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가(失鄕歌)와 사망부가(思亡父歌), 그리고 추억
허의철학 님께서 너무도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들을 올려주셔서, 추억에 젖다보니 댓글로 하기에는 길어질 것 같아 게시물을 한번 만들어보았습니다. 언젠가 꼭 이 "다문화휴게실"에서 다뤄보고 싶었는데, 온라인에서 한국노래들이 잘 공개 안되어 있어서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산업화시대에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내면서 우리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간 것들....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고향"이라는 지리학적 실체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다문화휴게실에서 추구한 것 중 하나가,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편견과 사고의 한계들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방향도 있습니다만, 동시에 "진짜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우리가 추구하는 바와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러 곳에서 주장한 내용 중 하나가, "특수성" 혹은 "독특성"도 보편성(대중성 혹은 자연스러움)과 결합하지 않으면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컬럼란을 통해 한글과 한국어의 여러 측면들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적"인 것을 잘 표현하면서도 "보편적" 예술성을 지니고, 그 어려운(즉 발음 면에서 어떤 핸디캡을 가진) 한국어로 노래한 사람 중에, 저는 다음에 소개해 드릴 분이 20세기 최고의 한국어 사용 예술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가사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구체적이지 않으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고, 또 이 가사들에 멜로디를 붙였을 때도 너무도 "자연스런"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 뮤지션은 바로 음유시인이자 사회운동가인 정태춘 선생(1954년생)입니다.
그의 음악 속에는 특히 "고향"이란 주제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 다음에 소개하는 <실향가>(失鄕歌)는 "가난한 형수님"이란 구절에 이르면, 과거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인이라면 이 단 여섯 글자만으로도 추억의 모든 것을 그림처럼 떠올리며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실향가(失鄕歌)
고향 하늘에 저별 저별 저 많은 밤별들 눈에 어리는 그날 그날들이 거기에 빛나네 불어오는 겨울바람도 상쾌해 어린날들의 추억이 여기다시 춤을 추네 춤을 추네
저맑은 별빛아래 한밤 깊도록 뛰놀던 골목길 그때 동무들 이젠 모두 어른되어 그곳을 떠나고 빈 동리 하늘엔 찬바람결에 북두칠성 나의 머리위로 그날의 향수를 쏟아부어 눈물 젖네 눈물 젖네
나의 옛집은 나도 모르는 젊은 내외의 새주인 만나고 바깥 사랑채엔 늙으신 어머님 어린 조카들 가난한 형수님 아버님 젯상에 둘러앉은 옛집의 형제들 한낮의 정적과 옛집의 사랑이 세상속에 몰려드네 몰려드네
빈 벌판 마을엔 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면은 저 먼 들길 위로 잊고 있던 꿈같은 아지랭이도 피어오르리라 햇볕이 좋아 얼었던 대지에 새풀이 돋으면 이겨울 바람도 바람의 설운도 잊혀질까 고향집도 고향집도 |
정태춘 선생의 고향집에 대한 보다 일상적이고도 구체적인 묘사는 국악의 리듬을 혼융해 작곡했던 <고향집가세>에 이르면 더욱 상세한 그림들을 보여줍니다. 이 곡의 가사에서 포인트는 "어머님 계신 곳"입니다.
