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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대강좌 8강 - 1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자주 말씀드리지만 경전의 깊은 뜻이 워낙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제가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아는 것 만치 다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각자의 연구ㆍ노력ㆍ사유ㆍ정진. 이런 것을 통해서 제가 미처 모르는 것. 미처 설명하지 못한 것. 이런 것들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시는 각자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불교의 말에 세 사람만 모이면 “문수의 지혜가 나온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문수보살의 3분의 1은 되니까 세 사람이 모이면 문수보살 되잖아요. 그러니까 도반들끼리 모여서 농담도 한번씩 하고, 또 제가 잘못 설명한 것. 평소에 특별하게 알고 있던 것하고 다르게 설명하는 것. 이런 것들도 스스로 토론도 하고 또 비판도 하는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이 유익하지 않겠나 아울러 말씀 드립니다.
공부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예습이지요.
미리 공부해 놓은 것. 그것을 가지고 공부하는 이 자리에 올 때 그 소득이 아주 큽니다. 그래서 사실은 강의를 듣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검증하는 것이고, 확인하는 것이고, 또 혹 미진했던 것을 거기서 깨우쳐 가는 것이고, 그리고 잘못 알고 있던 것을 교정해가는 것. 그것입니다.
확인과 교정이다. 강의를 듣는 것은 사실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자기 공부가 되고 그 소득이 참 큽니다.
우리가 어디 여행을 하더라도 그렇지요. 근래에 중국 여행을 많이 하는데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 불교 성지나, 갈 곳에 대한 사전 예비지식을 얼마만치 쌓느냐,
사전에 그곳에 대해서 얼마만치 공부 했느냐를 가지고 여행을 정말 값있고 알차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판가름 나는 것이지요. 미리 갈 곳에 대해서 충분히 공부를 하고 가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들어갈 때 그 절의 산문을 볼 때 느낌이 달라지고, 간판을 볼 때 ‘아, 저 간판 내가 사진에서 보았던 것이다. 저것은 누구 글씨다. 이 절의 역사는 언제 이루어졌고 여기를 고승은 누구누구 거쳐 갔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은 확인하는 것이고 다시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서로서로 교정하는 입장으로 여행을 하면 얼마나 소득이 크겠습니까?
여행도 그러는데 우리 공부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오늘 어떤 스님이 원효스님의 “法華經宗要 序”에 대해서 복사를 해와서 여러 스님들에게 나눴는데 참 고맙습니다. 아주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도 우리 한국불교 역사에 聖人으로 추앙받는 원효스님께서 법화경을 공부하시고 종요를 쓰시면서 거기에 대한 서문을 이렇게 소개를 했습니다. 서문이 전체에 대한 뜻을 다 포괄하고 있지요.
비록 원효스님이 보신 소견이겠지만 얼마나 뛰어나신 분입니까?
이런 분의 “法華經宗要”에 대한 서문을 우리가 참고해서 법화경이치를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될 줄 믿습니다. 준비 해주신 스님, 아주 고맙습니다.
다른 스님들도 혹 법화경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만한 그런 미처 제가 소개 못한 그런 것들이 있으면 이렇게 준비해서 나눠 주시면 도반들 공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지금 묘법연화경의 이 교재는 서기로 1998년 12월에 제가 발행한 책입니다.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책 두 가지를 꼽으라면 화엄경 4권짜리 교재가 있고, 법화경의 이 교재도 들어갑니다. 이것은 간행사에서 밝혔듯이 승가대학원 교재로 사용했던 것인데요. 이것은 천태지자 스님이 법화경을 공부해서 비로소 뚜렷한 하나의 종파로서 성립될 수 있을 정도로 법화경을 깊이 연구해서 소위 “천태종” 이라고 하는 것이 생겼지요.
“천태학” 이라고 하는 것이 생겼고 천태학을 통해서 세상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수십 명이 되고 그렇습니다. 천태스님의 법화경연구를 통해서 생긴 불교종파도 물론 많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법화경을 제일 깊이 있게 연구해서 크게 성과를 나타내신 분이 결국 천태지자 스님이시지요.
