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자 파우스트의 사이버 기행
- 최근 독일 「파우스트」 공연의 야누스적 양상에 대하여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항상 열망하며 노력하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
-「파우스트」 중에서
1. 200년을 기다려 온 <파우스트> 초연
2000년 7월 22일/23일은 독일 연극사에 한 획을 긋는 날이 되었다. 하노버의 세계 박람회장에서 「파우스트」가 '초연'되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 초연이라니? 독일이 자랑하는 최고의 고전이요, 웬만한 사람들은 대사도 줄줄 외운다는 {파우스트}, 발표된 지 거의 200년이 다 된 이 고전작품이 이제사 초연된다는 말은 정말 뜻밖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70여 년에 걸친 「파우스트」 공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의문은 쉽게 풀린다. 지금까지 전작을 삭제없이 그대로 무대에 올린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연출가 페터 슈타인(Peter Stein)은 자신의 이번 무대가 「파우스트」 공연사상 최초의 무삭제 전작공연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초연'이란 말을 의도적으로 남용했다. 괴테가 60년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총 12,110행의 운문으로 되어있어 전체 텍스트를 그냥 읽는 데만도 13시간이 소요되며 총 공연시간은 거의 21시간이나 걸린다.
{파우스트} 제1부는 '헌사', '무대 위의 전희', '천상에서의 서곡' 등 3부분으로 구성된 서막과 '밤', '서재' 등 개별 제목이 붙은 25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2부는 전형적인 고전 비극구조인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괴테 필생의 역작인 {파우스트}는 공연사적 측면에서도 작품 생성사만큼 길고 복잡한 미완의 길을 걸어왔다. 르네상스 이후 최후의 전인적 인간형, 위대한 교양인, 예술인의 모델로 남아 있는 괴테. 영원한 이상을 좇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파우스트처럼 그의 생애는 진실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탐색이었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학문과 인식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노력하는 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전형인 그는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칠 수 있는 그 한 순간을 맛보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계약을 맺는다. 이때부터 시공을 넘나드는 파우스트의 여행은 시작된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에게 이끌려 마녀의 산과 지하세계, 현실과 신화의 세계, 북구와 그리스를 넘나드는 여행길은 한 영혼이 인간 존재와 욕망에 대한 답을 찾아다니는 내면 탐구의 길이기도 하다. 스트린드베리가 {파우스트}를 "괴테의 자서전이며 예술적 형태로 재현된 괴테의 일기"라고 보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괴테가 파우스트 소재를 작품화하기 시작한 것은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생 시절이었던 1773년에 쓴 {파우스트 초고}에서부터였다. 그 뒤 미완의 시도로 남은「파우스트 단편」(1790)을 거쳐 {파우스트 1부}의 간행은 1808년, 쉴러의 적극적인 권유로 이루어졌다. 오랜 기간 작업을 중단했던 괴테는 1824년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해 영웅적으로 전사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제2부 집필에 들어간다. 그리고 사망 몇달 전인 1831년 말에 완성을 보지만 제2부는 출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서랍 속에 꽁꽁 감춰놓는다. 괴테 스스로가 "별난 구조물"이라고 평가했던 제2부를 동시대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우려에서였다. 괴테의 비서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이 1932년 유고전집의 1권으로 출판해 빛을 보게 되었지만 당대 사람들의 반응은 작가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파우스트}가 무대에서 빛을 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1부는 발표 직후에도 일부 장면을 무대에 올리는 시도가 있었지만 초연은 계속 미뤄져 1829년 1월 14일에 이르러서야 브라운슈바이크 궁정극장에서 클링에만(August Klingemann)의 연출로 올라갔다. 제2부에 대해서는 공연이 불가능한 레제드라마(Lesedrama, 무대공연을 전제로 하지 않은 독서용 희곡이라는 뜻)로 치부되었고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더욱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일부 장면들을 산발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공연은 많았지만, 제2부는 1932년 괴테 사후에 출간되어 1854년에 가서야 첫 공연이 이루어졌고 1부와 2부가 함께 최초로 공연된 것은 1876년이었다. {파우스트} 제1부와 제2부의 전작 초연무대는 1875년 오토 드브리엥(Otto Devrient)이 5월 6일과 5월 7일 양일 저녁에 걸쳐 공연함으로써 성사되었다. 이때에도 대본은 역시 원작에서 많은 부분을 삭제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무대에 오른 「파우스트」는 독일에서만도 지금까지 무대에 올린 제작건수가 거의 1000편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지난 170년간의 「파우스트」 공연사는 다른 고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각 시대상이 반영된 무대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원작 재현의 걸림돌이 되는 방대한 분량과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서사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이미 정전화(正典化)된 다른 고전작과는 구별되는 이중적 공연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늘 미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파우스트」의 연출가에게는 각기 자기 시대에 맞는 '변주'와 더불어 '완주'라는 또 하나의 과제가 제시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무대가 고전작품에서 찾는 매력은 박물관의 전시용품같은 영원불변의 절대적 가치라기보다는 브레히트의 '소재가치론'이 지적하는 소재로서의 효용성이다. 고전의 가치는 해체와 변주를 통한 재구성의 소재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작품은 일반적으로 원작을 무대에 충실히 재현한 '정전'공연이 따르기 마련인데 포스트모던적 무대의 특징은 이 정전에 도전해서 원작을 해체하고 유희적으로 뒤집어 놓음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완으로 남아있는 <파우스트> 공연사에서는 해체를 통한 '재구성'과 더불어 아직도 무대상 완성을 위한 '재현'적 노력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0년간 수많은 자의적 해석과 해체작업을 거쳐 최근에야 무삭제 전작공연이 이루어진 파우스트의 공연사는 어떻게 보면 다른 고전작품이 걸어온 길을 거꾸로 밟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여기서는 이런 두가지 양상을 대표하며 주목을 받았던 최근 독일 공연의 예를 들어 {파우스트}가 지닌 무대 잠재력과 성과를 가늠해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과연 우리 무대에서는 어떤 식의 접근이 요구되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우선 자의적 해석과 해체작업으로 파우스트를 재구성해서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 예로서 아이나 슐레프(Einar Schleef)의 프랑크푸르트 공연과 크리스토프 마르탈러(Christoph Marthaler)의 함부르크 공연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어서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무대에서 「파우스트」를 완성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무엇보다 원작이 지닌 모든 현대성을 보여주겠다는 슈타인의 최근 공연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볼 것이다. 또한 이 공연에 대한 반응을 토대로 이 작품이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공연이 진행되어야 할 것인지도 전망해 보고자 한다.
