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제 5장
=====5: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 '늙은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레스뷔테로'(*
)는 다른 곳에서 교회의 직책을 나타내는 '장로'(elder,
presbyter)로 사용되었으나(17, 19절 ; 딛 1:5) 여기서는 문자적인 의미가 그대로 적
용되어 '노인'(older man, NIV)을 뜻한다. 또한 '꾸짖지'의 헬라어 '에피플렉세스'(*
)는 본래 '주먹으로 치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말로써 때리
다'는 뜻으로 공격적인 심한 질책을 나타낸다. 디모데는 비록 연소하였으나(4:12), 한
교회의 목회자로서 때에 따라서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연장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주어야 했다. 그럴 경우 바울은 온유한 태도로 권할 것을 충고하
였다. '권하되'의 헬라어 '파라칼레이'(* )는 '올 것을 요구
하다', '충고하다', '위로하다'의 뜻으로 자신에게 오게 하여 충고하며 위로하는 따뜻
한 권면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면은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디모데가 그의 교인들을
향해 지녀야 할 태도로서 2절까지 이어진다.
아비에게 하듯 하며 - 연장자를 권면할 때에는 모든 예의와 겸손함을 갖추고 신중
히 해야 함을 말한다. 인간적인 예의 범절은 종교나 시대, 공간을 막론하고 지켜져야
할 영속적인 규범이며 특별히 노인을 존대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와 마찬가지로 기
독교의 기본적인 윤리이다(레 19:32).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 '형제'(* , 아델푸스)라는 말
속에는 기독교의 '평등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Hendriksen). 또한 교회 내에서 누구를
불문하고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교회의 구성
상태를 가장 적합하게 나타내는 말이다(고전 12:26, 27).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연결된 한 형제이며 따라서 서로간에 분열과 반목(反目)을 피하고 선을 이뤄야
한다.
=====5:2
늙은 여자 - 이것은 1절의 '늙은이'와 서로 짝을 이루는 말로서 그 말이 '장로'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노인'을 뜻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 '깨끗함'(* ,
하그네이아)은 '성적 순결'을 뜻하는 말로 바울이 디모데가 젊은 여자를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성적 욕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Lenski). 그러나 이는 단순히 성
적인 순결뿐만 아니라 마음과 육체를 통틀어 아무 흠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포괄적
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Guthrie).
=====5:3
참과부인 과부 - '참과부'에서 '참'에 해당하는 헬라어 '온토스'(* )
는 '실제로', '진실로'라는 뜻으로 '참과부'란 남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돌보
아줄 사람이 없는 과부를 말한다(Guthrie, Hanson). 당시에는 남편과 사별한 여인들과
더불어, 일부 다처제(一夫多妻制)의 성행으로 인해 남편에게 버려져 혼자된 여인들도
많았으며 당시 교회는 이들을 돕는데 적극 참여하였다(행 6:1). 성경에서는 이곳뿐 아
니라 과부를 보살펴 줄 것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과부를 억울
하게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으며(신 10:18 ; 24:17 ; 시 68:5). 특별히 하나님은 그들
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하였다(사 1:17). 신약성경에서도 과부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
다. 예수께서는 그들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다(막 12:42, 43 ; 눅 7:11-17 ;
18:3-5). 더욱이 초대 교회안에 집사 제도가 생기게 된 큰 원인으로서 과부를 보살피
는 일을 들 수 있다(행 6:1-6). 그런데 때로는 과부를 돕는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
생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으므로(행 6:1) 교회는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에
대한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경대하라 - 헬라어 '티마'(* )는 '존경하다'의 뜻으로 명사 '티메'(*
)에서 파생되었다. '티메'는 '가치' 혹은 '값'을 의미하며 영어의 '사례
금'(honorarium)은 이에서 파생되었다. 혹자는 본 구절에서 과부들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들이 받아야 할 연금(pension)을 바울이 언급한 것이라고 본다(Scott). 따라서 본
구절은 과부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존경하라는 의미와 아울러 그들에게 필요한 경제적
도움을 주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5:4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 본절의 '과부'는 '참과부'가 아닌 자들로
