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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
기획․2
우리 시대의 수필작가
조명래
경북 선산 출생․영남대학교 공과대학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예술세계』 신인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등단(1991). 광복 50 주년 보훈문예대전 현상공모 입상(1995, 국가보훈처). 제3회 전국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2000, 행정자치부)․경상북도문학상(2007, 경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문학상(2009, 영호남수필문학회)․한국문인협회, 영남수필문학회, 선주문학회 회원. 예술시대 동인․수필집 『그리움에 색깔이 있을까』(1992, 한강출판사), 『이 땅에서 천사를 만나고 싶다』(1995, 학문사), 『보랏빛 사랑』(2000, 도서출판 ISUN), 『버리고 가벼워지기』(2008, 그루출판사). 5인 산문집 『3월에 내리는 눈』(2007, 그루출판사)․경상북도구미교육지원청 교육장
│대표 작품│
그리운 풍경 외 4편
조 명 래
세상에는 서로 다른 불이 존재한다.
태초에 숲을 지나가는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불이 있는가 하면 남녀노소의 가슴속에서 소리 없이 타오르는 마음의 불이 그것이다. 원시 인류들이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불은 여러 천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우주선의 불이 되고 원자로의 불이 되고 디지털 화면의 불로 변했으나, 마음의 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활력과 창조의 원천이 되는가 하면 유년의 터에 자리하여 평생의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숲에서 우연히 발견된 불이나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는 뜨거운 불은 다 같이 발전과 성장의 근원이었음에 불을 다루는 기술이야말로 여전히 미래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불이 만들고 있다.
불은 한 폭의 그림이다.
나지막한 감나무 가지에 걸린 그믐달이 무서리 뽀얗게 내린 마당을 비추고 있다. 부지런한 새벽 까치가 떨어뜨리고 간 깃털 한 닢이 미풍에 날리고 있는 시각이다. 마구간에는 잠에서 갓 깨어난 소가 잊었던 되새김질을 하며 내다보고 있다. 엄마는 부엌에서 가족의 아침밥을 짓고 아버지는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지펴 쇠죽을 끓이신다. 볏짚이나 왕겨 따위는 아니지만 싸리나무, 아카시아 같은 막대기 땔감은 안방 부엌이나 사랑채 아궁이에 걸린 솥을 달구고 난 후에도 소임이 또 있다. 불덩이들이 재로 사그라지기 전에 부지깽이로 골라내어 엄마는 다리미에 담고 아버지는 화로에 담는다. 남은 불덩이에 물을 부으면 김을 뿜으며 식어서 마침내 숯이 된다. 하나라도 헛되이 버리지 않으려는 지혜의 그림이다.
해가 돋기엔 아직도 이른 시각이다.
화로를 든 아버지께서 안방으로 들어오신다. 한참이나 재를 다독거린 다음 돋보기를 끼고 간밤 호롱불 아래서 읽다 만 언문 소설책을 펼치신다. 형편없는 지질에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림 하나 없는 책을 무슨 재미로 읽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맞게 따스해진 화로 옆으로 아버지의 책 읽는 소리가 구수한 노래로 흐른다. 엄마가 먼저 방 안으로 들여오는 것은 빨아서 말린 옷가지들이다. 아까부터 지푸라기 위에나 땔감 더미 위를 막론하고 마당 가득 펼쳐 두었던 옷가지들을 내려놓고 다시 불덩이가 담긴 다리미를 내려놓는다. 엄마의 옷가지들은 알맞게 젖어 있었다. 각각의 불덩이를 가진 아버지와 엄마는 무언의 눈길을 주고받는다. 부부간의 정이 화롯불처럼 은은하기도 하고 다리미 바닥처럼 뜨겁게 오고 가는가 보다. 화로를 달구고 다리미를 달군 불씨가 아버지 엄마의 가슴에서 꺼지지 않고 있다. 어린 내 가슴에까지 번져 온 온기는 지금도 이른 봄 뒷동산에 피어나는 할미꽃 꽃자줏빛으로 남아 있다.
자루 달린 다리미가 있었다.
다림질을 도와 드린 경험이 여러 차례 있어 바지나 남방과 같은 남정네들의 옷가지뿐 아니라 여인네들의 치마 적삼에 이르기까지 그 모양새에 따라 잡아야 하는 곳을 안다. 나는 두 손으로 옷자락을 잡고, 엄마는 옷자락의 한쪽을 오른발로 밟고 왼손으로 다른 한쪽을 잡고 마주 당기면 다림질할 면이 펴진다. 오른손으로 다리미를 잡은 엄마는 불덩이가 쏟아질세라 조심스레 다림질을 한다. 쭈글쭈글하던 옷가지들이 다림질 한 번에 깨끗하게 펴진다. 들일로 피곤에 젖은 엄마의 얼굴이 아침이면 웃는 얼굴로 피어나듯이 빨래들이 환하게 펴진다. 내가 보태는 미력도 엄마에게는 큰 기쁨인가 보다.
결코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가르침.
늦은 오후 놀다가 돌아오면 컴컴한 안방을 화로가 지키고 있다. 부젓가락으로 재 속을 헤집으면 불씨가 드러나며 언 손을 녹여 준다. 재 속에 꼭꼭 묻어 두어야 불씨가 꺼지지 않는 것이니 질화로의 불씨가 하루 종일을 가고 어떤 때는 그다음 날까지 가는 비결을 그때사 깨달았다. 아버지는 화로의 재 속에 불덩이를 숨겨 두는 당신의 뜻이 겉으로 드러날까 두려운지 그저 보일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재를 다독거리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무심한 표정을 하셨지만 마음이 새어 나오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가 없었으리라. 요즘도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군밤 익는 냄새를 맡으면 오래 잊혀졌던 아버지의 교훈이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질화로같이 투박한 모습이지만 그 시절 구수한 맛이 생각나 군침을 삼킨다.
요술의 손을 가진 이 세상의 단 한 사람.
생콩이 콩나물도 되고, 보리싹 난 엿기름이 단술도 된다. 밀가루가 국수로 변하는가 하면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던 물건도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진다. 엄마는 그날도 냉수를 입에 물고 안개처럼 뿜어 가며 다림질을 하셨다. 비록 가난으로 남루해진 무명옷도 풀 먹여 다리기만 하면 상큼한 풀 내음이 나는 새 옷이 된다. 다리미 안에 간직한 불씨로 신비한 마술을 부리는 엄마의 손을 나는 안다. 따스했던 엄마의 손은 장성한 아들에게는 식지 않는 뜨거움이다.
