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일본에 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어딜 가나 친철한 그들 때문에
저도 ‘아리가토’라는 말이 입에 붙게 되더군요. 아리가토...란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우리말에서‘아리'‘알’의 어원은 태양, 신(神), 하느님이라고 합니
다. 아리같다.. 너무 고마워서 태양같다, 하느님같다..라는 말이 아리같다 ->
아리가토 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단군신화에 곰(熊)이 등장하듯이 부여계통의 고구려 백제에서는 곰(熊)을
토템으로 하여 신을 모셔왔기에 곰, 고마, 가마, 가미 등이 신(神)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하느님 같다는 말 즉 ‘고마같다’에서 ‘고맙다’가 나왔으니, '아
리가토’와 ‘고맙다’는 같은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일본말과 우리말
의 뿌리가 같은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사람들이 이주하면 일상언어 뿐만 아니라 지명(地名)도 따라갑니다. 일본
에서 ‘백제’를 ‘구다라’라고 발음하는데, 백제사(구다라데라)라는 절이 다섯
군데나 있다고 하고,혼슈와 큐슈에는 高麗 百濟 新羅가 들어간 지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부여에 가면 구드레 마을과 구드레 나루터가 있습니다. 이
‘구드레’가 일본에 건너가 ‘구다라’로 변한 것임은 말 할 필요도 없지요.
서기 572년에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국서(國書)가 일본에 전달되었으
나 조정에서는 그 국서를 해독하지 못하여 사흘동안이나 쩔쩔매다가 왕진이
선사(禪師)를 불러 겨우 해독했다는 기사가 일본의 정사서(正史書)인 일본
서기에 나옵니다. 이처럼 당시 일본의 수준은 모든 면에서 매우 낮았으나,
온갖 분야의 학자 기술자 스님들이 대거 일본에 간 후에야 차차 향상됩니다.
그래서 당시의 일본 사람들은 본국 백제에서 온 물건을 좋아했습니다. 일
본제 물건이 볼품이 없었으니까요. 그들은 물건의 품질을 보고 백제 것이 아
니면‘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백제가 아니다,백제가 없다) 고 했습니다. 이 말
이 전해져서 지금의 일본말에 ‘구다라나이’라고하면 ‘쓸데없다’‘시시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라(奈良)시의 큰 절인 동대사(東大寺)는 72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 절
의 한 귀퉁이에 가라쿠니 신사(韓國神社인데 현재 辛國神社로 표기)가 있습
니다. 백제에서 건너간 야마토 조정이 정권을 잡기 전부터 한반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소국(小國)에서 모시던 신사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오사카 동부의 가와치(河內)에도 백제 왕족인 후지이(葛井)씨족이 세운 가
라쿠니(韓國神社, 辛國神社)가 있다고 합니다. 가와치(河內)의 향토사가(史家)
인 후루타 미노루(古田實)씨에 의하면, 5세기 초에 도래한 백제 제 16대 진사
왕의 아들 진손왕의 후손이 후지이(葛井)씨, 후나(船)씨, 진(津)씨가 되어 그
일대에 흩어져 살았다고 합니다.
너무도 유명한 왕인(王仁)박사의 후손들이 다카시(高志)씨, 후미(文)씨,
다케후(武生)씨, 사쿠라노(櫻野)씨, 구라(藏)씨, 우마(馬)씨가 되었다고 합니
다. 일본 정사서(正史書)의 하나인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나라(奈良)시대 도
래인중에는 아야(漢)씨와 하타(秦)씨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아야(漢)씨는 서
기 410년 17현민(縣民)을 이끌고 건너간 백제의 아지사주(阿知使主)와 그 후
손이고, 하타(秦)씨는 신라 가야계였다고 합니다.
