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지난 주일,교중미사 말미에 금년도 성서필사자들에 대한 주교님의 축복장 및 선물 수여식이
있었지 않습니까?
저를 포함한 많은 교우 분들이 뜨거운 박수로 축하를 해드렸는데 그걸 지켜보면서
수 년 전에, 가톨릭생활성가 인터넷방송국의 성가신청란에 제가 올렸던
이와 관련된 글이 생각나, 이곳에 다시 올려봅니다.
지금 찾아보니, 2007년 10월에 올렸던 거니까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제목 :발칙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꿈꾸며....
성가신청란에 올리는 글 치고는 제목이 좀 무거운 것 같습니다만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보다 명확한 뜻을 알아보려고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용을 그릴 때, 마지막에 용의 눈동자를 그려넣어 그림을 완성시키듯)
어떤 긴요한 행위 하나를 더 하여 (큰)일의 마무리를 짓는다 “는 뭐,대강 이런 뜻이라는데,
“대미(大尾)를 장식하다”라는 말과 비슷한 용례로 쓰일 겁니다.
뭔 얘기를 하려고 서론이 이렇게 기냐 하면,
다른 게 아니라, 제 성서필사에 관한 건데
"아니, 너도 그걸 했어?" 하고, 전혀 못 믿으시겠다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만
분명히 저도 지난 주일에 교구장님이신 최덕기 바오로주교님으로부터 축복장을 받아
지금은 저희 집 거실, 십자고상 밑에 떠~억하니 걸어놨습니다.
제가 이번 주일, 성탄전야가 되면 성당에 나온 지 꼭 4년이 되니까
2003년 성탄 전야미사 때, 처음으로 성당엘 나온 겁니다.
물론 그 전에, 춥고 졸립고 배고프기만 했던 군대 훈련소에 있을 때,
그 '잘나빠진' 초코파이 하나와 시큼털털한 싸구려 유산균 음료 '쿨피스' 한 병을 준다는
당시 저로서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일요일(그 때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오전, 이른 바 종교활동이라고 하는 시간에
성당 가는 줄, 맨끝에 쭐레쭐레 따라나섰다가
정작 성당에 가서는 잠만 실컷 자고 온 부끄러운 기억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당시의 군종신부님께서는 저희들 훈련병들에게 만큼은
이런 불경 (不敬)애 대해서도 퍽이나 관대(?)하셨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화롯불을 엎어쓴 듯, 얼굴이 아주 뜨겁습니다.
하여간 그 성탄 다음 週부턴가,
본당 지하의 예비신자 교리반엘 들어가서 약 8개월간 교리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지도하시는 수녀님이나 봉사자분들께서
성서필사를 권유하시더라고요.
예비신자가 신,구약을 한꺼번에 다 하기는 무리니까,
우선 신약의 4복음서만이라도 해보라시며
겉표지가 빨간, 약 250페이지 정도 되는 두툼한 노트를 한권씩 나눠 주시길래,
사실 아무 것도 모른 채, 일단 시작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 막달레나도 함께.
그러나 괜시리 늘 바쁜 '척’만 하는 막달레나는 며칠 하다 말았고
저는 그래도 기왕에 시작한 거니까, 비록 아무 것도 몰랐지만
한 글자,한 글자 그냥 보고 베끼기만 했는데,
그러다보니 2004년 8월 15일,성모승천 대축일에 있었던
세례식 때에는 힘겹게나마 4복음서를 마칠 수가 있어서
그 날, 본당신부님으로부터 “은총상”을 받았습니다.
-샘 많은 우리 막달레나, 무지 부러워하더라고요.
그러고나서 아주 부끄러운 고백이긴 하지만
그 노트들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세월만 보내다가
다행히 작년 말에 ME피정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ME를 다녀오셨겠지만, 혹시라도 아직 안 다녀오신 분들 계시면
한번 다녀오시길 권하는데, 아니 그냥 "권하는" 정도가 아니라
요즘 애들이 흔히 쓰는 표현으로 그야말로 “강추!!”입니다.
이제껏 부부로 한 이불 덮고 살면서도 그냥 스치고 지나왔던
많은 일들도 새삼 되돌아보게 되고,
아무튼 故 이주일 버전으로, ‘일단 한번 가보시라니까요!!'입니다.
하여간 그곳엘 다녀오면서 나름대로 느낀 바가 적지 않아서
집에 돌아오는 길로 문방구에 들러,샤프심도 아예 몇 박스 사고
플라스틱 책받침도 여벌로 두어 개를 마련하고는 다시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에 이어서 사도행전부터.
