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어떤사람이 살인누명을 쓰고 억울하게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다행이도 그 부인의 끊질긴 추적끝에 진짜 범인이 잡히고 자기 남편을 3년만에 무죄 석방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이와같이 재판정에서 판사나 검사의 오판으로 억울한 피해자들이 발생하는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우리나라뿐만 아니라어느나라던지 재판의 비리 부정 없는 나라가 없지만 역사상에서 가장 잘못된 재판이 있다면 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의 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빌라도는 역사상 가장 큰 오판을 하였습니다.빌라도는 단 한번의 오판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죄인의 누명을 쒸우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돌이킬수 없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그래서 빌라도는 2천년동안 전세계인들로부터 그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비난받고 있을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로부터는 예배때마다“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이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입니까?.역사에의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는 1년후 총독직에서 해임당한후 정신이상이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고 합니다.빌라도가 왜 이렇게 엄청난 실수를하고 후대인들에는 두고두고 영영히 욕을먹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1)군중들의 소리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때 조그만한 나귀를 타고 오셨는데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줄줄이 길에깔고 손에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우리를 구원 하소서”하고 소리 소리 외쳤습니다.그런데 불과 3일후 이번에는 군중들이 외쳐대기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라 죽여라”하고 소리치고 있습니다.정말로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가 없습니다.언제는 예수가 최고다 하고 소리치고 따라다니고 자랑하다가 며칠도 못가서 예수를 죽이라고 돌변하였습니다.이러한 변덕스러운 마음이 하나님을 욕되게하고 그의 후손들까지도 멸망하고 나라를 잃는 치욕적인, 역사에 씻지못할 엄청난 죄를 짓게된것 입니다.초지일관 변덕부리지않는 굳건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영국의 처칠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때 수많은 군중들이 환호하였습니다.부하들이 흥분된 모습으로 “저 환호소리를 들어보라”고 하자 처칠은 말하기를 “본래 민중의 소리는 금방 변하는것이니 믿을것이 못된다”라고 하였습니다.지금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지르는 군중들의 소리가 터무니없는 잘못된 주장인것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빌라도는 정치인 입니다.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주장이지만 군중을 무시하고서는 정치적 발판을 잃어버릴수도 있습니다.그래서 빌라도는 군중의 소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이것이 민주주의 맹점 입니다.최고의 이상을 지닌 정치체제가 민주주의 입니다.소수의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문제는 항상 다수의 의견이 옳은것만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고전10:5).빌라도는 지금 살인자 바나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는 이 옳지못한 다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어떻게 할것인가?...다수의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 한사람 희생 시키는것이 낳지 않겠는가?.이럴때 빌라도는 두번째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2)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빌라도는 재판관으로써 살인자를 놓아주고 예수를 놓아주라는 군중들의 주장이 매우 잘못되었음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습니다.양심적으로 용납할수 없습니다.그러나 빌라도는 고민 합니다.양심의 소리를 따를것이냐/군중의 소리를 따를것이냐?그는 결국 고민하다가 양심의 소리를 버리고 군중의 소리를 따르기로 결심합니다.그리고 예수님을 군중들 손에 넘겨주면서 “나는 책임이 없다”하며 책임을 회피 합니다.빌라도는 아주 교활한 현실주의자의 표본 입니다.여러분 신앙인이란 현실의 득실보다 양심의 소리를 따를줄아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루소>는“양심은 하나님의 소리다”라고 했으며<오리게네스>는“양심은 정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영국 속담에도“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살피는이가 있는데 하나님과 양심이다”<프랭크린>은 말하기를“그대가 다른사람의 죄를 말하려거든 우선 먼저 그대의 양심으로 자신에게 말하라”했습니다.<루소>는 말하기를 “사람이 만일 양심이 마비되면 한마리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이성의 힘을 빌려 잘못만을 저지르게 된다”고 했습니다.양심의 소리를 저버린 사람 빌라도에 의해서 예수님의 고난은 시작 되었습니다.역사에 있어서 인간관계나 어떤 공동체의 여러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어려움을 야기시키는 사람들은 언제나 양심의 소리를 저버린 사람들의 소행 이었습니다. <영국의 화가 레이놀드>는 양심의 치료법 3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그의 말씀들에 순종하라.둘째/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여라.그리하면 양심이 강해진다.세째/반성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자문하라.
