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길 형제님과 저는 인터넷 상에서는 오래 전부터 교제를 나눠 온 사이입니다.
형제님은 주님을 사랑하시고, 성격이 곧은 분이시라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형제님의 복음서원 질문에 대해서 이곳을 방문하시는 다른 분들이
혹시 너무 공격적인 것은 아니냐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같아서, 다른 악의는 없는 분이라는 점을 알리고
이해를 돕도록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주정길 형제님과 나눴던 질문 응답을 이곳에 몇 개 옮겨와 소개해 볼까 합니다.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지방교회들에 관한 대화(1)
먼저 바쁘고 고단한 생활환경 속에서도 ‘워치만니 독자모임’이라는 카페를 운영하시면서 워치만니라는 훌륭한 성경교사를 통해 계시된 진리를 누리시는 분을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가운 마음입니다. 또한 “지나치게 편협(주관적)하다고 느끼신다면 지적” 해 달라고 하셨으나, 지적보다는 편하게 교제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은 편의상 생략하고, 이견이 있거나 약간의 오해가 있는 부분만 간략한 토를 달아 보겠습니다.)
먼저 제가 말씀드리려는 개괄적인 그림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도 워치만니를 좋아하고 그분의 책을 탐독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해한 워치만니의 특징은 1. 하나님의 계획(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일에 헌신됨, 2. 그리스도를 그 뜻을 수행하는 중심성과 우주성으로 이해함, 3.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에 모아짐. 4. 그 몸된 교회는 각 지방을 단위로 이 땅에서 나타난다고 믿고 가르침..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워치만니의 동역자라고 하는 다른 형제들이나 심지어 현재 워치만니를 좋아하고 그를 본받으려고 하는 분들까지도 위 네 가지를 모두 가감없이 받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특히 마지막 4에 있어서는 심지어 워치만니 생존 당시에도 동역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었습니다. 그와 위트니스리의 관계는 다른 것은 몰라도 위 네 가지 면에 있어서는 끝까지 일치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워치만니를 통해 계시된 진리나 실행에 절대적으로 동의하고 죽을 때까지 그 진리 위에 머문 사람은 위트니스리가 유일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자주 거론되는 스티븐강, 그외 지방교회 생활을 하다가 자기 길을 가는 유00목사, 심지어 주정길님 자신까지도 워치만니의 어떤 부분만 취할 뿐 위트니스리처럼 전부를 취한다고 보지 않습니다(한 가지 예외는 게시록 11장에 나오는 대환란시의 두 증인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니 형제님이 생존시에는 그 누구에게도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가 자신의 영적인 아버지와 같았다고 합니다.육신의 나이차이는 불과 두살임)
1970년초에 감옥에서 순교하기 직전까지 워치만니와 함께 감옥에 있었던 브라더 우가 현재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과학교사였는데 문화혁명 때 잡혀 들어갔다가 긴 옥살이를 하고 풀려났습니다. 저도 이 분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는데, 그분이 육성으로 한 말이, 워치만니가 자기에게 "풀려나거든 위트니스리를 꼭 만나라"고 했고, "위트니스리가 하는 말이 내가 하는 말이다" 라고 했답니다. 두분사이에 무슨 결별이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는 모든 글들은 다 뜬 소문이요 모함인 셈입니다. 이 점은 여러 가지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하에서는 각 언급들에 대한 간략한 의견제시를 해 보겠습니다.
