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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주의는 벗어야 할 신발
1. 교권 조직체계의 유래
교파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조직체계이다. 목사, 강도사, 전도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혹은 권찰)... 그리고 평신도다.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딘 초신자가 보기에 목사님은 수많은 단계를 거쳐 저 높이 어렴풋이 보이는 신비한 분일 수밖에 없다. 베일에 싸일수록 왠지 거룩해 보이는 것이 사람의 눈이 아닌가? 게다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메시지를 듣다보면 마치 하나님의 현현 갖기도 하니, 화장실도 안가는 분으로 포장되기가 쉬워 행여나 앞에 지나치면 그림자라도 밟을까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이러한 초월적 권위를 자아내게 하는 교권이 교회에서 과연 필요한가를 질문한다면, 종교 지도자들은 자연스럽게 다음의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이것이 하나님께로서 온 지극히 성경적인 행정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교회에서 엄격한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출18:12>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
<출18:19~27>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네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네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네게 허락하시면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
모세가 그의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땅으로 가니라
여기서 우리는 먼저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가 누구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의 정신과 사상은 무엇이며 모세와의 영적인 관계성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야, 이러한 일련의 사건과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종의 사역자이며, 영의 직분에 대비되는 의문의 직분자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건너지 못한 자이며, 몽학선생의 대표인 것은 모두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와의 연계성을 가지기 때문인 것이다.
이방인들도 각자가 다 신이 있고 은연중 자신의 신을 의지하고 있다. 유교는 조상신이 하나님이고, 불교는 부처가 하나님이고, 무신론자들은 행운신과 운명신을 하나님으로 의지하고 산다. 그러나 이러한 신관을 가진 자들은 실제는 다신론 자들이다. 유일신에 대한 확고한 신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자기 신도 믿지만 다른 종교의 신들도 다 인정하는 것은 혹시나 그쪽 신이 어쩌지 않나하는 두려움의 이해타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방인들의 신관의 바탕은 샤마니즘적 애니미즘(정령주의) 주의자들이다. 무당 집에 가면 공자 신, 석가 신, 제갈공명 신, 관우장비 신, ... 그리고 여호와 신, 예수 신도 있단다. 복술과 점을 치면서 얼마든지 여호와와 예수를 불러대며 복을 달라하고 있으니,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이런 곳에서도 나를 찾다니 하시며, 아마 보따리 채 복을 가져다 부어주실 것이다.
이드로는 미디안 제사장이라 했다. 미디안은 누구인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이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주님이 세운 교회로서 해를 입은 교회의 표상이라면,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는 신약교회의 변질된 음녀의 표상이다. 주님이 뿌린 천국의 씨 위에다, 마귀가 와서 덧뿌린 가라지를 말한다.
누가 주님의 가장 큰 대적자인가? 다른 복음주의자들이다. 영생을 구하는 자들에게 짝퉁 예수를 만들어 온 평생을 속게 해서 지옥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미디안은 요셉을 은전 20에 사서 보디발에게 넘긴자들이요, 계18장에 등장하는 큰 성 바벨론 상고들의 상징들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령세계를 향해 가는 길을 음행으로 미혹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망하게 하는 원수들이다. 그들의 인도자는 제사장 발람이며, 모압 족속과 사촌지간이다(민22:7).
그러고 보니 이드로는 삯군 목자 발람과 매한가지이다. 오늘날 세속화된 교회가 세상 축복 달라고 새벽부터 하나님께 졸라대는 것은 미디안과 모압사상을 가르친 거짓 제사장들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모세는 이러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말을 경청했다는 것이 문제다.
위 본문에서 이드로가 가져온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먹었다는 것은 이드로가 가지고 있는 이방신관의 사상적 가르침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들었어야 하는데,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드로의 말을 듣고 따라 할 수 있었는가 말이다. 이드로가 아무리 세상 지식이 출중하고 많은 인생의 경험이 있을지라도 사람의 생각은 누룩일 분이다. 세계적인 석학의 지혜라 할지라도 육신의 생각이기에 사망이다.