(3)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 19절에보면 재판이 시작 되기전 빌라도의 부인이 사람을 보내왔습니다.와서하는말이“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하지 마옵소서 오늘 밤에 내가 그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이것은 빌라도의 아내를 통하여 보내주신 하나님의 멧세지 였습니다.그런데 빌라도는 아둔한 사람 입니다.지극히 현실과 이익에만 집착되어 있습니다.이런 사람에게는 환상과 꿈이 주어지지 않습니다.설령 주어진다 하여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교훈 하시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습니다.<자연의 변화,천재지변,양심,기적,선지자,성경,설교,꿈> 이러한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때 현실의 이해득실을 따지지말고 하나님께 순응하시면 놀라운 은혜를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빌라도가 만약에 양심의 소리나 아내를 통하여 들려주신 하나님의 소리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그는 역사에 위인으로 칭송되었을 것입니다.그런데 빌라도는 군중의 소리는 들을줄 알았지만 양심의 소리,하나님의 소리를 거부하고 역사의 씻을수없는 오판을하여 두고두고 욕을먹고 있습니다.우리는 세상 살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듣고 삽니다.그러나 들어야할 소리는 안듣고 듣지 말아야할 소리에 솔깃해서 빌라도처럼 오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몇년전에 어떤사람이 살인누명을 쓰고 억울하게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다행이도 그 부인의 끊질긴 추적끝에 진짜 범인이 잡히고 자기 남편을 3년만에 무죄 석방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이와같이 재판정에서 판사나 검사의 오판으로 억울한 피해자들이 발생하는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우리나라뿐만 아니라어느나라던지 재판의 비리 부정 없는 나라가 없지만 역사상에서 가장 잘못된 재판이 있다면 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의 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빌라도는 역사상 가장 큰 오판을 하였습니다.빌라도는 단 한번의 오판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죄인의 누명을 쒸우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돌이킬수 없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그래서 빌라도는 2천년동안 전세계인들로부터 그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비난받고 있을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로부터는 예배때마다“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이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입니까?.역사에의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는 1년후 총독직에서 해임당한후 정신이상이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고 합니다.빌라도가 왜 이렇게 엄청난 실수를하고 후대인들에는 두고두고 영영히 욕을먹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1)군중들의 소리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때 조그만한 나귀를 타고 오셨는데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줄줄이 길에깔고 손에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우리를 구원 하소서”하고 소리 소리 외쳤습니다.그런데 불과 3일후 이번에는 군중들이 외쳐대기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라 죽여라”하고 소리치고 있습니다.정말로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가 없습니다.언제는 예수가 최고다 하고 소리치고 따라다니고 자랑하다가 며칠도 못가서 예수를 죽이라고 돌변하였습니다.이러한 변덕스러운 마음이 하나님을 욕되게하고 그의 후손들까지도 멸망하고 나라를 잃는 치욕적인, 역사에 씻지못할 엄청난 죄를 짓게된것 입니다.초지일관 변덕부리지않는 굳건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영국의 처칠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때 수많은 군중들이 환호하였습니다.부하들이 흥분된 모습으로 “저 환호소리를 들어보라”고 하자 처칠은 말하기를 “본래 민중의 소리는 금방 변하는것이니 믿을것이 못된다”라고 하였습니다.지금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지르는 군중들의 소리가 터무니없는 잘못된 주장인것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빌라도는 정치인 입니다.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주장이지만 군중을 무시하고서는 정치적 발판을 잃어버릴수도 있습니다.그래서 빌라도는 군중의 소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이것이 민주주의 맹점 입니다.최고의 이상을 지닌 정치체제가 민주주의 입니다.소수의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문제는 항상 다수의 의견이 옳은것만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고전10:5).빌라도는 지금 살인자 바나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는 이 옳지못한 다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어떻게 할것인가?...다수의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 한사람 희생 시키는것이 낳지 않겠는가?.이럴때 빌라도는 두번째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2)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빌라도는 재판관으로써 살인자를 놓아주고 예수를 놓아주라는 군중들의 주장이 매우 잘못되었음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습니다.양심적으로 용납할수 없습니다.그러나 빌라도는 고민 합니다.양심의 소리를 따를것이냐/군중의 소리를 따를것이냐?그는 결국 고민하다가 양심의 소리를 버리고 군중의 소리를 따르기로 결심합니다.그리고 예수님을 군중들 손에 넘겨주면서 “나는 책임이 없다”하며 책임을 회피 합니다.빌라도는 아주 교활한 현실주의자의 표본 입니다.여러분 신앙인이란 현실의 득실보다 양심의 소리를 따를줄아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루소>는“양심은 하나님의 소리다”라고 했으며<오리게네스>는“양심은 정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영국 속담에도“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살피는이가 있는데 하나님과 양심이다”<프랭크린>은 말하기를“그대가 다른사람의 죄를 말하려거든 우선 먼저 그대의 양심으로 자신에게 말하라”했습니다.<루소>는 말하기를 “사람이 만일 양심이 마비되면 한마리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이성의 힘을 빌려 잘못만을 저지르게 된다”고 했습니다.양심의 소리를 저버린 사람 빌라도에 의해서 예수님의 고난은 시작 되었습니다.역사에 있어서 인간관계나 어떤 공동체의 여러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어려움을 야기시키는 사람들은 언제나 양심의 소리를 저버린 사람들의 소행 이었습니다. <영국의 화가 레이놀드>는 양심의 치료법 3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그의 말씀들에 순종하라.둘째/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여라.그리하면 양심이 강해진다.세째/반성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자문하라.
(3)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 19절에보면 재판이 시작 되기전 빌라도의 부인이 사람을 보내왔습니다.와서하는말이“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하지 마옵소서 오늘 밤에 내가 그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이것은 빌라도의 아내를 통하여 보내주신 하나님의 멧세지 였습니다.그런데 빌라도는 아둔한 사람 입니다.지극히 현실과 이익에만 집착되어 있습니다.이런 사람에게는 환상과 꿈이 주어지지 않습니다.설령 주어진다 하여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교훈 하시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습니다.<자연의 변화,천재지변,양심,기적,선지자,성경,설교,꿈> 이러한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때 현실의 이해득실을 따지지말고 하나님께 순응하시면 놀라운 은혜를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빌라도가 만약에 양심의 소리나 아내를 통하여 들려주신 하나님의 소리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그는 역사에 위인으로 칭송되었을 것입니다.그런데 빌라도는 군중의 소리는 들을줄 알았지만 양심의 소리,하나님의 소리를 거부하고 역사의 씻을수없는 오판을하여 두고두고 욕을먹고 있습니다.우리는 세상 살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듣고 삽니다.그러나 들어야할 소리는 안듣고 듣지 말아야할 소리에 솔깃해서 빌라도처럼 오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