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의 영변 사찰 후 북미 3단계 회담이 재론되고 남북의 첨예한 대립이 다소 누그러지는 국면에 들어 선 지금, 김영삼 대통령의 잇따른 통일발언(?)이 주 목받고 있다.
“예멘의 경험을 통해 보듯이 연방제 통일은 불가하 며 통일에 대한 환상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환상적 통일론이나 통일지상주의는 버려야 합니다.” 그러 나 환상은 시인의 못다 쓴 시이며 음악가의 미완성 의 연가며 쓰러진 자의 꿈이며 식민지백성의 비전이 다. 일제하 시인들은 잃어버린 조국을 ‘별’ ‘님’ ‘그 날’ ‘아침’으로 환상적으로 노래하다 더러는 만주로 가고 옥중에서 죽기도 했다. 광복 후 나라가 갈라져 싸우는 오늘의 국가행태를 본다면 그 시인들은 지독 한 환상에 빠진 정신착란증 환자로 치부되어야 마땅 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할 망정 통일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니 그러면 도대체 이 길고 우울한 분단의 밤을 무슨 희 망으로 살란 말인가.
불상만 남아 있는 생창리
--------------------------------------------------------------------------------마지막 분단기행을 꿈꾸는 우리 일행은 철원군 '김 화읍'으로 향해 달렸다. 철원을 찾으려다 쇠둘레처 럼 뱅뱅 돌았듯이 김화 또한 찾기가 여간 만만치 않 다. 지도상으론 김화가 하나 밖에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서단 큰 코 다친다. 실제 김화에 가보 면 그곳은 퇴락한 '구김화'이며 동남쪽으로 붙은 '와 수리' 일대가 에어로빅 강습장도 있는 활발한 '신김 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구김화조차도 본래 김화가 아니다. 진짜 김화는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인데 지도상에만 존재할 뿐 현재는 민통선과 비무장지대에 들어가고 없다. 철원 은 거대한 폐허라도 남겼으나 전쟁 전 인구 1만의 황화철산지인 김화는 63년 행정구역마저 철원군에 병합된 채 지상에서 깨끗하게 증발되어 버린 것이 다.
'갈말'로 해서 지도상 김화에 도착한 우리는 진짜 김 화로 들어가기 위해 43번 국도에서 '생창리'로 빠지 는 도로로 들어갔다. 군당국의 안내로 으시시한 백 골이 곳곳마다 그려진 군초소들을 움츠린 마음으로 통과한 우리는 생창리 길 왼쪽 고추밭에서 불상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동행한 문영태 화백이 찬 찬히 후광과 수인을 살피더니 “미륵불이 아니라 석 가불”이라 판정했다. 일반적으로 미륵은 관모를 쓰 고 민불의 형태를 띠는데 비해 생창리 불상은 관모 가 없고 삼겹의 두광과 몸 뒤의 신광, 목 밑의 삼도, 단아한 수결이 갖추어져 있어 석가모니불이며 경주 석굴암의 불상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불상 밑에 양초들이 놓여 있는 걸 봐서 출입영농자들이나 민통 선 안 생창리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 불상에 기원 을 드리는 모양이다. 고추모를 심는 주민에게 이 불 상의 유래를 물어보니 씩 웃으면서 “그냥 땅에서 솟 아났어요”라고만 말한다. 뒤로는 '성제산'의 심산유 곡이 있고 앞으론 '남대천'이 흐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생창리 불상은 학술적으로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법하다. 더구나 불상 주변에 폭격으로 흩어진 기와편들의 두께가 굉장해 전쟁 전 이 곳에 큰 절이 있었지 않았나하는 추측도 해본다.
불상을 본 뒤 북에서 내려오는 물 맑은 남대천을 따 라가다 '암정리' 5번 국도 상에서 '도로원표'를 보았 다. 화천 43.9km, 원산153.5km, 회양 57.43km, 서 울은 없다. 임진왜란 때 이 5번도로를 타고 가등청 정이 북진했는가 하면 이 길을 타고 청의 누루하치 가 쳐내려왔다. 한국전쟁 땐 인민군과 국군, 미군이 이 도로를 두고 피나는 ‘철의 삼각지’ 전투를 벌였 다. 철원-평강-김화가 ‘철의 삼각지’가 된 것은 당시 팬플리트 미8군 사령관이 “적이 전선의 생명선으로 사수하려는 이 아이언 트라이앵글(iron triangle)을 함락하겠다”고 공언한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러 나 그 말 이전에 철원 평강 김화가 경원선과 금강산 철길로 이어지는데다 세곳 모두 금 철 규석 등의 매 장량이 풍부한 철산지이기 때문에 쉽게 이런 말이 나온 듯하다.