문명의 불은 많은 것을 사라지게 했다.
엄마의 손에 들려 옷을 펴 주던 다리미나 아버지의 겨울을 따스하게 해 주던 화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전열기들에 의해 아궁이며 땔감이 밀려나고 트랙터 엔진 소리와 함께 밭 갈던 누렁 소도 어디론가 가고 없다. 세상에 넘치는 것은 온통 컬러로 화려한 문명의 불, 번갯불같이 왔다 가는 찰나적인 불이다. 변화무상한 불이 인간의 미래를 편리하게 바꿔 줄 수는 있을 것이나 질화로 식어 버린 재 속에 묻혀 있던 아버지의 마음 같지는 않으리라. 때로는 그것이 순간적인 쾌락과 진한 흥분을 가져다줄 수도 있겠지만 옷가지의 주름살을 펴 주던 엄마의 따스함을 대신할 수는 없으리라. 아버지와 엄마를 이 땅에서 다시 만날 수도 없고 내가 다시 철부지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고 보니 오히려 미지근한 사랑이 아쉽다. 마음의 주름살을 펴 주는 숯불 같은 풍경이 너무나 그립다. 산에 들에 타올랐던 자연의 불이 내 유년 부엌 아궁이의 불로 변하고, 안방에서 할미꽃으로 피더니 결국은 반백의 내 가슴에 그리운 풍경으로 남아 변치 않고 있다. 세상에는 변하는 불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불변하는 불도 있음을 알았다.
유년의 화폭에
불꽃 하나 타오르고 있네.
아궁이에 지핀 땔감이
밥을 하고 쇠죽을 끓이고, 그래도 남은 불씨는
아버지의 화로와
엄마의 다리미에 담기더니.
불은 이제
꽃자줏빛으로 살아 있는
그리움
그리운 풍경이네.
산국 꽃대궁에 거는 기대
밤이 이슥해서야 도착했다. 산지기 어른은 우리를 반색하며 오경차(五俓茶)를 우려낸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이 차는 뒷산에서 채취한 솔잎, 은행잎, 고염나뭇잎, 뽕잎, 산죽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초면임에도 밤이 깊어 가는 것쯤 아랑곳하지 않고 다담이 이어졌다. 오경차를 마신 다음 주인이 손수 만들었다는 국화차를 또 마셨다. 찻잔이 몇 순배나 오고 간 다음에야 일어섰다. 따라 나온 주인이 권하는 흰 고무신을 신고 더듬거리며 간 곳은 군불을 지펴 두었다는 별채 황토방이다.
마당에는 네댓 명이 앉아도 좋을 펑퍼짐한 너럭바위가 어제 내린 늦가을비에 깨끗하게 씻겨져 있었다. 그 바위에 퍼질러 앉으니 달빛이 자리를 비켜 준다. 개울을 흐르는 물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다. 눈앞에 다가와 있는 산능선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상현달이 중천이다. 돌 틈에 피었던 산국은 제철이 지났는데도 향을 머금고 있다. 마른 꽃대궁에 달빛에 내려와 있다.
엉덩이가 서늘하여 일어섰다. 처마 밑 알맞게 펑퍼짐한 자연석 댓돌에까지 달빛이 따라온다. 흰 고무신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문고리를 당겼다. 기다리고 있던 흙내음이 선뜻 다가선다. 스위치를 올림과 동시에 방 안의 풍경들이 아는 체를 한다. 통대나무로 엮은 시렁에 무채색 이불 한 채, 나지막한 베개 두개가 얹혀 있다. 한지로 곱게 바른 벽은 못 자국 하나 없이 말갛다. 방바닥 대나무자리 위에 요가 깔려 있다. 요 밑에 무심코 손을 넣으니 따스함이 지나쳐 뜨겁다. 연사흘간이나 장작불로 구들을 데워 두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누워 잠을 청했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천장의 서까래를 몇 번이나 세었지만 오히려 정신은 더 말똥말똥해진다. 벌떡 일어나 마른 꽃 붙어 있는 문을 열어젖히고 싶다. 바깥에 두고 온 너럭바위며, 너럭바위로 달려들던 물소리며 산국 꽃대궁에 걸렸던 달빛 같은 것들이 마냥 궁금해 오감이 쑤신다. 그냥 잠을 청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밤이다.
시월 상현달
달빛 내려와 머물고 있는 너럭바위
물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마른 산국
산국 향기
흙내음 가득한 토방
무채색 이불, 그리고 베개
대나무자리 아래 뜨거운 구들장
산지기 마음
잠이 들었었나 보다. 살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달은 이미 기울었는지 별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행여 누군가의 눈에 띄어 곤란해질 일이 없는데도 조용조용히 뒷산으로 올라갔다. 토란 줄기를 수확하고 난 밭머리에 무, 배추가 싱싱하다. 차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곳을 지나니 쌓인 낙엽에 발이 빠진다. 발부리에 밟혀 바스러지는 삭정이 소리에 청설모가 놀라 달아난다. 호젓한 산길을 더 오르려다 아침 식사 시간을 놓칠 수가 없어 돌아섰다.
아내는 찬 서리를 맞으며 피어 있는 쑥부쟁이꽃이 예쁘다며 꺾었다. 마침 나와 있는 안주인에게 건네니 오래도록 두고 볼 요량으로 수반에 꽂는다. 산나물이며 된장국에 김치 반찬이 전부인데도 밥은 잘도 넘어간다. 식후 소화제 삼아 다시 몇 잔의 차를 마신 후 일어섰다. 간밤 늦게 도착하여 돌아보지 못한 바깥을 살펴볼 생각에서다.
통유리 창 너머 나무로 만든 넓은 테라스가 보인다. 깨진 기왓장 위에도 들꽃이고, 갖은 형상을 한 질그릇에도 들꽃들을 심어 두었다. 안마당 연못 옆에 걸린 가마솥으로는 메주콩을 삶는다. 2층 다실로 향하는 나무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단아한 차탁에 머물고 있던 햇살이 놀라 일어선다. 창에 기대어 서서 바깥을 내려다본다. 억새로 덮여진 지붕 위에는 머리통만 한 박 두 개가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다. 개울가에 자리 잡은 원두막은 여름 한 철 시원한 물소리로 덮였으리라. 양지바른 담장 아래 심심한 진돗개 2마리가 졸고 있다.
