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날다
만복이는 까치발로 안간힘을 써도 머리꼭지가 또래 아이들의 턱에 겨우 닿을까말까, 할 정도로 아주 땅딸막합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몸은 어찌나 탄탄한지 열두 살인 지금까지 배탈은커녕 감기 한번 걸려본 적이 없답니다. 가슴이며 허리며 엉덩이 둘레는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하고요, 팔뚝과 허벅지 굵기는 어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네요. 무엇보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 말씀이,
‘어허 그놈, 두꺼비 몸통마냥 두툼한 손이 압권이구만’이라네요.
만복이는 머리통도 무지하게 큽니다. 넙적한 얼굴에 왕방울 같은 띠룩띠룩한 눈과 큼지막한 주먹코, 툭 튀어나온 입술은 마냥 두껍습니다. 게다가 양 볼엔 깨알 같은 주근깨가 촘촘히 박혀있고요. 그런 독특한 모습에다 어눌한 말투까지 지녔으니, 또래 친구들에겐 골려먹기 딱 좋은 대상일 수밖에요.
그런 만복이를 친구들은 이름을 놔두고 하필‘땅딸보’니‘똥짜루’니 따위의 망측한 별명으로 불러대곤 한답니다. 처음엔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게 너무 창피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슬슬 피했고, 학교에 가는 것도 미적미적 싫어했대요. 그런 만복이가 어느새 이름보다 별명에 더 친숙해졌던지, 이름 대신 별명을 불러야 대답을 하더란 겁니다.
“어이, 땅딸보! 연필 하나만 빌려주라.”
“…….”
“야, 똥짜루, 이 깡통에 물 좀 가득 떠와라.”
“…….”
“땅딸보! 너 300원 있지? 이리 줘 봐.”
“…….”
5학년 8반 친구들은 만복이가 너무 만만하다 여겼던지 물건도 예사로 빼앗고, 심부름도 곧잘 시키곤 했습니다. 만복이는 그때마다 똥 밟은 기분이었지만, 더한 해코지를 당할까봐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늘도 옷 꼬라지가 그게 뭐냐? 칠칠맞게…….”
“…….”
학교에서 갓 돌아온 만복이의 옷차림이 온통 흙 범벅이 된 것을 보고, 엄마가 짜증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만복이의 옷이 친구들의 장난질로 흙투성이가 된 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언짢은 표정으로 잔소리는 할지언정 만복이의 옷이 왜 더럽혀졌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따지지 않습니다.
내성적이고 과묵한 만복이 역시 밖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일러바치지 않습니다.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겉으로는 결코 내색하지 않으리란 나름의 각오 때문입니다.
만복이는 집에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는 둥 마는 둥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일은, 2년 전쯤 건축공사장에서 일하다 낙상하여 허리를 크게 다친 뒤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서만 지내는 아빠를 돕는 일입니다. 그 일이란 아빠의 용변을 치우고 몸을 닦아드리는 일로, 열두 살짜리가 할 일은 아니지만 장애가 있어 오른팔을 전혀 쓸 수 없는 엄마보다 힘이 센 만복이가 대신하여 해오던 일입니다.
아빠 방은 늘 어두컴컴하고 습합니다. 그리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가 뿜어져 나와 콧속의 점막을 톡톡 자극하여 잠시 있기도 거북할 지경이랍니다. 만복이는 그런 분위기나 냄새에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습니다. 대소변으로 흥건해진 아빠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은 물론, 물수건으로 아빠의 온 몸을 닦아줍니다.
두 번째 일은, 집안 청소입니다. 동생 만섭이가 여기저기 어지럽혀 놓은 것을 깨끗하게 치우고,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합니다. 이제 일곱 살짜리 만섭이는 아직 철이 없어 제멋대로랍니다. 어질러 놓고도 도무지 치울 줄 모르고, 무엇이든 수틀리면 뗑깡부터 부리려듭니다.
