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다인 중심의 지상왕국론은 원래 초대 바리새파의 사상이었다가 오늘날 카발리즘과 프리메이슨을 통해 기독교 안에 은밀히 유입된 사상입니다. 이 뜸씨를 개신교 안에 전파한 전도자가 바로 세대주의를 창시한 존 넬슨 다아비였는데, 한 때 프리메이슨이기도 했던 다아비의 사상의 뿌리를 추적해 보면, 카톨릭 사도교회 및 오순절 성령운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어빙과, 바빌론 신비주의 환상에 사로잡힌 마가렛 맥도날드, 그리고 예수회 출신의 카발리스트였던 마누엘 드 라쿤자(가명은 랍비 벤 에즈라)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들과 같은 종류의 어두운 영이, 킹 제임스 성경을 변개시킨 대표적 인물인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인데... 영국의 세계적 헬라어 학자였던 이 두 사람은 철저한 마리아 숭배자이자 헤르메스 클럽, 유령길드, 심령연구협회 등의 설립자 및 회원이었으며, 바빌론 신비주의에 깊숙이 연루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킹 제임스 성경진영이 웨스트코트, 호르트의 바빌론 뜸씨와 같은 종류인, 세대주의 뜸씨에 흠뻑 젖어있다는 사실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다인들의 지상왕국 사상은, 그것이 카발리즘이든 시오니즘이든 프리메이스니즘이든 세대주의이든 간에, 밥티스마 요한의 밥티스마와 함께 장례를 치러야 마땅합니다! 아직도 이런 어두움의 뜸씨들이 기독교 안에서 활개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시대부터 존 넬슨 다아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환난전 휴거설을 가르치는 설교자가 없었습니다. 미국도 다아비와 스코필드가 세대주의를 퍼뜨리기 전까지는 미국 근본주의가 철저히 환난후 휴거입장이었습니다. 미국 근본주의가 세대주의로 물든 후 급작스레 현대주의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했고, 20세기 말에는 현대주의에 완전 점령당할 위기까지 왔다가, 미국 근본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킹 제임스 성경으로 대반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킹 제임스 성경의 진가를 뒤늦게 깨달은 무리들에 의해 킹 제임스 성경이슈가 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근본주의가 여전히 세대주의를 고수하면서 동시에 킹 제임스 성경을 주장하기 때문에 말씀의 권능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고개를 들다가 이내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킹 제임스 성경진영이 세대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결코 현대주의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한국상황도.... 실패한 미국 근본주의를 그대로 수입하여 옮기고 있기에, 초장부터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 교회 목사님이 킹 제임스 성경을 진짜로 믿는 건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아마도 미국 킹 제임스 성경진영을 염두에 두거나 미국신앙을 직수입한 한국 킹 제임스 성경진영을 가리켜 한 말로 보입니다만,
문제는 다른 면에서 건전해 보일지라도 세대주의 뜸씨를 분별치 못하니 진정한 변화와 말씀의 권능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을 왜 모르시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존 넬슨 다아비란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면, 초대교회 이후 주님의 날까지 줄곧 환난후 휴거의 가르침이 자연스런 재림신앙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다아비의 인터셉트`가 마지막 때의 `대미혹`이라는 의미입니다...
세대주의는 복된 소망이 아닙니다. 환난후 휴거론은 혹 실패하더라도 문제될게 없는 것은, 환난후로 알았다가 환난전에 휴거되면 더 좋고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대주의 환난전 휴거론은 만일 환난전을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갑작스레 환난에 봉착하게 되면 당황하게 되고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타협과 배도를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므로, 복이 아니라 가장 치명적인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미혹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프리메이슨이었던 존 넬슨 다아비가 예수회 출신의 카발리스트(히브리 정통주의로서 옛 바리새파)인 라쿤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형제교회에 뿌린 뜸씨였고, 그것이 미국 근본주의를 뒤엎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즉, 환난전 휴거는 중간에 들어온 뜸씨이고.... 원래는, 환난후 휴거--초지일관 환난을 극복하고 주님 앞에 선다는 것이, 복된 소망이었습니다.
