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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의 강진생활이 남도문화에 미친 영향
-강진 적거 18년(1801-1818)을 중심으로- |
일시: 2014년 4월 11일 10:30-15:00
장소: 동신대학교 도서관 2층회의실
일정 10:30 회원등록 11:00 강연회 12:00 기념촬영 및 동신대학교 소개 12:30 점심 14:00 간담회 15:00 폐회 |
강연주제
-강진 적거 18년(1801-1818)을 중심으로-
한물회원 康津 安京淳
1. 다산 강진 謫居 주요 연보
음력 1762년(임오) 6월 16일(丁未) 巳時 출생
음력 1836년 2월 22일 진시 서거
1762년(영조 38, 1세) 6월 16일 사시(巳時)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지금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4남 1녀 가운데 4남으로 출생했다. 본관은 압해(押海)로, 압해는 나주의 속현이므로 나주 정씨라고도 한다. 관명(冠名)은 약용(若鏞), 자는 미용(美鏞)ㆍ송보(頌甫), 호는 사암(俟菴)ㆍ다산(茶山)이다. 다산은 사도세자의 변고로 시파에 가담하였다가 벼슬을 잃은 부친 정재원(丁載遠)이 귀향할 때 출생하였기 때문에 자를 귀농(歸農)이라고도 했다.
1801년(순조 1, 40세) 2월 8일, 사간원의 계(啓)로 인하여 9일 하옥되었다. ‘책롱사건(冊籠事件)’의 발단이었다. 19일 만인 2월 27일에 출옥되어 장기(長鬐)로 유배되었다. 손암(巽菴)은 신지도(薪智島)로 유배되었다. 여름에 성호가 모은 1백 마디의 속담에 운을 맞춰 지은 《백언시(百諺詩)》가 이루어졌다. 10월,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손암과 함께 다시 투옥되었다. 11월, 다산은 강진현(康津縣)으로, 손암은 흑산도(黑山島)로 유배되었다.
1802년(순조 2, 41세) 큰아들 학연이 와서 근친(覲親)하였다. 겨울에 넷째 아들 농장이 요절했다는 소식이 왔다.
1804년(순조 4, 43세) 봄에 〈아학편훈의(兒學編訓義)〉가 이루어졌다.
1805년(순조 5, 44세) 여름에 〈정체전중변〉(일명 〈기해방례변〉) 3권이 이루어졌다. 겨울에 큰아들 학연이 찾아왔다. 이에 보은산방(寶恩山房)에 나가 밤낮으로 《주역》과 《예기》를 가르쳤다.
1807년(순조 7, 46세) 5월에 장손(長孫) 대림(大林)이 태어났다. 7월에 형의 아들 학초(學樵)의 부음을 받고 묘갈명을 썼다. 《상례사전(喪禮四箋)》 50권이 완성되었다. 겨울에 〈예전상구정(禮箋喪具訂)〉 6권이 이루어졌다.
1808년(순조 8, 47세) 봄에 다산(茶山)으로 옮겨 거처했다. 다산은 강진현 남쪽에 있는 만덕사(萬德寺) 서쪽에 있는데, 처사(處士) 윤단(尹慱)의 산정(山亭)이다. 공이 다산으로 옮긴 뒤 대(臺)를 쌓고, 못을 파고, 꽃나무를 열지어 심고, 물을 끌어 폭포를 만들고, 동쪽 서쪽에 두 암자를 짓고, 서적 천여 권을 쌓아놓고 글을 지으며 스스로 즐기며 석벽(石壁)에 ‘정석(丁石)’ 두 자를 새겼다. 《주역》의 어려운 부분을 들추어 〈다산문답〉 1권을 썼다. 봄에 둘째 아들 학유가 방문했다. 여름에 가계(家誡)를 썼다. 겨울에 〈제례고정(祭禮考定)〉이 이루어졌다. 또 《주역심전(周易心箋)》이 이루어졌다. 〈독역요지(讀易要旨)〉 18칙을 지었고 〈역례비석(易例比釋)〉을 지었다. 〈춘추관점(春秋官占)〉에 보주(補注)를 냈다. 〈대상전(大象傳)〉을 주해했다. 〈시괘전(蓍卦傳)〉을 주해하였다. 〈설괘전(說卦傳)〉을 정정하였다. 《주역서언(周易緖言)》 12권이 이루어졌다.
1809년(순조 9, 48세) 봄에 〈예전상복상(禮箋喪服商)〉이 이루어졌다. 《상례외편(喪禮外篇)》 12권이 완성되었다. 가을에 《시경강의(詩經講義)》를 산록(刪錄)했다. 내용은 《모시강의(毛詩講義)》 12권을 첫머리에 놓고, 따로 《시경강의보유》 3권을 지었다.
1810년(순조 10, 49세) 봄에 《관례작의(冠禮酌儀)》ㆍ《가례작의(嘉禮酌儀)》가 이루어졌다. 봄, 여름, 가을에 3차례 가계(家誡)를 썼다. 9월에 큰아들 학연이 바라를 두드려 억울함을 상소했기 때문에 특별히 은총이 있었으나, 홍명주의 상소와 이기경의 대계(臺啓)가 있었기 때문에 석방되지 못했다. 겨울에 《소학주관(小學珠串)》이 이루어졌다.
1811년(순조 11, 50세) 봄에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겨울에 〈예전상기별(禮箋喪期別)〉이 이루어졌다.
1812년(순조 12, 51세) 봄에 《민보의(民堡議)》가 이루어졌다. 겨울에 《춘추고징(春秋考徵)》 12권이 완성되었다. 〈아암탑문(兒菴塔文)〉을 지었다.
