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 작가 '스파이크'가 화랑도(花郞徒) 정신을 멋대로 이어 받아 우리나라를 더 사랑하기 위해 지금 현재 '전국 맨몸 투어'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지역이 바로 전주(全州) '한옥마을' 이며 지금은 그 세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영화 '약속' 보셨어요? 약속?! 지금 찾아갈 곳이 그 작품에 나왔던 '성당'이라고 합니다. ...봤는데 생각이 안나...언제 '케이블'에서 안해주나...
전동성당은 건축면적이 약 624㎡의 화강석을 기단으로 사용한 붉은벽돌 건물로서, 본당과 측랑의 평면 구성에다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을 창출,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 준다. 종머리는 로마네스크의 주조에 비잔틴풍이 가미되어 있어 건물 본체와 잘 어울린다. 1988년 화재로 건물 일부가 소실되었다. -전주 한옥마을 홈페이지 참고-
오~!! 한국에도 이런 멋진 성당이~!! 경기전 맞은편의 전동성당은 1914년에 지은 서양식 건축물로 영화 <약속>의 두 주인공이 결혼을 올리던 장면에서 배경으로 등장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진만 보면 외국이라고 해도 믿겠어~!! 어찌보면 우주선 처럼 생긴 전동 성당의 카리스마!! 하늘로 솟아 오를듯~!! 아주 먼~옛 날. 영어로는 '롱~롱 타임 어고' '보드네' 신부는 전라도 교구를 책임질만한 대성당을 전주에 건립할 것을 결심하고 그 준비를 서둘렀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첫 단계 사업으로 터의 결정과 매입이 중요 과제 였는데, 신도들은 전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오목대'가 적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에 있는 '뮈텔' 주교가 전주에 내려왔는데 사인교1(四人轎)를 타고 전주에 입성하는 그에 대한 환영이 굉장하였다고 합니다. 뮈텔 주교는 오목대에 올라가 전주 지역을 살펴보고 성당자리는 지금의 전동이 적지라고 조언하였고, 그리하여 현재의 전동에 성당을 건립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창문도 예술이야~!! 종철아~!! 종 쳐라~!! 매우 쳐라!! 첨탑(尖塔)이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고 있어 상당히 고풍스러운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은 전동성당은 당초 전주의 많은 백성들이 전주 지역을 한눈에 바라보는 자리에 성당을 짓는다고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게... 하지만 그런 오해가 차츰 풀려 윤지충, 권상연을 비롯하여 유향검, 유관검, 윤지현, 이우집, 김유산이 처형된 이곳이야 말로 더 없는 '전주성당지'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면서 분위기가 반전 되었다고 합니다. 안쪽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술 입니다. 전동성당의 관람 포인트!! 그 후 보드네 신부는 포오넬 신부와 청나라의 설계 기술자의 노력으로 전동성당을 기공하게 되는데, 포오넬 신부는 서울 종헌성당의 설계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당의 준공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아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사건, 사고들이 터지게 되지요. 그럼 안쪽으로 들어가서 '전동 전설'을 계속 풀어 나가 겠습니다. 입장~!! 입장~!! !!~캬~!! 안으로 들어오니 전동 성당의 아름다운 자태에 눈이 멀 지경입니다. 우선 들어왔으니 성호(聖號) 부터 긋고~!! 나는야 냉담자~!! 일명 '나이롱' 신자~!! 본명은 '베르나르도' 움핫하하~!! 천장에서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 성당안의 신성함과 고결함을 기도로서 승화 시키기 딱 좋은 켈빈 값으로 살짝 쿵 올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을 것 같아?!! 내가?!! 오~주여~!! 많이 안 바랍니다. 그져 책임 있는 '로또' 한 방~!! 큰거 하나면 족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빛이 들어오는 성당 좌측편의 모습이 예술 입니다. 천장의 '교차궁륭' 또한 너무나 아름다워 넋이 나갈 정도로 시선을 압도하고 있네요. '십자가의 길' 조각품들이 전동성당을 돋보이게 하는 또다른 관람 포인트!! 전동성당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이 나가 전설 같은 이야기를 잊고 있었네요. 공사감독을 맡았던 임모라는 사람이 공사비를 떼어먹고 달아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보드네 신부로부터 공사비를 꾸어 금광업에 투자하였는데 실패로 돌아가자 돈을 되돌려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는 촌극도 있었다고 하네요. ...아~진짜 일부 한국사람들, 쪽팔리게... 어우야~!! 이렇게 예뻐도 되는거야?!! 1911년에는 폭풍우가 심하게 몰아닥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여기에 도둑이 신부의 집을 털어 공사비를 훔쳐가는 바람에 공사가 3년간이나 중단 되기도 했답니다. 무슨 '장발장' 이야?!! 신부 집을 털게!! 