(세대주의 창시자인 존 넬슨 다아비가 다아비역에서 고전 15:52의 trump를 trumpet으로 바꿔 버린 것은 살전 4:16의 공중재림과 일치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가 살전 4:16의 경우만을 trump로 번역한 것은 고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지방교회는 세대주의 뿌리에서 나왔고, 세대주의 원조인 존 넬슨 다아비는 바티칸 사본을 근거로 킹 제임스 성경을 공격한 사람입니다. 바티칸 사본은 다름아닌 부패한 이집트 사본입니다.)
재밥티스마교도라 해서 다 같은 성경신자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를 부정하면 무조건 이 이름으로 분류되었기에 순수한 성경신앙 때문에 재밥티스마교도가 된 사람도 있지만, 혼합적 신앙과 실제 이단 신앙이나 무속신앙 때문에 재밥티스마교도로 분류된 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령 모라비안 교도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요한 후스가 위클리프 성경을 보헤미안어로 번역한 후 성경에 눈이 열려 연합 형제단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가 화형당한 후 핍박을 피해 진젠도르프 백작 영내로 들어와 모라비안 교회를 이루었던 무리들도 훗날 세 갈래로 갈라졌는데, 1-친카톨릭으로 돌아간 무리들과.. 2-철저한 성경신앙으로 역사의 무대 뒤로 숨어버린 무리들... 그리고 3-중도 노선을 택한 무리들이 그것입니다.
중도파 모라비안들이 영국 플리머스 지방으로 이주한 후 그 지역에서 성경공부 운동이 붐을 이루게 되었고, 그 배경에서 영국 플리머스 형제단이 형성되어 오늘날 형제교회(브레드린)의 전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플리머스 형제단의 창시자 중에 존 넬슨 다아비가 끼어들어 세대주의 뜸씨를 퍼뜨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원래 형제교회의 뿌리인 후스파가 킹 제임스 성경의 전신인 위클리프 성경 때문에 생긴 무리임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요한 후스가 로마 카톨릭 사제이자 프라하 대학 총장으로 있을 때에 우연히 위클리프 성경을 읽고 변화를 받으면서, 그 성경을 보헤미아어로 번역한 다음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변화받은 무리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을 '우니타스 프락트룸'(UNITAS PRACTRUM), 즉 연합 형제단(United Brethren)이라 불렀던 것이 형제교회의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후스가 화형당한 뒤 흩어진 연합 형제단의 일부가 진젠도르프 백작 집에 피신하면서 모라비아 교회가 생겨났고, 훗날 모라비아 교회의 일파가 영국 플리머스 지역에 들어가 성경공부 운동을 일으키면서 자연스럽게 형제교회 모임이 탄생하게 되었지요...
다시 말해서, 바른 성경인 위클리프 성경 때문에 후스파가 생겨났고, 후스파에 의해 형제교회가 태동되었던 것입니다.. 형제교회 초기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존 넬슨 다아비는 성공회 부제로 있다가 캔터베리 주교와 다툰뒤 나와서 성경공부 운동에 가담한 다음 형제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다아비는, 기존 신앙을 무너뜨리는 매우 낯설은 주장을 하면서 형제교회를 뒤엎었는데, 그것이 바로 환난전 휴거를 근간으로 하는 세대주의였습니다...
죠지 뮐러는 처음엔 세대주의에 동조하였지만, 곧바로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가 다아비에 의해 출교당했습니다.. 다아비를 추종하는 형제교회는 폐쇄파 형제교회가 되었고, 죠지 뮐러를 비롯하여 다아비를 반대하여 축출당한 형제교회를 개방파 형제교회라 부릅니다...
