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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작가
들꽃동인선 50┃2018년 제2집┃
상주작가
2018년 12월 15일 초판인쇄
2018년 12월 20일 초판펴냄
지은이/임술랑 외
펴낸이/문창길
펴낸곳/도서출판 들꽃
주 소/04623 서울 중구 서애로 27(필동3가 28-1) 서울캐피탈빌딩 B202호
전 화/02)2267-6833, 2273-1506
팩 스/02)2268-7067
출판등록/제5-313호(1992. 5. 15)
E-mail:dlkot108@hanmail.net
값 8,000원
* 파본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ISBN 978-89-6143-207-8 03810
발간사
인간의 문명과 새로운 패러다임
2000년 전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은 예수였다.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사랑은 바로 측은지심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이적은 그가 그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라고 원했던 것일 것이다. 그토록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것이야말로 오늘날까지 그 생명을 이어 올 수 있었던 힘일 것이다. 그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로 평등이며, 그 당시 지배 계층에 대한 반박이고 충고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정신이 오늘날 현대사회의 인간 평등과 개인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게 만든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로 발전한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현대 문명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최대치의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차별 없이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긴 예수의 진보적인 예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의 문명 발달은 과잉되고 넘쳐서 그러한 자연의 소진을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는 이 그러한 자연이 그러하지 않게 되는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문명은 무르익고 적당하게 아니면 사회적 일탈이 계속 감행된다면 이 그러한 자연은 그러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고 자연에 역행하는 행위를 지속한다면 자연이야말로 진실로 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방황은 시작되는 것이다. 자살률이 계속 상승하는 것도 그 한 징표로 볼 수 있다. 예수의 인간 개체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현대 문명이 성장하고 안정을 이루었다면, 그 문명의 과잉 발전으로 인한 인간들의 방황을 어떻게 진정시킬 것인가. 새로운 길을 이끌어 갈 패러다임을 제시할 선지자를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풍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 과욕을 제어할 수 있는 사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들은 그러한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새 시대를 이끌 지표를 세울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저 현시대를 선도하는 미디어나 이슈에 따라 관심을 쏟으며 살 뿐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문학을 하는 우리들의 작은 생각들이 글로 표현되고 또 전달되어 그것이 쌓이고 모이면 새로운 생각의 전환을 불러 올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하지 않을까한다. 인문학적 소양으로 과학은 그 모티브와 아이디어를 얻는 것임을 알 수 있듯이, 새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고 모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의 집약된 생각들을 예수는 실행한 것이며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 시대의 새로운 선지자를 탄생하게 하는 생각들을 계속하여 생산하는 것이 우리들 문학인의 사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작은 한 줄기 생각들과 글이 그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여기 상주작가 2집이라는 소책자를 내놓는 것이다.