오늘 나눠드린 유인물 과목에도 천태지자 스님이 법화경을 연구해서 아주 세세하게 과목을 붙인 것을 그 동안 과목만 뽑아서 유인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과목이 오늘 드린 교재 안에는 세세하게 사이사이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또 과목을 워낙 세분하게 나누다 보니까 매 단락마다 경문을 자르기가 뭣해서, 어떤 데는 괄호를 해놓고 그 안에 과목 여러 개를 하고 다시 괄호를 닫고, 이렇게 했습니다. 괄호 안에 있는 과목의 내용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법화경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실 스님들은 이것을 가지고 과목하고 맞추어 보면서 ‘아, 이건 이런 뜻이구나,’ 하고 이해하는데 상당히 좋은 열쇠의 역할을 합니다. “경문의 단락을 나누고 매 단락마다 내용을 요약한 과목을 붙인다는 것은 본 경전의 뜻을 거의 설명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랬어요. 사실 그렇습니다. 본래의 법화경이 “여시아문”에서 “신수봉행”까지 쭉~~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品”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품 안에서 단락을 나누고 단락 안에서도 또 아주 세부적으로 쪼개고, 쪼개서 제목을 붙인다는 이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근래에 무슨 강의책을 쓸 때에도 비록 거칠지만, 단락을 나누어서 소제목을 붙여줍니다. 현대서적은 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옛날 우리 경전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경전 연구가들에 의해서 깊이 연구해서 쭉~ 이렇게 과목을, 전통적으로 “과목을 친다.”고 그러지요. 과목을 치는 일이 이렇게 발달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법화경 산림을 하면서 이런 참고 교재도 이왕 옛날에 출판 했던 것이고, 마음을 조금만 쓰면 이런 좋은 참고 교재를 가질 수 있다 싶어서 한 권씩 나눠 드립니다. 활용하는 방법을 그렇게 이해를 하셔서 맞춰 가면서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스님들은 불교에 있어서 프로지요?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프로는 프로답게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 아마추어를 리더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선에서 전부 포교를 하고 계시고, 설사 포교를 하고 계시지 않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법사로서, 포교사로서의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어야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오늘은 174쪽 화성유품 94번부터 할 차례인데 여기의 내용을 보면 과거의 인연을 들추어서 오늘의 어떤 결과에 연결시킵니다.
또 우리의 오늘의 이 법회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또는 어제일 같이 그렇게 기억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멀고 먼 과거 생으로부터 인연이 되어서 오늘의 이러한 시간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또 오늘의 이러한 시간은 또하나의 인연이 되어서 다음 시간에 어떤 결과로서 꽃피어 날지 그것은 명약관하한 일입니다. 그야말로 欲知來生事인댄 今生作者是라. 다음 일을 알고자 한다면 오늘 내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식은 죽 먹듯이 잘 읊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법화경도 그런 “과거ㆍ현재ㆍ미래의 길고 긴 세월의 연장선상에서 이렇게 행해지고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대통지승불” 이라고 하는 부처님을 등장 시켰지요.
대통지승불의 16왕자가 있는데, 그 16왕자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왕자가 결국 석가모니부처님이고, 우리는 그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입니다.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라고 해도 좋고, 석가모니부처님의 79대 제자다. 또는 80대 제자다. 이렇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우리 대에 와서는 석가모니가 큰 스승이고, 석가모니로부터 가섭 아란으로 쭉 이어져서 여러분들의 스승. 또 스승의 스승. 스승의 스승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석가모니불에 닿고, 그 다음에 석가모니불은 또 거슬러 올라가면 대통지승불에 닿는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어느 종교 어느 철학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런 내용이 사실 대단한 가르침이지요. 그래서 “대통지승불이 세상에 출현했다.”