죠지 뮐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처음엔 다아비의 주장에 설득되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킹 제임스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다아비의 주장의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정반대의 진리만이 확인되므로, 내가 사랑하는 성경을 따르기로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후스파와 모라비아 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계승한 형제교회 지도자들은 위클리프 성경을 계승한 권위역 킹 제임스 성경의 빛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형제교회 지도자들이 죠지 뮐러의 순종을 본받기만 한다면, 저는 주저함이 없이 그들을 성경신자, 성경교회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흔히들 성경의 시대구분이나 사역의 특성구분을 편리하게 세대구분으로 이해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대구분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래 세대란 dispensation이 아니고 generation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발전했는가 하는 개념이 generation이란 세대 개념으로 성경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dispensation에 대한 원래 성경의 의미는 사도 바울의 이방인 사역의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바울의 사역은, 원가지(원뿌리)인 유다인들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이방인들에게도 골고루 분배하는(dispensing) 사역이라 해서 dispensation(분배사역)이라 한 것입니다. 성경의 용례는 고전 9:17; 엡 1:10; 엡 3:2; 골 1:25의 네 번이 전부입니다. 네 번의 경우 다 이방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분배사역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며, 소위 세대주의자들의 시대구분 개념은 전혀 아닙니다. 한 마디로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에 없는 단어를 마치 성경의 단어인 것처럼 속이고 있는 셈입니다( 존 넬슨 다아비가 맨 먼저 속이기 시작했지요...)...
문자 그대로 보고자 하는 노력과 방편은 세대주의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 신학노선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구분만 하면 세대주의라는 논리는 옳지 않습니다. 시대구분을 하고, 특성구분을 하고, 체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세대주의뿐 아니라 모든 신학체계가 다 그렇게 접근하며, 심지어는 기독교 밖의 세상 학문과 사상체계도 다 그런 식의 체계적 구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세상 학자들도 다 세대주의자일 리는 없겠지요...
세대주의의 정체성은 다름 아닌, 육적 유다인의 지상왕국론을 문자주의의 명분으로 주장하고, 환난전 휴거설을 통해서 교회를 괄호 안에 묶어서 하늘로 분류해 버리려는 시도 그 자체인 것입니다. 유다인 지상왕국론은 원래 바리새인의 뜸씨였고, 카발리즘과 프리메이슨 사상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기독교 안에서 세대주의 사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실 피터 럭크만은 세대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럭크만은 세대주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확실한 세대주의 색깔을 취한 것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럭크만 주의와 극단 세대주의를 제외한 일반 세대주의자들이야말로 원래의 세대주의 흐름에서 퇴색되고 변질된 기형이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다아비, 라킨, 스코필드, 럭크만 등은 원래 세대주의 맥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보편화된 대부분의 세대주의는 이미 정체성 자체가 혼합되고 변질된 세대주의입니다. 타협내지 수정된 세대주의라 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이 복음에 맞게 수정되었기에 좋아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세대주의 뜸씨가 더욱 가려지고 미화된 부작용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은 세대주의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그저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 정도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럴지라도 별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성경중심의 체계적이고 지적인 접근인 것 같아서 많은 경건한 지도자들과 기독교 지성인들조차 거기에 속아 양떼들을 그리로 인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대주의 영향은 근본주의 전체와 심지어는 보수신앙 전체에 급속이 퍼져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대주의 영향을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의 날이 코 앞에 닥치게 되면서, 진리의 영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세대주의 뜸씨로부터 분리시키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칼빈주의 뜸씨로부터도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성경신자가 되려면, 개신교로부터 스스로 구분되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혹은 경륜(economy)이란 용어 자체도 킹 제임스 성경용어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며, 세대주의 창시자인 존 넬슨 다아비 자신이 이미 웨스트코트 호르트의 영향을 받아 바티칸 사본으로 킹 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굳이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여 사역을 전개해 나갔기 때문에, 킹 제임스 성경이 세대주의를 퍼뜨리는 도구로 역이용되었던 것입니다. 