2. 프랑크푸르트에 등장한 마약중독자 파우스트
1990년 6월 30일 프랑크푸르트의 일간지들은 아이나 슐레프가 연출한 「파우스트」를 보도하면서 12명의 '복제'된 그레트헨이 소변보는 자세로 두명씩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양동이 위에 앉아 있는 공연사진을 크게 실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파우스트 거세"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대담하고 자유롭게 만든 이 <파우스트>공연은 70년대 이래로 연출중심 공연이 일반화되어 있는 독일 연극풍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등장인물이 겨우 5명 밖에 안되는 이 공연에 참여한 배우는 모두 32명이나 되었다. 그레트헨 역에 14명, 파우스트 역에 11명, 마녀 5명, 악마 1명, 메피스토펠레스 1명 등으로 배우들이 '멀티플 캐스팅'된 것이었다. 마르틴 부트케(Martin Wuttke)가 맡은 메피스토펠레스만 유일하게 한 배우가 일관되게 연기해 낸 인물이었다. 도입부의 파우스트 독백에서 시작해 제2부의 마지막 장면까지 대사는 여러 명의 합창으로 반복적으로 구사되었다. 이런 코러스의 반복적 대사는 90년대 독일 무대에서 유행하는 현상이기도 했지만 이를 응용해 개인적 등장인물들까지 모두 코러스로 복수화기켜버린 것은 슐레프의 기발한 발상이었다.
광적이고 광대적인 메피스토펠레스를 연기해 인기를 모았던 마르틴 부트케는 여자 속옷을 입고 등장하거나 아예 아랫도리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나타났는데, 이미 다른 공연을 통해 남성 벗기기가 '장기'라고 워낙 소문이 나있던 터라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 배역의 옷을 벗기는 데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슐레프의 무대에서 수영복 차림의 그레트헨들이 잠시 가슴을 드러냈다는 게 더 큰 화제거리였다. 문제의 장면은 괴테의 원작에서 그레트헨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옷을 벗으면서 파우스트가 선물한 목걸이를 걸어본다고 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슐레프는 이 침실장면을 소년원으로 바꿔 놓았다. 장면은 그레트헨들이 소매없는 노란 수용소 가운을 입고 손에는 번쩍거리는 양동이들을 하나씩 들고 행진해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원작에 있는 대로 '툴레의 왕'이라는 노래를 합창으로 부르며 가운을 벗었다. 핑크빛 수영복을 입은 그레트헨 코러스가 둘씩 짝지어서 서로 등을 대고 용변 보는 자세로 양동이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기존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상에 대한 도발적 도전이었다.
연극비평가 호르스트 쾨프케(Horst K pke)는 "슐레프의 공연에서는 작가 괴테가 정해 놓은대로 표현된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며 원작에서 너무 자유롭다 못해 원작을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1990. 7. 2). 4시간동안 공연된 슐레프의 「파우스트」는 {파우스트 초고}와 {파우스트 제1부}, {파우스트 제2부}에 나오는 여러 장면을 임의로 선택해 순서를 지키지 않고 자유로이 섞어 놓거나 합쳐버렸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괴테와 아이나 슐레프의 모티프를 바탕으로 자유로이 구성한 연극"이라고 제목을 붙였어야 옳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원작을 알지 못하는 관객은 사실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우리만치 철저하게 해체해서 재구성되었던 것이다. 공연 1부는 {파우스트 제1부} 서막의 '무대 위의 전희'와 '헌사'에 이어 '마녀의 부엌'의 일부분이 전개되었고 {파우스트 제2부}에 나오는 '장례식' 장면으로 끝이 났다. 휴식시간 뒤에 계속된 공연 2부는 3시간동안 6개 장면들이 진행되었다. 우선 {파우스트 제1부}에 나오는 '부활절 산책'장면으로 시작해, '아우에르바하 선술집', '계약', '그레트헨의 이야기', 그리고 '마녀의 부엌'과 {파우스트 제2부}의 제5막에 나오는 여러 부분을 꼴라쥬해서 하나로 합친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파우스트 제1부}의 1막인 '밤'에서 파우스트가 독백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원래 파우스트 드라마의 시작인 '밤' 장면에서 끝이 나는 것은 슐레프가 황량한 현대를 방황하는 마약환자인 파우스트가 더 이상 희망없는 어두움의 세계를 전전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원작 제2부에서 재정난과 전쟁의 위험에 처한 황제의 나라는 피폐한 구동독의 상황에 빗대어 묘사되었다.
원래 구동독 출신인 슐레프는 동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술과 무대미술을 전공했고 그의 연극활동은 베를린 앙상블에서 트라겔렌(B.K. Tragelehn)과 함께 작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1976년 베데킨트의 {봄의 깨어남}을 공연할 때 당국의 간섭이 노골화되면서 제재를 많이 당하자 서독으로 넘어온다. 80년대 중반부터 프랑크푸르트 극장의 상임연출로 활동하면서 주목을 받게 된 그는 특히 '코러스식 대사'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만들었다. 그는 통독 후 다시 베를린 앙상블에서 활동하다가 당시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페터 차덱(Peter Zadek)과 하이너 뮐러(Heiner M ller)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는 바람에 해임되었다. 그 후 1995년 하이너 뮐러가 대권을 잡자 그를 다시 베를린 앙상블로 불러들여서 브레히트의 {주인 푼틸라와 그의 종 마티}에서 푼틸라 역까지 맡겼지만, 슐레프는 자신이 연출할 다음 작품의 연습기간이 너무 짧게 배정된 것에 불만을 품고 베를린 앙상블을 떠났다. 슐레프의 작품에는 하이너 뮐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동독에서 실패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애도와 분노가 곳곳에서 확인된다.