이제 곧 겨울이다. 돌 틈 곳곳에서 자란 국화차며, 뒷산에서 만든 오경차 맛은 더욱 그윽해질 것이다. 찬바람 불고 억새 지붕에 백설이 덮이는 날 다시 오고 싶다. 늦가을 만났던 저 산국 마른 꽃대궁이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 골짜기에 찬바람 불어와도 토방 구들은 더 따스하리라. 옆에서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 산국 향기가 스치고 있다. 산국 꽃대궁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찬 서리에 핀 쑥부쟁이가
하얀 수반 위에서 웃는다.
차나무, 쪽나무로 곱게 물든 명주필이 가지런하다.
억새 지붕에는 늙은 박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흰 눈 흩날리는 날 다시 와서
마른 산국 꽃대궁에 코를 대고
그 진한 내음을 맡고 싶다.
춘향전에서의 만남
때는 춘삼월 호시절, 삼라만상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글공부에 전념하던 이몽룡이 남원 땅을 스치는 춘풍을 참지 못하고 들창 밖을 힐끔거리다가 마침내 방자 녀석을 불러 대문을 빠져나왔다. 오작교를 건너 광한루에 올랐을 때, 규방에 들어앉아 수를 놓고 있어야 할 춘향이가 그 시간에 맞추기라도 한 듯이 그네를 타고 있었으니 이것이 주인공 청춘 남녀의 첫 번째 만남이다. 향단이가 살짝 밀어 주니 그네가 스르르 미끄러져 앞으로 내달으면 펄럭이는 저고리 고름을 흔들며 봄바람이 들어오고, 뒤로 물러나니 댕기 땋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린다. 늘어진 수양버들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무엇인가가 이몽룡의 눈에 들어오면서 찌릿하게 전기가 통했다.
본래 사또 아들과 기생의 딸은 상호간에 부부로 맺어질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아마도 이몽룡은 월매의 딸 정도 가지고 놀다 버려도 좋은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춘향의 입장에서도 사또 자제를 평생을 맡길 서방으로 감히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이거나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 꼴이다. 어찌되었거나 이몽룡이 월매 집의 담장을 넘었고 이들 청춘 남녀는 어울렸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몽룡은 타고난 플레이보이 기질의 소유자였고, 춘향이의 몸에도 뭇 남자들에게 몸을 맡기는 화류계의 피가 흐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느닷없이 남원사또 교체 발령이 난 것이다. 이제 막 사랑의 싹을 키우고 있던 이들은 헤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양으로 향하는 이몽룡의 발걸음보다는 기약 없이 임을 보내는 춘향의 마음이 더 쓰라렸을 것이다. 그렇게 헤어졌지만 양반 자제 이몽룡은 해 오던 과거 준비를 계속하여 열심히 했고, 춘향이는 정처 없는 기다림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사또는 여성 편력이 극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사는 뒷전인 채 기생 점고부터 하였다. 이 장면이 변 사또와 성춘향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정절을 바친 한 사나이를 잊지 않고 일부종사키로 한 춘향의 결심을 꺾지 못한 변 사또는 심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먹은 것이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 온 권력자는 상처 입은 자존심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생일날에 천하의 이벤트를 준비하게 된다. 남원골로 부임하지 않았다면 중앙 부처에서 판서나 정승까지 승진했을지도 모르는 변학도이다. 춘향이와의 만남으로 인하여 일순간에 탐관오리로 낙인찍혀 봉고파직 될 변학도의 운명을 누가 알았으랴.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간 이몽룡은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고 전라도를 순행하는 암행어사의 명을 받았다. 어사 이몽룡의 속마음은 민정을 살피는 일보다 춘향이를 만나는 일이 더 급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고을을 뒤로하고 곧장 남원골로 향했다. 춘향이에게 마패를 보여 주며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원 가까이 오니 들리는 소문이 흉흉했다. 사또 수청 들기를 거부한 춘향이가 목에 칼을 차고 옥에 갇혀 있으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사또가 내일 자신의 생일날에 물고를 내려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한시바삐 구해 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먼저 장모인 월매부터 만난다. 딸년이 죽게 생긴 이 마당에 출세해서 데리러 오기는커녕 거렁뱅이가 되어 찾아왔으니 허파가 뒤집히고도 남았다. 그러나 춘향이는 문전 박대하는 제 애미와는 달랐다. 이몽룡과 춘향이 모녀와의 만남은 극적인 장면의 연출을 위하여 시치미를 떼고 속이고 속아 주고 한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동헌 마루에는 사또의 생신잔칫상이 거방지게 차려졌다. 금잔에 넘치는 향기로운 술은 백성의 고혈이고… 하는 시가 등장하고 뒤이어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소리가 관아를 울렸다. 탐관오리와 암행어사의 만남, 죽음 직전에서 만난 애인, 그것도 암행어사로 출세한 서방님과의 만남이야말로 가장 신파적인 만남이다.
우리의 고전 춘향전의 본래 줄거리를 아끼는 사람들이야 곱지 않은 시선일 수 있다. 춘향전을 다시 읽으면서 만남을 비틀어 보니 너무나 운명적인 만남이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들이 내용을 형성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를테면 운명적인 만남이란 말이다.
누구나 만남을 통하여 그 자신의 일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인생은 연극도 아니고 재방송도 안되기 때문에 우연과 필연이라는 만남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가끔씩 그때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때 그 사람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운명적인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니, 그 아닌 다른 만남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그려 보는 일은 한가할 때의 시간 보내기로 아주 그만이다.