다아비가 킹 제임스 성경을 공격한 내용들을 담은 자료들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다아비는 변호사 시절에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가 영국 성공회에 들어가서 부제로 활동하였으며, 후에 플리머스 지역의 순수한 성경공부 운동에 합류하여 형제교회 운동의 초석을 다진 천재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환난후 휴거 입장이었다가, 에드워드 어빙(오순절주의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 예수회에서 유다교 전통주의로 개종한 임마누엘 라쿤자의 저서 "영광스런 메시야의 오심"이란 책을 영어로 번역하자, 그 책을 읽고 난 후 얼마 후부터 갑자기 환난전 휴거설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 결과 형제교회 지도자들과 심한 마찰이 있었고, 특히 뉴튼과의 논쟁에서 뉴튼과 그를 지지한 죠지 뮬러(기도의 사람으로 알져진) 등을 형제교회에서 축출하고는 형제교회를 세대주의 본산지로 구축하였습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세대주의를 전파하였는데, 초기에는 미국 근본주의의 저항에 부딪쳐 힘을 쓰지 못하다가, 스코필드 주석성경이 나온 후부터 미국 근본주의의 기존 입장인, `환난통과 입장`을 뒤엎고는 세대주의적 근본주의로 변질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기이한 현상은 유럽에서 세대주의가 일어나자 현대주의 진화론 신학이 덩달아 기승을 부렸고, 미국에서도 근본주의가 세대주의로 변질되자 현대주의가 기승을 부려 마침내 미국 근본주의가 무너질 위기상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최후의 보루인 킹 제임스 성경을 사수하고 복원하려는 운동이 근본주의 진영에서 일어난 것이 바로 오늘날의 킹 제임스 성경이슈가 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근본주의도 전투적 근본주의, 온건 근본주의, 복음주의 등으로 갈라졌지만, 전투적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성경침례교회들의 상당수가 세대주의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킹 제임스 성경을 주장하다 보니, 마치 킹 제임스 성경이 세대주의를 강력히 뒷받침하는 성경인 것처럼 오해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근본주의 진영 내에서 여전히 원래의 환난통과 입장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고, 전투적 근본주의인 성경침례교회들 가운데서도 환난통과 입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 있습니다.
<머리수건 관련 부분>
제가 교회 안에서 여자가 너울 쓰는 것이 이교적 기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충분한 근거를 갖고서 한 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 어디에도 교회 안에서 여자가 너울을 쓰라는 가르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11장도 결코 그런 가르침이 아닌 것은, 너울이란 단어가 한 단어도 없다는 사실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 이런 식으로 직접적 언급도 없이 모호하게 주어진 적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울 쓰는 실행이 로마 카톨릭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교에서 행해지고 있고, 그 기원도 밝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원은 고전 11장의 머리 권위에 대한 복종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히려 바알 종교의 정결례와 인신제물의 기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의 실행이 사실상 동방정교와 성공회와 대다수 기독교계에 퍼진 것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형제교회를 비롯한 메노나이트, 아미쉬 등의 모임 지도자들이 과연, 로마 카톨릭의 그릇된 실행을, 루터나 개혁자들처럼 답습하지 않고.. 성경으로 걸러냈는데도, 그렇게 실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로마의 실행은 잘못된 기원과 의미를 가질지라도, 우리는 전적으로 새롭게 성경에서 확인해 보니, 주님께서 명령하신 규례로 확인되어서 그렇게 실행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형제교회의 창시자인 존 넬슨 다아비가 성공회 부제였다는 사실과 형제교회의 너울 쓰는 실행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만, 그보다는 성경 본문 자체를 확인해 볼 때, 전혀 너울에 대한 근거가 없고(단어조차 없다는 사실!), 더더욱 주님의 규례라는 주장은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오류라는 사실을 확인해 드린 것이었습니다.
성경이 책망한 것은, "남자 머리를 하고서 지도자 노릇하는 여자"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교회에서는 자매들이 남자 머리를 하지도 않고 여자 머리를 하고 있는데도, 너울을 써야 한다는 새로운 율법을 교회 규례로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매들이 너울을 쓰지 않는다고 책망한 것일까요?
오히려 당시 고린도의 이교주의자들 가운데는 로마에 기원한 너울 쓰는 풍습을 실행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남자 머리를 하고서 지도자 노릇하는 여사제 제도가 교회 안에 들어와 논쟁과 분열을 일으키는 것을 강력히 경계한 것이었습니다. 형제교회 지도자들은 권위역 킹 제임스 성경으로 다시 한 번 고전 11장을 정밀하게 확인해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특히 13-15절은 결론부분입니다. 앞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논쟁이 일어날지라도, 13절부터 다시 정리하여 결론을 내리고 있기에 논쟁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사도 바울의 결론은 "여자가 긴 머리카락으로 머리를 덮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풍습은 하나님의 교회에 없다고 마무리짓습니다(16절). 왜 이토록 성경에 명명백백한데도, 그동안 그토록 이해를 못해서 논쟁거리가 되어왔을까요?