슐레프가 「파우스트」에서 인물의 대사를 합창으로 반복하게 한 것은 망해버린 구동독의 처참한 상황을 애도하는 장송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서막에서부터 마태의 수난곡 멜로디에 맞춰 부르는 코러스의 대사로 시작되었다. "누가 집을 이렇게 잘못 지었는가?/ 부삽으로 지었나 꽃삽으로 지었나?/ 누가 강의실 시설을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었나?/ 책상과 걸상은 어디 있는 건가?/ 잠시동안만 빌려다 놓았던 거로군." 그리고 제2부의 파우스트 장례식 장면 역시 유령들이 모래와 진흙탕 위에 세웠던 구동독의 장례식으로 둔갑시킨다. 코러스의 의상도 구동독의 군복외투를 입히고 스탈린과 호네커의 초상화에 경례를 붙이는 군국주의적 사열을 연상시키는 행진장면도 빈번했다.
이런 군사주의적 이데올로기나 망가진 재정상황 등 구동독의 말기 상황을 염두에 둔 작품해석은 통독 전후의 다른 「파우스트」공연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 대표적 예는 같은 1990년에 볼프강 엥겔(Wolfgang Engel)이 드레스덴에서 연출해 호평을 받은 「파우스트」를 들 수 있다. 엥겔은 제2부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황제를 재정난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불법으로 돈을 찍어내게 하는 장면에서 서독의 천마르크짜리 지폐를 길이가 1미터나 되게 확대해서 뒷배경으로 붙여놓을 생각이었다. 1988년에 이미 연습에 들어갔던 당시의 사진은 이를 확인케 하는 자료로 남아 있다. 그러나 통독 후 동독이 실제로 이 서독화폐를 지원받아야 하는 현실에 처하게 되자 엥겔은 자신의 발상이 관객들로부터 구태의연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워 이 배경 그림을 없애버렸다. 그 대신 황제와 신하들이 크레디트카드로 금전자동출납기에서 돈을 무조건 인출하는 장면을 집어 넣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슐레프의 공연에서는 음악 역시 나치시대 남용되었다는 이유로 터부시되고 있는 독일민요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가 하면 유태인 수용소의 반나치 저항노래도 코러스로 연주되는 등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슐레프는 시민계급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 파우스트를 마약환자로 설정하고 그가 마적인 영혼세계와 소통하고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것을 마약의 환각상태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래서 제1부의 첫 독백장면에서도 마약을 복용해서 점차 환각에 빠져드는 것으로 표현하고 천사들의 소리 역시 이 환각상태에서 듣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제1부에는 다양한 마약들이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밤'장면에서는 죽음의 마약, '마녀의 부엌에서는 정력제와 회춘용 약물, 숲과 동굴에서는 자연마약 등 상황에 따라 갖가지 마약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2부에서는 마약을 복용하는 장면은 없는 대신 주인공이 시공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세계, 즉 꿈의 세계, 신화의 세계, 환상의 세계로 몰고 다니는 것 자체가 그가 환각상태에 빠져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무대 역시 우울한 환각상태에 걸맞게 검은 색과 어두운 조명으로 일관했다. 서막과 '거리' 장면, '성 내부' 등의 몇개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두운 톤으로 갔다. 슐레프는 자신의 연출작업과 미학적 관점을 소개하는 {마약, 파우스트, 파르치팔}이라는 책에서「파우스트」의 전체 27개 장면 중 7개 장면은 완전히 어둡게, 6개는 희미한 불빛 아래, 10개는 약간의 조명을 투입했고 밝은 장면도 자연광이 아닌 '환각상태에서의 빛'을 연출하도록 했다고 밝힌다. 조명도 암울하고 종말론적인 텍스트의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1988년 프랑크푸르트 극장의 오페라무대가 화재로 소실된 뒤 보르켄하이머 전동차차고를 임시 극장으로 쓰던 시절에 그가 공연한 두 번째 괴테작품이다. 1989년에 「괴츠」(Ur-G tz)를 재구성해서 주목을 받은데 힘입은 그는 이 전동차차고의 독특한 구조를 이용해 개성있는 무대를 선보인다. 이 차고는 길이가 매우 길고, 높은 천정에 철재 구조물들이 놓여있어 그 위에 올라가서 연기를 할 수도 있다. <파우스트> 공연에서는 무대 양쪽에 비스듬하게 검은 천으로 된 벽을 세워 양벽이 무대 뒤쪽 중앙에서 출입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게끔 했다. 그리고 이 양쪽 벽을 따라 여러 명의 파우스트와 여러 명의 그레트헨이 늘어서서 대사를 코러스로 주고 받았다.
슐레프는 「파우스트」 프로젝트를 계속 발전시켜 1993년 10월 16일 베를린 쉴러극장에서 다시 새로운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적자를 면치못해 경영난에 허덕이던 쉴러 극장은 공연 2주 전에 폐쇄되고 말았다. 덕분에 슐레프는 「파우스트」를 예정에 없던 야외공연으로 돌려 쉴러극장 앞 마당에서 막을 올렸다. 자정에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1000여명의 관객이 둘러선 가운데 강행된 공연은 배우들이 횃불을 손에 들고 진행했다. 이날 공연은 공연자체보다도 통독후 독일 정부의 안일한 상업주의적 문화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쉴러극장 폐쇄를 반대해온 문화예술인들의 항의성 집회로서 의미가 컸고 문화투쟁적 이벤트로서 주목을 받았다.
