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3일(수요일)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 있는 "속리산국립공원 화양계곡"을 다녀왔다.
화양계곡은 웅장한 계곡이 기암괴석들에 둘러 쌓여 있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계곡이 넓고 야영장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사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다워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쉬어갔던 대표적인 곳이다.
일행은 위 지도에서 처럼 이곳 계곡을 도보하였다.. 위 지도 좌측에 보이는 "화양동 공동버스정류소"에 도착하여 화양동계곡을 끼고 오른편으로 탐방을 시작하였다.
화양계곡을 따라 9개의 명소가 있으니, 제 1곡(曲)"경천벽"을 시작으로 마지막 9곡 "파천"까지 "화양구곡"(華陽九曲)이 펼쳐진다.. 9곡 파천을 탐방하고 자연학습원안내소까지 도보한후, 전용버스편으로 선유동계곡 매표소로 이동하여 "선유구곡"(仙遺九曲)을 감상한후 근처에 있는 "쌍곡폭포"까지 도보하였으니....도보거리 17Km, 도보시간 6시간쯤이 소요되었다.
화양동 구곡(華陽洞 九曲)은 넓게 펼쳐진 반석위로 맑은 물이 흘러가고, 주변의 울창한 숲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위사진 오른쪽 주차장에서 시작 제1곡 경천벽, 2곡 운영담, 3곡 읍궁암 등 사진 왼편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제 9곡 파천까지 이르는 자연이 만들어낸 수려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으로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한 계곡 중 가장 아름다움을 자랑하는곳이다.
속리산 국립공원화양동 안내소에 도착.. 입장료는 무료...(부산에서 이곳까지 3시간 30여분 소요)
사진 왼편의 길잡이 달마루님께서 도보시 주의사항을 듣고 단체사진을 담는다.(22명)
화양구곡은 1975년에 속리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었으며 청주에서 동쪽으로 3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을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화양동 계곡은 괴산 선유동 계곡과 7km거리에 있으며 푸른 산과 맑은 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지이다.
제 1 곡(曲) "경천벽"(擎天壁) 화양 제1곡으로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있어 그 형세가 자연의 신비라고나 할까 산이 길게 뻗히고 높이 솟은 것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하고 있어 경천벽이라 한다. 매표소 아래에 있었다 (바위 벽면에 "화양동문(華陽洞門)"이라고 송시열 선생의 필체로 새겨져 있단다)
제 2곡을 찾아가는 길이다 길 오른쪽으로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주변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계곡물을 담아두기 위해서 작은 보를 만들어 놓은듯(제 2 화양교(橋)에서 바라다본 풍경) 다행이 계곡물이 많아서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흐르는 소리까지 정겹게 들린다...
제 2 곡 ; 운영담(雲影潭) 제 1곡에서 약 400m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沼)를 이루고 있다. 구름의 그림자가 소에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이라 이름지었단다.
운영담의 송림과 기암절벽이 빚어내는 풍취는 일품이다.... 괴석 아래쪽에 한문으로 운영담이란 예서체 글귀가 음각되어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왔으니 단체사진을... 위 사진은 길잡이 하신 "달마루"님 방에서 옮겼다.
제 2곡 운영담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면 우측으로 상가 건물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명나라의 황제 신종(神宗)과 의종(毅宗)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만동묘(萬東廟)" 와 조선시대 노론의 거두 우암 "송시열(宋時烈)" 선생님의 영전을 모시고 있는 "화양서원(華陽書院)" 이 나타난다.
화양서원 건물이 단촐하면서 새롭게 건축되어진 이유는 대원군이 화양서원을 철저하게 훼철하었기 때문인데, 일화에 의하며 대원군이 이곳 화양계곡을 찾았다가 서원 앞으로 지나갈때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가다가 괴산에서 득세하고 있는 유림과 송(宋)씨 문하생으로 부터 크게 수모를 당한다.
그래서 한양으로 입성하자 마자 그때까지 유림들에 의해 전국을 지배하고 있는 수천개의 서원 중 국가가 인정하는 33개의 서원을 제외하고 전부 철거하기 시작하는데, 조선에서 화양서원이 제일 먼저 사라진 서원이였으니 초라할수 밖에...
만동묘로 들어가는 외삼문 "양추문" 만동묘정비 비문에는 명나라 황제 신종과 의종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건립한 내역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우암 송시열 선생님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황제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셔 달라는 유언에 따라 숙종 29년(1703년)에 세운 사당이라고 한다.
명나라 신종과 의종 위패를 모시고 있는 "만동묘"(萬東廟) 간단하게 목례의 예를 표시하고 나서 급경사 돌계단으로 다시 내려오는데, 이렇게 급경사로 만든 이유는 어떠한 사람도 자연적으로 몸의 자세를 낮추고 방문하라는 의도가 숨어 있단다.
만동묘 앞으로 내려오면 서원의 건립 취지와 서원의 주인, 주인의 인품 등을 기록한 비석 한기가 서 있으며, 그 비석 뒤편 개울가에 화양구곡의 제3곡인 "읍궁암(泣弓岩)" 이라는 넓은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제 3 곡 ; 읍궁암(泣弓岩) 제2곡 운영담과 화양서원을 지나면 위 사진처럼 희고 둥굴넓적한 바위가 있으니 우암이 효종대왕의 돌아가심을 슬퍼하며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서 통곡하였다 하여 후일 사람들이 읍궁암이라 불렀다.
청나라에 당한 국치를 설욕하기 위해 불벌을 꿈꾸었던 효종대왕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자 송시열은 효종의 제삿날인 5월 4일 새벽읍궁암 위에 엎드려 북쪽을 바라보며 통곡하였다고 한다 읍궁(泣弓)이란 이름은 중국의 순임금이 죽은뒤 신하가 활(弓)을 잡고 울었다는 고사에서 인용하였다고 한다...