그것은 그동안 그릇된 전통을 아무 생각없이 답습하고, 그 선입견을 가지고서 성경을 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3 여러분 가운데서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여자가 덮지 않은 상태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수치가 된다는 사실을, 본성 자체도 여러분에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15 그러나 여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그것이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것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덮는 용도로 그녀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
이상의 글은, 안티오크의 박만수님이 쓴 글중에서...제가, 존 넬슨 다아비``에 대한 부분만을 편집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위 박만수님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있거나, 잘못된 정보를 지적해주신다면, 우리에게 공부가 되고, 도움이 될 것 같아 편집했습니다.
|
첫댓글 본문글의 요약---원래 세대주의의 바탕은, <유다인 중심의 `지상왕국론`>이다....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세대에 따른 하나님의 경륜>이론을 도입하였는 데....세대`나 용어`의 의미자체가 성경적인 의미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 구별 되는 사안들과, 이방인과 유다인의 성경적인 구분은 옳은 것인데...상식적이고 합당한 것으로서, 이것과 세대주의의 주장`은 다른 것이다.
소위 개정세대주의, 온건한 세대주의``를 성경적이라 착각하며, 스스로를 온건한 세대주의자``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은, 교묘한 세대주의이론에 속고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수정된 세대주의`를 통하여, 교묘한 세대주의의 뜸씨들이 퍼져나가고, 자기도 모르게 <유다인의 지상왕국론>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유다인 지상왕국론은 필연적으로 환난전 휴거``로 연결되는 데, 이것은 주님재림을 앞두고 치명적인 뜸씨이자 오류이다. 이 세대주의중심에 존 넬슨 다아비`가 있다!! 이 정도 같습니다...
<참고>---한국 형제모임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엠마오성경학교` 싸이트의 ``기초교리``에 분명하게!! 이스라엘(유다인 성도)는, 천년왕국시대에 지상왕국의 하나님의 백성들이고....교회(신약성도)는 천국(하늘)백성들``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형제모임에 속하신 형제분들은, 이점을 유의해서 살펴보시길 권유드림니다.
근본주의 (세대주의) 와 신비주의 (오순절 주의)가 같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 이라는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이 두 교파는 극 과 극인데, 이 둘의 "우리의 믿음" 란을 보면 방언,기적,표적,등엔 다를지라도 환난전 휴거 만큼은 일치 하고 있읍니다.
오래전부터 계획해온 사탄의 계략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것입니다.
네..저도 토기그릇님과 같은 인식이고 추정`입니다. 한국에서 저 <세대주의>에 대한 반박에서만큼은 !! 박만수님을 따라갈 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한편, 언약주의 칼빈주의측에서 세대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똥묻은 놈이 겨묻은 놈을, 비판하는 꼴`입니다...
저는 다비의 어머니가 유대인으로 알고 있습니다..세대주의 이론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성경을 풀이한 이론입니다..다비가 한때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세대별로 인간의 반역과 실패와 심판이 있다고 하는데 어색한 부분도 많습니다..큰 보좌의 심판을 천년왕국만의 심판으로 보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할 것입니다..자꾸 나누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계시록 부분에서, 교회를 환난 전에 휴거 시켜버리니 그 이 후가 전혀 흐름에 맞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세대주의 핵심은, 유다인 제일주의! 인데....세대에 따른 하나님의 경륜....어쩌고하는 것은 미끼`이자 포장`이지요....그럴 듯 하니까, 유사하니까...사람들이 속고, 자칭 자신도, 온건한 세대주의자`라 자처하는 데....갑갑한 상태` 입니다....전에 저 역시, 수년간을 골수세대주의자``라, 자부`하였답니다. ㅜㅜㅜ....박만수님과 다른 분의 논쟁을 구경하는 중, 비로소 세대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고마운 일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이 보는 산상수훈이나 마태복음 24장 등의 해석은 본질에서 많이 벗어 났습니다..어빙과 라쿤자 관련도 그저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자들이 있으니 한심할 따름입니다..세대주의는 하나의 주의(이즘)이며 이론일 뿐입니다..최근에 이것을 성경 위에 올려 놓은 부류들을 보면, 저의 신앙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이런 이론과 주의를 전혀 모르고도 신앙에서 좋은 모본이 된 자들이 많았음을 아무도 부인 못할 것입니다.
