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는 많은 종목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종목 중에서 올림픽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종목은 무엇일까? 흔히들 마라톤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올림픽의 꽃은 여자체조이다. 여자체조 선수들은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요정으로까지 표현되곤 한다. 그리고, 4년마다 올림픽이 열릴 때면, 새로운 요정은 어김없이 탄생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탄생한 요정들 중 최고의 요정은 누구일까? 엘레나 슈슈노바, 스베틀라나 호르키나? 모두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듯이 최고의 요정은 바로 나디아 코마네치이다. 코마네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환상적인 연기로 많은 사람들의 혼을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받은 점수는 바로 10.0 이었다. 당시 체조 경기는 완벽함은 없다고 하여 10점 만점을 주지 않았었고, 전광판에 새겨진 점수는 1.0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는 1.0이 아닌 10.0의 연기였다. 당시의 전광판은 10점이 새져지지 않도록 되어 있어, 1.0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녀의 10점 만점은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점수였고, 한 자리 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는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체조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겠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투수들의 스피드에 대해서이다. 대부분의 투수들의 구속은 두 자리 수(mph)이다. 하지만 두 자리 수의 스피드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세 자리 수의 스피드를 찍어대며 두 눈을 의심하게 하는 녀석들이 있다. 텍사스 특급이자 7번의 노 히터 게임의 주인공인 놀란 라이언, 스티브 칼튼 이후 최고의 좌완투수인 랜디 존슨, 97년 클리블랜드와의 월드시리즈에서 계속해서 100마일 이상을 뿌려대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당시 말린스 소속의 랍 넨, 그리고 국내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마당쇠 바틀로 콜론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파워피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짜릿함과 통쾌함을 팬들에게 제공하고, 가끔씩 100마일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느끼게 해준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라이언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이번 시즌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뒤를 잇는 100마일 피처들이 세 자리 수 스피드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며 야심찬 2002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맷 앤더슨, 시카고 컵스의 카일 판즈워스이다. 이들의 모습을 5일마다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클로저와 셋업으로 뛰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팀이 이기는 경기라면 어김없이 등판하여 불같은 패스트볼을 뿌려 댈 것이다. 아직은 모든 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두 선수에 대해 조금 알아보도록 하자.
맷 앤더슨(1976)
: 타이거즈가 괜찮은 클로저인 토드 존스를 내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앤더슨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7 드래프트에서 전체 1위로 픽업 될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앤더슨은 3시즌에 걸친 빅리그의 경험 후, 2001시즌부터 클로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더구나 클로저의 역할을 처음 수행한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22연속 세이브를 거두며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앤더슨이 드래프트 전체 1위에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패스트볼이다. 앤더슨은 종종 스피드건에 100마일을 찍어대곤 한다. 데뷔 초에는 믿기 어렵겠지만 103마일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동안 타이거즈의 게임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그의 엄청난 패스트볼을 구경하기 힘들었지만, 박찬호가 리그를 옮긴 올해엔 타이거즈와의 경기를 가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타이거즈가 리드를 할 경우, 앤더슨은 어김없이 등판하여 우리에게 세 자리 수 스피드를 때때로 보여줄 것이다.
빅 리그의 클로저로 성장한 앤더슨이 가장 발전한 부분은 무엇보다 그의 컨트롤이다. 2000시즌부터 좋아지기 시작한 제구력이 급기야 2001시즌에는 BB:SO가 18:52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직은 완벽하진 않지만 그의 변화구 또한 나아지는 모습을 점차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통산 ERA(4.62)와 2001시즌 ERA(4.82)는 그에게 커다란 오점이 되고 있다. 리그 정상의 클로저들이 2점대의 ERA를 기록한다는 사실을 앤더슨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ERA보다 더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위력적인 구위를 가졌지만, 데뷔 때부터 갖고 있던 피안타율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클로저 임에도 불구하고 김선우를 연상케 하는 피안타율을 허용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 시즌 홈런을 단지 2개 밖에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타이거즈의 확실한 클로저로 성장한 앤더슨은 2002시즌 같은 AL의 마리아노 리베라, 트로이 퍼시발이 누려왔던 최고의 클로저 자리에 강력하게 도전할 것이다.
카일 판즈워스(1976)
: 시카고 컵스가 지난해 얻은 수확은 소사의 메이저 최초의 3시즌 60개 이상 홈런, 케리 우드의 부활, 건강하게 돌아온 플래쉬 고든 등일 것이다. 하지만 30개 구단 중 컵스의 불펜을 가장 매력적인 불펜으로 만들어버린 카일 판즈워스의 성장보다 큰 수확도 없다.
클로저인 탐 고든은 위력적인 패스트볼 덕분에 플래쉬 고든이라 불린다. 하지만 판즈워스 앞에서 고든은 고개 숙인 남자이다. 지난 시즌 판즈워스는 여러 차례 100마일을 찍어대며, 그의 무시무시한 패스트볼을 선보였다. 동갑내기인 앤더슨과 달리 비록, 47라운드에 드래프트 되긴 했지만, 착실한 마이너 수업을 거친 후, 리그 최고의 셋업맨으로 성장하였다. 오랜 기간 선발투수 과정을 익힌 판즈워스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며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구원으로 전업한 후, 판즈워스는 계속해서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01시즌은 플래쉬 고든을 이을 컵스의 클로저자리가 그의 것임을 입증하는 시즌이었다. 24개의 홀드도 빼어나지만, 2.74 ERA와 BB:SO(29 :107) 는 빌리 와그너가 잘 던지던 97, 98년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판즈워스는 9이닝 당 11.7 개의 삼진 비율을 기록하였으며, 107개의 삼진으로 NL 구원투수 중 휴스턴의 옥타비오 도텔(128)과 김병현(113)에 이어 삼진 랭킹 3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굳이,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긴박한 상황에서 등판하는 구원 투수의 필수조건인 퀵 모션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즌을 앞두고 있는 현재 판즈워스는 그의 엄청난 패스트볼을 받쳐줄 스플리터와 체인지업 등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어 더욱 엄청난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전에 어떤 평론가가 그의 볼 끝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상으로 triple digits이 가능한 맷 앤더슨과 카일 판즈워스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알아보았다. 그러나 단지 이들만이 100마일 이상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토론토의 클로저로 지난 시즌까지 활약하다 오클랜드의 저스틴 밀러, 에릭 힌스키와 트레이드 되어 에이스의 클로저가 된 빌리 카치. 그리고, 2002시즌에는 빅리그에서 모습을 볼 수 있을 밀워키의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닉 뉴게바우어는 마음만 먹으면 100마일을 충분히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이다.
단지 볼이 빠르다고 해서 그 투수가 리그 최고의 투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0마일은 선천적인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선천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팬들은 triple digits이 가능한 투수들을 동경하며 그 투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 상당한 쾌감과 짜릿함을 느낀다. 좀더 쉽게 생각하면 NBA에 많은 선수들이 있지만 빈스 카터나 마이클 조던, 스티브 프랜시스처럼 높이 뛸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그리고, 이들이 믿을 수 없는 슬램이나 더블 클러치를 선보일 때 팬들이 열광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오랜 겨울방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야구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갈증은 시범경기의 시작과 함께 어느 정도 해갈이 될 것이다. 만일, 여기에 100마일 피처들의 光속구가 이어진다면 아마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