 그동안 잘못 되어온 김천고등학교 졸업기수(횟수)를 재조정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공포하고 언론에 발표해야 한다.
Ⅱ. 모교와 동창회는 그동안 잘못 되어온 졸업기수(횟수)를 대내외적인 모든 자료에 대해 빠른 시일내에 수정해야 하고, 추후 발행되는 모든 문건에 지금까지 사용해오던 삼분화 된 회기를 일체 배제하고 통일된 고등학교와 송설회기(횟수)로 일원화하여 사용해야 한다.
Ⅲ. 모교에서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본 취지가 이해될 수 있도록 꾸준한 노력과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Ⅳ. 동창회에서는 모든 동문들이 빨리 숙지할 수 있도록 재조정된 졸업 횟수를 통지하고 경비를 감수해서라도 최근 발행된 동창회 명부를 폐기하고 빠른 시일내 통일된 회기로 재발행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