세대주의에 관한 한 저는 이미 오래 전에 결론을 내렸습니다..한번 정도는 훑어보되 여기에 빠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제가 알기로는 형제모임에서도 세대주의를 직접 모임에서 가르치거나 교제 내용에는 들어가지 않는 듯합니다..형제모임이 세대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장로교 등과는 다르다 라는 의미에서, 상징이나 모토 정도로 내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물론 형제모임에 골수 세대주의 신자도 섞여 있다고 봅니다..전반적인 킹제임스 진영도 마찬가지 이겠지요.
13.여러분 가운데서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여자가 덮지 않은 상태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위의 바울의 질문에 여러분은 뭐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여러분의 대답에 따라서 14절/15절/16절의 의미를 알수있을것 같습니다...
전부 ``마땅치 않다!! ```이렇게 답하시겠지요....핵심은 그게 아니고, 머리통(헤드)를 덮는 것이, 긴 머리털이냐? 수건이냐? 이것입니다....저와 토기님, 오주영`님등은, 긴 머리털`이라고 주장하고....하토브님과 고헌님은, 수건`이라고 주장하시는 상황이랍니다...
인터넷의 한계를 느낍니다.
제가 말한 의미를 오해 하신것 같네요.... 바울이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바울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은 간단합니다..... 예/아니오 둘중에 하나입니다....
제 개인 적인 답은 "예" 입니다.
여자가 덮지 앟는 상태로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그래서 14절/15절/16절 말씀이 있는 것으로 분별합니다....
허걱 !! 그렇습니까? 왜 그러신지...짐작은 합니다만, ``예``라고 답하시는 분이 몇분이나 되실지 궁금하군요. 다른 분의 답변을 기다릴 수 밖에요....인터넷상의 오해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데....그렇더라도 즉시 조정하면 아무 문제없겠지요...프리티님도 편하게 참여해주세요~~~^&^ 샬롬 !
바울이 우리에게 말한 핵심이 머리에 무엇을 쓰고 말고를 말하는것이겠습니까?
그러면 쓰는것이 그리 중요하다면 너울을 만들 재료는 왜 말하지 않았는지요?
너울은 이것으로 만들어라!!! 저것은 안된다....... 이렇게 까지 말해야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만들때 세세한 부분까지 말씀하는 하나님입니다...
네...이렇게 말씀하실 줄 짐작했습니다. 이 견해에서는 저와 프리티님이 일치합니다...바울사도는 어떤 사물(너울)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염두에 두지도 않았습니다....오직 긴머리털로 머리통(헤드)에 덮어써야한다~~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여자의 짧은 머리는 안되구요....프리티님 말씀처럼, 수건같은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런데, 프리티님은 13절 질문에서 <덮지 않은 상태>를, 물체(수건)을 쓰지않은 상태로 일단, 해석하셨는데요......그런 상태`가 아니라, <긴머리털로 머리통`을 덮지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질문자체를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
말씀 안해주신것이아닌.. 말씀을 정확히해주신것으로 보입니다. 보편적으로여자가 긴머리를..남자가짧은머리를(여자머리에비해 상당히) 해왔고..또지향하는것은 사실배울필요도없는.. 아담시대부터 지금까지 본성적으로도 알고있는 자연스러운것입니다.
너울씀이 계명으로서 맞다고 일단 가정 하고 질문 하겠읍니다.
만일 제가 너울쓰는 형제 모임속에 속한 여인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을지라도 너울을 안 쓸수도 있는 자유가 있읍니다.