참 감동적인 것은 대통지승불이 성불 했을 때 광명이 비쳤고, 그 광명을 받은 사람들이 비로소 옆의 사람을 누구인가 알아보게 됐다. ‘문득 옆에 사람이 있구나’ 하는 아주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졌습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누차 말씀을 드렸었는데... 그러니까 시방 4천왕들이 대통지승불에게 청법을 하지요. 법을 청합니다. 우리 성불도놀이를 해도 그러지요. 설에 선방에서 의례히 성불도 놀이를 했는데요. 성불을 제일 먼저한 사람. 두 번째한 사람. 세 번째한 사람. 세 사람 딱 뽑아놓고 좌우보처를 앉혀놓고 성불을 먼저한 사람에게 청법을 합니다. 부처 형상으로 얼굴을 황칠을 해가지고 법을 청하는 것이 전부 경전하고 잘 맞아 떨어져 있어요.
보면 그 놀이 까지도 불교에서는... 그래서 되든 안 되든 간에 어쨌든 부처가 되었으니까, 놀이로 부처가 되어도 부처가 되었으니까 법문을 하라는 식으로 되어있고, 그 모델은 또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하고 딱 맞아 떨어져 있습니다.
대통지승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방의 4천왕들이 청법을 청합니다.
청법을 하니까
94. 爾時 大通智勝如來 受 十方諸梵天王 及十六王子請 卽時
이시 대통지승여래 수 시방제범천왕 급십육왕자청 즉시
三轉十二行法輪(삼전십이행법륜)
그 때에 대통지승여래께서 十方諸梵天王과 그리고 十六王子의 시방의 모든 범천왕과 그리고 또 16왕자의 청을 받아 들여서 즉시에 三轉十二行法輪을 설하셨다고 했어요. 三轉十二行法輪. 그 밑에 보면 苦集滅道 四聖諦를 세 번 설하니까 3, 4, 12. 그래서 十二行法輪입니다.
법화경에 근거를 해서 석가모니부처님도 그리고 대통지승불도 최초에 성도 하시고 무엇부터 설했는가? 이것은 四諦 12인연 법문입니다.
여기는 4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바로 12인연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 이 이야기를, “4제 12인연을 최초로 설했다.” 그것은 법화경에 근거를 하더라도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맨 처음에 무엇을 설명 했겠는가? “中道를 설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초전법륜경에 보면 “중도”라는 말도 나오니까요. 中道를 이야기 했다는 말도 있는데 공통적인 견해는 “4제 12인연을 설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근거가 또 대통지승불이야기에 맞춰보면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이런 것들도 우리가 마음으로 정리 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95. 若 沙門婆羅門 若天魔梵 及餘世間 所不能轉
약 사문바라문 약천마범 급여세간 소불능전
만약에 沙門婆羅門과 그리고 天ㆍ魔ㆍ梵과 그리고 나머지 世間의 所不能轉이니라. 若 = 만약이 아니네요. 이를테면, 사문ㆍ바라문ㆍ천신ㆍ마군ㆍ범천. 그리고 다른 世間에서는 도저히 설할 수 없는 법문이다. 그렇습니다.
그 동안 누구도 설하지 못했고... 그래서
96. 謂是苦 是苦集 是苦滅 是 苦滅度
위시고 시고집 시고멸 시 고멸도
이것은 이를테면 苦며 苦集이며 苦滅이며 苦滅度다. 그랬습니다. 여기까지 4제 법문을 세 번 설하는데 대한 이야기입니다. 苦를 이야기해도, 우리가 四聖諦를 설명할 때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苦다. 苦集이다.
苦는 결과지요.
苦集은 원인입니다. 苦의 원인이예요. 그 다음에
苦滅이라는 이것은 결과지요.
苦滅度라고 하는 것은 원인입니다. 道를 닦아서 멸하지요. 그러니까 苦의 원인은 뭐냐? 集이다 이겁니다. 모든 것이 모여 있다. 모여 있는 것이 苦의 원인이다 이겁니다. 이것은 길게 설명할 것은 없고 중요한 것은 三轉十二行法輪인데요. 그러면 苦에 대해서 어떻게 설하는 것이 三轉이냐? 이 말입니다.
처음에는 “示相轉”이라고 그래요. 苦 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苦는 이런 것이다. 우리 인생은 苦아니냐?
그래서 四苦八苦. 생ㆍ노ㆍ병ㆍ사ㆍ여덟 가지 고통을 이야기할 수가 있겠지요.
