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국물도 없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탕 종류의 국물음식을 즐겨 찾는다. 신토불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 음식 중 육류 국물 음식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설렁탕, 곰탕, 갈비탕이 있다. 그 국물이 그 국물 같지만 자세히 보면 국물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곰탕은 재료를 주로 사태ㆍ양지머리 등의 정육과 양ㆍ곱창 등의 내장을 주원료로 하여 반쯤 익었을 때 무ㆍ다시마를 넣고 끓인 것으로 기름진 맛이 특징이다. 보통 대여섯 시간 정도 끓여 국물을 우려낸다. 이에 반해 설렁탕은 주로 사골ㆍ도가니ㆍ쇠머리ㆍ우족 등의 뼈와 양지머리ㆍ사태 등의 정육, 우설ㆍ지라ㆍ허파ㆍ유통 등의 내장을 넣고 하루 정도 푹 고아 끓인 것으로 곰탕보다 국물이 뽀얗고 진하면서도 맛이 담백하다. 갈비탕은 소갈비를 짧은 시간 직접 끓인 국물과 갈비살점을 먹게 된다.
다 같은 국물이지만 설렁탕 국물은 셋 중 가장 오래 끓이는데, 뼈에서 국물을 우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갈비탕은 갈비에 붙어 있는 살점 자체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을 끓여서도 충분하고, 먹을거리도 갈비 살점이 제법 풍성하다. 곰탕도 양ㆍ곱창 등의 내장을 끓이는 것이어서 나름대로 먹을거리가 충분하다. 이에 비해 설렁탕은 뼈를 장시간 끓이는 것이라 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 속의 영양분을 모두 우려낸 뒤 바스라져 버리기 때문에 살점이 없어서 설렁탕 자체 고기는 없어 다른 부위를 첨가해서 내어놓는다.
설렁탕은 설농탕이라고도 불린다. 그 어원도 설렁설렁 끓여내어서 설렁탕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국물이 눈처럼 뽀얀 탕이라고 해서 雪農湯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가장 유력하기로는 선농단(先農壇)에서 끓인 국이라고 해서 선농탕으로 불리었다가 후에 설농탕이라고 음이 변했다는 설이다. 조선 태조 때부터 동대문 밖 전농동(典農洞:현 동대문구 祭基洞)에 있는 선농단에 적전(籍田)을 마련하고 경칩 뒤의 첫 번째 해일(亥日)에 한해 풍년을 기원하는 제(祭)를 지낸 뒤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 보임으로써 농사의 소중함을 만백성에게 알리는 의식을 행한 뒤 선농단에서 소를 잡아 백성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서양은 스테이크, 포크, 나이프 음식문화다. 바로 쇠고기 자체를 익혀 잘라먹는다. 농경 또는 유목의 문화를 가진 그들은 풍부한 육류를 바탕으로 한 살점 음식 문화 그 자체를 향유하였지만 농경시대에 소 한 마리 가지는 것이 꿈인 가난했던 백성의 문화는 국물의 문화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목숨 같이 소중히 여겼던 소를 잡아 살 한 점, 내장 한 부위 버리지 못하고 아끼고 아껴 전부를 삶아, 뼈까지도 삶아 밑도 끝도 없이 맹물을 퍼붓고, 간을 맞춰 열 사람이고 백 사람이고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던 음식 문화가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국물 문화다.
국물 문화는 좋게 보면 나눔의 문화다. 쇠고기 한 근으로도 수십 명이 나누어 먹는 우리 국물 문화를 서양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모두 한 자리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한 솥에서 끓인 국물을 나누어 먹고, 나중에 오는 사람을 위해 또 다시 맹물을 붓고 끓여서 나누어 먹는, 사랑과 하나됨이 문화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그래서 경계의 벽이 없는 끼리끼리의 문화가 저 국물 문화에서 배어나온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그러나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저 나눔의 문화가 너와 나의 경계의 벽을 허무는 긍정적인 생존의 역사를 이루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얽히고 섞여 공과 사의 구별을 무너뜨리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패거리 문화를 이루어 오늘의 편가르기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한 솥에서 나온 국물을 나누어 먹으면 한 형제로 취급을 받았기에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향해 가차없이 “넌, 국물도 없어!”라고 왕따 시켰던 문화, 배타적 집단주의의 문화, 건더기도 아닌 국물을 얻어먹고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그 집단의 행동강령을 따라야 했던 서글픈 가난과 굴종의 역사, 그 역사의 후유증이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국민소득 만 달러의 국민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서글퍼진다. 나이프와 포크로 먹고 싶은 살점을 쓰윽 잘라서 듬뿍듬뿍 씹어먹는, 저 구분 경계의 역사에 익숙해진 서양의 합리주의를 따라잡기가 힘이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스물 네시간 이상을 끓여야 제대로 국물 맛이 우러나는 설렁탕을 설렁설렁 끓인 국물이라고 어찌 폄하할 수 있겠는가, 혼란과 무질서 속에 방치되어 있는 것 같지만 뼈가 가루가 될 때까지 제 양분을 쏟아내는 국물 문화는 생존의 문화이다. 그 사이로 나이프의 문화가, 합리적인 문화가 스며들어와 생존의 문화를 더욱 빛나게 하는 비법은 없는 것일까?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시사법률신문 44호 게재
첫댓글 어록30. 뼈가 가루가 될 때까지 양분을 우려내어 나누어 먹는 설렁탕, 곰탕, 갈비탕 등의 국물 문화는 어울림과 생존의 양식이며 미풍이다. <넌, 국물도 없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