1813년(순조 13, 52세) 겨울에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가 이루어졌다. 이 책은 여러 해 동안 자료를 수집하여 이해 겨울에 완성했는데 40권이다. 이강회(李綱會), 윤동(尹峒)이 도왔다. 《논어》에 대해서는 이의(異義)가 워낙 많아서 〈원의총괄(原義總括)〉 표를 만들어 〈학이(學而)〉 편에서부터 〈요왈(堯曰)〉 편까지의 원의를 총괄한 것이 175조가 된다. 춘추삼전(春秋三傳)이나 《국어》에 실린 공자의 말을 모아 한 편을 만들어 책 끝에 붙였는데, 〈춘추성언수(春秋聖言蒐)〉 63장이 그것이다.
1814년(순조 14, 53세) 4월에 장령(掌令) 조장한(趙章漢)이 사헌부에 나아가 특별히 대계(臺啓)를 정지시켜, 죄인명부에서 그 이름이 삭제되었다. 그때 의금부에서 관문(關文)을 발송하여 석방시키려 했는데 강준흠(姜浚欽)의 상소로 막혀서 발송하지 못했다. 여름에 《맹자요의(孟子要義)》가 이루어졌다. 가을에 《대학공의(大學公議)》 3권이 이루어졌다. 《중용자잠(中庸自箴)》 3권이 이루어졌다. 《중용강의보》가 이루어졌다. 겨울에 《대동수경(大東水經)》이 이루어졌다. 또 이여홍(李汝弘 : 汝弘은 李載毅의 字)의 편지에 답하여 학문과 사변의 공(功)을 논했다.
1815년(순조 15, 54세) 봄에 〈심경밀험(心經密驗)〉과 〈소학지언(小學枝言)〉이 이루어졌다.
1816년(순조 16, 55세) 봄에 《악서고존(樂書孤存)》이 이루어졌다. 6월, 손암(巽菴)의 부음을 들었다. 손암의 묘지명을 썼다.
1817년(순조 17, 56세) 가을에 《상의절요(喪儀節要)》가 이루어졌다. 《방례초본(邦禮艸本)》의 저술을 시작했는데 끝내지는 못했다. 뒤에 《경세유표》로 개명했다.
1818년(순조 18, 57세) 봄에 《목민심서》가 이루어졌다. 여름에 《국조전례고(國朝典禮考)》 2권이 이루어졌다. 8월에 이태순(李泰淳)의 상소로 관문(關文)을 발하여 다산을 떠나 14일 비로소 열수의 본집으로 돌아왔다.
1819년(순조 19, 58세) 여름에 《흠흠신서(欽欽新書)》가 이루어졌다. 이 책의 처음 이름은 《명청록(明淸錄)》이었는데 후에 우서(虞書)의 “흠재흠재(欽哉欽哉)” 즉 형벌을 신중히 하라는 뜻을 써서 이 이름으로 고쳤다. 겨울에 《아언각비(雅言覺非)》 3권이 이루어졌다.
1836년(헌종 2, 75세) 2월 22일 진시(辰時)에 열상(洌上)의 정침(正寢)에서 생을 마쳤다. 이 날은 다산의 회혼일(回婚日)이어서 족친(族親)이 모두 왔고 문생(門生)들이 다 모였다. 장례 절차는 모두 유명(遺命) 및 〈상의절요(喪儀節要)〉를 따랐다. 이에 앞서 임오년(1822) 회갑 때 공이 조그마한 첩(帖)을 잘라 유명을 적어 두었으니 장례 절차였다. 4월 1일에 유명대로 여유당(與猶堂) 뒤편 광주(廣州)초부방(草阜坊) 마현리(馬峴里)자좌(子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1910년 7월 18일에 특별히 정헌 대부(正憲大夫)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을 추증(追贈)하고 문도공(文度公)의 시호를 내렸다.
다산 문집의 판본은 필사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여유당집(與猶堂集)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본 《열수전서(洌水全書)》, 활자본으로 1936년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간행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등이 있다. 영인본으로 1985년 여강출판사가 간행한 《여유당전서》(전20책)이 있다.
2. 다산의 강진생활과 사상
가. 나주 栗亭店의 別離
천주학 죄인으로 몰린 다산 정약용과 그의 중형 손암 정약전은 1801년 음력 11월22일 이곳 나주 율정점에서 함께 하루를 묵고 새벽녘에 짚신을 바꾸어 신고 형은 흑산도로 아우는 강진을 향하여 생전에는 마지막으로 이별을 하였던 슬픔의 역정이다. 지금 이곳에는 역사적 이정표만 쓸쓸하다.
나. 월출산 누리령을 넘으며
「누릿재 고개위에 우뚝 솟은 바위들이
나그네 뿌린 눈물에 언제나 젖어있네.
월남 쪽에서 월출산 보지 말게
봉우리마다 도봉산을 너무나 닮았으니.」
- 다 산-
다. 강진읍성 밖 동천여정에서
눈 쌓인 엄동의 해 어름에 서울선비 천주학 죄인 다산은 이골목저골목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동문 밖 주막집 노파의 도움으로 의지 할 곳을 겨우 찾으니 동짓달 스무 사흗날이었다.(1801-1805)
(1) 四宜齋 읍제생 6명과
매반가 노파의 성화에 못 이겨 처음 호구지책으로 아전의 자제 6명을 데리고 강학을 시작하면서 기거한방에 “사의제”라 당호를 걸고 사의제기를 썼다.
(1803.11.10.)