엄마는 그런 만섭이의 버릇을 고치려들기는커녕, 오히려‘옹냐옹냐’생떼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엄마는 만복이에겐 엄하게 대하면서도 만섭이에겐 여간 살가운 게 아닙니다. 그런 엄마의 태도에,
‘나만 굴다리 밑에서 주워 온 자식이라 그런가?’
서운한 생각도 잠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 할 일이란 오로지 만복이 그 자신만을 위한 일입니다.
한 평 남짓 베란다 한 귀퉁이에 마련된 비밀의 장소, 즉 아지트에서 만복이는 슈퍼맨으로 변신합니다.
“얏호~! 날아라, 슈퍼맨!”
그 시간이나 그 장소만큼은 제아무리 엄마라도 빼앗을 수 없으며, 막무가내인 만섭이 조차 절대로 방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3개월 전쯤이었을 거예요. 그날도 엄마는 일하러 나간 뒤, 늦은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팔이 불편한 엄마는 일주일에 이틀은 인근의 아파트단지로 재활용품 분류하는 일을 하러 갑니다. 우연히 알게 된 그 아파트단지 부녀회장의 특별한 배려로 그 일을 하게 되었다나 봐요.
“이 일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우리가 굶지 않고 버티는 거야.”
엄마는 그 일만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는 일이 없습니다.
만복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 나간 엄마의 귀가를 기다리다가, 무심코 티브이에서 방영된 슈퍼맨 리턴즈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슈퍼맨에 열광하게 되었지요.
그 뒤로 슈퍼맨 1편부터 5편까지와 슈퍼맨 언바운드, 슈퍼맨 비긴즈, 그리고 최근에 선 보인 슈퍼맨 맨오브스틸까지 슈퍼맨 시리즈라면 단 한 편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몇 번씩 봤는지 모릅니다.
만복이의 아지트에는 슈퍼맨과 관련된 것이라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슈퍼맨 비디오테이프가 네 개나 있고, 슈퍼맨 맨오브스틸 영화포스터도 어렵게 구해다 놨습니다. 슈퍼맨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티도 여섯 벌이나 있고, 슈퍼맨 모자와 슈퍼맨 미니어처도 세 개나 됩니다.
그 외에 슈퍼맨이 그려진 것들로 접이식 칼, 딱지, 책갈피, 만화책, 버클, 운동화, 스카프 등등 가짓수로 치면 100가지가 넘습니다. 그 많은 물건들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것은 역시 슈퍼맨 의상입니다.
이 슈퍼맨 의상도 집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헌 가재도구처럼 엄마가 재활용품 분류하며 얻어 온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색의 옷가지들을 이용해 만들어 준 것이랍니다. 만복이의 눈에는 진짜와 거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슈퍼맨 의상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만복이는 보무도 당당하게 학교로 향했습니다. 슈퍼맨 의상을 입고 밖으로 나서기는 처음입니다. 발걸음도 날아 갈듯하고 두 팔의 알통이 불끈, 힘이 저절로 솟구칩니다. 슈퍼맨으로 변신한 이상 두려운 상대가 있을 리 없습니다.
“야, 슈퍼맨이다!”
“멋지다. 슈퍼맨 최고!”
“슈퍼맨 만세!”
“슈퍼맨, 세상을 구해줘요.”
지나치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칩니다. 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문을 들어서자 운동장에서 모여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르 몰려와 슈퍼맨을 에워쌉니다.
“슈퍼맨이다!”
“슈퍼맨, 하늘을 날 수 있어요?”
“와, 슈퍼맨 알통 좀 봐라.”
“슈퍼맨 아저씨. 재용이 좀 혼내주세요.”
아이들은 슈퍼맨 알통도 만지려들고, 옷이며 망토를 잡아당기기도 합니다. 슈퍼맨은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제자리를 맴돕니다.
“뿌아앙~ 쓔우웅~!”
슈퍼맨은 허공을 가르며 하늘 높이 치솟다가 다시 지구를 향하여 쏜살같이 내려갑니다.
“삐리리리리링~!”
비행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입니다.