3. 파우스트를 뒤집어 파우스트 뿌리찾기
- 「괴테의 파우스트 √1+2」 함부르크 공연
슐레프가 파우스트를 마약중독자로 '모독'하더니 1993년 함부르크의 무대에서는 연출가 마르탈러가 한술 더 떠서 파우스트를 알콜 중독자로 만들어버렸다. 이 공연에서도 파우스트가 살고 있는 곳은 세상 종말 이후의 시대. 그리고 파우스트는 철저히 반파우스트적인 인물이다. 이미 모든 것을 다 겪고 난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동안 노력하고 방황해 온 삶에 지쳐있는 상황이다. 깡마르고 애처로워 보이는 메피스토펠레스(다섯명중 우두머리 격인 지기 슈빈텍Siggi Schwientek이 처음에 등장) 역시 며칠을 못잔 듯 졸립고 지친 표정이었다.
고단한 삶에 지친 영혼의 상태를 반영하듯 공연템포는 굉장히 느렸다. 연출가 마르탈러의 말에 따르면 초고속으로 돌아가는 우리 시대에 역행하는 '느림의 미학'을 반복함으로써 관객들을 자극하겠다는 것이었다. '무대 위의 전희'장면은 이 반복적 '느림의 미학'을 참을 수 없을 경지까지 몰아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장면에는 극장장, 작가, 광대가 등장한다. 함부르크 공연에서는 4명의 극장장이 차례로 등장해서 닫혀진 막 사이로 객석의 분위기를 탐색하는데 그 행동거지가 뒤로 갈수록 느려지고, 점점 더 자신없이 망설이는 태도로 변해갔다. 붉은 막 뒤에서 그들이 우물쭈물 중얼거리는 대사는 마르탈러의 앙상블이 처한 공연현실을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잘 모르겠군/ 어떻게 대중의 맘에 들지/ 이렇게 당황스런 건 처음이야/ 그들이 최고수준공연에야 익숙하진 않지만/ 책을 읽기는 엄청들 많이들 읽었거든/ 어떻게 하지?/모든 게 새롭고 신선하게 하려면/ 그리고 내용도 맘에 들려면?" 나비넥타이와 현란한 컬러의 의상을 입은 극장장들은 모두들 멋을 내느라 애쓴 흔적은 보이지만 어쩐지 남루하고 어색해 보이고 조금씩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 바지의 남대문이 열려 있기는 다반사이고 심지어는 그 사이로 빨간 팬티까지 삐져나와 있었다. 이 '빨간 팬티 극장장'이 네 번째로 나와서 앞의 인물들이 한 말을 멋지게 반복해보려 애쓰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결국 한 마디도 못한 채 새빨개진 얼굴을 007가방으로 가리고 세 사람에게 이끌려 막 뒤로 사라져야 했다.
원작을 과감히 삭제하고 각 장면에서 단편적으로 발췌해 임의로 나열한 대본은 그야말로 '다이제스트 대본(Player's Digest)'이었다.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지의 비평가 마틸데 랑에(Mathilde Lange)는 이 공연이야말로 교양시민의 지적 수준을 테스트하기 좋은 기회라고 비꼬면서 각 장면이 원작의 어느 부분에서 떼어다가 섞어놓은 것인지 알아맞추기 놀이라도 해보는게 어떨까 추천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몇 마디 대사만 살펴보아도 금방 드러난다. 서막 뒤의 첫 장면인 밤의 독백 장면에서 파우스트가 마치 발성연습이라도 하듯이 "아에, 우, 아! 이오오이에/ 우,이, 에에이, 우, 에이"식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모음만을 열거하며 몇번 반복한 뒤에야 의미가 연결되는 대사로 이어졌다. 이런 옹알이식 대사는 파우스트의 독백에서 자주 되풀이되었고 결국 대단원까지 이어졌다. 공연은 {파우스트}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대사가 나오는 5막의 한 장면으로 끝이 나는데, 주인공이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빼앗겨 쓰러지기 전에 이렇게 독백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이런 인간의 무리를 바라보고 싶고/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들과 함께 있고 싶다/ 그 순간 난 말해도 좋으리라/ 순간이여 멈춰라, 너 정말 아으ㅂ(du bist o n)! 이 세상에서 이ㄹ 내 흐어으/ 이에 여워 어어이이". 그리고 이 마지막 두 행의 구절은 메피스토들이 합창으로 같이 읊어준다. 원래는 "너 정말 아름답구나(du bist so sch n)"라고 했어야 할 이 대사는 이것을 말하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서 자모가 해체되어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언론보도에서 "괴테 패러디", "파우스트 꼴라쥬"라고 부른 이 공연은 팜플렛의 캐스팅 리스트만 보아도 원작을 어떤 식으로 해체하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고정된 배역은 파우스트 한명과 원작에는 나오지도 않는 피아니스트 두명 뿐. 나머지는 한 인물을 여러명이 코러스로 연기하거나 돌아가면서 차례로 연기했다. 마르탈러는 우리 시대가 파우스트 소재를 더 이상 그대로 이야기해 줄 수가 없는 시대라고 주장한다. 2차대전과 나치의 참상을 겪고 난 이 시대에는 파우스트처럼 죄를 짓고 구원받는 일이 더 이상 한 개인의 문제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모두 죄를 지었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한 사람이 질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뒤렌마트(Friedrich D rrenmatt)가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이후로는 한 영웅의 운명이 세상을 바꾸도록 되어있는 비극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고 했던 것과 같은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세상의 비극에는 그 원인도 대가도 모두 우리 공동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탈러의 무대에서 인물들은 모두 여러 명의 복수로 나타난다. 엥겔이 드레스덴 공연에서 영혼의 분열이나 자아의 이중성을 표현하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가 서로 역할을 바꾸거나 둘 다 한 인물을 연기하게 했던 것과도 구별되는 이 배역 컨셉은 앞서 관찰했던 슐레프의 경우와 양식면에서 많이 닮아 있다. 인물들이 일정한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도 두 공연이 닮은 점이다.