사의담(思宜澹) - 생각은 맑게
모의장(貌宜莊) - 용모는 단정히
언의인(言宜訒) - 말은 요점만
동의중(動宜重) - 행동은 무겁게
자신과 제자들이 함께 실현할 규범을 짓고 선비로서, 스승으로서 그 역경 속에서도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생활을 사의제에서 5년, 보은산방에서 1년, 제자 이학래 가에서 2년, 읍내 생활 모두8년 동안 주역과 상례사전 등 저작활동과 큰아들 학연이 찾아와 제자들과 함께 강학에 열중하면서 아학훈의, 재경 등 교재를 만들고 애절양, 탐진 농요 등 많은 생활 시작을 남겼다. 읍제생 중 치원 황상과의 인연과 일화에는 가슴 벅찬 애틋한 일들이 너무 많았으니…(孝.悌.慈)
(2) 치원 황상(巵園黃裳)과 일속산방(一粟山房)
그의 애제자 황상은 추사가 극찬을 하며 중국에까지 알려진 대 문장가요 시인으로 성장하였는데, 옛날 보은산방(1805)에서 주역을 공부하면서 스승께서 유인(幽人-은둔자)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제황상유인첩'을 지어주며 어린 제자에게 숨어 사는 선비의 바른 마음가짐을 말해 주었다.「이는 명나라 황주성의「장취원기」로, 장차 나아가 살고 싶은 상상속의 정원에서, 선비가 청복을 누리며 삶을 영위한다는 자신의 이상향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일속산방(一粟山房: 좁쌀 한 톨 만한 작은 집)'은 대구 항동마을 주변 백적동에 있었던 황상의 움막집을 의미한다. 훗날 황상은 일속산방에서 강학과 시작활동을 하면서 70이 넘는 나이에도 초서(抄書)를 쓰면서 저 유명한 「과골삼천」踝骨三穿의 스승에 대한 고사를 남기고, 다산과 추사 ・ 초의 ・ 치원 ・ 소치의 연이 얽힌「로규황량사」露葵黃粱社의 명작이 탄생하였다.
「과골삼천」踝骨三穿이란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인 황상(黃裳 1788-1863)의 글 속에 나오는 말이다. 70이 넘어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메모해 가며 책을 읽는 황상을 보고 사람들이 그 나이에 어디다 쓰려고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하느냐고 비웃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은 귀양지에서 18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골, 즉 복사뼈 자리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선생님께서 부지런히 공부하라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런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3) 茶山선생의 면학문 삼근계(三勤戒)
다산께서 사의제에서 처음 대면한 15세의 제자 황상에게 넘겨준 면학문은, 시골 소년의 인생을 결정지어준 가슴 벅찬 감동, 감명 그자체로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스승과 제자의 길, 인간의 진정한 삶을 가르쳐 주는 교훈이 되고 있다.
증산석(贈山石)은 다산이 15세의 황상을 처음 만난 1802년 10월17일 어린 제자에게 학문을 권하며 써준 글이다.
내가 산석(황상의 아명)에게 文史를 닦도록 권하니, 그는 머뭇머뭇 부끄러움을 짓더니,
‘저는 세 가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둔(鈍)하고, 둘째로 막혀있고(滯), 셋째로 미욱합니다(戞)라고 대답하였다.
내가 말하기를‘공부하는 자는 세 가지 큰 병통이 있는데, 너에게는 해당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이는 공부를 소홀히(忽)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 짓는 재주가 좋은 것으로 이는 부화(浮)한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바른 것으로 이는 거친데(荒)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대저 둔하지만(기억력) 집요하게 뚫은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질 것이고, 막혔지만(기초실력) 잘 소통을 시킨 사람은 흐름이 빨라질 것이며, 미욱하지만(이해력, 응용력) 잘 갈고 닦는 사람은 광택이 날것이다.
뚫은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뚫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근면함은 어떻게 유지하는가,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는데 있다.(秉心確)
황상은 이글을 三勤戒로 여기고 평생을 간직하면서 60년이 지난 75세 때 임술기로 남겼다.
<면학문 원문>
昔壬戌, 予以十月十日, 束脩於洌水夫子. 今年又値壬戌, 追已往昔歷數日時, 百感竝起, 可謂一代勞人矣. 予束脩七日, 夫子贈以治文史之文. 詞曰: “余勸山石治文史. 山石逡巡有媿色而辭曰: ‘我有病三. 一曰鈍, 二曰滯, 三曰戛.’ 余曰: ‘學者有大病三, 汝無是也. 一敏於記誦, 其弊也忽; 二銳於述作, 其弊也浮; 三捷於悟解, 其弊也荒. 夫鈍而鑿之者, 其孔也闊; 滯而疏之者, 其流也沛; 戛而磨之者, 其光也澤. 曰鑿之奈何, 曰勤; 曰疏之奈何, 曰勤; 磨之奈何, 曰勤. 曰若之何其勤也. 曰秉心確.’ 時住東泉旅舍也.” 予時年十五, 童而未冠. 銘心鏤骨, 恐有所敢失. 自彼于今六十一年間, 有廢讀把耒之時, 因懷在心. 今也則手不釋卷, 游泳翰墨, 雖無樹立者, 足可謂謹守鑿而疏戛, 亦能奉承秉心確三字耳. 然今年壽七十五餘, 日無多, 安可胡走亂道也. 而今而後師授之不失也明矣, 小子之不負也行矣. 夫玆爲壬戌記. - 黃裳, 壬戌記.