두 번째는 “勸修轉”입니다. 苦는 이러한 것이고, 苦는 도저히 떠날 수 없는 것이니까, 또 부처님도 불교를 설하는 최종 목적이 “離 苦 得 樂”이니까요.
인생의 고통. 또 문제점. ←이것을 떠나는 것을 우선으로 했으니까 “떠나야 되지 않느냐?” “떠나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떠나려면 수행을 해야 된다고 해서 8정도 이야기가 나오지요. 저기 苦滅度에 가서 8정도를 닦으면 결과인 苦의 滅을 가져 올 수 있다. 苦滅. 苦의 滅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닦으라”고 하는 “勸修轉” 그 다음에
“作證轉” 작증전이라고 하는 것은 “봐라, 석가모니부처님이나 그리고 역대 선지식이나 도인들은 다 이렇게 해서 성취를 했지 않느냐? 이것이 어디 헛소리냐?” 다 성취했다 이겁니다. 그래서 성취한 내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作證轉” ←이것은 성취한 사람만이 가능하겠지요. 자기가 성취했을 때 가능합니다.
이 三轉法輪은 세 가지로 이야기 해주는 것은 다른 곳에도 적용이 됩니다. 다른 곳에도요. 예를 들어서 “사경을 한다.” 그러면 사경에 대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그 다음에 사경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그 다음에 사경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것이 示相轉ㆍ勸修轉ㆍ作證轉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 이 세 가지는 다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四諦를 세 번. 이러한 방향으로 설하니까 三轉十二行法輪이다 ←이렇게 됩니다.
그 다음에 十二因緣 이야기인데요. 맨 처음에 대통지승불이 성불해 가지고, 법문을 청하니까 苦集滅道를 이렇게 상세하게 설해주고, 그 다음에 12인연을 설해 주는데 우리가 無常偈에서 외우고 있고 또 원각경-보안장에도 이 형식이 그대로 나와 있고, 이 형식은 곳곳에 다 많이 등장이 되지요.
처음에는 “流轉門”이라고 말합니다. 보면
97. 及 廣說十二因緣法 無明緣行 行緣識 識緣名色 名色緣六入
급 광설십이인연법 무명연행 행연식 식연명색 명색연육입
六入緣觸 觸緣受 受緣愛 愛緣取 取緣有 有緣生 生緣老死憂悲苦惱
육입연촉 촉연수 수연애 애연취 취연유 유연생 생연노사우비고뇌
廣說十二因緣法하시니 無明緣行하고 行緣識하며 識緣名色하고 名色緣六入하며 六入緣觸하고 觸緣受하며 受緣愛하고 愛緣取하며 取緣有하고 有緣生하며 生緣老死憂悲苦惱한다. 이것은 유전문이지요. 그대로 흘러가는, 순리대로 처음에 무명이 있었고 무명으로 인해서 행을 반연하고,
행은 식을 반연하고, 식은 명색을 반연하고, 자꾸 이렇게 가지쳐나간다 이겁니다. 촌수가 자꾸 이렇게 가지쳐나간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태어나서부터 죽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이렇게 한 생애가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설명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또 한 가지 설명은 現在. 현재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사실. 만약에 憂悲苦惱라고 하더라도, 아니 우비고뇌를 기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법희선열이라고 해도 좋아요. 이것을 우비고뇌를, 예를 들어서 소멸하는 입장에서 이것을 觀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면 현재 우비고뇌가 결과이고, 법희선열이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러면 그 우비고뇌가 어디서부터 생겼느냐? 이것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생겼다. 또 삶은 어디서부터 생겼는가?
존재. “有.” 유로부터 생겼다. 유는 어디서부터 생겼는가? 취 예요.
“取”에서부터 생겼다. 이 법화경공부가 좋으니까 내가 취했다 이겁니다.
취해서 생겼다. 취는 뭐로부터? “愛着”에서부터 생겼다.
애착은 뭐로부터? 받아들임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으로 부터?
내가 만났으니까 “觸” 만남으로부터 생겼다. 촉은 무엇으로부터?
眼耳鼻舌身意. 6근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생길 수 있잖아요.
