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담회 통영 여행계획
26일 13시 30분 : 광주터미널 출발
16시 : 통영터미널 도착
렌트카 탑승
유치환문학관 방문
17시 세병관,
18시 00분 충무중앙시장으로 이동
청마우체국, 중앙시장 구경
저녁식사, 충무 야경 구경
21시 00분 숙소로 이동(ES 리조트)
27일 08시 00분 리조트에서 아침식사
09시 00분 리조트 출발
09시 30분 달아공원, 박경리 문학관
케이블카 탑승(미륵산에서 남해 전망)
전혁림 미술관, 김춘수 문학관
12시 30분 점심식사
13시 30분 해저터널, 윤이상 기념관
동피랑 벽화마을
17시 30분 통영 출발
20시 00분 광주 도착
향토음식(일반음식점) 굴코스 통영시 광도면 죽림리 1570-5 055-649-3386
향토음식(TV맛집) 도다리쑥국경남 통영시 무전동 1061-9, 055-645-7253, 80석
향토음식(지정맛집) 멍게비빔밥경남 통영시 도남동 224-4, 055-646-0055, 200석
도라복
소재지 : 통영시 북신동 694-1 진우데파트 202 연락처 : 055-646-0405
향토음식(지정맛집) 대구뽈찜경남 통영시 정량동 1375-2 ,055-648-1888, 50석
시조시인 이영도
詩/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 시인 청마 유치환선생님과 이영도시인의 20여년에 걸친
플라토닉사랑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전설과 같을 것입니다.
사랑은 미완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행복
지은이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기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도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다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며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 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길상사를 기부한 김영한 할머니 법명은.,길상화(吉祥華)
젊은 시절 시인 백석(白石)과의 소설 같은., 러브 소토리.
서울에서 태어난 김영한은 열 여섯살에 집안이 몰락하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스스로 한성 기생 ''眞香''이 되었다.
가곡과 궁중무를 배워 권번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잡지에 수필을 발표하며 미모에 시와 글, 글씨, 그림,
춤, 노래 등 다재다능한 기생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스물 세살. 영한은 흥사단과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던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스승이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해
함흥감옥을 찾아가지만 면회를 거절당하게 된다.
하여 신지식 여성에서 다시 기생의 길을 택한.,그녀
함흥기생이 되면 지역유지의 도움으로
스승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이 때 시인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된다.
김영한 보다 네 살 더 많았던 백석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로 있다 우연히 만난.,기생 김영한.
백석은 첫만남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다짐한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별은 없을 것”
하지만 백석 집안에서 아들이 기생에게 빠져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키게 된다.
그러나 결혼식날 밤 집을 빠져 나온 백석은
영한에게 달려와 만주로 달아나자고 설득하지만
영한이 거절하자 백석은 1939년 만주로 떠나게 된다.
이것이 두 사람 사이에 영원한 이별
백석은 만주를 유랑한 뒤에.,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그녀가 떠난 후 그녀가 서울로 돌아간 뒤였기에
만날 수 없었고 그것이 영영 이별
백석은 그후 북한 체제 속에서 핍박을 받으면 기구한 삶을 살게된다.
늘 사랑과 고향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정치이념은 의미가 없었고 당성이 부족하고 늘 사랑타령이나 하는 시인
백석은 북한 체제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백석은 1950년대 사망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최근에 1990년대 중반까지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백석을 평생 그리워한 영한은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성공해 당대의 요정인 대원각을 운영
1997년 2억원을 출연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같은 해 7000여 평의 대원각 대지와 건물 40여 동 등
1천억원대 부동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 설립
김영한 보살
이날 법정스님은 김영한 할머니에게 길상화 법명을 주고
아울러, 108 염주 한 벌을 손수 할머니 목에 걸어주었다.
천억 재산을 시주한 보답으로 목에 걸린 108 염주 한 벌.
법정스님이 목에 걸어준 염주를 만지고 또 만지던 할머니.
“내가 평생 일군 터에 부처님을 모셔 한없이 기쁩니다”
1년 후인 1999년 11월13일 오후 길상사 경내를 마지막 산책.
"나 죽으면 화장해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날 뿌려주세요.”
다음날인 11월14일 108 염주 한 벌을 목에 건 채 83세에 운명.
12월14일 거림 길상사에 눈 내리던 날, 스님들이 재를 뿌려준다.
그녀의 육신은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그 영혼은 살아있다.
***백석 시인이 김영한 할머니에게 직접써준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자부(白磁賦)
김상옥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風磬)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켜 날고 시내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첫댓글 우와~~ 유익한 정보 감솨 함돠!!!
종일 집에만 있다 나왔는데 부럽습니다.
참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전날 천사들 함께 걸었던길 다시 되새겨봅니다.
즐거운 여행되시길... ...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