하릴없이 편지나 쓰고 대부분의 시간을 간이 침대에 누워보내는 4명의 그레트헨 역시 합창으로 대사를 반복하는데 이들의 의상은 40년 전 같은 극장에서 구스타프 그륀트겐스(Gustav Gr ndgens)연출로 「파우스트」 신화를 낳았던 무대를 기억나게 했다. 당시 그레트헨 역을 맡았던 엘라 뷔히(Ella B chi)는 식당 점원용 복장으로 차분한 원피스 위에 레이스 달린 짧고 둥그런 앞치마를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이번 공연에서 4명으로 복제된 셈이었다. 카리스마와 개성있는 메피스토역의 배우로도 유명했던 그륀트겐스는 「파우스트」를 5번이나 연출하고 메피토역도 직접 연기했었다. 1957년 올려진 그륀트겐스의 「파우스트」 전작 공연은 현대적 파우스트 해석의 모델로 인정받아 오늘날까지도 교과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연출가들이 극복하고 도전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있다. 이 공연의 성과는 무엇보다도 그동안 늘상 삭제되었던 '무대 위의 전희'가 지닌 극구성상의 중요성을 밝히고 이 서막을 비롯해 괴테가 {파우스트}에 구조적으로 투입한 연극적 장치들을 살려냈다는 점이다. {파우스트}의 연극적 구조는 무대 위의 무대라는 이중성을 통해 이 세상과 소우주, 대우주가 곧 연극의 세계임을 핵심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 공연에서 분명히 드러났던 것이다. 청순하고 순정적인 그레트헨을 외설적으로 패러디함으로써 마르탈러는 '파우스트 꼴라쥬'가 함부르크 극장을 압도하고 있는 거대한 선배연출가의 벽을 깨려는 시도임을 분명히 했다.
2명의 피아니스트는 다른 3명의 메피스토펠레스와 더불어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데 무대의 양편에 앉아서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연주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들의 솜씨는 너무나 서툴어서 연주라기 보다는 연습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정도인데도, 전곡을 틀리지 않고 연주해보겠다며 갖은 애를 다 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에 놓인 네 대의 피아노는 모두 벽 속에 갇혀서 건반만 겨우 보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원작의 12,110행에서 겨우 200행정도만 남았을 정도로 대사가 줄어든 이 공연에서는 음악이 대사 대신 큰 비중을 차지했다. 주막집 아저씨로나 어울릴 것 같은 표정의 파우스트(요제프 비어비힐러Josef Bierbichler 분)는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 부침'을 부르는가 하면 바그너의 '저녁별을 향한 노래'까지 불렀다. 헬레나와 파리스가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에서는 앙상블이 함께 모차르트의 성가를 부르는 가운데 메피스토펠레스가 드 사드(M. de Sade)의 외설적인 텍스트를 '거룩하게' 낭송하기도 했다.
무대 미술가 안나 피브록(Anna Viebrock)이 만든 콘크리트 벽의 무대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는 인물들의 감금상태를 시각적으로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마르탈러의 공연에 단골무대장치로 나오는 엘리베이터 역시 중앙에 설치되어 있어,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인물의 등장이나 탈출 가능성을 점쳐보게 하지만 출입구는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도망가려던 인물은 회전문이 돌아가서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마치 베케트의 「엔드게임」(Endgame)처럼 세상이 끝난 뒤에 더 이상 희망도 출구도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 사이의 헤프닝은 하나의 악몽과도 같았다. 기술과 과학의 끝없는 진보를 추구하던 인간의 광적인 오만이 절정에 이른 20세기의 끝자락에 펼쳐진 이 악몽의 무대에서는 문화적 유산과 연극 전통마저도 그저 '인용'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연극을 이끌어가는 유일한 원칙은 단편적 조각들이 혼재된 카오스 뿐이었다. 수학 공식인 루트가 붙여진 이 공연의 별난 제목은 무대에서 파우스트 1부와 2부의 뿌리를 찾아 보겠다는 마르탈러의 야심을 엿보게 한다. 물론 이번 카오스적 시도가 그 포부와 맞아 떨어졌는지는 괴테에게 물어볼 일이다.
4. 페터 슈타인의 <파우스트> 프로젝트
위에서 살펴본 두 공연과는 대조적으로 페터 슈타인의 「파우스트」 프로젝트는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다는 점에서 공연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륀트겐스가 배우로서 그리고 연출가로서 파우스트에 필생의 작업을 바쳤다면 슈타인은 「파우스트」 전작공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번 공연에 집착해 왔고, 수십년간 공을 들인 끝에 드디어 성사시킬 수 있었다.