정원의 향기
처음에는 막연하게 정원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정원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되니 심어 가꾸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름대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먼저 가장 좋아하는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심었고, 그 사이에 소나무와 향나무를 두어 그루 심었다. 나머지 여백에는 잔디를 깔고 적당한 위치에 돌들을 배치했다. 그 후 나무와 잔디의 경계선쯤 적당한 곳에 채송화를 심었다. 워낙에 박토라서 그런지 채송화는 도무지 자라지를 않고 반갑지 않은 바랭이, 개망초, 비름, 달개비들은 얼마나 잘 자라는지 모른다. 뽑아내고 돌아서면 어느새 자라는 잡초를 뽑아내며 생각했다. 산에 들에 지천으로 자라던 들꽃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랄 것이 아닌가. 그렇다. 추억의 들꽃들이 내 정원에서 자태를 뽐내도록 만들고 싶었다.
마당에 할미꽃을 심었다.
팔공산 동화사 가는 길목인 불로동에 들꽃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에 들러 할미꽃을 찾았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캐 가는 바람에 귀해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캐어 간 할미꽃은 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을 들으며 두 포기를 구해 심었다. 봄이 되자 싹이 돋아났고 뒤이어 꽃자줏빛 할미꽃이 올라왔다. 아침저녁 오가며 바라보기를 여러 날 하니 할미꽃은 지고 그 자리에 흰 머릿결 같은 털이 매달린다. 어머니 머리카락 같은…….
맏딸의 구박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재 넘어 시집간 막내딸을 찾아 길을 나섰고, 딸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이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숨을 거둔 불쌍한 할머니가 묻힌 자리에 허리 굽은 서러운 할미꽃이 돋아났다고 한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는 할미꽃 이야기를 읽으면서 곁에 계신 어머니를 보고 또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내 이담에 자라면 지성으로 효도를 할 것이라 다짐했건만 어머니는 지금 저승길 저만치를 걸어가고 계신다.
다음으로 패랭이꽃을 심었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아래 들꽃 전시장의 패랭이꽃이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곳에서 패랭이꽃 씨앗을 채취해 와 정원에 흩뿌리고 물을 주며 기다리니 금방 싹이 돋아났다.
논농사를 중하게 생각했던 그 당시에는 밭의 흙을 파내어 논으로 만들고는 했었다. 새로 만들어진 모래땅은 물이 금방 스며들어 벼들은 언제나 가뭄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타는 속을 헤아릴 수 없었던 어린 나는 논에 벼포기와 뒤섞여 자라고 있는 패랭이꽃을 꺾으며 재미있게 놀았다.
패랭이 꽃잎이 시들고 나면 작고 길쭉한 씨앗주머니가 남는다. 이것을 손끝으로 비비면 작은 씨앗이 소복하게 나오곤 했다. 여름 해가 기울면 여물어 있는 씨앗을 호주머니 가득 담아 노을지는 들판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었다. 호주머니 속의 패랭이 씨앗이 이제 다시 아들의 정원에서 싹을 틔웠건만 아버지 역시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소나무, 향나무가 자라는 정원에 사철 푸르렀던 내 추억이 자라고 있다. 감이 익고 대추가 여무는 정원에 소년의 꿈이 익어 가고 있다. 할미꽃, 패랭이꽃이 전설처럼 피는 정원에 서면 어머니, 아버지의 말씀이 언제나 들려온다. 지천으로 피어나는 들꽃처럼 아무 곳에나 뿌리내려 자식을 키워 오신 어른들의 모습이 박토에 뿌리내린 기둥으로 자라고 있다.
철부지의 가슴에 희미하게나마 효를 느끼게 해 주던 할미꽃,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자식만은 결코 농사꾼을 만들지 않겠다던 아버지의 사연을 아는 이 누가 있으랴. 안타깝게도 풋풋한 고향도 없고 그리운 추억도 없이 자라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할미꽃이며 패랭이꽃 사연은 먼 나라의 전설일 뿐이다. 할미꽃 이야기며 패랭이꽃 사연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뜨락에 서서 정원에 스며 있는 향내를 혼자서 맡는다.
다람쥐처럼 올라갔던 등 굽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고향 집 뒷동산을 충분히 회상할 수 있는 나의 정원에 가을이 오면 감이 여물고 대추가 익어 간다. 정원에 들꽃이 자라고 추억이 자란다. 봄이면 할미꽃이 피고 여름이면 패랭이꽃이 소년의 그리움인 양 피어난다. 고운 향기 피어나는 정원에 고향이 살아난다.
믿음의 세월
선생님! 전번 설날 세배 갔을 때 앉으시는 모습이 불편해 보여 걱정하는 저에게 나이 들면 다 그렇지 하며 웃으시던 얼굴이 영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퇴직 후 자주 가시던 등산도 뜸해졌다니 이를 어쩝니까. 선생님의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되었음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2월 하순, 교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고 우선 전화부터 드렸었지요. 비록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음성이었지만 축하하네. 정말 축하하네 하며 저보다 더 기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까까머리 제자였던 저의 세월도 흐르고 흘러 이렇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월요일 아침 운동장 조회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줄의 중간쯤에 서 있는 저에게 다가와 교무실로 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잔뜩 주눅이 들어 찾아간 저에게 토요일 날 왜 그랬느냐고 다그치셨지요. 별 기억이 없었던 저는 한참 후에야 반말을 하는 1학년 후배를 지도했던 일을 생각해 내고는 항변을 했지요. 선배에게 반말하는 건방진 녀석이었다고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당장 그 애 아버지에게 가서 사과하고 오너라. 나는 너를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날 이후 너를 믿는다는 그 짧은 말씀의 화살 한 대가 가슴 깊숙이 박혀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시골 출신 고학생으로 어렵게 대학 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조국의 최전방을 지키는 초병으로 군대살이 3년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아니, 제대 후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는 그 말씀이 더욱더 절실했습니다. 선생님이 날려 보낸 화살을 가슴에 꽂고 살아오면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가슴을 향해서도 꼭 같은 화살을 날려 보내었습니다. 지금은 그 아이들 중 몇 명이 믿음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선생님께서 저를 믿었듯이 저도 그들을 믿고 있습니다.
지나온 저의 세월 속에는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도 있었고, 실의에 젖어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어둠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믿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저에게는 채찍이었고, 용기이었고, 더러는 햇빛이었습니다. 제가 가르친 아이들도 서로를 믿으며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채찍으로, 용기로, 햇빛으로 작용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선생님! 부임해 온 학교 언덕에 오래된 벚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그 벚나무에 꽃이 활짝 피는 날 선생님을 모셔서 좋아하시는 약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꽃그늘에 앉아 한때나마 선생님과 저의 세월을 되돌려 과거를 회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승진을 축하한다는 전번의 말씀에 교장 노릇 잘하리라 믿는다는 말씀이 생략되어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마주 앉은 저에게 큰 소리로, 더 큰 믿음을 가르쳐 주십시오.