라. 다산초당과 보정산방(寶丁山房)에서(1808-1818)
(1) 丁石정신과 18제자
❍ 부용성의 주인 같은 맑고 깨끗한 이상세계
❍ 미로처럼 재물에 탐을 않고 도잠처럼 권세에 초연한 호연지기
❍ 이름을 나타내려 함이 아니고 마음과 정신을 나타내려…
※ 다조–다도, 차 문화의 발흥
(2) 그의 대표작에 나타난 사상
❍ 흠흠심서 서문 중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내고 또 죽이니 인명은 하늘에 매여 있다. 사목은 그 사이에서 선량한사람은 편안히 살 수 있게 하고 죄 지은 사람은 붙잡아 죽이니 이는 명백한 천권이다. 사람이 천권을 대신하면서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자세히 헤아리지 아니한 채 덮어두고 모른 체하며 살려야할 사람은 죽이고 죽여야 할 사람은 살리고서도 태연하고 편할 뿐 아니라… |
※ 흠흠: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는 뜻–삼가고 또 삼가는 것이 刑의 근본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 게시되어 있음 -
❍ 경세유표 서문 중
∼가만히 살펴보건대 이 사회가 무엇하나 병들지 않는 것이 없다. 지금 와서 이병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를 망친 후에야 고치게 될 것이니 어찌 충신과 열사가 그저 팔짱만 끼고 옆에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
※ 經世遺表: 죽어서 혹시 올리게 될 개혁론- 이상적 국가 개혁 모델 제시
* 실사구시. 경세치용. 이용후생(실학정신)
❍ 목민심서 서문 중
∼성인의 시대가 이미 오래되었고 성인의 말도 없어져서 그 도가 점점 어두워졌다. 요즈음 지방 장관이란 자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백성을 다스려야 할 것인지는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피폐하여 서로 떠돌다가 굶어죽은 시체가 구렁텅이에 가득한데도 지방 장관된 자들은 한창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다산의 목민심서는 – 호치민 필독서, 노사 기정진도 고종께 필독을 상소한
(매천야록)불후의 명작!
ex) 율기 6조
①바른 몸가짐(칙궁飭躬)
②청렴한 마음(淸心)
③집안을 다스림(齊家)
④청탁을 물리침(병객屛客)
⑤씀씀이를 절약함(節用)
⑥기꺼이 베풀기(樂施)
(3) 다산선생 제자들과 백련사지를 쓰다.
원묘국사와 백련결사, 용혈암과 천책국사 호산록 등을 해석 규명함으로…
마. 명발당과 농산별업, 옹산별업 그리고 다산의 외손 방산 윤정기
(올해 탄신200주년)와 백학루
※ 조선의 전통적 자연정원 문화를 남겼다.
- 다산초당도, 백운동도(1812), 농산별업, 조석루기(1808),일속산방도(1853)
3. 다산이 남도문화(강진)에 미친 후광 文化
가. 丁石정신–청렴수도 1번지 강진- 정석패 시상
다산수련원–신규 국가공무원 연중 연수과정–목민심서 정신
나. 연세대 강진 다산실학 연구원 상설(전황병기 박사, 현김용흠 박사 주재)
다산 실학 강좌(연중 매주 화요일 저녁) - 다산 동호회…
다산 실학 학술대회–국제. 전국(매년) - 학술지 발간「다산과 현대」6호
다산 유적지 체험여행(매년) - 다산 유배길 체험(한양-강진)도보
다. 다산-혜장-초의-추사-소치-茶道와 서화문화
강진. 해남. 진도
라. 문화지수 군 단위 전국1위 강진
- (문체관광부, 한국 문화관광 연구원조사. 2014,2,6)
전국 전체1위 – 경기수원(수원화성-정조, 다산의 문화)
마. 2012.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인물–다산 정약용(탄신250주)
화성의궤-유네스코 기록문화 유산지정(다산작)
바. 800여 년 전 백련결사로 불교정화 개혁운동의 중심이었던 강진이 오늘의 불교정신 문화의 성지로 주목을 받게 되다.
백련사, 무위사, 월남사지…
4. 맺는말
인문학의 고장 문화의 도시 강진으로!
若無康津 是無茶山學
若無茶山 是無 康津文化 - 다산의 강진사랑-
※ 참고 문헌 및 자료
박석무( 2004). 다산 정약용유배지에서만나다. 한길사.
양광식 편역(2003). 다산의 강진유배 18년. 강진문사고전연구소.
정약용 저 박석무 편역(2004).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한길사.
정약용 저 정해렴 편역(2004). 목민심서. 현대실학사.
안경순(2011-12). 다산유적지 순례 연재 15편. 강진고을신문.
무 지 개 윌리엄 워즈워스
하늘에 걸린 무지개 바라볼 때면 내 가슴은 설레인다. 나 어렸을 때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며 늙어서도 그러하리.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목숨의 하루하루가 천성의 경건함 속에 머물기를. |
※부록
다산유적지 순례기(15)
정조․다산의 도시 ‘수원화성문화제’ 관광기 (안경순,전 초등학교 교장)
지난번 나는 1박 2일로(10.6~7일) ‘수원화성문화축제’를 구경하고 왔다. 그때의 가슴 벅찬 감동과 황홀했던 추억을 지금도 있을 수가 없다.
수원 화성은 정조와 다산이 그들의 위민, 개혁정신을 실현하고자 한 꿈의 도시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 민족의 자랑이요 자산이 된 아름다운 도시요 성곽이다. 또한 올해는 다산 탄신 250주년으로 다산 선생께서 「2012 세계 문화인물」로 지정된 해이다.