“악당들아, 꼼짝 마라!”
슈퍼맨의 입에서 우렁찬 고함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악당이라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도망가야 할 판입니다. 그때,
“야, 이거 땅딸보 아냐?”
“땅딸보 맞네. 땅딸보가 슈퍼맨? 디게 웃긴다, 웃겨.”
5학년 8반 친구 몇몇이 슈퍼맨을 둘러싼 아이들을 헤치고 다가섭니다.
“이거 완전히 쌩 까고 있네.”
평소에도 누구 못지않게 만복이를 괴롭혀왔던 동식이입니다. 동식이는 슈퍼맨 의상을 멋지게 차려입은 만복이에게 공연한 질투심이 일었던지 검정색 매직을 끄집어내더니 슈퍼맨 의상 여기저기에 낙서를 해댑니다.
‘땅딸보’
‘똥짜루’
만복이는 분한 마음에 동식이 얼굴에 주먹을 날립니다. 평소의 만복이라면 어림없는 행동이지요. 그렇지만 주먹은 빗나갔고, 되돌아온 것은 무수한 발길질과 주먹세례입니다.
만복이가 운동장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코피를 흘리고 있을 때, 다가 간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바로 같은 반 부반장 류혜진입니다. 만복이가 그간 내색을 안 했을 뿐 속으론 혜진이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혜진이만 보면 너무 황홀하여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그런 아이가 만복이에게 다가가 그가 흘린 코피를 휴지로 닦아주고 있습니다.
“동식이 저 자식, 정말 나쁜 놈이다.”
“…….”
“너 힘 쎄잖아. 그러니 당하지만 말고 같이 때리란 말이야.”
“나 힘 쎈 거, 혜진이 니가 어떻게 알았지?”
“만복이 넌 키는 작아도 몸이 좋잖아. 진짜 슈퍼맨 같아.”
“진짜로?”
“응, 진짜로.”
만복이는 맞아서 욱신거리던 곳이 씻은 듯이 나은 기분입니다. 전혀 아프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기운이 펄펄 넘쳐납니다. 혜진이가 만복이 옆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옅은 꽃향기가 만복이의 코끝을 자극합니다.
“슈퍼맨은 정의의 사나이야.”
“그래, 맞아.”
“지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슈퍼맨이 나타나서 도와준다.”
“응. 그랬어.”
“만복이 너는 진정한 슈퍼맨이야.”
“응, 고마워. 혜진아.”
한 달에 한번 있는 운동장 조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혜진이가 교실 쪽으로 달려갑니다. 혜진이가 뒤돌아서며, 두 손바닥으로 스피커 모양을 만들어 만복이에게 소리칩니다.
“슈퍼맨! 하늘 높이 날아서 세상을 구해줘.”
“알았어.”
만복이도 두 팔을 번쩍 들어 대답합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운동장은 모여든 아이들로 소란스럽습니다. 학년별로 반별로 정렬을 이루고‘마이크 테스트입니다’란 방송과 함께‘찌지지직---’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높다란 단상에 선생님 한 분이 올라가셔서 아이들의 줄과 열을 정리하십니다.
“먼저, 교장선생님 훈화가 있겠습니다.”
선생님 소개에 이어 교장선생님께서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만복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슈퍼맨. 하늘을 높이높이 날아서 세상을 구한다.”
그 소리는 교장선생님 바로 뒤쪽, 학교 본관 옥상이랍니다. 교장선생님도 여러 선생님들도 뒤돌아서서 옥상을 올려다봅니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아이들 또한 옥상에 우뚝 서서 두 팔을 높이 치켜든 만복이를 올려다봅니다. 만복이의 슈퍼맨 의상은 아침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하게 빛납니다.
“와, 슈퍼맨이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이어집니다.
“슈퍼맨, 높이 날아 세상을 구한다.”
만복이는 두 손바닥으로 소라고둥을 만들어 운동장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옥상 난간에서 두 팔을 활짝 벌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운동장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뿌아앙~ 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