물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필사를 하면서도 “과연 이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내가 시방 뭐 하는 거지?”하는 생각도 자꾸만 고개를 드는데
게다가 육체적으로도 손목이 뻐근한 적이 몇 번 있어서
어떤 때는 거의 10여일씩이나 한 글자도 옮겨적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헌데,그럴 때마다 제 곁에 있는 막달레나가
저를 마구 꼬드기고, 부추겼습니다.
때로는“아니, 남자가 뭔 일을 하려 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하다가 마는 게 어디 있어? 그럴려면 아예 시작을 말았던가?
칫, 말끝마다 귀신잡는 해병대라면서...“하며
제 얄팍한 자존심을 팍팍 긁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오! 우리 안드레아, 대단해요!! 벌써 여기까지 했네.
하느님 보시기에 이렇게 이뿐 짓(?)만 골라서 하니,
오늘 저녁에 무슨 반찬 해줄까? 개구리 반찬?? 어여 말씀만 하셔!" 하며
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끝에 툭 불거져 나온 작은 혹을
호호 불어주며,“쎄쎄~”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렵사리 신약을 끝낼 수 있었고
이어서 바로 구약으로 들어갔는데,
아마 이 즈음에 지금 많이들 쓰고 있는 새로운 번역판성경이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고백하건대, 필사 좀 한다고 꼴 같지 않은 유세도 많이 떨고
횡포, 나아가 만행(蠻行)도 많이 부렸습니다.
-뭐,그렇다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까지는 아니지만....
뻑하면 어깨가 아프니 주물러달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어리광도 부렸고
스탠드 불빛이 흐려진 것 같아서 더 이상 못 하겠다며
없는 돈에,멀쩡한 것 놔두고 새 스탠드 사오게 하고,
그 외에도 종종 샤프심이나 지우개가 떨어졌다고 하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암만 한 밤중이라도 지체없이 사다가 제게 바쳐야만 했습니다.
커피나 녹차를 끓여 바친 횟수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고.
'가엾은' 막달레나가 말입니다.
그렇게 “탈출기”부터 시작한 구약 필사가
처음에는 그런대로 계획한대로 진도가 나갔는데
열왕기,역대기쯤 오니까, 영 더디더라구요.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이나 종족들의 이름은 물론,
지명들까지도 하나같이 생소하고 긴데다가
발음까지 잘 안 돼서, 몇번이나 스스로 혀를 씹었는지 모릅니다.
"하차르마웻,마할랄엘,에윌 므로닥,즈루빠벨,네부카드네자르"등.
-여러분도 위에 적은 거 한번 읽어보세요.
혀 씹지 않게 조심하시고...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비례해서 빨간 표지의 필사노트는 한 권, 한 권 늘어갔고
마침내 지난 9월말에는 마지막 성서인 '묵시록'에 이를 수가 있었는데
성서의 맨 끝 부분이며, 묵시록의 마지막 장(章),절(節)인 22장 21절인
"주 예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까지 옮기고 보니
그제서야 슬며시 그 동안의 온갖 노고를 아끼지 않은 막달레나 생각이 나더라는 겁니다.
-어때요? 저 많이 기특하지요?
그래서 그 날 저녁 늦게 퇴근을 한 막달레나를 책상 앞으로 끌어다 앉혀
샤프연필을 손에 쥐어주며 "이거 마무리 좀 해줄래?" 했더니
노트를 한 번 힐끗 보고는 "다 썼는데 뭘?" 하더라구요.
참, 눈치하고는.....
"잘 봐. 뭐가 하나 빠졌쟎아?" 했더니,
그때까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멍한^^ 표정을 짓길래,
바로 이 싯점에서 위에 제목으로 뽑은 화룡점정이란 말이 생각난 겁니다.
"나 참! 왜 용을 그릴 때, 맨 마지막으로 검은 눈동자에 흰 점을 콕 찍어야만
그 용이 승천(昇天)을 한다쟎아? 그렇듯이 성서 구절은 겨우 다 옮겼지만
마침표(.)가 빠졌쟎아?"
그제서야 감(感)을 잡은 막달레나가
묘한 표정으로 잠시 멈칫하더니
"~빕니다" 바로 뒤에다가 점 하나를 꾸욱 눌러 찍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상황이 이러하니 저 나름대로는 화룡점정이라고 우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비록 사소한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게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저는 마무리를 못 짓고 아직까지도 미완(未完)으로 남겨두었을 테니까요"끝"
*사족(蛇足)
그런데 이 글을 교구청 관계자께서 보고,
"아니, 오산성당의 안드레아 축복장은 취소해야 되는 거 아냐? 어쨌든 혼자서 다 한 건 아니니까!" 하며
도로 가져오라고 하면 어쩌지요?
첫댓글 와~ 멋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좋은 선물 잘 가꾸어 많은 사람이 보는 글 올려주시면 감사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