2018년 겨울
<상주작가회> 회장 임술랑
■ 발간사┃인간의 문명과 새로운 패러다임_ 4
┃시┃
김재순
옥이네 집 근처 공원에서_ 14
사람이 되어 갔다_ 16
연변에서 오신 할머니_ 18
아프리카에 있었을까_ 20
저기 경아가 산다_ 22
김정희
우리의 인생_ 26
사랑이란_ 27
내가 살아온 세월_ 29
때 이른 첫 눈_ 31
무심한 농부_ 33
곶감_ 34
뒤바뀐 꿈_ 35
저녁노을_ 36
종이 연鳶_ 37
겨울 나그네_ 38
남수현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신다_ 42
화산리_ 43
산아래_ 44
재만이 엄마_ 46
발자국_ 48
이름의 기억_ 50
가을 한낮_ 51
겨울살이덩굴_ 52
삶_ 54
대구의료원에서_ 55
이상욱
아버지의 장화_ 58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지금_ 60
잘 살았어_ 63
임술랑
상원사 동종소리_ 68
화살나무_ 70
맷돌_ 71
산수유_ 72
부러진 스프링_ 73
전봉희
꽃 마중·10_ 76
가마솥을 걸다·5_ 77
박태기 꽃그늘_ 79
가을 소나기_ 80
포도원의 여인_ 82
정지를 지나면 비밀의 방이 있다_ 84
분홍 안개꽃 소묘 - 김광석 거리에서_ 86
기도·2_ 87
꽃같이 살아라_ 88
잠 없는 꿈_ 89
┃수필┃
임술랑
우리 시대 한국 책략_ 92
┃평론┃
임술랑
변두리 풍경들에 대한 반가사유半跏思惟 - 이윤학의 신작시들_ 98
■ 회원 주소록┃상주작가 사람들_ 112
옥이네 집 근처 공원에서 외 1 편
김 재 순
선사시대부터 조선조까지의
생활도구가 켜켜로 묻혀있어
아파트를 올리지 않고 보존된
이 공원 근처에
옥이가 산다
옥이는 국민학교 때부터 친구
가난한 시절이지만 교실이 환하도록
예쁜 옷을 입고 다닌 고명딸 옥이
구구한 세월은 깊고 거세게 흘러
흰 머리카락 북데기처럼 흩어지고
거뭇거뭇한 얼굴이 처지고
장성한 아들을 데리고 사는 옥이
몇 잔 술을 마신
옥이의 춤과 노래가
김세레나보다도 주현미보다도
나는 더 좋아
또 우는 옥이, 엎드려 우는 그의 등에
내 손을 대고 나도 함께 가끔 울지만
서로 이유는 묻지 않는다
수면 아래서 소용돌이치는
그 오랜 세월의 강을 건너는 동안
우리의 사연도 비슷했으리라
어쩌면 같은 문양은 없으리라
그의 눈물에 부서질 수도 있는 내 가슴의
문살을 지키느라 근처 공원에서도
그에게 전화하거나 방문하지 않는다
이 공원에 묻힌 유물처럼
선사시대의 지층보다 더 깊은
내 심중에
지리멸렬한 개인사는 온전히 묻어둔다
사람이 되어갔다
오늘은 세월호 4주기
소셜 네트워크 광장마다 노란 리본꽃이 만발했다
다가가지 못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세월호를 그만 우려먹으라는 남자와
그에 대항하여 몸을 떨며 덤벼드는 내 페친이 있었다
남자는 누구의 아비이고 페친은
아비가 된 적이 없는 떠꺼머리다
그날
바짝 마른 안구 때문에 안과 대기실 TV로 봤다
수백 명의 아이를 수장시키고도 물결에
편히 기댄 세월호, 아이구 소리를 냈을 뿐
마른 눈물샘은 아이들 인신공양에도
물기 한 방울 내주지 않았고
유명 영화의 한 장면처럼 봤다
다음 날 일터에서
검은 끈으로 검은 리본을 만들다가
다시 노란 끈으로 노란 리본을 접어서
선물인 듯 일터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장신구처럼 내 가슴에도 노란리본 하나 달았다
나는 오랫동안 시를 썼는데
무얼 썼던가
세월호는 아득한 이야기처럼 흘려보냈고
눈물샘을 막은 암반도 여전했다
오늘은 세월호 4주기
세월호 때문에 악을 쓰며 싸우는 페친을
무심히 지켜보다가 밥을 먹었다, 순간
솟구치는 맑은 물줄기
4년이나 파내려 가던 돌덩이가 트였다
내 친구의 아이
내 조카
내 새끼
으으으
넘어가지 않는 밥을 물고 한참을
이마를 식탁에 처박고
으으으, 나는 그렇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갔다
우리의 인생 외 1편
김 정 희
벌거벗고 울었을 적 빈 손에다 꿈 담았고
부모 그늘 포근하여 부족 없이 채워 컸지
꿈 대신 사랑 만들며 멋 모르고 지냈소
부모와 같은 상황 귀여웁게 자식 낳고
처자식 먹고 살게 밤낮 없이 일만 하니
어느덧 흰머리 덮고 주름 깊게 생겼소
어제 보낸 내 부모님 오늘 내가 그 부모라
대물림 사랑 타령 늙을진데 무슨 소용
조용히 황천 건널 때 눈물 받고 갈 것을
사랑이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얻을 수 있으며
고독한 길일지라도 외롭지 않으리
아무나 하는 쉬운 것이 아니며
편한 것도 아니지만
울고 싶을 만큼 괴롭고
엉켜진 실타래처럼 어려운 것이지
아쉽지만 용서해야 하고
곤란하지만 베풀어야 하며
따갑지만 이해해야 하고
서러울 만큼 믿어야 하리라
원치 않는 색일지라도 아름답게 보아야 하며
난감한 시간일지라도 미소 지으며 보내야 하고
죽을 수 있는 계기가 될지라도 담담해야 하며
번잡한 분위기속에서도 일관되어야 하지
바라지 아니하고
구하지 아니하며
부족하지 말아야하며
비굴하지 않아야 하나니
포장하지 아니하고
야하지 아니하며
지나치지 않아야 하고
빛바래지 말아야 하지
왜 했냐고 후회하지 말아야 하며
왜 만났냐고 뒤돌아보지 말아야 하며
판단이 흐렸다고 비교하지 말아야 하고
처음과 끝이 바뀌지 않아야 하지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신다 외 1편
남 수 현