나는 김준혁 박사(경희대 교수. 전 화성박물관 학예실장)의 저서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를 감명 깊게 읽고서 예전에 수박 겉핥기로 둘러보았던 수원 화성의 세세한 의미를 알고 나니 이번 축제에는 꼭 가봐야겠다는 욕심으로 연세대 강진다산실학 연구원 김용흠 박사와 다산동호회 윤동옥 회장과 함께 동행하니 더욱 든든하고 많은 것을 듣고 배워 감사하고 너무 좋았다. 12시에 화성에 도착하니 김준혁 교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백사하고 이틀간 우리와 함께 안내해 주겠다하니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였다.(전에 강진 다산수련원 공무원 연수에 초청 강사로 몇 번 오셨던 인연으로)
김 교수의 안내로 시외의 한적한 자연 속의 전통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용주사로 행했다.
용주사에서는 ‘정조 ․ 효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용주사는 정조께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고 지성스런 효심으로 지은 화성 내의 사찰이다. 전국적으로 시주를 모아 247칸의 대찰을 지으면서 영의정 채제공이 대웅전 상량문을 짓고 규장각 초계신 실학자 이덕무가 주렴을 지었으며 그 유명한 김홍도가 법당의 탱화를 그리는 등 정조가 온 정성을 쏟아 지은 조선 후기 최고의 명찰이다. 용주사 주지에겐 전국 승군 총 지휘권과 팔도 사찰을 관장하는 도총섭 직위를 주었던 명실공히 효의 본산이요 불교의 정신적 중심사찰로, 현재에도 대한불교조계종 제 2교구 본산이다. 경내에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를 모시는 「호성전」이 있고 그 앞에 「부모은중경탑」이 우뚝 서 있다. 「효문화연구원」이 선원 내에 부설되어 있고, 이번 행사 중에 ‘정조․효문화제’를 주관하면서 여러 가지 행사가 다채로웠다.
김 박사의 안내로 용주사 교무국장 인해스님 사무실을 방문했다. 강진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각별히 반가워하면서 귀한 손님이니 특별히 최고급차를 대접하겠다며 녹차를 손수 끓여 내 놓았다. 스님은 첫잔을 부어 이 잔은 다산 선생께 올린다며 따라 놓으시고 모두에게 차를 권하면서 다산과 정조와 용주사의 사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한신대(기독교)와 용주사가 공동으로 「정조문화상」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고 지난 9월 1일에는 이곳 용주사에서 「정조, 다산 리더십 토크콘서트」가 열렸는데 산수화(오산, 수원, 화성)의 상생협력위원회가 주최하고 한신대와 용주사가 주관하면서 도올 김용옥 교수, 박석무 이사장, 한신대 총장, 용주사 주지스님, 유봉학 교수, 박현모 실장, 김준혁 교수, 김태희 실장 등 다산과 정조의 전문 학자들과 3개 지자체장이 열띤 토론을 통해 정조, 다산 정신을 계승하는 이 지역 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모습들이 참신하고 오늘 우리 사회와 정치인들이 많이 본받을 사례들이다. 인해 스님은 거듭 이 시대의 통섭의 정신을 강조하고 강조하며 타 종교와도 존중하고 협력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석양에 용주사를 출발 옛 정조가 지나 가셨다는 그 길로 차를 몰고 화성 행사장으로 행했다.
팔달산 서장대 아래 화성 행궁이 있고 그 앞의 옛 낙남헌 터에는 음식 축제장이 열려 있다. 공연 무대장에서는 지역 가수들이 흥겹게 노래하고 이곳에서도 싸이의 말춤 향연이 벌어지고 가슴을 쿠쿵 울리는 리듬 소리에 가슴이 후련하다. 우리는 ‘수원 양념 갈비집’부스에 들어갔다. 수백석도 넘는 갈비집 부스가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성인다. 제복들을 입은 여 종업원들이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부산하게 다니며 숙련된 손놀림과 친절함이 최고의 문화수준이다.
공연장이 3곳이다. 제1공연장은 노래와 춤의 무대, 제2공연장은 국회의원 등 유명인사들의 강연장, 제3공연장은 이번 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야조 공연장이다. 이곳에서 1km를 걸어가야 한다(교통통제로). 내게는 조금 벅차지만 수석수석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손을 잡고 밤길을 걷는 모습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8시 공연 시작! 연무대에서 야간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야조 행사였다. 동장대(유일한 원형건물, 만덕산 비자나무 기둥)앞 연무대가 관중석이고 동쪽 창룡문과 성벽을 스크린 겸 배경무대로 꾸민 야조행사는 대자연을 무대로 한 대 스팩타클 공연을 연출하였다. 밤하늘과 성벽의 노송들 성벽 곳곳에서 쏟아대는 서치라이트와 성곽에선 횃불이 넘실대고(영상) 창룡문을 스크린으로 입출입을 하면서 정조대왕이 등장하는 어군 행렬 무예24기 무술시범 마장술, 궁수, 검객 등 무려 400여 명의 장용영 병사들이 신출귀몰하는 전투장면과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진혼제인 듯 200여 명의 백의의 무희들과 큰북 고수 부대 등 총 인원 6~700 명의 출연진들이 펼치는 밤의 행사가 가히 올림픽 개막식을 방불케하는 감동적 장면이다.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이것이 지역축제가 바라는바가 아니겠는가.