팬플리트는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철의 삼각지대 를 완전히 공략하는 데는 실패했다. 평강고원 지역 에 해발 1,062고지의 '오성산'이 독수리가 날개를 편 듯 난공불락의 요새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오성산에 막힌 팬플리트는 여기를 통과 한 누루하치나 가등청정보다 못한 장수인 모양이다.
철책은 가까울수록 좋다
--------------------------------------------------------------------------------북의 '오성산'과 남의 '계웅산' 사이의 철책 간격은 불과 670m 한쪽에서 소리를 지르면 대답할 수 있는 지호지간이다. 공동경비구역인 판문점을 제외하면 155마일전선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엄격히 말해 이러한 추진철책은 정전법위반이다. 정전법은 군사분계선에서 남북 각각 2km씩 4km를 비무장지 대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책은 가까 울수록 좋다는 게 나의 견해다. 비무장지대를 설치 한 자체가 되도록 남북을 멀게 갈라놓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정히 분리해야겠다면 군사분계선의 철책 하나면 족하지 않은가. 철책 사이로 서로 마주보며 미소도 짓고 담배도 나눠 피우다 보면 서로의 오해 와 적의는 줄어들고 평화통일의 길은 의외로 빨랐을 지 모른다. 주제넘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국가안보가 골간인 국군은 평화통일의 맨뒷줄에 서있는 소극적 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열강의 각축전 속 에서 통일만이 우리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보 의 길이라면 군이 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연구할 필 요가 있지 않을까?
너무나 아름다운 분단풍경
--------------------------------------------------------------------------------우리는 남대천을 따라 철책으로 가로 막힌 '암정리' 저수지까지 올라갔다. 저수지 위로는 한 때 이데올 로기를 모르는 초부들이 디디고 다녔을 나무다리가 비스듬히 기울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밑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맑은 저수지에는 떼지어 몰려 다니는 고기의 푸른 등이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물가, 풍성한 신록의 자연림이 마침 조림을 해놓은 듯 아름답다. 풍광이 수려한 분단풍경을 보니 다시 나의 명제,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는 분단으 로 아픈 내 내면의 풍경이라는 명제가 떠오른다. 우 리는 “북에서 흘러오는 물은 색깔도 빨갛지 않 나?”라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남대천을 빠져나와 '전골총'을 찾았다.
'관광철원'이란 책자는 “전골총은 김화읍 읍내리 백 수봉 기슭에 있다”고만 밝히고 있다. 한때 우리들은 읍내리라니까 지도상의 김화읍에서 찾느라고 헤맨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여기 '성제산' 뒤 비무장지 대 안에 있다. 예로부터 성제산은 큰 서낭이 있어 오 월 단오굿을 벌이는 독특한 '김화 성황제'가 있었던 곳인데 그 골짜구니 철책 너머 커다란 왕릉같은 전 골총이 있었다. 비무장지대 안의 문화재로선 처음 보는 것이다. 1636년 청의 누루하치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여기까지 쳐들어왔을 때 관찰사 홍영구를 비 롯한 2천3백여 명의 관군과 의병들이 맞서 싸우다 여기서 장렬히 전사했다. 처처에 널려 있는 시체를 6~7군데에 가매장했다가 9년 뒤에 이곳에 합장을 하고 전골총이라 한 것이다. 무덤 위에는 한 그루 떡 갈나무가 자라고 있어 비무장지대 안 비석 하나 세 우지 못한 전골총의 내력을 증언하는 듯하다. 험한 '백골전망대'에 올라 금단의 땅 이북을 바라보니 또 다시 분단의 통증을 느낀다. 평강공주가 바보온달을 교육시켰다는 전설을 간직한 '서방산', 북의 지암리 마을이 보이는 '호암산', “외세반대”와 “이남은 양키 세상”이란 구호가 보이는 '오성산'이 가슴에 아픔으 로 솟아오른다. 언제나 저 산을 전투고지가 아니라 그냥 산으로만 볼 것인가. 새벽에 약수 길러 올라가 는 우리 동네 구월산처럼 마냥 친근하게만 뵈는 산 인데 말이다. 백골전망대에서 내려와 '정연리' 한탄 천에서 옛 금강산 가던 철교를 바라보았다. 철원에 서 출발한 금강산 전철은 여기 김화 정연리의 철교 를 지나 금성-창도-단발령을 거쳐 종착역인 금강산 장안역에 도착한다. 멀리서 포성이 멎었다. 갑자기 귓가에 뚜뚜뚜 이명이 일어나더니 안내방송이 들려 온다.
“철원역을 출발한 금강산행 열차가 지금 김화역으 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한걸음 뒤 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34호 <94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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