6入은 뭐냐? 좀 더 파고 들어가면 정신과 육신 = 정신과 육체 = 명과 색으로부터, 크게 나누면 지수화풍. 색으로 나가면 지수화풍.
명으로 나가면 수상행식으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러면 그 名色은 어디서부터? 인식한다고 하는 “識”으로부터,
식은 어디서부터? 뭔가 나에게 인식작용이 흘러왔다 이겁니다.
흘러온 그것은 뭐냐? 모르겠다. 그것은 無明이다 이겁니다.
현재 우리가 몇 살이 됐든지 간에, 전통적으로는 나이에 따라서 이것이 전부 정해져 있습니다. 몇 살부터 몇 살까지다. 이것이 전부 정해져 있습니다. 특히 名色ㆍ 6入ㆍ觸ㆍ受ㆍ愛ㆍ取ㆍ有 이것은 어려서 1세에서부터 12~3세 까지로 나이까지도 배대를 해서 설명하는 전통적인 예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너무 편협된 해석이라, 그래서 현재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형식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 다음은 “還滅門”이라고 하는데요.
98. 無明滅則行滅 行滅則識滅 識滅則名色滅 名色滅則六入滅
무명멸즉행멸 행멸즉식멸 식멸즉명색멸 명색멸즉육입멸
六入滅則觸滅 觸滅則受滅 受滅則愛滅 愛滅則取滅 取滅則有滅
육입멸즉촉멸 촉멸즉수멸 수멸즉애멸 애멸즉취멸 취멸즉유멸
有滅則生滅 生滅則老死憂悲苦惱滅(유멸즉생멸 생멸즉노사우비고뇌멸)
無明이 滅하면 行이 滅하고 行이 滅하면 識이 滅하고 識滅則名色滅하고 名色滅則六入滅하고 六入滅則觸滅하고 觸滅則受滅하고 受滅則愛滅하고 愛滅則取滅하고 取滅則有滅하고 有滅則生滅하고 生滅則老死憂悲苦惱가 滅한다. 이것은 “還滅門”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유전문ㆍ환멸문” 두 가지 방향으로 간단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대통지승불이 법문하신 내용을 제목만 아주 요약해서 간추려 왔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도 역시 4제하고 12인연 법문을 최초로 했을 것이다. 거의 맞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지요.
99. 佛於天人大衆之中 說是法時 六百萬億那由他人 以不受一切法故
불어천인대중지중 설시법시 육백만억나유타인 이불수일체법고
而於諸漏 心得解脫 皆得深妙禪定 三明六通 具八解脫
이어제루 심득해탈 개득심묘선정 삼명육통 구팔해탈
부처님이 天人大衆 가운데서 이 법을 설하실 때에 六百萬億那由他人들이 不受一切法故로 而於諸漏에 心得解脫이라. 줄 그어야 됩니다.
不受一切法故로 而於諸漏에 心得解脫이라. 육백만억 나유타 사람들이 일체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까닭에, 그래서 모든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
이것은 우리 禪家에서 흔히 불 수 있는 心中無一事면 萬境不能見이라.
“마음 가운데 한 가지 일도 없다.” 마음 가운데 한 가지 일도 없다.
뭐라고요? 不受一切法입니다. 일체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겁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 상황을 내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번뇌가 있을 수가 없다. 번뇌가 없으면 心得解脫이지요. 마음의 해탈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기가 막힌 법문입니다. 이것은 법화경이야기지만 선불교이야기, 高峻한 법문하고 아주 딱 서로 맞아 떨어집니다.
皆得深妙禪定과 다 심묘한 선정과 三明六通을 얻고 그리고 八解脫을 가졌다. ←이렇게만 설명하고 그 다음에 또
100. 第二第三 第四說法時 千萬億 恒河沙 那由他等衆生
제이제삼 제사설 법시 천만억 항하사 나유타등중생
亦以不受一切法故而於諸漏 心得解脫 從是已後 諸 聲聞衆 無量無邊
역이불수일체법고이어제루 심득해탈 종시이후 제 성문중 무량무변
不可稱數(불가칭수)
제2. 제3. 제4 이렇게 법문을 끊임없이 해가시겠지요. 그렇게 第四說法時에는 千萬億 恒河沙 那由他等衆生이 不受一切法故로 諸漏에, 또한 모든 번뇌에서 心得解脫했다. 결론은 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선불교에서 어떻게 보면 참 소극적인 그런 생활태도이고, 현실참여라든지 하는 그런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하고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입장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결국 不受一切法 밖에 없습니다. 딴 길 없습니다.