얼핏 이드로의 말을 들으면 너무도 지혜롭고 맞는 말들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모세를 도우라는 조직체계가 얼마나 그럴듯한 말인가? 하와를 미혹한 뱀의 말이 얼마나 지혜롭고 타당했었는가? 그러나 문제는 이 말이 하나님께로서 왔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육신의 생각으로서 사망일 뿐이다.
만일 이드로가 참되신 하나님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자라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천성을 향해 가는 길에 합류해야 마땅하거늘, 그는 제 길로 갔다하지 않는가? 모든 죽은 자들이 가는 목적도 향방도 없는 사망의 길로 가는 자의 말을 들은 모세의 영적 수준을 간파해야만 한다. 이는 미디안 제사장의 사상성이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인간 세상은 잘 짜여진 수많은 단계의 조직이 구축 되어서 돌아간다. 즉, 세상의 특징이 바로 조직체계이다. 그래서 세상이라는 헬라어 단어인 ‘코스모스’는 조직체계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부의 공부원조직, 군의 조직, 회사의 조직체계가 얼마나 일사불란한가? 인간 사회는 한마디로 조직이 움직이는 것이다. CEO들은 치열한 경쟁자를 밟아 이기고 올라간 계급장이기에 세상은 그러한 권력자에게 영광을 돌리며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가정은 조직이 없다, 대신에 생명관계로 얽혀져 있다. 생명에 위아래가 있는가? 아버지가 어린 아이보다 더 귀한 존재인가? 생명에 귀천이나 상하가 있는가? 오히려 한 가정에서 갓 태어난 신생아가 얼마나 더 아름답고 존귀한가?
교회는 가정처럼 생명관계의 구성을 가진다. 하나님의 영으로 나아진 자들의 모임, 죽음에서 건져내어져 새 생명을 가진 축제의 장이 교회다. 여기에서 누구의 생명이 더 귀하고 말고가 있는가? 조직이 있어야 움직여지는가? 무엇을 위해 조직체계가 존재해야 하는가? 다만 성령 안에서 감사와 기쁨과 사랑과 감격만이 있을 뿐이다. 교회는 천국이요 주님의 아내이며 주님의 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 분의 생명은 모든 자녀들에게 바로 임하실 수 있다. 중간에 전달 통로가 필요가 없다. 하나님과 개개인의 영적인 수수관계가 직접 이루어진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한 언어, 한 마음, 한 영이기에 통역이 불필요하다. 수원지에서 가정까지 오는 수도관이 길수록 오염의 가능성은 많아진다. 교회 안에 복잡한 조직체계가 있다는 것은 온전치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출3:5>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율법 종교는 아직 미완의 단계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 밑에서 사십년을 공부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이드로의 모든 정신사상을 버려야 했다. 그것이 신을 벗는 것이다. 천연적이고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죄성, 악성, 독성이다. 그러나 모세는 신을 완전히 벗지 못했기에, 위기의 순간에 다시 육신의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오늘 이드로의 교훈을 받아들인 모세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민:10:29>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할 일을 지시하셨다. 바로 왕 앞에서의 열 가지 재앙, 홍해를 건넘, 지파별 진지 구축법과 행군 대열...등등. 그런데 하나님의 허락도 없이 이드로의 아들에게 길 안내를 부탁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불신 죄인가? 앞으로 호밥의 인솔로 걸어가는 광야 사십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정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아모스 선지자와 스데반 형제는 이같은 영적 타락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암5:25~26>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행7:42~43>...~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암몬족속 신)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
광야의 신앙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육적 신앙을 일컫는다. 비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기에 하나님과 마귀를 동시에 받들고 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에 내면에 여전히 옛 죄가 상존하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어서 백성들은 산 밑에서 두려워 떨며, 모세만 산에 오르고 칠십 장로들은 산 중턱에 머물러야 했다.