4.1. 슈타인의 샤우뷔네(Schaub hne)
슈타인이 서베를린 연극의 1번지가 된 샤우뷔네 극장을 창설한 것도 어떻게 보면 {파우스트} 마음 놓고 공연할 전용극장을 만들겠다는 숨겨진 소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샤우뷔네는 68운동의 혁명적 분위기에 힘입어 새로운 연극문화를 만들어갈 무대를 만들자면서 페터 슈타인이 몇몇 동료들과 함께 추진해서 얻어낸 쾌거였다. 1970년 10월 8일 샤우뷔네 극장이 문을 열었고 슈타인과 함께 상임연출을 맡은 파이만(Claus Peymann)은 오프닝 작품으로 페터 한트케의 {보덴 호수를 건너는 승마}를 1971년 1월 23일 초연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공연 닷새만에 샤우뷔네를 떠나고 만다. 파이만이 샤우뷔네 앙상블을 떠나도록 결심하게 되기까지 샤우뷔네 앙상블의 분위기를 악화시킨 화근은 한트케의 작품이었다. 원래 파이만은 극장 오프닝 작품으로 입센의 {페르 귄트}를 공연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보덴 호수를 건너는 승마}를 올리겠다고 고집했고 앙상블 단원들의 반대에 부딪쳤던 것이다. 샤우뷔네를 만든 취지가 기존의 봉건시민적인 극장형태에서 벗어나 68학생 운동의 민주적 행동양식을 극장운영에서 실천하자는 데 있었던 만큼, 이 극장에서는 보수의 일원화는 물론 모든 예술적, 재정적 문제를 모든 단원과 스태프들에게 공개하고 공동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혼자 상임연출로 남게 된 슈타인은 오랫동안 미뤄온 「파우스트」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장기작업에 대한 부담과 막대한 제작경비를 이유로 내세워 극단 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외 여러 가지 갈등이 수반되면서 슈타인은 1985년 결국 샤우뷔네 대표자리를 내놓게 된다.
4.2. 2000년 하노버 세계박람회와 「파우스트」 프로젝트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쳐 계속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슈타인의 「파우스트」 프로젝트에 돌파구가 생긴 것은 2000년 하노버 세계박람회를 위한 부대공연사업을 찾던 도이체방크의 문화재단 이사장이 관심을 보이고 나서 다이믈러 벤츠사를 비롯한 독일 대기업이 지원을 약속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사업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베를린 상원과 정부에서도 재정보조가 들어오게 되었고 회원이 850명에 이르는 개인 후원회도 조직되었다. 이렇게 해서 3천만 마르크(우리 돈으로 약 160억원 )라는 엄청난 규모의 제작비는 관람권 수익과 TV방영료 등으로 30퍼센트를 자체 충당하고 나머지는 모두 지원금으로 확보될 수 있었다.
공연에 투입된 인원만 해도 배우 35명, 푸들 개 한 마리, 스태프 45명 등 80명 이상이 동원된 이 초대형 규모의 무대는 1999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해 거의 1년간의 연습기간을 거쳤다. 2000년 7월 22과 23일 양일간 하노버에서 초연이 오른 뒤 9월 24일까지 3달 공연되었고, 베를린으로 옮겨가서 10월 21/22일부터 2001년 7월 1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마지막으로 9월 8/9일부터 12월 16일까지 빈에서 공연되도록 되어 있다.
슈타인 이전에도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재현하려 했던 시도는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의 베를린 공연이 가장 손꼽힌다. 막스 라인하르트는 원전의 삭제량을 최소한 범위 내로 제한한다는 원칙 아래 도이췌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에서 1909년에 제1부를, 1911년에 제2부를 공연했다. 제1부는 공연시간이 5시간이나 걸렸고 제2부는 10시간이 걸렸다. 당시 비평계로부터 "실현불가능한 이상을 구현한 완벽한 파우스트공연"이라는 극찬을 받은 라인하르트의 공연이 {파우스트}를 '공연불가능'한 작품이라는 오명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발전해 온 무대기술 덕분이기도 했다. 특히 새로 도입된 원형의 회전무대는 엄청난 양의 장면전환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었고 신속하고 다양한 극적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슈타인은 총 21시간이 걸리는 공연을 매번 1시간 30분 정도의 단위 11개의 막으로 나뉘어 진행했고 매번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90분까지의 휴식시간을 주었다. 공연 스케줄도 두가지로 구분했는데 평일 엿새 저녁에 걸쳐 매일 3시간씩 나눠서 보는 "김밥공연(독일에서는 일본말을 써서 '스시공연'이라 한다)"과 주말 이틀간 하루종일 극장을 지키는 "마라톤 공연"으로 나누었다. 관객들에게는 이틀동안 한자리에서 연극축제를 벌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마라톤 공연이 특히 인기가 있었다
독일 언론과 비평계를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들며 막을 올린 하노버 공연은 무리없이 잘 진행되었지만, 기대에 찼던 관객들을 실망시킨 사고가 하나 있었다. 슈타인의 연출 초창기부터 작업을 같이 해온 인기 배우 브루노 간츠(Bruno Ganz)가 늙은 파우스트를 과연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가 모두의 관심사였는데 연습 중에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대신에 젊은 파우스트로 더블 캐스팅된 크리스티안 니켈(Christian Nickel)이 혼자서 배역을 맡아야 했는데,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데다가 장시간 공연의 부담마저 겹쳐서 전체 공연의 흐름에도 지장을 줄 정도로 문제가 있었다.
4.3. 베를린 아레나 극장의 「파우스트」
베를린으로 무대를 옮겨 오면서 브루노 간츠가 원래 계획대로 다시 공연에 합세하면서 슈타인의 「파우스트」는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이번 공연은 샤우뷔네에서 꿈을 성사시키지는 못했던 슈타인에게 드디어 베를린에 「파우스트」 전용극장을 마련했다는 남다른 의의가 있었다. 구동독 지역의 강변 트렙토우 공원(Treptower Park)에 서커스단 천막 모양을 본따 여러 공간으로 나눠 지은 '아레나' 극장이 지어졌다. 그 바로 옆 슈프레 강에 유유히 떠 있는 유람선 역시 이 극장에 딸린 식당이었다. 하루종일 극장에서 살아야 하는 관객들이 공연 사이사이 여기서 음식을 먹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방금 본 장면들에 대한 토론을 벌일 수 있도록 마련된 시설이었다. 휴식시간마다 방금 본 장면에 대해 토론하며 웃고 흥분하고 떠들며 다시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막간극' 역시 이런 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구경거리였다. 이렇게 극장에 들어서서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올 때까지 관객의 움직임과 참여 역시 모두 공연에 포함되도록 함으로써 슈타인은 「파우스트」극을 하나의 축제적 이벤트로 연출했다. 그것은 축제에서 연극을 만들어냈던 그리스인들이나, 바이마르에서 파우스트 전작공연을 처음 시도했던 연출가 오토 드브리엥, 잘츠부르크에서 막스 라인하르트가 연극을 바라보던 시점과 교차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축제성은 현실이 하나의 연극이요 한바탕 꿈인 것을 말하는 「파우스트」의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었다.