│조명래 작품론│
조명래 수필에 나타난
실화와 설화의 이중주
박 양 근
수필은 근본적으로 이중화된 담화에 속한다. 이중적이란 외양과 실제가 다른 모순의 양태가 아니라 체험과 상상의 이중적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수필의 이중성은 상호 배타적이 아닌, 이배엽 꽃잎처럼 유기적인 의존성과 상보적인 구조를 가질 때, 형식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좋은 수필에서 실화와 설화는 두 가닥으로 엮어진 동아줄과 흡사하다. 수필가는 그 동아줄 위에서 글쓰기라는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로서 한편으로는 실화라는 줄을 타되 하늘이라는 설화의 세계를 동경하고, 다른 편으로는 설화에 사실성을 부여하면서 감동과 공감의 농도를 높여 나가게 된다.
실제 수필은 작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체험과 상상을 원소로 삼을 수밖에 없다. 만일 작가가 자신의 경험에만 치중하여 글을 쓴다면 수기나 논픽션이 되어 버린다. 속성상 논픽션의 요소를 지니는 실화는 어느 시점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육하원칙을 가진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사건의 원소가 사건 기자와 만나면 선정성을 중시하는 저널리즘으로 변하게 된다. 저널리즘의 대상으로서 실화는 문학에 속한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수필가가 염두에 둘 장르가 되지 못한다. 반면에 가공적이거나 허구적인 요소가 가미된 설화는 문학적인 흥미와 진정성을 지닌다.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신화와 달리 평민을 주인공으로 삼아 생로병사와 관혼상제를 다루는 실화는 평민성과 시민성이 매우 강하고 서사적인 산문과 시적인 운문을 통합한다는 점에서 독자에 대한 흡입력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조명래의 수필에는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한 실화와 설화의 이중주가 깔려있다. 나아가 그의 이중주는 문인이면서 교육자라는 두 신분을 바탕으로 한다. 문인은 사물을 정서적으로 관조하고 미학적인 질감을 입히는 재능을 가진다면 교육자는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으로 사건을 육화한다고 볼 수 있다. 실화를 엮어낼 때, 기록에만 의존한다면 감동을 담을 수 없고 설화적인 꾸밈에만 기댄다면 소설의 흥미나 시의 감정 과잉에 치우치게 된다. 그런데 조명래는 문인의 감수성과 교육자의 지성미를 겸한다는 점에서 그의 대표작들은 당연히 실화와 설화의 양면성을 보여 주면서 이러한 요소를 대립이 아니라 균형미로 완성시켜 나간다. 이것이 그의 수필 세계가 지닌 최대의 장점이자 동력이라는 사실을 그의 대표작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운 풍경>: 인간 풍경의 원형
조명래의 <그리운 풍경>은 앞서 언급한 실화와 설화가 조화된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작가 자신의 가족사를 꽃으로 극대화하려는 신화적 모티프와 삶과 자연이 어울리고 산문의 스토리와 운문의 운율이 상호 잇댄 점을 고려하면 수필에 대한 독특한 착상과 구성력을 살필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소재로 선택한 불이다. 불은 동서양을 통하여 신화의 중심에 자리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관리하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 덕분에 인간은 추위에서 벗어나고 음식을 익혀 먹고 밤을 밝히게 되었다. 현대에 다다라서는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디지털 시대를 번성하게 하였다. 소위 불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문명의 축을 이룬 셈이다. 이것은 신화가 풀이하고 역사가 기록해 온 불에 대한 위대한 기록에 해당한다.
반면에 조명래는 불의 위대성보다는 불이 지닌 그리움에 더 관심을 보여 준다. 그는 불을 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매개체로 바라본다. 불을 훔친 신들의 이야기가 실화로 변용된다면 불에 깔린 향수는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설화로 변용해 낸다. 수필에서 발견되는 문학적 변용은 현실과 상상의 영역을 쌍방향적으로 교차하고 있으며 조명래의 <그리운 풍경>은 그 예가 되는 셈이다.
<그리운 풍경>은 7개의 마디와 한 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산문과 운문의 결합은 작가가 보여 주는 전형적인 구성 방식으로서 형식면에서 퓨전수필에 속한다. 첫 서두인 세상에는 서로 다른 불이 존재한다.는 요지는 두 번째 마디에서 불은 한 폭의 그림이다.로 변용된다. 불을 그림으로 풀이하는 심리에는 상실과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정조가 나타나며 불이라는 기호에서 가족애를 회상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작가가 그리워하는 유년기의 풍경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품성을 반영하는 화로와 다리미로 짝 지어진다. 화로와 다리미로 부부간의 믿음과 정을 형상화하는 구조에는 설화적 요소가 배치되어 있다. 아버지의 화로와 어머니의 다리미는 불의 원형으로서 신과 영웅들이 펼치는 신화에 못지않은 진실성을 가진다.
각각의 불덩이를 가진 아버지와 엄마는 무언의 눈길을 주고받는다. 부부간의 정이 화롯불처럼 은은하기도 하고 다리미 바닥처럼 뜨겁게 오고 가는가 보다. 화로를 달구고 다리미를 달군 불씨가 아버지 엄마의 가슴에서 꺼지지 않고 있다. 어린 내 가슴에까지 번져 온 온기는 지금도 이른 봄 뒷동산에서 피어나는 할미꽃 꽃자줏빛으로 남아 있다.
작가는 부부간의 사랑을 설화적 화풍으로 엮어낸다.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가문과 민족을 이어 가는 대물림으로서 부부애를 보여 주려는 노력은 이른 봄 뒷동산에서 피어나는 할미꽃 꽃자줏빛이라는 이미지로 제시된다. 그가 등장시킨 할미꽃은 인간의 시간으로서는 잴 수 없는 시공과 생명과 번식의 힘을 구현해 나간다. 설화의 주인공으로서 아버지는 컴컴한 안방의 화로를 지키는 집안 대주로서 신화적 영웅에 버금할 위엄과 권위를 지닌다. 그러나 작가가 중요시하는 대상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마법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생콩이 콩나물도 되고, 보리싹 난 엿기름이 단술도 된다. 밀가루가 국수로 변하는가 하면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던 물건도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진다. 엄마는 그날도 냉수를 입에 물고 안개처럼 뿜어 가며 다림질을 하셨다. 비록 가난으로 남루해진 무명옷도 풀 먹여 다리기만 하면 상큼한 풀 내음이 나는 새 옷이 된다.