그런 수많은 공사의 어려움 속에서도 전주 교인들의 헌금과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 가운데 김창열이라는 독지가가 거액의 돈을 기부하기도 했답니다. 이밖에도 진안 장수 지역의 교인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하여 기공한 지 7년만인 1914년 전동 성당이 드디어 준공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주 파란만장 했구만~!! 문이 좌~악(!!) 열리면서 빛이 사악~(!!)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너무 멋질 것 같습니다. 하얗게 빛이 들어오는 성당의 정문을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신(女神) 같은 그녀와 손을 잡고 뛰어 나가는 상상~!! 문제는 이것이 늘~상상으로만 끝난다는 점이 겠지요. !!~여신은 커녕~!! 돼지야, 저리 꺼져~!! 그럼 계속해서 '전동 전설'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주 전동성당은 서울의 명동성당을 빼고 전국에서 제일 큰 규모의 훌륭하고 우아한 성당의 위용을 갖춘 곳이라고 합니다. 전주전동성당이 모체가 되어 이후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전라북도에서 탄생하니 전주전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를 낸 그 명성에 걸맞게 그 후로 더욱 교세를 확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당 밖으로 나가 전체적인 뒷 모습을 바라보니 흡사 '노아의 방주'가 연상 되는군요. ...요즘 대한민국은 산으로 가고 있는데... ㅋㅋㅋ 종철아~!! 종 쳤냐~?!! 전주는 조선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순교한 가톨릭의 역사적 성지로 유명한 곳 입니다. 윤지충, 권상연의 순교지가 지금의 전동성당일 것이라고 추정됨으로써 이 자리에 성당을 짓게 된 연유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윤지충'에 대한 개인적 에피소드가 있는데 글 하단부에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하시지요. 재미있으니 끝까지 읽어보셔요. ㅋㅋㅋ
전동성당 옆으로 부속 건물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건축물을 보기가 상당히 드문 편인데, 이렇게 여러 형태의 건물을 보게 되니 기분이 매우 좋아 졌습니다. 아참, 전설을 계속 이야기 해야지!! 내 암내를 맡으라~!! 1889년 보드네 신부는 가톨릭 담임신부로 전주에 부임하지만, 전주성안(4대문안)에는 교도가 한 사람도 없었고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소양의 대성동에서 3년간 우거하면서 전교 활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전동 성당 주변엔 예쁜 조각상들이 많아요. 1891년에 보드네 신부는 전주성내에 들어와 전교를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문교하게 되었는데, 비교적 순탄하게 천주교가 포교, 전파되었지만,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서울로 피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학혁명이 좀 잠잠해지자 보드네 신부는 다음해인 1885년에 다시 전주에 와서 교회의 재건에 힘?고, 당시의 전라감사 '이도재'를 찾아간 그는 교회건축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상의하고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이도재 감사는 비교적 친절하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 주었고, 그의 위치가 확고하게 되어 천주교의 튼튼한 기반이 구축되었다고 하네요. 목에 칼을 차고 있는 사람을 십자가로 찍어 버리려는 듯한 조각상!! '호러'야 호러~!! '윤지충'에 관한 개인적 에피소드 하나를 이제는 말해야 겠지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성당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친구 황모군은 순교자 '윤지충' 역할을 담당하였고 저는 그를 죽이는 '망나니'역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몇 십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정말로 신부님이 되어 사람들을 돕는데 매진 하고 있으며, 필자는 망나니 처럼 칠렐레 팔렐레 살아가며 시간을 죽이고 있지요. 세상 참, 웃기지요?!! ㅋㅋㅋ 그때 내가 '윤지충'을 역할을 했다면 아마 지금 '진보구라사제단'을 만들어 활동 했을꺼야. ㅋㅋㅋ 이로써 경기전-객사-전동성당을 모두 둘러 보았습니다. 대부분 관광지가 한 곳에 몰려 있기에 시간 조정만 잘하신다면 편안하고 재미있는 여행이 될꺼라 여겨 집니다. 이제 그래피티 작가 '스파이크'는 또 다른 여행지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관심가져 주시길 빌며...
아~~!! 오늘도 즐거운 나들이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참 갈 곳 많고 볼 곳 많은 동네입니다. (^_^)/
각주 1앞뒤에 각각 두 사람씩 모두 네 사람이 메는 가마.
|
출처: 자유게시판 원문보기 글쓴이: 스파이크
첫댓글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