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네 번째 도시인 에스파한은 시라즈와 함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고도다. 또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된 문화재가 살아 숨쉬는 이란의 보석이다.
11세기 셀주크 제국의 수도로서 영화를 누리기 시작한 에스파한은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침략도 잦았다.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받아 파괴됐고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에 항거했다가 7만 명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스파한은 사파비 왕조시대에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압바스 1세(1587∼1629)는 1598년 에스파한을 수도로 정하고 도시를 가꾸었다. 유적의 대부분이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
문헌에 따르면 최전성기 인구가 100만 명을 넘었고, 163개의 모스크, 48개의 학교, 1801개의 가게, 263개의 공중목욕탕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16세기 사람들은 “에스파한을 ‘네스퍼 자헌’ 세상의 절반(Esfahan Nesf-e Jahan)이라는 뜻으로 이 도시를 찬양했다. 이란말로 ‘네스퍼’는 절반이라는 뜻과 ‘자헌’세계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에스파한은 지금도 ‘이란의 진주’란 별명을 지닌 이슬람 세계 유수의 도시다. 어디를 가나 이름에 걸맞은 유적 유물이 즐비하다.
16세기 당시의 최고 대왕 압바스 1세 때 조성한 이맘 광장을 흔히들‘세계의 그림’(낙쉐 자한) 광장이라 부른다.‘열린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왕(샤)의 광장’이라 불렀으나, 이슬람 혁명 뒤 ‘이맘 호메이니 광장’(이맘 광장은 약칭)으로 바뀌었다.
16세기 프랑스 시인 레니에르(Renier)는 이곳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고 ‘이곳이 바로 세계 절반이구나. 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맘 광장 북쪽에 아치형이 큰 문이 보인다. 이게 에스파한의 모든 역사를 간직한 케이사리에 바자르(시장)이다. 흔히들 어느 지역을 여행할 때 꼭 들러야하는 곳으로 재래시장을 꼽는 분들이 많다.
역시 이란 에스파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3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케이사리에 시장 탐방은 필수적이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 시장에 기념품, 선물를 사기 위해 잠시 방문하는 데 사실 이 시장의 입구 벽화 그리고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 이층으로 된 벽과 창문 등을 감상하면 더 없는 값진 여행이 될 것이다.
이 시장은 사실 1,300연년 문을 열었다.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많은 외침을 받음으로 파괴되고 복구하는 그런 순환의 역사를 겪었다. 그러다가 압바스 대왕이 이곳에 사파비 왕조의 수도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시장 건축에 나섰다.
당시 과학적인 설계로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는 건축 구조와 사방에서 사람들이 들어 올 수 있도록 출입문을 만들었다. 미로같은 시장 총 길이가 10여 킬로미터나 된다.
시장 메인 아치형 문 벽 위에 당시 압바스 대왕이 우즈베키스탄과 전쟁에서 이기는 장면을 프레스코화로 그려놓았다. 오랜 세월로 다소 퇴색되었으나 그 웅장하고 섬세한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또 시장 안 건물이 모두 벽돌로 쌓아 아치형 천장을 만들었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천장 가운데에 별모양을 한 작은 구멍이 나 있다. 또 2층으로 된 건물 창문은 모두 나무로 섬세하게 조각된 그런 문이다.
시장은 물건을 파는 내용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 메인 문에서 바로 들어가면 이곳 최고의 기념품목인 카펫트, 실크 제품, 동제품, 골동품 가게들이 줄을 이어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생필품 위주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종종 길을 잃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느 방향이든지 나오면 다 통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여행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으니 물건을 살 때는 꼭‘ 탁 비페 베데’ 좀 할인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도록.....
이란에서 네 번째 도시인 에스파한은 시라즈와 함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고도다. 또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된 문화재가 살아 숨쉬는 이란의 보석이다.
11세기 셀주크 제국의 수도로서 영화를 누리기 시작한 에스파한은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침략도 잦았다.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받아 파괴됐고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에 항거했다가 7만 명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스파한은 사파비 왕조시대에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압바스 1세(1587∼1629)는 1598년 에스파한을 수도로 정하고 도시를 가꾸었다. 유적의 대부분이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
문헌에 따르면 최전성기 인구가 100만 명을 넘었고, 163개의 모스크, 48개의 학교, 1801개의 가게, 263개의 공중목욕탕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16세기 사람들은 “에스파한을 ‘네스퍼 자헌’ 세상의 절반(Esfahan Nesf-e Jahan)이라는 뜻으로 이 도시를 찬양했다. 이란말로 ‘네스퍼’는 절반이라는 뜻과 ‘자헌’세계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에스파한은 지금도 ‘이란의 진주’란 별명을 지닌 이슬람 세계 유수의 도시다. 어디를 가나 이름에 걸맞은 유적 유물이 즐비하다.
16세기 당시의 최고 대왕 압바스 1세 때 조성한 이맘 광장을 흔히들‘세계의 그림’(낙쉐 자한) 광장이라 부른다.‘열린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왕(샤)의 광장’이라 불렀으나, 이슬람 혁명 뒤 ‘이맘 호메이니 광장’(이맘 광장은 약칭)으로 바뀌었다.
16세기 프랑스 시인 레니에르(Renier)는 이곳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고 ‘이곳이 바로 세계 절반이구나. 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맘 광장 북쪽에 아치형이 큰 문이 보인다. 이게 에스파한의 모든 역사를 간직한 케이사리에 바자르(시장)이다. 흔히들 어느 지역을 여행할 때 꼭 들러야하는 곳으로 재래시장을 꼽는 분들이 많다.
역시 이란 에스파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3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케이사리에 시장 탐방은 필수적이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 시장에 기념품, 선물를 사기 위해 잠시 방문하는 데 사실 이 시장의 입구 벽화 그리고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 이층으로 된 벽과 창문 등을 감상하면 더 없는 값진 여행이 될 것이다.
이 시장은 사실 1,300연년 문을 열었다.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많은 외침을 받음으로 파괴되고 복구하는 그런 순환의 역사를 겪었다. 그러다가 압바스 대왕이 이곳에 사파비 왕조의 수도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시장 건축에 나섰다.
당시 과학적인 설계로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는 건축 구조와 사방에서 사람들이 들어 올 수 있도록 출입문을 만들었다. 미로같은 시장 총 길이가 10여 킬로미터나 된다.
시장 메인 아치형 문 벽 위에 당시 압바스 대왕이 우즈베키스탄과 전쟁에서 이기는 장면을 프레스코화로 그려놓았다. 오랜 세월로 다소 퇴색되었으나 그 웅장하고 섬세한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또 시장 안 건물이 모두 벽돌로 쌓아 아치형 천장을 만들었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천장 가운데에 별모양을 한 작은 구멍이 나 있다. 또 2층으로 된 건물 창문은 모두 나무로 섬세하게 조각된 그런 문이다.
시장은 물건을 파는 내용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 메인 문에서 바로 들어가면 이곳 최고의 기념품목인 카펫트, 실크 제품, 동제품, 골동품 가게들이 줄을 이어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생필품 위주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종종 길을 잃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느 방향이든지 나오면 다 통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여행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으니 물건을 살 때는 꼭‘ 탁 비페 베데’ 좀 할인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도록.....
첫댓글 역사적인 건축물이나 유물 관람도 좋지만 그네들이 사는 진짜 모습은 전통시장(재래시장)에서 입죠.
정보 감사합니다.
시장 모습보니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