평생을 들판에서 보낸 어머니는 노래를 배울 기회가 별로 없으셨다. 한번은 먼 전라도까지 가는 잔치 버스에서 어머니가 노래를 두어 곡 부른 후 동네에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밭에서 잡초를 뽑다가도 유행가를 크게 튼 계란차가 지나가면 일손을 잠시 멈추고 그 차가 멀어질 때까지 호미로 장단을 맞추며 몇 번 흥얼거린 것밖에 없다고 하시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최근엔 문경 오일장, 도라지를 까서 제법 짭짤한 액수의 돈을 만지신다. 오일장마다 온다는 안동 아주머니는 최신 유행가까지 다 꿰고 있어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좌판 옆 또 그 옆의 이웃들 모아놓고 박자를 짚어가며 즉석에서 노래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는데 어머니는 음정도 박자도 두어 번 만에 곧잘 익힌다고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객지 생활을 하는 두 여동생이 지난해 여름휴가를 고향에서 보낼 무렵 싱크대에 빨래집게로 꾹 집어놓은 찢긴 누런 종이상자에 삐뚤삐뚤한 필체로 쓰인 긴 내용의 글을 보고 “엄마가 시도 쓸 줄 아시나 봐”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고 한다. 그 시는 바로 안동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가르쳐준 ‘꼰니피 떠러진다고 향기가 업써지나요……’로 시작되는 유행가 가사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화산리
털모자를 눌러쓴 부자가
거뭇거뭇한 거름을 감나무 아래 푹푹 뿌렸다
그 위를 밤사이 눈이 내려
햇살이 오르기 전 눈은 물이 되었다
눈이 물이 된 울퉁불퉁한 포도鋪道 위를 입술에 물집 두어 개를 단 분홍스웨터를 입은 노파가 칠 벗겨진 등산지팡이에 털신을 신고 지나간다
햇살이 오르자
양지마에서 음지마까지
산 그림자가 천천히
지워졌다
아버지의 장화 외 1편
이 상 욱
이른 봄 남해읍 남면에 있는 신발가게에서 구입한 장화 ~
일상화된 장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버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운 사람하면 엄마 아니면 내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연인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듯도 합니다
두 딸아이의 애비된 저는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리움에 울컥하기도 합니다
고생과 헌신으로 사셨느데 옳은 대접 못 받으신 것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죄스러움도 함께하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의 거친 손등 뒤에 달린 혹 치질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시고 평생 고생하시면서도 가장이라는 외아들이라는 굴레와 멍에 때문에
더욱더 외롭고 힘드셨을 듯도 합니다
어머니를 먼저 보내신 맘 또한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을 듯도 합니다
아버지의 마지막모습
편안히 두 눈 감으시고 계신
아버지의 마른 육신을 부여잡고 우리 9남매들은 슬피 울며 보내드렸지요
돌아오시지 않는 아버지와 함께한 검은 장화가 아버지 생전에 몇 컬레 되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봄부터 가을 추수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한 검은 장화
쉬는날 없이 하루도 안 빠지시고 작은 탄광막장에서 선산부로 탄가루 돌가루 마시며 일 하실 때 함께한 장화도 아련히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겨울철 지게에 땔감나무 한 지게 지고 오실 때도 함께한 장화를 조용히 떠올려 보게도 되네요
장화 한 켤레 앞에 놓고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혀서 겨울 냇가를 건너던 그 냄새 아버지의 땀냄새가 그리운 건 아버지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한 달 가량 병원에 계실 때 병상에서의 고통을 잘 헤아리지 못한 잘못과 살아계실때 한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스러움을? 내 가슴 한켠에 묻고 살기때문 아닐까요~
진눈깨비 날리는 남도에서 맘속으로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요 보고싶습니다
올해는 내손으로 아버지 산소 형님들이 아닌 제 손으로 벌초해 드릴께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지금
눈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이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 알아지고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세월이 읽혀지니