아야(漢)씨는 기내(畿內)지방에 널리 퍼져 살면서 다시 마사무네(當宗)씨,
사카노우에(坂上)씨, 단바(丹波)씨, 히바라(檜原)씨, 구라(內藏)씨, 야마구키
(山口)씨, 히라다(平田)씨, 다니(谷)씨, 우네비(畝火)씨, 사쿠라이(櫻井)씨,
히노쿠마(檜前)씨, 구로우도(藏人)씨, 시가(志賀)씨, 히로하라(廣原)씨, 구리
스(栗栖)씨, 아라이다(荒井田)씨, 구로마루(黑丸)씨..등등으로 분화되었고,
사카노우에(坂上)씨로부터 다시 다무라(田村)씨, 야마모토(山本)씨, 히노쿠마
(檜隈)씨, 히가시(東)씨, 이즈미(泉)씨가 분화되는 등... 아야(漢)씨의 후손만
수백개의 성씨로 나뉘었으니, 그들과 함께 건너간 17현민(縣民)을 생각해보
면 엄청난 숫자로 분화했을 것입니다.
위에 말한 아지사주(阿知使主)보다 10년 먼저 백제의 궁월군(弓月君)은 무
려 120현민(縣民)을 이끌고 건너갔으며 이때의 상황이 광개토대왕비문에도 언
급되어 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도쿄 근처의 무사시노(武藏野)에 고마(高麗)라는 곳이 있습니다. 아곳은
668년 고구려가 망한 후 그 유민 1,799명이 건너와 정착한 곳입니다. 이들
고마(高麗)씨에서 분화한 성(姓)씨를 보면 고마이(高麗井)씨, 고마이(駒井)
씨, 이노우에(井上)씨, 아라타(新)씨, 간다(神田)씨,아라이(新井)씨, 오카노
보리(丘登)씨, 오카노보리(岡登)씨, 오카가미(岡上)씨, 혼죠(本所)씨, 와다
(和田)씨, 요시카와(吉川)씨, 오노(大野)씨, 가토(加藤)씨, 후쿠이즈미(福泉)
씨, 고야노(小谷野)씨, 아베(阿部)씨, 가네코(金子)씨, 나카야마(中山)씨,
무토(武藤)씨, 시바키(芝木)씨 등등입니다.
일부만 예로 든 것이 이럴 정도이니,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후손의
성씨를 나열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겠습니다만... 어쨌든 일본이라는 나
라는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왕족들이 고대국가를 이루어 통치하던 나
라였고 그 중심이 되던 국민들도 우리 옛 삼국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이 670년부터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日本)으로 바꾸고, 이어
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편찬하면서 역사 왜곡을
시작하였고, 천황가를 서기 전부터 한 혈통으로 열도의 토착세력이 만세일계
(萬世一系)의 황통(皇統)을 이룩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가장하였습니다. 아
직도 일본은 국가적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심하게 왜
곡된 과거사를 바로잡을 의도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국가의 이러한 태도와는 다르게 일반 국민들의 마음 속에 면면히
흐르는 역사의식마저 희석되지 않았음을 알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큐슈여행 도중 구마모토(熊本)현을 지나다가 기쿠스이(菊水)라는 작은 도시
를 보았는데, 이곳의 후미야마(船上)고분에서 백제 왕족의 것으로 보이는 부
장품이 출토되어 화제를 모았던 곳입니다. 바로 이 기쿠스이(菊水)市가 웅진
(熊津, 공주)을 선조의 고향으로 찾아내고 1979년에 충남 공주와 자매결연을
맺었던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663년 백강의 전투에서 백제-왜 연합군이 패하여 백
제의 맥이 끊기자, “아, 주유성(州柔城)이 함락되었으니 오늘로써 백제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이제 우리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그곳을 어찌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한탄했던 그들의 후손들이 기쿠스이(菊水)市에도 많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
참고 인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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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스페셜 3> KBS, 효형출판, 2001
* <백제의 大和倭와 日本化 과정> 최 재석, 일지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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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에서 건너간 일본 천황> 이시와타리 신이치로(石渡信一郞), 지식여행, 2002
* <천무천황의 비밀> 고바야시 야스코(小林惠子), 고려원, 1990
* <일본천황은 한국인이다> 홍 윤기, 효형출판, 2000
* <일본천황 도래사> 와타나베 미츠토시(渡邊光敏), 지문사, 1995
첫댓글 으흠,,,,,,,,,,,
형님 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