이 행사를 주도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정조와 다산의 창의 정신의 후예들이라 치하하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시 또 음식 축제장으로 갔다. 「한중일 국제 음식축제장」이다. 이곳도 수백석이 넘는 축제장 부스에는 12시가 가까워도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 여행객들이 화기애애 즐겁고 다정하고 행복한 그림들이다. 김박사의 아는 분들이 우리를 소개해 함께 많은 대접을 받았다. 12시에 광교동 수련원에 숙소가 마련되어 편안한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가 묵은 광교동은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호수가 있고 광교산 아랫마을인 듯하다. 일요일이여서 자전거 등산인들의 헬멧 모습이 멋있고 부러웠다. 10월 말일이면 시인 고은 선생이 이곳으로 이사를 온다고 모두들 반가와하고 있단다. 언젠가는 노벨문학상을 받게 될 우리의 시인은 강진에서 영랑문학상을 받으신 분이 아닌가. 화성에 유명학자, 문화인들이 귀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조 꿈의 도시 이 낙원으로…
13번 버스를 타고 화성 건축물의 대표격인 장안문(長安門)으로 갔다. 장안문은 2층 누각으로 화성의 정문이며 화성이 장차 이 나라의 수도임을 상징하고 화성의 모든 백성들이 길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정조의 의지가 들어있는 이름이다. 그리하여 상량문을 당대의 최고 문사인 홍양호가 짓고 이유경이 축문을 낭독하였는데 ‘장안문의 성문이 하늘의 북극성과 같은 조선의 중심이 되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2층은 국왕을 상징하는 우진각으로 지어진 이 뛰어난 건물이 6개월 만에 완성되었다니 정조의 뛰어난 추진력과 1804년 갑자년의 웅대한 구상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보물이 6.25때 폭격을 당했는데도 1975년에 완전 복원하여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지정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산이 설계한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으로 완전 복원이 가능했고 유네스코의 인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화성성역의궤」는 또한 2007.7.1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장안문의 성벽 위를 걸으면서 유심히 관찰하여 보니 포루며, 치, 적대 등 어느 것 하나도 같지 않고 방향, 높낮이, 너비 등이 그 기능에 따라 각기 다르게 되어 있음을 보면서 다산의 과학적이고 치밀한 창의성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10시에 행궁 봉수당에서 혜경궁홍씨의 회갑 진찬연을 베푸는 행사장으로 택시를 몰았다.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그때의 행사를 그대로 완전하게 재현하는 ‘궁중문화축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전통무예24기 보유자들의 무술 묘기가 시연되고 경기도립국악원의 궁중제례음악과 찬란한 궁중 복식을 차린 어전 행사가 집례의 2중 홀기로 진행되었다. 정조왕, 혜경궁, 번암옹을 실제 보는듯한 장면이다. 이 행사를 미쳐 다 보지 못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수원화성문화축제는 정조께서 을묘년에(1795) 화성 원행 8일간의 행사를 재현하면서 정조의 효행, 위민, 개혁정신을 선양하고 화성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리면서 이곳 주민들 모두가 함께 즐기고 동참하면서 서로 화합하며 경제적 발전도 함께하고 있는 모습들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중 수원화성 여러분들께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은 우리가 강진에서 왔기 때문이며 강진에는 다산선생이 계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21세기에는 문화의 세기라 합니다. 우리 강진은 문화적 자산이 너무도 많은 복 받은 고장입니다. 어떻게 문화적 콘텐츠를 개발할 것인가가 우리의 미래를 밝게 열어 줄 것입니다.
이틀간 우리를 시종 안내하고 모든 비용을 부담해 주신 김준혁 박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2-10-23 강진고을 신문)
한물회 40년 약사
창회 모임 1974. 1. 11
(회장 오윤열, 총무 김명만)
6회 모임 1977. 1. 11
(회장 오윤열, 총무 문기정)
오윤열 회원: 교장 자격 강습
나종섭 회원: 교감 자격 강습
김희준 회원: 상록수 상 수상
이용헌 회원: 대학 졸업
7회 모임 1977. 8. 11