작가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여신에 가깝다. 그녀는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재운다. 불을 부리는 재주는 신묘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여서 장성한 후에도 식지 않은 그리움으로 기억한다. 다리미 안에 간직한 불씨로 신비한 마술을 부리는 엄마는 오늘날의 전열기, 트랙터, 네온사인이 아니라 마음의 주름살을 펴는 숯불 같은 풍경을 이루어낸다. 그래서 어머니의 다리미는 어떤 다른 불보다 영원히 불변하는 불로 의미화될 수 있다. 나아가 불은 이제 / 꽃자줏빛으로 살아 있는 / 그리움 / 그리운 풍경이네라는 운율이 가슴을 울리는 시구를 만들어낸다.
<그리운 풍경>을 통해 드러나는 조명래 수필의 아이콘은 당연히 그리움의 원형이다. 그리움만큼 팩트를 진실로, 실화를 설화로 바꿀 수 있는 문학적 장치는 없다. 그리움은 상실감, 향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모두 포함하는 정서이기 때문에 다른 작품에도 남다른 감동성을 재현해 낸다.
꽃의 감성으로 직조된 가족애
조명래의 수필에 등장하는 가족은 혈육의 원천이고 스승은 존재의 원천이다. 이들은 모두 오늘날의 조명래를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과 세월이 육신의 질량을 증가시키는 매체라고 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존재는 혈육지정이라는 인연의 원리를 가르쳐 준다. 달리 말하면 그의 의식과 감성은 부모라는 존재에 의하여 해석되고 변용되어진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조명래가 인지하는 타자에 대한 정서적 교감에는 꽃이 중심에 자리한다. 그는 <정원의 향기>에서 여러 수목의 이름을 언급하는데 그때 불리는 것은 감나무, 소나무, 대추나무 등의 수목과 바랭이, 개망초, 비름, 채송화 같은 들꽃 등이다. 수목과 들꽃은 특별한 손길이 필요 없는 식물에 속하지만 작가는 패랭이꽃과 할미꽃에 대하여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표명한다.
할미꽃이 지닌 이미지는 어머니로 이어진다. 왜 그는 할미꽃에서 어머니를 연상하는가. 일찍이 사별한 심리적 공허감에서 그렇게 부를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도 어머니보다 엄마라는 호칭이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모성과 모태에 대한 본능적인 귀속성과 관련이 크다.
설화 속의 할미꽃과 실화 속의 어머니는 흰 머릿결과 흰 머리카락을 공통적으로 지닌다. 할미꽃에 전래되는 설화는 맏딸에게 구박받은 어머니가 막내딸을 찾아가다가 도중에서 숨을 거둔 이야기로서 이것을 읽을 때마다, 달리 말하면 전설과 설화가 지닌 교훈을 배울 때마다, 곁에 계신 어머니를 보고 또 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식의 효도를 기대하였지만 고개를 넘지 못했던 할미꽃의 주인공처럼 작가의 어머니는 세월의 고비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런 숨겨진 사연을 독자들은 허리 굽은 서러운 할미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패랭이꽃은 아버지와 연결된다, 패랭이꽃은 벼 포기에 뒤섞여 자란다. 모래 논에서 자라는 패랭이꽃은 철없는 아이에게는 재미난 장난 풀이지만 농경 사회의 가난한 농부에게는 성가신 잡초의 대표 명사이다.
여름 해가 기울면 여물어 있는 씨앗을 호주머니 가득 담아 노을지는 들판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었다. 호주머니 속의 패랭이 씨앗이 이제 다시 아들의 정원에서 싹을 틔웠건만 아버지 역시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어머니와 달리 식물 작목이라는 노동으로 나타난다. 부친에 대한 그리움을 패랭이꽃에서 찾는 이유는 패랭이꽃이 논농사라는 힘겨운 노동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농민의 역경을 상징하는 패랭이꽃을 정원에 심으면서 아버지의 땀을 간접 체험한다. 이렇듯 들꽃에 강한 애착을 기울이는 작가는 관상용 화초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여 주지 않는다. 들꽃과 노동의 결합은 그의 화초론과 인생론을 보여 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작가이다. 작가는 삶을 단순히 기록하고 남기기보다는 초시간적인 가치와 의미를 담아 누구나 공감하는 담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할미꽃과 패랭이꽃도 설화적인 의미를 지닌다.
안타깝게도 풋풋한 고향도 없고 그리운 추억도 없이 자라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할미꽃이며 패랭이꽃 사연은 먼 나라의 전설일 뿐이다. (중략) 정원에 들꽃이 자라고 추억이 자란다. 봄이면 할미꽃이 피고 여름이면 패랭이꽃이 소년의 그리움인 양 피어난다. 고운 향기 피어나는 정원에 고향이 살아난다.
위 단락은 설화의 시대와 실화의 시대에 살아가는 어린이의 정서적 차이를 보여 준다. 설화의 시대에 자란 아이들은 인간의 삶과 꽃의 이야기를 연결시킬 수 있으나 실화의 시대에 사는 아이들은 자연과 인생을 별개로 생각한다. 이것이 안타까운 작가는 소년 시절의 그리움을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런 구도는 <산국 꽃대궁에 거는 기대>에서도 재현된다. 산국 꽃대궁은 어느 늦가을 고향 산에 마련한 황토 집에서 보낸 하룻밤 풍경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중간에 자리한 한 편의 자작시가 수필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양분하는데 전반부는 산촌의 아늑한 풍경을, 후반부는 산국 향기 같은 아내의 모습을 담아낸다. 아내는 늦가을 만났던 저 산국 마른 꽃대궁이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리라. 이 골짜기에 찬바람이 불어와도 토방 구들은 더 따스하리라. 옆에서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 산국 향기가 스치고 있다. 산국 꽃대궁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라고 묘사되듯이 청청한 산촌에서 피어나는 산국에 비유된다. 아버지가 패랭이꽃으로, 어머니가 할미꽃에 견주어지는 것처럼 아내도 꽃의 이미지로 전달된다. 김춘수의 <꽃>처럼 조명래 수필가는 들꽃을 통하여 가족을 생각하고 가족을 떠올릴 때마다 눈에 익은 들꽃으로 주변인들이 지닌 존재성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나간다.
