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지난 후 쓰려고 했는데 어떤분으로부터 빨리 쓰라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기억 나는대로 두서없음 양해 부탁드립니다.
비록 축성식은 하지 못했지만 새로 지은 교회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전교인 수련회에 이어서 8월 3-4일은 나눔의집 영성수련회를 열었습니다. 나눔의집의 일을 하다 보면 빨리 지치고 소진됨을 경험합니다. 나눔의집은 이때부터 매주 화요일 미사, 한 달에 한 번 이상의 피정을 원칙으로 고수하였습니다. 2009년 초부터는 매일 아침에도 성공회 영성센터에서 발행하는 '생활과 묵상'으로 함께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도와 영성이 우리 원주 나눔의집 활동의 근거입니다. 원주 나눔의집 실무자들은 모두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으로 학성동 햇살 공부방 친구들이 호저 공간에서 여름 캠프를 진행했습니다.(8월 7-8일) 여름성경학교도 거창하게 했고요(12-14)
몇 번 시도하다가 말았지만 수요일에 영화 상영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지의 소금' 기억하실런지요...
2007년 9월 1일 교구장 선출을 위한 교구의회가 있었습니다. 원주교회를 개척하신 권희연 신부님(당시 광혜원 관할)께서 6차 투표만에 당선되셨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제 비로소 축성식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7년 추석을 이틀 앞두고 강릉에 기도소 공간을 마련하여 방문했습니다. 강릉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어서 걱정도 많이 했더랬습니다. 헌금도 많이 한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주교님이 처음으로 강릉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때도 동행했는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공간은 생각보다 위치가 좋아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교회에 출석하다 춘천으로 이사 간 조중우(마르코), 신희경(스텔라) 부부가 혼배미사를 한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거기에 몇몇 교우님들과 함께 서울대성당에 다녀왔습니다. 9월 29일이네요. 지금도 조금멀어도 치과 진료가 있으면 찾아갑니다. 꼴에 오지랖은 넓어서 다른 사람도 소개해 주기도 했고요.
임시 교회위원회를 급히 열어 축성식 일정을 잡았습니다. 축성을 해 주실 주교님이 선출되셨기 때문입니다. 축성식이 미뤄지는 것으로 본의 아니게 마음 고생을 하던 교우들께 늘 미안할 따름입니다. 교회를 짓고 나서도 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감을 느꼈습니다.
이때 일생일대의 변화가 생깁니다. 신앙의 도반인 김규돈(아오스딩)신부님과 의기 투합하여 매주 토요일 하루 피정을 시작합니다. 에스더 전도사님도 합세를 하셨고요. 아침에 일짝 모여서 하루 종일 기도하고 마무리 미사를 드리면 저녁이 되었습니다. 하루롤 온전하게 기도로 바친 것입니다. 이 일일 피정은 몇 달간 지속되었습니다. 아무 말없이 묵묵히 점심을 준비해 준 아그네스가 가장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기도 덕분에 죽을 것 같던 마음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나의 존재를 없애고 나를 불태워 온전히 그 분이 내 안에 현존하심을 체험했습니다. 나의 에고가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았고, 세상의 집착과 욕심은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이 기도를 계기로 김규돈 신부님과는 귀한 도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에스더 전도사님과도 상하 관계가 아닌 기도의 동료 관계로 성숙한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마무리 미사는 전도사님에게는 미사 연습도 겸하게 됩니다. 지금도 미사 연습을 제일 많이해서 부제님의 자세가 번듯합니다.
2007년 10월 15일부터 호저에서는 새벽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축성식까지 우리의 염원을 담아서 기도드렸습니다.
(주교 서품식과 축성식 이야기는 다음 마지막회로....)
첫댓글 사람 만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고, 어려워요. 그렇죠? ^_^
그래도 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각기 의미가 있겠죠?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