박종남, 국성표 회원: 교감 시험 합격
9회 모임 1978. 8. 11
김채린 회원 초청: 광양 백운산
13회 모임 1980. 8. 11
안경순 회원: 추락상 입원 병문
이용헌 회원: 전남대 대학원 수료
조두정 회원: 교감 시험 합격
국성표 회원: 교감 승진
박상휘 회원: 동남아 시찰
14회 모임 1981. 1. 11
오윤열 회원: 해남군 장학사
박종남 회원: 교감 승진
문기정 회원 전남대 대학원 수료
이용헌 회원: 고려대학교 박사과정
15회 모임 1981. 7. 26
오윤열 회원 초청 해남 대흥사
이성하, 최재천, 박상휘 회원: 교감 시험 합격(최재천 회원 1위 합격 및 수료)
전양권 회원: 동남아 시찰
안경순 회원: 회복세 돌입
16회 모임 1982. 1. 11
김채린 회원: 교감 시험 합격
문기정 회원: 임곡중․고교 전임
오윤열, 김명만, 조두정, 전양권 회원: 방송대 3학년 편입
19회 모임 1983. 8. 3
박상휘 회원: 교감 승진(9.1)
김영백 회원: 교감 시험 합격
박종남 회원: 방송대 3학년 편입
문기정 회원: 동신전문대학 유아교육과로 전임(9.1)
20회 모임 1984. 1. 11
김두석 회원: 교감 시험 합격
오윤열, 김명만, 조두정, 전양권 회원: 방송대 졸업
21회 모임 1984. 8. 11
김영백 회원: 교감 승진
김병연 회원: 디딤돌 소주코너
최재천 회원: 방송대 3학년 편입
23회 모임 1985. 8. 11
박종남 회원: 방송대 졸업
박상휘 회원: 방송대 3학년 편입
이용헌 회원: 미국 피츠버그 대학 연구 교수 파견(고려대)
김병연 회원: 카페 에덴 경영, 목포부국으로 전출
24회 모임 1986. 1. 11
최병순 회원: 장성 상산 교장, 한물회 참석 인사
안경순 회원: 회복, 한물회 참석
최재천 회원: 방송대 졸업
25회 모임 1986. 8. 11
전양권 회원: 교감 시험 1위 합격
회원 전원 자신 성찰 및 진로 조언
26회 모임 1987. 8. 11
박상휘 회원: 방송대 졸업
안경순, 김명만 회원:교감시험합격
최재천 회원: 교감 승진
이용헌 회원: 박사학위 취득
김희준 회원: 광주교육대학교 졸업
국성표 회원: 방송대 3학년 편입
김채린, 김영백 회원: 광주교대 계절제 4학년 재학
오윤열 회원: 방송대 국어과 편입
27회 모임 1988. 1. 11
안경순, 나종섭 회원 참석
28회 모임 1988. 8. 11
김두석, 안경순, 전양권 회원: 교감 승진
박종남, 나종섭 회원: 교장 자격 강습
김명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입학
김채린, 김영백 회원: 광주교육대학교 졸업
30회 모임 1989. 8. 11
국성표 회원: 방송대 졸업
이성하, 김영백 회원: 교장 자격 강습
정점현 회원: 교도교사 자격 강습
31회 모임 1990. 1. 11
나종섭 회원: 교장 승진
최병순 고문: 정년 퇴임(2월말)
전양권 회원: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입학
32회 모임 1991. 8. 11
안경순 회원 주선: 강진 유적지 답사(영랑생가, 다산초당, 도요지)
김명만 회원: 대학원 수료
조두정 회원: 완도군 장학사
박상휘 회원: 교장 자격 강습
김채린 회원: 교장 자격 강습
김병연 회원: 교감 자격 강습
이용헌 회원: 동신대학교 교수 취임, 모임참석
33회 모임 1992. 1. 11
김영백 회원: 교장 승진
전충호, 최재천 회원: 동남아 시찰
전양권 회원: 대학원 수료
국성표 회원: 교장 자격 강습
김병연 회원: 광주교육대학교 졸업
34회 모임 1992. 8. 11
이용헌 회원 초청 동신대학교 시찰
김채린 회원: 교장 승진, 투병 중
박상휘 회원: 교장 승진
전충호 회원: 장성 성산교로 전입
35회 모임 1993. 1. 11
김채린 회원: 쾌유
안경순, 김두석 회원: 교장 자격 강습
36회 모임 1993. 8. 11
전양권 회원 주선: 함평 주포리
국성표 회원: 교장 승진
최재천 회원: 교장 자격 강습
김명만 회원: 광주시 서부 장학사 (선발시험 합격)
정점현 회원: 임자종고로 이동
38회 모임 1994. 8. 11
김두석 회원 주선-장흥 보림사
김병연 회원: 교감 승진
박상휘 회원: 해남군 장학사
오윤열 회원: 광주 초등교육국 장학과장
최재천 회원: 진도군 교육청 장학사(선발 시험 1위)
39회 모임 1995. 1. 11
오윤열 회원: 광주 초등교육국 교직과장
김영백 회원: 순천시 교육청 장학사(선발 시험 1위)
이용헌 회원: 동신대학교 인문사회대학장 취임
회원 문집 제작 동의
40회 모임 1995. 8. 11
안경순 회원: 교장 승진
한물회보 발간
41회 모임 1996. 1. 11
오윤열 회원 동부교육청 학무국장
최재천 회원 전남도 교육연구원
김두석 회원 순천시 교육청 전임
박상휘 회원 전남대 상담심리 석사학위 취득
42회 모임 1996. 8. 11
나종섭 회원 해남 황산교
안경순 회원 진도 조도교
전충호 회원 장성 월평교
정점현 회원 나주고교
이용헌 회원 96년 4월 중순
삼성의료원 9월11일 별세
43회 모임 1997. 1. 11
김두석 회원 장흥 교육청
오윤열 회원 광주 초등교육국장
이성하 회원 고흥 점암교
조두정 회원 전남도 교육청 인사과
김병연 회원 장학사 시험 합격
44회 모임 1997. 8. 11
김병연 회원 무안군 교육청
김명만 회원 광주 문정교
전충호 회원 나주 다시남교
45회 모임 1998. 1. 11
김채린 회원 정년퇴임
안경순 회원 강진 신전남교
오윤열 회원 광주 대성교
46회 모임 1998. 8. 11
박종남 회원 상사댐 초청
김두석 회원 장흥서 초빙교장
김명만 회원 동부 초등과장