슈타인은 극장을 3개의 극장으로 나누어 다양한 형태의 무대를 번갈아 사용했다. 공연을 보러 극장에 들어온 관객들 역시 배우들을 따라 모두 4개 공간 사이를 부지런히 따라 다녀야 했다. 그리고 지정 좌석이 없이 매번 자리가 바뀌는 바람에 입장때마다 400명의 관객들이 '마라톤'을 달려야 했다.
이렇게 여러 공간으로 무대를 옮겨 갈수 있는 덕분에 「파우스트」의 무대는 어느 때 보다도 다양한 형태의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다. 지난 21세기동안의 과거 유럽연극사에서 나타났던 모든 무대의 파노라마라고나 할까. 여러 무대 사이를 옮겨다니며 관객들은 서막의 장터극장에서 파우스트의 서가가 있는 프로시니엄 무대, 중세 종교극, 중세 동시무대, 바로크식 궁정극, 그리스 원형극장, 인형극, 카니발 행렬에 참여했고, 배우와 관객이 함께 뒤섞인 거리극도 체험할 수 있었다. 제2부의 '기사의 홀'에서 파우스트가 그리스 세계로 들어가서 파리스와 헬레나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귀족들과 함께 구경하는 '무대 위의 무대' 장면은 하나의 연회로 꾸며졌다. 화려한 중세식 샹들리에 불빛 아래서 와인과 빵과 치즈가 차려진 기다란 식탁으로 안내된 관객들은 먹고 마시면서 헬레나와 파리스의 만남을 파우스트와 함께 구경하도록 되어 있었다. 제2부에 들어서면서 카니발을 비롯해 장면변화가 더 빈번해졌고 무대도 다채로워졌는데, 바로 이런 다양한 구조가 과거에 공연을 막는 걸림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연극의 가치도 시대적 변화에 좌우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원작의 토씨 하나 건드리지 않고 모든 대사를 그대로 갔다는 슈타인의 공연은 매번 특별히 초청된 연극계 인사가 낭송하는 '헌사'로 시작되었다. 때로는 슈타인이 직접 헌사를 읽기도 했다. 붉은 커튼 사이로 '헌사'가 낭송되고 나면 "들어들 오시오"라는 외침과 함께 배우와 관객이 모두 함께 다음 무대로 발길을 옮겼다. 가운데 놓인 무대 연단에서 극장장과 작가와 광대가 붉은 커튼을 사이에 두고 연극과 관객에 대해 논하고 있는 '무대위의 전희' 장면이 펼쳐졌다. '천상의 서곡'까지는 장터극 모양으로 무대 주변에 빙 둘러서서 관람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서막이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모두 '밤'의 장면이 벌어질 파우스트의 연구실이 설치된 전형적인 프로시니엄 무대 쪽으로 발길을 옮겨 비로소 객석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막이 바뀔 때마다 무대는 새로 바뀌었고 관객은 입장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매번 무대에 따라 새로 세팅된 객석으로 입장했다.
파우스트가 '부활절 산책'에서 연구실로 돌아오면 먼지 앉은 책장 사이로 곤충들이 나오는 장면은 각 선반에서 상반신의 나체들이 여러 곤충 모형과 함께 튀어나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무대미술은 제1부는 페르디난트 뵈거바우어(Ferdinand W gerbauer)가 맡아 비더마이어식의 비교적 평이한 무대를 제공한 반면 슈테판 마이어(Stefan Mayer)가 제작한 제2부의 무대는 좀더 현대적이고 다양한 그림들을 제공했다. 무대의 천장과 기둥을 비롯한 전체적인 틀은 수많은 스테인레스 파이프 골조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구도의 산과 궁전, 기다란 성전들이 번갈아 들어섰다. 그리고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푸른 벽의 2층 갤러리에 깜박이는 수많은 촛불들, 텅빈 검은 바닥을 수놓는 수많은 횃불, 하늘에서 눈처럼 떨어지는 장미꽃잎들이 무대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무대미술 스타일의 통일성은 스테인레스 골조로 틀을 짠 객석좌석에까지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객석은 또 무대모양을 바꾸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객석의 계단 밑에는 바퀴가 달려 있어서 그룹별로 나누어 이동이 가능했고 그때그때 필요한 무대공간에 따라 재배치되었다. 제2부 3막의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궁전' 장면에서는 헬레나가 앞쪽 무대에서 등장하고 나자 마름모꼴로 놓여있던 객석이 양쪽으로 벌어졌고 그 사이에 매트리스를 놓고 천막을 쳐서 헬레나의 궁전을 만들었다. 관객은 무대 변형과정에 동참하면서 헬레나가 파우스트를 접견하는 성대한 행사를 함께 치른 셈이었다.