11장 5절의 말씀에 의거해 기도나 예언을 하지 않고 입다물고 침묵으로 있기로 했다면 너울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 입니다.
그러나 너울쓰는 형제모임에선 여인이라면 함께 찬송 부를때 외엔 입도 벙긋 하지 않을지라도, 모두 너울을 쓰고 앉아 있어야 하는게 법입니다.
이것이 맞습니까?
이것은 주님이 본성안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성애 등과같이 주님께서사람에게 주신 본성과 질서에 역행하는일들이 많습니다. 초대교회때도있고 그이전에도 남색하는자..여자옷을입는남자등 이있었고 그것을 주님은 책망하십니다.
오늘날은 더욱심해지고 무뎌졌지요..동성애 인정과 성전환..여장남자남장여자 등등 주님이 미워하시는것이 정당한듯 문화속으로 가만히들어왔습니다. 삭발여자들이나(비구니외에도) 짧은머리여성등 도 문화,패션으로 받아들이며
남자들도 여성의머리를 락커들의 락문화나 배우등등을통해 문화의 모습으로 들여와 지금은 일반인들도 많이합니다. 지금은 말세인지..본성과 반대로하면서도 본성이 원래무엇인지도 잊어버려가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사람이 자연스레 여자머리 남자머리를하고 그것을 본성으로도 알기에 행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본래 그것에는 머리됨과 권위와 순종의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더욱정확히 알려주십니다.그리고 여성의 긴머리가 바로 머리를덮음을위해 주어진 것이다..라고 결론지어말씀해주십니다.
양촌님이 말씀하신" 덮지 않은 상태"를 수건이나 /긴머리털을 덮는것 둘다 같은 의미 아닌가요?
긴머리털을 덮는것이라 해석하시면 그럼 예배시에 긴머리를 말아 올려야 됩니까?
그럼 그것이 수건을 쓰는것과 뭐가 다릅니까?
단지 방법만 바뀌었을 뿐인데요.......
단어의 뜻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쓰는 언어는 문법에 의존하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번역에 여러가지 다른 부분이 나타나는 걸로 저는 분별합니다....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성령을 통하여 조명을 받으면 성경을 사모하는 자들은 다 한 깨달음을 가질거라 믿습니다.
음.....예배시간 뿐이 아니고.....머리카락이 길게되면, 머리를 모아서 올리는 것이 오히려 편하기때문에....평상시 집안일하거나 외출시, 업무시 모두 같은 머리스타일 입니다....머리 감을때나 잘때에는 풀겠지요....
고전 11장 관련구절에서 왜? <기도와 대언할 때....> 이말이 나오는가? 이것은 이교도 여성지도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이방인의 풍습```을 지적하기 위해서 나오는 말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신약``성도들이 예배하는 장소는 특별히 구별되지 않고, 삶전체가 산제사--참 예배인데, 장소나 시간에 따라서 성경적인 머리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이것 하나만 봐도, 공적인 예배시간에만 수건을 쓰고, 평상시에는 안쓰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ㅎㅎ 꼭 말아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긴머리를 하고있는 그자체가 덮고있는것이니까요... 업스타일같은머리가아닌 그냥 긴생머리로도 전혀 상관이없다고 봅니다. ^^
ㅎㅎㅎ 상관은 없는데, 긴 머리카락은 말아 올리는 것이 활동하기에도 편하고....머리통(헤드)를 덮는 데도(covering)..확실한 것 같습니다. 실제 경험해 보신분들이 잘 아시겠지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편하기로 따지면, 예배시간에만 수건쓰고, 평소에는 머리를 짧게 파마```하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평소에 항상 1 m 이상되는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것이, 작은 일 같지만,,,,,요즘 세상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성경말씀에 순종한다는 결단`이 있어야, 따를수 있는 순종``입니다....
위의 글은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많은 내용들이 옳은 점도 있고 많은 오류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선 다비가 프리메이슨이었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제가 그것을 형제모임 사람들에게 입증할 수 있을 만큼 증거제시가 있어야 할 사항입니다. 다만 다비가 아니라 다비 이후의 몇 몇 형제들이 프리메이슨 빌딩을 빌려 전도대회를 열은 적은 있습니다.