고향집 가세
내 고향집 뒷 뜰에 해바라기 울타리에 기대어 자고 담너머 논뚝길로 황소마차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음~ 무너진 장독대 틈사이로 난쟁이 채송화 피우려 푸석한 스레트 지붕위로 햇살이 비쳐 오겠지 에 헤 에헤야 아침이 올게야 에 헤 에헤야 내 고향집가세
내 고향집 담그늘에 호랭이꽃 기세등등하게 피어나고 따가운 햇살에 개흙마당 먼지만 폴폴나고 음~ 툇마루 아래 개도 잠이 들고 뚝딱거리는 괘종시계만 천천히 천천히 돌아갈게야 텅빈집도 아득하게 에 헤 에헤야 가물어도 좋아라 에 헤 에헤야 내 고향집가세
내 고향집 장독대에 큰 항아리 거기 술에 담던 들국화 흙담에 매달린 햇마늘 몇 접 어느 자식을 주랴고 음~ 실한 놈들은 다 싸보내고 무지랭이만 겨우 남아도 쓰러지는 울타리 대롱대롱 매달린 저 수세미나 잘 익으면 에 헤 에헤야 어머니 계신곳 에 헤 에헤야 내 고향집가세
마룻끝 담장문 앞에 무궁화 지는 햇살에 더욱 소담하고 원추리 꽃밭에 실잠자리 저녁 바람에 날개 하늘거리고 음~텃밭에 꼬부라진 오이가지 밭고랑 일어서는 어머니 지금 퀴퀴한 헛간에 호미 던지고 어머니는 손을 씻으실게야 에 헤 에헤야 수제비도 좋아라 에 헤 에헤야 내 고향집가세
내 고향집 마당에 쑥불 피우고 멧방석에 이웃들이 앉아 도시로 떠난 사람들 얘기하며 하늘에 별들을 볼게야 음~ 처자들 새하얀 손톱마다 새빨간 봉숭아 물을 들이고 새마을 모자로 모기 쫓으며 꼬박꼬박 졸기도 할게야 에 헤 에헤야 별빛도 그리워 에 헤 에헤야 내 고향집가세
에 헤 에헤야 어머니 계신 곳 에 헤 에헤야 내 고향집 가세 |
저희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대 이후로는 산소를 쓰지 않고 화장을 했습니다만, 만일 지금 다시 고향에 갈 수 있다면, 제가 그곳과 가지는 유일한 연결고리로서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 마지막 형상물은 아마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일 것입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고속도로 근처에 있어서...... 택시에서 내려 한 20분쯤 얕은 골짜기로 걸어올라 가야 합니다....
그 산소들은 비석도 하나 없는 평범한 모습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장례를 치뤘는데, 당시 지관 할아버지께서 이 지형에는 무거운 상석이나 비석을 쓰면 안 된다고 하셔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산소입니다....
오랜 기간 고향에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그 산비탈을 오를 때 딱 이 노래가 절로 머릿 속으로 스쳐가곤 했습니다. "이승에서 못다하신 그 말씀 들으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에 이르면, 가끔씩 가슴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느끼게 됩니다.
사망부가(思亡父歌)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거친 베옷 입고 누우신 그 바람 모서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바람 거센 갯벌 위로 우뚝 솟은 그 꼭대기 인적없는 민둥산에 외로워라 무덤 하나 지금은 차가운 바람만 스쳐갈 뿐 아 향불 내음도 없을 갯벌 향해 뻗으신 손발 시리지 않게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모진 세파속을 헤치다 이제 잠드신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길도 없는 언덕배기에 상포자락 휘날리며 요랑소리 따라가며 숨가쁘던 그 언덕 길 지금은 싸늘한 달빛만 내리비칠 아 작은 비석도 없는 이승에서 못다하신 그 말씀 들으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지친 걸음 이제 여기와 홀로 쉬시는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펄럭이는 만장 너머 따라오던 조객들도 먼길가던 만가소리 이제 다시 생각할까 지금은 어디서 어둠만 내려올 뿐 아 석상 하나도 없는 다시 볼 수 없는 분 그 모습 기리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
허의철학 님 보여주신 아름다운 고향마을 그림들에 감사드리고요,
너무 추억만 생각하면 청승맞아지겠지만....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그런 그리움에 빠져보아도 좋을듯 합니다.
허의철학 님께서 올려주신 그림들을 감상하다 보니...
딱, 배경음악으로 정태춘 선생의 노래들이 저절로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저작권 문제로 음악들은 올리지 않도록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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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은 제대로 일도 처리 못하고 카페에도 이제사 들어 왔습니다. 제가 올린 그림때문에 더욱 향수병을 자극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오늘 바뿌실줄 알고 있었는데, 게시물 만드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푹 좀 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