극장의 한가운데 위치한 주무대의 천정은 SF극의 우주선에나 어울릴 것 같은, 여러 겹의 돌기가 있는 타원형 스타인레스 판이었다. 서막에서는 이 천정 구조물 위쪽에 신과 천사들이 앉아 천상세계를 보여주더니, 대단원의 '심산협곡' 장면에서는 여러 겹의 타원형 스테인레스 판이 우주선의 거대한 계단처럼 천상에서부터 서서히 나선형 사다리를 만들며 아래로 내려왔다. 땅 위에 쓰러져 있는 늙은 파우스트의 승천은 그 사다리를 따라 그의 영혼(젊은 파우스트를 맡았던 크리스티안 니켈 분)이 천사들의 보조를 받으며 하늘로 함께 올라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제2부 2막의 '에게해 해안만'의 바다 장면에는 환상적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 멀티미디어가 투입되었다. 수십개의 비디오 모니터가 반원형으로 연결되어 커다란 해안만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수면 위로는 돌고래가 튀어 오르는가 하면 아름다운 갈라테아가 황금빛 조개껍질 수레를 탄 채 미끄러지듯 지나가고(실제로는 배우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바퀴달린 판을 타고 지나갔지만 모니터로 이루어진 반원형 벽이 하반신을 가리고 있어서 이런 효과가 났다), 공중에는 파우스트의 제자인 바그너가 만들어낸 인조인간 호문쿨루스가 공모양의 투명한 유리관 속에 떠 다녔다. 여배우가 자궁 속 태아의 자세로 유리관 속에 앉아 연기한 호문쿨루스는 파우스트를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으로 인도하는 초능력을 발휘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복제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괴테는 호문쿨루스의 인위성을 드러내기 위해 복화술로 대사를 하도록 지문에 지시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마이크를 써서 목소리를 조작했다. 호문쿨루스의 인도를 받으며 메피스토펠레스가 관객을 향해 "결국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인간들에게 끌려다니게 되었군"하고 투덜거리는 말은 복제인간이 현실이 된 이 시대를 위한 경고처럼 들렸다. 아름다운 갈라테아를 보고 사랑에 빠진 호문쿨루스가 그 조개껍질에 부딪쳐 엄청난 광채를 내며 바다 위에서 폭발하는 극적 순간은 비디오 시뮬레이션으로 연출되었다. 시퍼런 바닷물 위로 붉게 치솟아 오르는 불길은 수십개의 비디오 모니터 화면에 영상으로 처리되었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공연이 보여주는 다양한 스타일의 무대컨셉이 임의로 창작해낸 것이 아니라 이미 괴테의 드라마 속에 모두 제시되어 있는 것을 재현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던 슈타인은 「파우스트」 대사의 시적 운율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파우스트>의 운율적 시행이 각 인물의 성격과 그때그때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고 다양한 운율이 어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다. 제2부 3막에서 우아한 헬레나가 파우스트와 첫 대면을 앞두고 약강격의 3각운(Jambus)으로 말하게 해서 고대 그리스의 위엄있고 단순한 정취가 우러나게 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노련하고 침착한 성격과 유머있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나누어 두 배우가 연기했는데 외스트(Johann Adam Oest)는 장난스럽고 적극적인 메피스토를 보여주었고 훙어 뷜러(Robert Hunger-B hler)는 원숙하고 노련한 메피스토를 연기했다. 한편 이번 공연에 대해서 언론과 비평계의 관심과 기대가 컸던 만큼 그 반향도 컸고 비난의 목소리 또한 높았다. 특히 새롭고 파격적인 무대를 기대했던 주요 일간지 연극평들은 "원전에 대한 경외심만 보여주었다"며 이번 공연에 대한 실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했고, 파우스트를 맡은 브루노 간츠도 다른 공연에서보다 지루하게 연기하고 지쳐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그렇게 엄청난 제작비를 쓰면서도 멀티미디어를 비롯한 첨단 무대기술을 좀더 적극적으로 투입하지 않고 그저 과거의 공연기법들을 인용하는데 그쳤다는 비판도 있었다.
5. 복제인간 시대의 인간 파우스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90년대 파우스트 공연은 과거 다른 시대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이 우리 시대에 근본적으로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찾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공연 의도가 고전의 소재적 가치를 마음껏 이용해보겠다는 유희적 충동에서 나왔건, 원작을 충실히 복구하겠다는 소명적 성격을 띠고 있건 간에 결국 최근 공연된 「파우스트」는 이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합 핫산(Ihab Hassan)이나 린다 허천(Linda Hutcheon)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은 우리시대의 예술을 특징짓는 요소를 1. 비규정성, 2. 단편성, 3. 정전해체, 4. 자아상실과 깊이의 상실, 5. 불가시성 및 표현불가성 6. 아이러니 7. 패러디, 기존 장르 및 형식과의 상호텍스트성 8. 카니발화 9. 퍼포먼스성 (work in progress) 10. 구성성 11. 여러 영역의 상징간 상호 교환성 등으로 들고 있다.
슐레프와 마르탈러의 공연들에서 확인되는 요소의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전재현'을 강조하며 마치 시대의 유행에 역행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던 슈타인의 시도에서는 과연 어떤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이 공연의 주도적 성격을 규명하는 몇가지 요소가 바로 위에 제시된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축제적인 카니발화와 퍼포먼스 성, 과거 공연형식의 인용에서 오는 상호텍스트성들이 이 공연을 주도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해체구성을 원칙으로 삼은 다른 두 공연과는 구별되지만 슈타인의 공연 역시 이 시대 예술의 특성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조류에 속해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슈타인의 공연을 통해 {파우스트}가 지닌 현대성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오랫동안 무대공연이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제2부는 이제 무대의 시공간적 제약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이 시대에 새로운 극적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좋은 대상으로 보인다. 복제인간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예견한 괴테는 무대상의 표현에서도 시대를 훨씬 앞서갔던 것이다. 제2부에서 파우스트가 찾아 다니는 환상의 세계는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가상현실'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제2부 '기사의 홀' 장면에서 파우스트가 처음 접하게 되는 헬레나와 파리스의 환영이나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에 나오는 사이렌과 스핑크스 등의 신화적 인물들, 님프와 정령들은 모두 사이버 인물 같은 존재들이었다. 파우스트가 체험하게 되는 이런 가상현실적 요소를 첨단 테크놀로지와 결합시킨다면 예기치 못한 연극적 효과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현대적 잠재력이 살아날 수 있기 위해서는 연극무대의 계속적인 도전이 요구된다. 물론 이 고전은 우리가 노력하는 한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파우스트의 대사처럼 "노력하는 한 방황"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요 연극작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