1. (주정길님) 워치만 니는 위 내용에서 밝혔듯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사역자이지만 최종적인 결정의 권위가 사람에게 없음을 두려워 하고 분명히 했습니다. 반면 위트니스 리는 사역의 과정에서 이것을 지나쳐 자신의 행적에서 최종 결정권자가 되어 결론을 내버림으로 결국 워치만 니가 경고하고 경계했던 어두움속으로 자신도 그를 믿고 따르는 무리들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식할 수 없는 어두움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김바울 해명 : 위 내용은 위트니스리가 최고봉의 계시라고 한 말을 심히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말한 최고봉의 계시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의 구원의 진리에 있어서 최종 단계는 1. 새예루살렘이고, 2.사람이 경배받는 신격에서는 아니나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을 닮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구체적인 구원의 과정은 '거듭남-거룩케됨-새롭게됨-변화-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음-영화롭게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구원의 최종목적인데, 어떤 단체는 죄사함(칭의)에, 또 어떤 단체는 거듭남에 머물거나 어떤 단체는 아예 구원의 확신도 없이 외적인 실행에 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실제로 새예루살렘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교파들, 거의 모든 성경교사들이 오해하거나 아예 빛이 없기도 합니다. 이 또한 구원의 최종 목표에 대해 닫혀 있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주정길님은 구원의 최종목표에 있어서 위에서 언급된 1, 2(사실은 이 둘은 하나임) 보다 더한 어떤 것이남아 있다고 보신다면 그것을 이곳에 꼭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현대종교 이영호 목사의 주장은 한 마디로 소설을 쓴 것에 불과해서 여기서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소개드린 웹주소에 담겨 있는 그와 주고받은 여러 편의 서신들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2.(주정길님)”그의 또다른 사역 말년의 작품인 결정(結晶)성경의 인사말에도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위트니스 리의 최종적 권위를 어느 위치에 두었나 알아 볼 수 있습니다.
『 ‘결정성경’은 초기 교회의 교부들로부터 시작하여 마르틴 루터, 존 칼빈, 월리엄 틴테일, 진젠돌프, 요한 웨슬리, 죠지 휫트필드, 찰스 맥킨토쉬, 죠지 뮬러, 찰스 피니, 드와이트 무디, 찰스 스펄젼, 앤드류 머레이 등이 보았던 진리의 정수들을 웟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가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확립한 것을 한권의 주석으로 집대성한 성경입니다.』 ...
김바울 해명: 위트니스리는 결정성경 인사말을 쓴 적도 없고 심지어 결정성경이라는 것이 있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위와 같은 무책임한 언급들이 형제들에 대한 거짓증거요 비방입니다. 주정길님이 사과하셔야 할 대목입니다.
3.(주정길님)”워치만 니는 자신의 개인 간증에서 자기는 성경 주석을 쓰고자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아 오직 그리스도를 주(主)로 높이는 영적 사역 외에는 준 모든 것들을 내려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원에서는 워치만 니가 이 모든 일에 관계한 것처럼 그 이름(명예)을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바울 해명: 주정길님은 워치만니가 마태복음과 계시록 주석을 쓴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만일 주석을 쓴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면 이것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복음서원이 무엇을 잘못사용하고 있다는 것인지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워치만니 전집을 펴낸 것을 의미하나요?
4. (주정길님)” 많은 사람들이 둥지가 하나인 것만 보고 워치만 니와 동일선상으로 보지만 내용이 다릅니다.
워치만 니는 1948년 6월경 복주 부근의 고령산에서 80여명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교회의 간증과 사역(몸의 생활을 하고 영적 생명을 훈련)을 지속시키기 위한 훈련을 갖게 되는데, 그 중 한 훈련생 장오신(張晤晨)의 간증에서 위트니스 리 와 자신의 사역의 차이점을 밝힌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와 이상수 형제님의 사역은 좀 다름니다. 이 형제님은 갈망 없는 사람에게 갈망을 줄 수 있고 할 수 없는 사람을 할 수 있게 하며 길을 갈 줄 모르는 사람으로 길을 갈 수 있게 합니다. 내게는 이 점이 없음을 인정합니다. 이십여 년 동안 나는 있는 사람을 더 있게 하고 원하는 자를 도울 수 있었을 뿐입니다..”
김바울 해명: 위 내용은 워치만니가 어떤 방면에서의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몸 안의 다른 지체의 장점을 감상한 매우 귀한 기록입니다. 몸 안에 각 지체마다 맡은 은사가 다르지만 모두 몸을 위하여 섬깁니다.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의 어떤 사역이 다르다는 말씀인지요? 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계획,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 지방의 터(입장)에 있어서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였습니다. 예를 들어 주정길님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르면 그 둘은 다른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기능으로 공히 주정길님의 몸을 위하여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만일 주정길님의 손가락이 다른 몸인 저를 위하여 섬긴다면 그때는 사역이 다르다고 할수 있겠지요.
5,(주정길님)이 당시만 보면 두 사람은 서로의 장점과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하고 완비하여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아름다운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김바울의 해명: 그래도 여기까지는 두분 사이의 아름다운 동역을 인정하시니 다행입니다. 이제 다음 글에서 또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원 출처: http://cafe.daum.net/Eliyahu/88iT/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