계곡주변으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르고 있으니 그곳에 반영되는 그림은 또다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으니 화양구곡이 아무리 빼어난 비경이라도 배고픔 앞에는 어쩔수 없는가 보다...
제 4 곡 금사담(金沙潭) 맑고 깨끗한 물에 모래 또한 금싸라기 같으므로 금사담이라 했다. 읍궁암에서 조금만 오르다 보면 계곡 건너편에 바로 금사담이란 암자가 보인다. 우암선생이 조그만 배로 초당과 암제를 통하였다 하는데 현재는 흙에 묻혀 옛모습을 찾기 어렵다.
금사담 절벽위에는 사진에서 처럼 암서재(巖棲齋)라는 정자가 있다...암서재는 송시열의 서재와 별장이였다...
화양구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에서 처럼 반짝이는 금빛모래가 물속에 깔려있어 주변의 너럭바위와 함께 훌륭한 쉼터가 되어 주고 있었다.
아홉골짜기 기암괴석 "화양구곡" "우뚝솟은 기암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진 화양구곡은 흙한점 없는 암반 위로 사계절 맑은 물이 쏟아져 아홉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 숲에는 천연의 장령림과 각종 야생초화류가 자생하는 곳으로 자연환경이 우수하여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 10걸"로 지정된 곳입니다"....라고 괴산군수가 글을 썼다..
점심 식사후 나른한 오후 일정이 시작된다 제 4곡인 금사담을 지나서 유유자적 걸으면 화양 제 3교가 보이고 그 주변 풍경을 담는다.
<제 5 곡> 첨성대(瞻星臺) 도명산 기슭에 층암이 얽혀 대를 이루었으니 제5곡이다. 이름하여 첨성대라 했다. 또한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쳐있고 그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하여 첨성대라 불린다.
<제 6 곡> 능운대(凌雲臺)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고 불리운다. 이곳 능운대 정상에 오르면 큼직한 예서체로 능운대라고 새겨져 있단다...
<제 7 곡> 와룡암(臥龍巖) 첨성대에서 1km 지나면 계곡주변에 이 바위가 있다. 궁석이 시내변에 옆으로 뻗혀 있어 전체 생김이 마치 용이 누워 꿈틀거리는 듯하고, 그 길이가 열길이나 되어 와룡암이다. 바위 한가운데에...와룡암(臥龍巖)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와룡암은 옛 분위기는 느낄수 없지만 예전엔 와룡암 주변으로 물이 흘러 신비로운 형상을 했다고 전한다.
근처 바위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려는 듯... 붉은 단풍과 파란색의 바위이끼가 바위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조화롭다.
<제 8 곡> 학소대(鶴巢臺) 와룡암 위쪽으로 조금 지나면 학소대이다. 낙낙장송이 오랜 성상의 옛일을 간직한채 여기저기 서 있는데, 옛날에는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이름을 학소대라 하였다.
옥빛 물속에 발을 담그고 푸른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바위 벼랑에는 낙락장송이 드리우고 있어 절경을 이룬다. 백학과 청학이 이곳 바위 위에서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치고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라고 불린다...
화양구곡의 마지막 제9곡인 파천은 제 8곡 학소대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한참을 걸어간다..
<제 9 곡> 파천(巴串) 개울 복판에 흰 바위가 펼쳐 있으니 티 없는 옥반과 같아서 산수경관을 찾아 이곳에 오는 관광객은 누구나 이 넓은 반석 위를 거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학소대 위쪽으로 조금 지나면 이 반석이 오랜 풍상을 겪는 사이에 씻기고 갈리어 많은 세월을 새기고 있었다.
바위에 파천(巴串)이라고 새겨 있는데...파천 또는 파곶으로 읽힌다.. 파(巴)자는 "화"(華)자와 통하는 글자로 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란다... 200평쯤 되는 넓은 너럭바위에는 신선들이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이곳 파천은 파곶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어 파곶산이라고 불리던 낙영산에서 흘러내린 계곡을 뜻하는 이름으로 불려졌으며 계곡 곳곳에는 시인 묵객과 벼슬아치들이 거쳐간 흔적들이 곳곳에 이름으로 새겨져 있었다.
구곡 하나하나의 의미를 생각하며 호젓한 계곡 산책길을 걷는 즐거움이 화양구곡을 관람한 즐거움이 였다. 내친김에 상류에 있는 선유구곡까지 걸었으니....요즘 유행하는 힐링을 몸소 체험하는 뿌듯한 보람을 느낀 하루였다.
예로부터 물맑고 산자수명한 괴산은 산과 계곡이 발달해 있는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름난 곳이 지금 보았던 화양구곡이였으니...이곳에서 관람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선유구곡"과 "쌍곡구곡"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일행과 구경한 후 부산으로 귀가길에 오를수 있었다...
화양구곡은 1975년 속리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었으며 청주에서 동쪽으로 32㎞ 지점인 청천면 화양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청천면소재지로 부터 송면리 방향 9km지점에서 3km에 걸쳐 화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좌우에 산재해 있는 명승지이다. 화양동 계곡은 근처 선유동 계곡과 7㎞거리에 있으며 쌍곡폭포와 함께 푸른 산과 맑은 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지이다.
다음편은 선유구곡편으로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 퇴계 이황이 이곳의 산과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절묘한 경치에 반하여 아홉 달을 돌아다니며 9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는 선유구곡과 근처에 있는 쌍곡구곡편으로 이어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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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루터기 원문보기 글쓴이: 부산갈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