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속의 여자
이명윤
어디서 잘라야 할 지 난감합니다. 두부처럼 쉽게 자를 수 있다
면 좋을 텐데요. 어딘지 서툰 당신의 말, 옛 동네 어귀를 거닐던
온순한 초식동물 냄새가 나요. 내가 우수고객이라서 당신은 전화
를 건다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수고객이었다가 수화기를
놓는 순간 아닌. 우린 서로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선생님, 듣고 계세요?’
‘...................네’
‘이번 보험 상품으로 말씀 드리면요’
나와 처음 통화 하는 당신은 그날 고개 숙이던 면접생이거나
언젠가 식당에서 혼이 나던 종업원이거나 취업신문을 열심히 뒤
적이던 누이. 당신은 열심히 전화를 걸고 나는 열심히 전화를
끊어야겠지요. 어떡하면 가장 안전하게, 서로가 힘 빠지지 않게
전화를 끊을 수 있을까요? 눈만 뜨면 하루에게 쉼 없이 전화를
걸어야 하는 당신. 죄송합니다. 지금 저 역시 좀처럼 대답 없는
세상과 통화중입니다. 뚜뚜뚜뚜.
'이 시인에게서는 살가운 사람냄새가 납니다
이 시인처럼 손옥자 선생님에게서도 온순한 초식동물의 냄새가 나요
선생님도 '어디서부터 전화를 끊어야할지 난감해할 것 같고
어떡하면 가장 안전하게, 서로가 힘 빠지지 않게'
상대를 대할지를 늘 고민 하시는분 같아요
시의 문제점을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게 지적해 놓고도
행여나 그분이 맘 상할까봐 바로 칭찬으로 감싸시는...
목소리에서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초식동물의 냄새가
저에게서도 베어 날 수 있도록 선생님 가까이 가려하니
밀어내지 마세요. ^^
처음엔 교재없이 어찌 수업하나 걱정했는데 그 어떤 교재보다 훌륭한 교재를
수요일마다 받아 보는 기쁨이 솔찬(?)합니다
작품 하나하나 참삭하시는게 쉬운일은 아닐텐데...그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첫댓글 ㅎㅎㅎ 가을매미님, 틀리셨습니다. 저는 위와 같은 전화는 아주 사무적이랍니다. 망설이지도 않고 미적거리지도 않는답니다. "아닙니다" 한 마디하곤 바로 끊습니다. 틀리셨지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