그 문제에 나아가서 그 문제를 바로 잡아서 말하자면 우리가 心得解脫.
마음의 평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많고 많은 문제를 일일이 가서 한 문제도 바로 잡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많고 많은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안 되는 겁니다.
그래 이 열쇠는 불교에서는 천번 만번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내 마음이 모든 문제를 문제시 하지 아니 할 때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어떻게 보면 반사회적인 소리 같기도 하고, 너무 이기주의에 떨어진 思考같기도 하고, 사실 그런 점은 있습니다. 있지만 결국은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치우치지 말고 양쪽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같이, 그야말로 새의 두 날개와 같이, 같이 나아가야 됩니다. 내 마음 관리하는 법. 그리고 세상은 세상대로 우리가 바로 잡을 수 있으면 바로 잡을 수 있는데 까지 바로 잡아 나가는 겁니다. 그것이 전법과 포교의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잡아지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것입니다. 한편으로 내 자신의 마음의 해탈을 추구하고, 不受一切法이라고 하는 열쇠로서 心得解脫을 추구하고, 그러면서 또 한편 이웃과 사회에 뭔가 불법으로서 공헌하고, 불법으로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녕을 줄 수 있는 그 길. 이것을 우리가 같이 조화를 이루면서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저는 그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모든 성문대중도 無量無邊 不可稱數더라.
다음에 101항을 16왕자 "讚德 章"이라고 제가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16왕자 讚德 章" = 16왕자의 덕을 찬탄하는 내용입니다. 보십시다.
101. 爾時 十六王子 皆以童子 出家 而爲沙彌 諸根 通利 智慧明了
이시 십육왕자 개이동자 출가 이위사미 제근 통리 지혜명료
已曾供養 百千萬億諸佛 淨修梵行 求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증공양 백천만억제불 정수범행 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 때에 十六王子가 전부 동자로서 출가했다. 동진출가를 우리가 얼마나 높이 삽니까? 요즘은 행자들 평균 나이가 34세라든가요? 그렇대요.
행자들 가르치는 강사스님들의 나이가 전부 오히려 더 적어요.
童子로 출가해서 而爲沙彌라. 사미가 되었다. 사미라는 낱말은 律文외에 일반 경전에서는 만나기 어려운데 여기서 우리가 만났어요. 일반 경전은 비구라는 말이지 사미라는 말은 잘 없습니다. 율장에는 더러 있지만...
沙彌가 되었으니 諸根이 通利라. 크~~ 6근이 아주 총명해요. 머리는 좋고 봐야됩니다.
아~, 살다 보니까 머리 둔한 것이 큰 문제더라고요. 머리가 좋고 그 다음에 좀 그릇이 커야 돼요. 머리 좋고 그릇 크고 그 다음에 건강해야 됩니다.
그러면 해 볼만 합니다. 뭐든지 해 볼만 합니다. 머리 좋고 그릇 크고, 사람 됨됨이지요. 그릇 크고 그 다음에 건강하고 그러면 뭐든지 해 볼만하다고요. 그릇이 아무리 커도 머리가 둔해 놓으면 보통 골치 썩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머리 좋고 그릇 커도 건강이 안 좋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그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야 돼요. 머리 좋고 그릇 크고 건강하고... 그릇 크다는 데는 뜻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智慧明了라. 그리고 已曾供養 百千萬億諸佛을 공양했다.
그리고 淨修梵行. 뿐인가요?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구했더라.
이것이 16왕자의 덕입니다. 잘 표현 되어 있지요? 참 멋지잖아요.
건강은 기본이니까 여기는 건강 이야기는 없네요.
- 8강 - 2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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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나무 묘법연화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