두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비가 잘못한 것은 세대주의를 들여온 것인데, 다비 이전에는 어거스틴 등에 의해 이미 세대적 구분문제는 있었습니다. 다만 다비가 세대주의를 가장 소상하게 체계화 시켰으며 그점에서 그는세대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양촌님이 말씀하신 것에 수건 쓰는 이유가 다 포함 된것 같네요.
긴머리를 말아 올렸을때(활동상) 흘러 내리지 않게하기 위하여 수건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요?
하토브님이 올려주신 사진은 저는 그렇게 봅니다.
예배시에 수건을 쓰고 안 쓰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단지 우상 숭배자들이 하는 형식을 좇아 수건을 쓰는것은 반대합니다.
또한 예배시 수건을 쓰는것만이 예배의 권위가 있고 무슨 신령한 것처럼
하는것은 반대합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핵심이 이것이 아니겠는지요?
긴 머리를 말아올려서 핀`으로 고정하면, 굳이 수건같은 것을 쓰지 않아도 되겠지요...활동하는 데에도 수건쓰는 것 보다 더 편합니다
햇볕을 피하거나, 위생상...또는 얼굴가리는 등, 다른 목적으로 수건을 쓸수는 있습니다만, 이런 것은 여자의 머리(상위 권위)가 남자`라는 상징과 상관없습니다...
<예배시 수건을 쓰는것만이 예배의 권위가 있고 무슨 신령한 것처럼하는것은 반대합니다.>----이러한 프리티님의 주장에 동의한답니다....^^
댓글들 잘 읽어 보았습니다..커버링에 대한 저의 의견을 게시글로 곧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서로에게 유익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윗글을 보면 웃음 밖에 안나옵니다. 서달석 목사나 박만수 씨는 다비가 단순히 성공회 출신이었다는 것만 가지고, 예수회의 비밀 회원이었다거나 프리메이슨 회원이라는 등 여나 다름없는 음모론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니 가관입니다. 또 다비의 성경은 특별히 성경학자들 사이에 원어를 직역한 학자성경이라 하여 성경번역시 교과서와 같이 참고하는 성경으로 정평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들 역시 그가 세대주의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공로를 주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라쿤자의 이름은 거기에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음모론은 미국의 킹제임스 온리주의자로부터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을 올바른 성경이라고 주장하는데 있어 다비 성경이 가장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비판을 하려면 그가 주장하는 세대주의나 성경의 잘못된 것을 비판해야하는데서 그들은 그들의 주장의 대부분을 인신공격에 치우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것은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게일 리플링거의 책도 읽어보았는데 거의 대부분 80퍼센트는 번역자들의 삶이 어떻다는 등 인신공격에 할예하고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분 중에 그러한 분을 직접 대면하여 권고한 적이 있지만 그러한 습관을 버리지 못함으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진정 저자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글로 그의 마음상태가 어떠한 지 읽는 사람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글은 그의 삶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특히 박만수 씨는 자기 형제들이 형제교회에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대놓고 형제교회를 비난하기 위해 다비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동수 교수도 세대주의는 아니지만 주의 만찬으로 인해 다비를 비난하는 것을 보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교리가 좋으면 무엇이 좋은가를 설명해야지 왜 남을 비난해야 할까요. 그러면 자기 것이 좋아보일까요? 저기 떡을 가진 그 사람은 똥치는 사람이다 라고 하면 그 사람이 가진 떡은 똥이고 내가 가진 떡은 맛있는 떡이 됩니까?
자기 주장이 씨가 먹혀들어가지 않으니 인신공격이라도 해서 자기 주장을 관철시켜보겠다는 심사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가 가진 것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그러한 짓을 한다는 말입니다.
@단비 지난글들을 다시 읽어 보면서....
단비님은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어 글을 쓰는데는 탁월한 은사를 갖고 있는듯.
정동수 교수야 말로 한국의 세대주의 전도사 인것을 정말 몰라서 그러는것인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도 있는데 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