김희준 회원 광주 운남교
최재천 회원 전남도 교육청 장학과
전양권 회원 교장자격 이수
최병순 회원 사모님 별세
47회 모임 1999. 1. 11
나종섭 회원 2월 말 정년 퇴임
퇴임 후 생활 계획
48회 모임 1999. 8. 11
박종남, 안경순, 전충호, 오윤열, 이성하 회원 정년퇴임
전양권 회원 해남 산이교장 취임
49회 모임 2000. 1. 11
이성하 회원 참석
정점현 회원 2월말 퇴임예정-남도기원 설립
50회 모임 2000. 8. 11
고흥 이성하 회원 초청(1숙박, 능가사-해창만-나로도-발포-가화식 당-고흥만) 사슴녹혈 시음, 이성하 교장 퇴임 후 7대 과업 발표
전양권 회원 8월말 정년 퇴임
51회 모임 2001. 1. 11
전충호 회원 모임 주관(회장, 총무 불참)
52회 모임 2001. 8. 11
김병연 회원 나주 문평남교
안경순 회원 한민족 도덕운동 본부 강진수련원장
최병순 회원 30년 지속 모임의 의의 확인
53회 모임 2002. 1. 11
최재천 회원 전남 교육연수원 운영부장 전남교육상 수상
조두정 회원 진도군 교육장
김명만 회원 광주 문산교
김두석 회원 2월말 정년퇴임
2.16 임시모임-김두석 회원 장흥서교 초청,문림의향소개, 점심접대
54회 모임 2002. 8. 11
조두정 회원(교육장) 진도교육청 초대, 진도 일원 관광, 점심 접대
김명만 회원 광주 동부교육장 취임
최재천 회원 8월말 정년 퇴임
8.30 진도 답사기록문 송부
55회 모임 2003. 1. 11
김명만 회원 참석
퇴직금, 의보, 손자녀 교육, 노무현 대통령 당선 축하 등의 좌담
김희준 회원 자녀 변리사 시험 합격 기념 점심대 지출
56회 모임 2003. 8. 11
조두정 회원 영광군 교육장 전임
김희준, 김영백, 박상휘 회원 8월 말 정년 퇴임
김채린 회원 대통령배 전국 정구 대회 장년부 우승
김명만 회원 한정식 접대
한물회 창립 30주년 기념 대축제 구상
57회 모임 2004. 1. 11
조두정, 김명만 회원 참석(교육장)
조두정 회원 2월말 정년 퇴임
안경순 한물회 30주년 기념행사 추진 위원장 강진 모임 제안
한물회 창립 30주년 기념 문집 제작 합의
58회 모임 2004. 8. 11
한물회 창립 30주년 기념 문집 발간(문집 제2호)
김명만, 김병연 회원 8월말 정년
59회 모임 2005. 1. 11
한국문예지 최병순 회원 수필 등단
정점현 회원 전국 유람중
김두석회원 금강산 기행 보고서 배부
60회 모임 2005. 8. 11
최병순 회원-한국어문학회 광주 전남 지회장(최근 문예작품 배부)
이성하 회원: 농촌생활체험담-7대 과제 달성 중
61회 모임 2005. 11. 19
담양 버스투어 11명 참가
관광코스: 소쇄원-식영정-가사문학관-명옥헌-야생농원-죽녹원-면앙정
무등회관 저녁 후 해산
62회 모임 2006. 1. 9
병술년 신년 하례
63회 모임 2006. 4. 7
완도나들이 13명 참가
효천역-영랑생가-백련사-신지대교-완도유치원-해산
안경순회원 팜플렛 저육, 떡, 말걸리 제공
전양권 회원 점심대 14,0000원 지급
64회 모임 2006. 8. 11
김몀만 회원 교육위원 출사표
김두석, 문기정회원: 전남교육청 스승초청 간담회 참석
문기정 총무-점심 접대, 한물여정 CD배포
65회 모임 2007. 1 11
최병순 회원: 자료 제공
안경순 회원: 서남제도 연륙교 정보 제공
전양권 회원: 캐나다 여행 소감 발표
66회 모임 2007. 8 11
김영백 회원: 숲해설 4년
모임일자 조정: 4월과 10월로 함, 방면별 모임, 테마특강, 문화탐방 추진
67회 모임 2007. 10. 13
화순 투어 13명 참가
수만리 들국화 마을-유마사-오지호 기념관-백아산 휴양림-금호온천욕
68회 모임 2007. 11. 17
장성투어 15명 예약/ 8명 참가
장성문학공원-백양사-한마음자연학교 염색-홍길동생가-필암서원
69회 모임 2008. 4. 24
동강대학 교정
-문기정 총무 초청
동강기념관-학술정보원(회의, 인터넷 활용 안내)
학원 경내 철쭉동산 산책
박물관 견학
다과 해산
70회 모임 2008. 11. 6
장흥 탐진댐, 향교-김두석 회원 초청
물문화관 영상-향교 집례 체험-녹원식당(장흥교육장 점심제공)-한승원 시비거리 관람
* 최병순 회원 별세(2008. 11. 26), 28일 장지 조문
71회 모임 2009. 4. 14
순천만 답사-박종남 회원 초청
14명 참가
순천역-운수대통집 식사(박종남 회원 제공)-순천만 관람
72회 모임 2009. 10. 11
광주 태평양다방, 12명 참가
73회 모임 2010. 4. 11
광주 태평양다방, 12명 참가
74회 모임 2010. 6. 11
목포 1일 나들이(전남도청-갓바위공원-박물관-유달산-이훈동기념관-압해), 11명 참가
75회 모임 2010.10.11
함평 문화여행(용천사, 자연생태공원, 액스포공원, 임시정부 재현지, 김철 기념관; 9명
76회 모임 2011.4.10
상록회광 벚꽃 잔치 참관
8명 참가
77회 모임 2011.10.15
태평양 환담, 11명 참가
78회 모임 2012. 4.11
태평양다방, 11명 참가
4.19 동신대학교 방문
문기정 이사장 취임 축하
79회 모임 2012.1011
풍암정 호수, 13명 참가
김채린 회원, 식사제공
80회 모임 2013. 4.11
태평양다방, 7명 참가
김두석 회원, 식후 차 접대
81회 모임 2013.10.11
태평양, 9명 참가
전양권 회원 병문
11.16 김두석회원,
장흥향교전교취임 축하
82회 모임 2014. 4. 11
창회 40주년 기념 모임
동신대학교
40주년기념강연(안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