그가 들꽃을 통하여 아내를 그려내는 동기는 분명하다. 가족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생각하는 것은 유한하기 마련이다. 그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연의 기호인 꽃을 빌려 오면서 인간 상호간의 감정을 불멸의 존재로 승화시켜낸다. 이처럼 조명래는 자연물이 지닌 기호가 작품으로 들어올 때 나타나는 효과를 잘 알고 있다. 산문뿐만 아니라 운문인 시에도 조예를 지닌 작가이기 때문에 그 화소의 효과는 더욱 커진다.
흰 눈 흩날리는 날 다시 와서
마른 산국 꽃대궁에 코를 대고
그 진한 내음을 맡고 싶다.
흰 눈 내리는 날 다시 꽃 대궁의 내음을 맡고 싶다는 희망은 설화의 기조를 유지한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꽃이 그리운지, 꽃이 그립기 때문에 아내가 사랑스러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겨울 산 풍경에 빠져 있다. 이러한 모습은 스토리보다는 언어의 운율성에 더 접근한다. 나아가 이런 부분에 다다르면 그는 에세이스트로서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안목보다는 시인의 감각과 소양을 더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여겨질 정도이다.
어쨌든 조명래의 수필이 펼쳐내는 문학적 공간은 다채로우면서도 탄탄하다. 적어도 그의 소재 선정과 해석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성은 상호 모순적이지 않다. 오히려 두 요소는 적절한 균형점을 공유하면서 서사와 서정의 비율을 지켜 나간다. 그 대표작이 <산국 꽃대궁에 거는 기대>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세월>: 교육관의 시원
조명래의 수필을 구성하는 요건으로 자연관과 인간애와 더불어 교육관을 손꼽을 수 있다. 그는 <선비정신을 찾아서>에서 선비의 고향이자 교육의 근원지인 선산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이라고 말한다. 이름을 남기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서 교육자가 되었다. 그는 지정적 배경과 선대의 부탁만으로 현장 교사가 되고, 교육 정책 입안자와 학교 경영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런 사실들은 무엇이 되게 하는 동기에 불과하다. 그것을 현실화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회고하는 글이 <믿음의 세월>로서 사제간의 신뢰를 보여 주는 수작에 해당한다.
<믿음의 세월>은 서간체로 엮어져 있다. 서간체는 흉중에 품고 있는 사연을 진솔하게 전달한다는 기능에서 가장 진솔한 형식에 속한다. 편지 속의 등장인물은 퇴직한 스승으로서 인간의 세월이자 모든 선생님의 세월을 표상하는 분이다. 교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고 안부를 전했을 때 그는 까까머리 제자 시절을 떠올린다. 패랭이꽃과 할미꽃을 볼 때마다 유년기로 되돌아가 돌아간 부모를 생각하였듯이 까까머리 학생으로 돌아간 조명래는 스승의 가르침을 되살려낸다. 그때 가슴에 와 닿는 말은 너를 믿는다.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담임선생의 가르침이다.
그랬습니다. 그날 이후 너를 믿는다.는 그 짧은 말씀의 화살 한 대가 가슴 깊숙이 박혀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시골출신 고학생으로 어렵게 대학 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조국의 최전방을 지키는 초병으로 군대살이 3년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아니, 제대 후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는 그 말씀이 더욱더 절실했습니다.
위 단락은 조명래의 전 생애를 요약하고 압축한다. 그가 유년기, 학창 시절, 군대 시절, 그리고 직장 시절이라는 삶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가슴에 담고 있는 말은 믿음이다. 상대의 믿음에 대하여 그가 보답하는 방식도 믿음의 행동이다. 이것은 그의 교육관이므로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려 한다. 그 가르침은 교장 노릇을 잘하리라 믿는다.는 언술이다.
~노릇은 자아의 자격을 유지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규범에 속한다. 어떤 개체도 존재의 명분과 당위성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사람 노릇, 선생 노릇, 작가 노릇, 부모 노릇, 자식 노릇….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킬 의무를 갖는다. 노릇은 개체에 정당성을 부여하므로 그 철학적 존재를 조명하는 작가는 너를 믿는다. 교장 노릇 잘해라.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말로 서술하였다는 점에서 <믿음의 세월>은 더욱 빛을 낸다.
스승에 대한 보답은 벚나무로 형상화된다. 그가 첫 학교에 부임했을 때 교정에 있는 벚나무를 보면서 스승을 그곳으로 모시고 싶다고 생각한다. 부모를 꽃을 통해 연상한 작가는 벚꽃의 이미지로 교육자의 인격을 구현한다. 그 점에서 조명래의 수필은 감성적이든, 이성적이든 일정한 표현 양식을 지켜낸다고 하겠다.
닫으면서
수필이 지닌 속성 중의 하나는 무한한 변용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허구를 기반으로 하는 시와 소설의 특징은 변환성과 변용성에 있고 체험을 소재로 하는 수필을 비변환과 불변용성을 가진다고 구분하지만 조명래의 수필을 연구하면 그런 획일적인 구분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가 발간한 5권의 수필집이 아니라 5편의 수필만으로도 폭넓은 소재를 찾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적 형식과 산문정신이 상호 어울려 수필의 지평을 확장한 점은 그의 작품을 정독할 필요성을 재확인해 준다.
수필은 작가의 수용력과 표현력에 따라 고백의 스펙트럼이 달라지는 장르이다. 자기몰입이 수필의 주관성이라고 말하지만 수필의 본질은 아니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에세이라는 어원처럼 자율적인 실험성을 전제로 한다. 자율적 실험이란 사물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고 열린 감수성으로 사물의 가장 근원적인 의미를 해석하여 독자를 작가의 의식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조명래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벗 삼고 부모와 언제 사별하였든 그들의 존재를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온 이력의 소유자이다. 모성과 부성의 결핍이 오히려 그를 자연으로 다가가게 하고 남다른 자의식을 확보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의 수필이 보여 주는 실화와 설화의 이중주야말로 수필적 변용과 변환의 모형이 아닌가 한다.
