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복수
- 제 윤 경 -
경기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연일 들리고 있지만, 연휴 기간에는 인천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주말 대형마트 주차장에는 주차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꼬리를 문다. 차를 끌고 장보기 위해 마트를 찾은 소비자들은 이같이 불경기라는 뉴스와 딴판인 광경에 불안을 느낀다.
자기 자신은 확실히 불경기를 체감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밀고 있는 카트 안에는 풍요가 엿보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나만 가난한가?’라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중요한 점은 그 사람조차 다른 누군가에는 그런 불안감을 주는 대상이라는 것을 잊는 다는 것이다.
경기 전망에 대한 최악의 뉴스들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전철역으로 두 정거장밖에 안 되는 거리에 새로운 대형 마트가 들어선다는 소식도 접한다. 지역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분노하지만 소비자들은 혹 오픈 기념 대규모 할인 행사라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한다. 대형 할인마트 때문에 지역 상권은 무너지지만 소비자로서 자신은 같은 제품이라도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가까운 슈퍼마켓에서는 천원이 넘는 1리터짜리 생수를 대형마트에서 반값에 살 수 있다.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저렴한 소비를 통해 절약해야 한다는 강박을 충족시켜주는 일로 여긴다. 대량 구매해야 한다는 것만 감수하면 저렴한 가격에 여러 소비재를 손에 쥘 수 있다. 라면과 생수, 치약과 칫솔, 건전지와 양말 등 온갖 생활 소비재들이 박스 채 혹은 최소 6개에서 10개 묶음으로 카트에 잔뜩 담겨진다. 모두 가까운 슈퍼에서 낱개로 구매했을 때 보다 훨씬 싸다.
‘완벽한 가격’의 저자 엘렌 러펠 셸은 이런 행동에 대해 ‘싸구려 스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동네 치킨집의 폭리를 의심하며 오천 원짜리 대형마트 전기구이 통닭을 카트에 담고서 흐뭇해하는 소비자들의 감정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좀 더 싸게 사는 검약한 소비를 하기 위해 우리는 고유가 시대에 차를 끌고 대형마트에 가서 주차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박스 여러 개의 짐을 이고 지고 돌아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한다.
1리터짜리 생수 여섯 개를 냉장고에 보관하기 위해 커다란 냉장고를 필요로 한다. 대량으로 구매한 싸구려 식재료들이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커다란 냉장고 하나로도 부족해 냉동이 가능한 대형 김치냉장고도 필요하다. 2인 이하의 가구가 전체 가구의 50% 가량을 차지하는 서울에서 가전제품은 이미 대형이 주류를 이루고 온갖 수납제품들이 인기다. 싸구려 스릴을 즐기면서 대량 소비해온 제품들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이와 같은 소비자들을 자극하는 싸구려 마케팅, 대량 소비 마케팅으로 인해 지역 상권은 말 그대로 무너졌다. 카르푸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파리 시내에 카르푸를 볼 수 없다는 데 우리는 전철역 두 정류장 사이를 두고 대형 마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당연히 동네 슈퍼, 철물점, 분식집과 치킨 집 등 상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대형 할인점을 이용한 소비자들은 이제 저녁 반찬을 준비하다 마늘이 없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차를 끌고 마트까지 가야 할 판이다. 두통약이 떨어져 차를 끌고 두통약을 사러 다니는 미국인들처럼 말이다.
동네 상권이 점점 무너지면서 대형 할인점들의 싸구려 전략은 예전만 못하다. 여전히 대량으로 판매하지만 할인의 폭은 줄어들고 때로 중량을 속이는 등의 눈속임 전략만 가득하다. 대량소비만 해준다면 주차도 마음껏 하게 해주던 예전과 달리 구매 금액과 시간을 비례해 주차요금을 정산시키기 시작한다. 이제는 싸구려 스릴을 즐기기 위해 주차료까지 부담할지 모른다.
결국 필요 없는 것도 무료 주차료에 맞는 영수증을 위해 카트에 담아야 한다. 노후에 퇴직금으로 동네 작은 슈퍼라도 해야겠다는 소박한 노후 대책도 싸구려 스릴과 맞바꿨다. 결국 대형마트로 인해 대량 소비한 잡동사니들을 얻는 대신 일자리를 잃고 소비의 편리성도 빼앗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