하나님-> 모세-> 장로->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 오부장-> 평민, 이러한 조직단계를 거쳐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것이 율법 종교의 특징이다. 율법종교의 계급장은 자연히 권력과 권세를 휘두르게 되고,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라는 이중 구조가 형성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권세가 주는 온갖 영광과 갈채를 맛 본 기득권자들은 더욱 평신도들을 압박하여 피를 짜내게 된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모세의 자리는 바벨론의 탐하는 과실 중 으뜸이다.
모세는 광야 사역 사십년 내내 이드로의 정신사상(神)을 버리지 못했다. 이는 율법 종교 지도자의 어떠함을 보여주는 그림자이다. 그래서 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진 소경(당당봉사)의 대명사로서, 지금까지 목사와 신부를 산출하는 빗나간 성경적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추상같은 명령에 따라 모세의 신(정신사상)을 벗고 요단을 건너는 영의 인도자가 되었다.
<수5: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2.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교파
로마 카톨릭은 하나의 정부로 인정되어 있다(유엔에서 공인됨). 대통령이나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정치권력처럼 교황이 신정정부의 머리이며 그 아래로 강력한 피라미드 구조를 가진 조직체계를 가진다. (로마 카톨릭은 모세의 율법체계에 콘크리트를 부어 더 완고한 사탄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개신교는 단지 종교적 조직이다 보니, 누구든지 성도 수가 늘어나 힘과 권세가 조성되면 또 다른 모세의 자리를 만들어 왕노릇 하게 되는데, 이것이 교파가 난립하는 이유이다. 각 교단의 총수인 총회장들은 작은 교황의 복제들이다. 이같은 교파는 육적 욕망의 표출이며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의 모임을 의미한다.(장로교만 해도 2백 개가 넘는 교파- 총회장이 2백명 이상...)
수많은 교파의 신설과 분리는 주님의 교회에 대한 이상이 없어서, 사람의 욕망에 따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쪼개고 해체시키는 악행임을 모르는 짓이다. 교파체계가 오랜 세월 너무도 일반화 되어서, 소위 믿는 자들끼리 상견례 할 때 화두로서 ‘무슨 교파’를 묻는 것이 통례가 되었으니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 온 떡 덩어리에 퍼진 것이다. 개신교는 칼빈의 사상이냐, 웨슬리의 사상이냐, 루터의 사상이냐를 예수님보다 중시하는 자들로서 성경은 단지 악세사리임을 드러내는 불신자들이다.
<고전1:11~12>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이들이 이 성경을 읽으면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아주 어리석었었구나’고 혀를 찰지언정 자신의 얼굴에 묻은 오물은 보지 못하는 눈뜬 소경들이니 모두 당당봉사들이다. 불교에 많은 종파가 있듯이 기독교의 수많은 교파는 종교 단체임을 반증하는 것이며, 롬6장에서 강조하는 죄와 세상과 율법에 대해 죽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이치를 전혀 모르는 자들로서, 죽은 적이 없으니 부활도 없다는 말씀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따라서 정작 자신들은 본남편인 율법이 살아서 주장하는 중이니 IX께 시집갈 수 없는데도, 다른 남자인 IX께 갔다고 하니 사상적으로 간음한 자임을 성경이 증명하지 않는가?
<롬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레19:29> 네 딸을 더럽혀 기생이 되게 말라 음풍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교권과 교파주의가 팽만한 기독교는 음풍으로 가득한 간음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인 것을 아는 자는 많지 않다. 그곳은 하나님의 생명은 소멸되어 없고 마른 뼈들만 누워있는 에스겔 골짜기요, 종교와 세상이라는 거대한 두 무덤 사이에서 소리치는 일곱 귀신 들린 자 밑에서 쥐엄 열매를 먹고 있는 돼지 떼들이다.
무덤 사이에서 혹시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귀에 들려오는가? 보는 눈과 들리는 귀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 설마설마 하며 망설이지 말고 어서 도망쳐 나와야 한다. 행여나 그간의 투자가 아까워서 뒤돌아본다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 기둥이 될 것이다.
<계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첫댓글 정말 뼈가되고 살이되는 말씀 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