꼭 말과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감각으로 촉으로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지내보면 그 사람이 느껴집니다
어릴적 늘 새벽 아버지 아궁이 불 붙이시며 소죽 끓이시는 소리
엄마의 쌀 씻으시는 소리 탁탁탁탁 도마소리에 눈을 떴고
눈 비비며 비틀비틀 걸어서 엄마가 뭘 만드시나 보면서 그렇게 깨곤했지요
엄마가 밥하실 때 남자인 내가
“내가 썰어볼꺼야~내가”
“잘라넣을꺼야~ 내가~내가” 하면서요
그럴때면 엄마는 선뜻 어린 제게 칼과 도마를 내주셨고
“그럼 내가 시키는대로 해봐” 하며 기회를 주셨지요
“안돼 넌 아직 어려서”
“손 다처 저리가 앉아있어 걸리적거려”
그러셨으면 저는 지금 좋아하는 일이 줄어들었거나
지금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았을듯요
바로위의 누님 두 분 때문에 여섯 번째 셋째아들인 내가 더 귀여우셨을까 싶기도하네요
위로 형님 누님들 중학교 때부터 유학하셨지만 저는 중학교가 분교지만 새로 개교하는 바람에
엄마랑 부엌에서 만날 수가 형님 누님들 보다 더 많았지요
이곳 남해 산골짝에서 지내다보니 내가 동네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사람구경하기는 힘들고 내가 뭐든 만들어 먹다보니 그 옛날 시골집 산골에서 먹었던 반찬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무우나물 볶고 된장에 박았던 고추 무치고 찰밥에 호박 범벅에 마늘대 무침에 두부조림에 시래기 나물에~
엄마가 그리울 땐 돌아가신 엄마사진 보면서
그러다 더생각나면 하늘나라로 전화를 걸어봅니다
하늘나라에서 낭랑하고 밝은 박여사 음성이 들려오면
“엄마 내다 밥묵었나”
경상도 사투리는 아이도 어른도 구분 못합니다
고만 친하면 거의 다 반말이니 말입니다
엄마랑 내는 그 누구보다 친하니 말입니다
어릴적 울엄마는 아침밥 다지어지면 어김없이 저에게
“밥다되었다 할부지 아부지 밥잡수시라고 얼른 아랫마 가서 오시라해라”
그러면 냅다 달려서
“할부지요 아부지요 엄마가 밥잡수시로 오시래요”
소리질러서 두분 식사하시라고 부르던
그때가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음식과 글씨체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어서인지
그 옛날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는 떡을 썰고 글씨를 썼나 봅니다
저는 여기 와서 성경필사를 합니다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가 되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람소리는
아침부엌에서 들려오는 도마소리이고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악기는
엄마의 다정다감한 목소리이고
세상에서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지금 이랍니다
오늘 이후의 시간들은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상원사 동종소리 외 1편
임 술 랑
이 건
밥그릇 깨지는 소리
그대와 나
그 관계가 째지는 소리
별 볼 일 없이 여겨라
별 볼 일 없이 여겨라
낮게 기다가 산을 오르는
오대산五臺山
드디어 하늘에 뿌려지는
애닳픔이여
그 옛날 아버지가 둘머친 밥그릇
마당을 굴러가는 소리
개다리소반이 다리를 쳐들고 버둥거리다가
일상日常이 된
산천초목이여
이것은 우리들의 세계
상원사 동종소리가
내 뒤통수를 후려치고
청동靑銅 살 껍질이
벌벌벌 떠는 것이여
화살나무
잎을 다 떨어버리고 겨울 화단에 선
화살나무는 굳세고 단단하다
시위를 늘이려는 그 팔뚝하며,
자세가 역동적이다
화살의 날개로 온통 뒤덮인 가지는
청동靑銅처럼 고전적인 색이다
그에게로 가까이 가 보니
가지 끝에 새 촉을 틔운 것이
움직임 없이 가만히 눈만 뜨고 있는 악어처럼
살아 있는 듯 했는데
나는 처음에는
이 나무가 바깥으로 온통 화살을 쏘아서
자기를 지키려고만 한 줄 알았다
다시 보니
화살나무는 그 내부로, 그 뿌리로,
그 자신에게로
온전히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꽃 마중·10 외 1편
전 봉 희
비가 오면 오지 마세요
미시령 고갯마루
안개 터널을 지나
울산바위 너른 품 따라
당신의 옷자락처럼
고목의 잎들이 푸르고
응달진 골짜기마다
촘촘히 앉은
봄비는 눈이 되고
삼월 꽃바람 부는
아련한 봄이라도
비가 오면 오지 마세요
가마솥을 걸다·5
부엌에는 짚불이 타고
윤이 나는 까만 가마솥에
고사리손으로 씻어 안친 쌀
뽀얀 김 올라 뜸이 들 때까지
짚 한 단이면 족합니다
고단한 밭일 끝내고
땀에 젖은 저고리
무거운 걸음으로
당신은 해거름 등짐을 지고
저 고갯마루 넘어 오십니다
당신만 오시면 김 오르는
따뜻한 밥에 김치 된장 올려
빙 둘러앉으면 되는데
어찌하여 저 고개
다 넘지 못하시고 멀기만 한지
당신이 그토록 좋아한
펄벅의 대지와
몇 정거장을 걸어가 보았다던
김지미 나오는 영화와
사막에 두어도 걱정 없다던
당신의 막내는
걸핏하면 눈물이 납니다
정말 어쩌면 좋겠습니까
벽장에 넣어둔 예쁜 구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신만 오시면 되는데
이제 밥이 다 되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