│문학적 자전│
내 문학의 샘, 누님
조 명 래
인민군을 피해 집을 나선 남행 길.
어머니는 이불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아버지는 먹을 양식을 지게에 지고 나섰는데, 너는 내 차지였어. 갓 난 너를 업고 머나먼 길을 따라갔지. 네가 나의 피란 보따리였던 셈이야. 낙동강이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 밤길을 무작정 내닫는데 가까이서 들리는 대포 소리에 귀가 멀 지경이었어. 놀란 너는 자지러지게 울어 대었고,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닌 듯했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몰라.
전쟁이 끝나자 피란살이도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너는 여전히 내 차지였어. 날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너를 들쳐 업고 마실을 갔지. 나는 학교의 대표로 뽑힐 만큼 운동을 잘했지만 공부도 제법 했어. 그런데 사내 동생인 너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만 거야. 한번은 네 입에 젖을 물리기 위해 품앗이 모내기를 간 엄마를 찾아 나섰지. 논두렁을 뒤뚱거리며 걷다가 그만 미끄러졌어. 업은 아이가 다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몸을 가누려고 버둥대었지만 그건 마음뿐, 몸은 무논에 곤두박질하고 말았다니까.
넌 지독하게도 울더라. 오죽하면 별명을 울래미라 지었을까. 한번 울기 시작하면 아무리 달래어도 그치질 않아. 업은 녀석을 내려놓고 나도 옆에 쭈그려 앉아 함께 울었던 적도 많았어. 뭣에 심통이 났거나, 아픈 곳이 있었겠지. 아니야, 배가 고파 그랬던 것 같아. 너는 늘 젖이 부족하여 배를 곯았지. 엄마의 배가 고픈 시절이었으니 젖이 많이 나올 리가 없잖아.
엄마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네. 열여섯 처녀가 스물네 살 먹은 노총각에게 시집이란 걸 와서 보니, 밭뙈기 하나 없는 살림살이였더래.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했다 그랬어. 낮에는 들판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베틀에 올라 베를 짰대. 더러는 끼니도 건너뛰어 가며 한 푼 두 푼 저축을 한 결과 논도 사고, 밭도 샀다고 해. 그러고 보니, 내 어린 시절, 해가 짧은 겨울이나 양식이 궁한 보릿고개에는 양식을 절약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루 한 끼씩 죽을 먹었던 기억이 나네.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일어섰는데도 돌아서면 여전히 허기가 남더라.
누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6․25 때부터 시작되었다. 피란살이에서 출발하여 나를 업어 키웠던 첫 번째 고개를 넘어 집안의 가난과 고달팠던 가족사로 두 번째 고개를 넘는다.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과거 때문인지 누님의 기억력은 실로 대단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누님은 고갯마루에서 침을 삼키며 뜸을 들인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에 시집간 누님은 시집살이 십여 년에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낳았다. 바야흐로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기 시작했을 때 자형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낙동강에 묻혔던 포탄을 건져내어 천렵을 시도하다가 일행 여러 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잘 살아라 하는 유언 한마디 듣지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과 생이별을 한 것이 누님의 팔자다.
그러니 정신 상태가 어찌 온전할 수 있었겠는가. 누님은 산으로 들로 떠돌며 방황을 계속했다. 방황과 칩거를 반복하던 어느 날부터 누님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전지전능한 신이 누님의 가슴에 자리 잡은 듯하다. 신을 통하여 죽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자 했는지, 남은 자가 위로받고자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여간 남은 삶 전부를 신에게 의지하는 유일한 선택, 그것이 누님의 길이었다.
그러다가 누님은 다시 일어섰다. 어린 자식의 재롱도 거들떠보지 않다가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는 사람으로 일순 변한 것이다. 자신을 학대한다 싶을 만큼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는 등한시하면서 산을 일구어 밭을 만들고 과수를 심어 철철이 수확을 했다. 땀 한 방울을 흘리면 열 톨의 곡식이 생산된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 줬다. 일에 대한 욕심은 그까짓 죽어 썩을 몸뚱이 아껴서 뭘 해 하는 식으로 표출되었다. 신에게 의지하는 정신세계에서 벗어나 노동을 통하여 과거를 잊을 수 있는 현실 세계로 삶의 목표를 수정하였음이 분명하다.
누님은 서운한 게 많다. 좋은 세상 보기는커녕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아부지와 엄마가 여전히 서운하다. 살아생전 배부르게 먹어 보지 못한 어른들의 제삿날에 그릇에 넘치는 젯밥이 무슨 소용이냐며 서운해 한다. 그까짓 영감쟁이 하며 입을 열다가 느닷없이 나를 향해 서운함을 표출한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만 살아 있는 너는 왜 자주 오지 않았느냐 하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다.
누님은 마음이 헤프다. 여름날은 앞치마 가득 푸성귀를 뜯어 와 쏟아 놓는다. 애호박이며 가지를 자꾸만 차에 실어 준다. 손끝이 까맣게 변하도록 딴 깻잎을 켜켜이 쌓아 만든 장아찌를 아낌없이 담아낸다. 가을엔 공들여 쌓아 둔 곳간을 헐어내지 못해 안달이다. 검은콩을 주랴, 찹쌀을 주랴 하며 성화를 부린다. 두 식구밖에 없어 전번 것이 아직 남았다고 손사래를 쳐도 막무가내인 누님은 마음이 참으로 헤픈 시골 할머니다.
누님은 나보다 아홉 살이나 많다. 올해로 칠순이 훨씬 넘은 누님의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싫증이 나질 않는다. 싫증은커녕 들을수록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철이 들기 전부터 들어 온 그 이야기를 내 나이 육십이 넘도록 들었으니, 레코드판이 몇 번이나 닳았을 법하다. 이번 설날에도 어김없이 또 그 이야기를 순서도 틀리지 않고 하실 것이다.
누님의 말씀, 누님의 팔자, 누님의 리코더에 새겨진 사연이 나의 문학에 큰 비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질곡의 삶을 살아온 누님의 인생 스토리는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작은 우물이다. 추억 속에만 존재하고 있는 고향 같은 그것은 영원한 내 문학의 소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