서 자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손자'의 헬라어 '에크고나'(*
)는 칠십인역(LXX)에서는 자주 언급되나 신약성경에서는 이곳에만 나온
다. KJV에서는 이 단어를 '조카'(nephew)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17세기 이전의 용법
으로 그 당시에는 '조카'가 일반적으로 '손자'를 뜻하는 말이었다(Guthrie).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 '먼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톤'(*
)은 '첫째로'(first of all, NIV)라는 의미의 부사이다. 이것은 집안에서 효
를 행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야 할 중요한 일임을 나타낸다.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 '부모'의 헬라어 '프로고노이스'(*
)는 부모 이상의 조상들을 포함한다. 또한 '보답하기를'에 해당하는 헬
라어 '아모이바스 아포디도나이'(* )의
문자적인 뜻은 '되돌려 줄 것을 주다'이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그들이 자신들의 부
모로부터 받은 것을 보상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Scott). 특히 '되돌려 주다'는 뜻을
지닌 헬라어 '아포디도나이'는 현재 능동 부정사로서 되돌려 주는 행위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5:5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 - '외로운'에 해당하는 '메모노메네'(*
)는 '모노스'(* , '홀로')의 완료 수동 분사로 '홀로 남겨진'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참과부'의 특성으로서 돌보아줄 자녀나 친척도 없음을 의미한
다. 혹자는 자신이 돌보아야 할 어린 자녀를 둔 과부도 여기에 포함시킨다(Lenski).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 바울은 참과부의 또
다른 자격을 제시한다. 그것은 육신적으로 자신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을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참
과부의 실례는 눅 2:36, 37에 성전에서 주야(晝夜)로 금식하며 기도한 과부 안나를 들
수 있다.
=====5:6
일락을 좋아하는 이 - '일락을 좋아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파탈로사'(*
)는 '방탕하게 살다'의 뜻이다. 당시에는 사회 전체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였으며 고용의 기회도 거의 없었던 때이므로 많은 과부들은 매춘(賣春)
등의 부도덕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혹자는 바울이 '스파탈로사'를
사용한 것은 당시 생활이 궁핍했던 과부들이 매춘의 유혹을 받고 있었음을 염두에 두
었기 때문이라고 한다(Guthrie).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 바울의 역설적인 표현으로서 육체적으로 살아 있으나 영적
으로는 죽은 것을 뜻한다(Lenski).
=====5: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 '또한'(* , 카이)은 본절이 6절과 연결됨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절의 '이것을'(* , 타우타,'이것들')이 6절에만 국
한(局限)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3-4절의 내용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Hendriksen). 즉 참과부를 존경하며 물질적으로 도와줄 것과(3절), 자녀들이나 손자
들은 과부인 어머니나 할머니를 잘 봉양(奉養)할 것과(4절)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참
과부로서 경건한 생활을 하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구별할 것(5, 6절) 등을 포
함한다.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 '자기 친족'(*
, 톤 이디온)은 구체적인 범주를 정하기는 어려우나 '자기 가족'(*
, 오이케이온)은 '직계 가족'을 의미한다(Guthrie). '돌아보지'의
헬라어 '프로노에이'(* )는 문자적으로 '미리 생각하다', '준비하
다', '공급하다'의 뜻을 갖는다.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 혹자는 기독교의 사랑은 모든 사
람들을 향한 것인데 자기의 직계가족조차 돌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못한 자로
서 전혀 복음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본 구절을 해석한다(Scott). 또한 여기에서
의 '믿음'은 개인의 주관적 믿음이 아니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고백되는 신앙 고백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하여 '믿음을 배반한 것'을 '교회의 가르침을 저버린 것'으로 보기
도 한다(Lenski). 결론적으로 본 구절은 일반 성도 전체를 향한 교훈으로 볼 수 있으
며 그들의 신앙 고백이 어떻든 간에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할 만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인간의 원초적인 책무를 무시하
는 자이므로 정죄받아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5: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 - '명부에 올릴'로 번역된 헬라어 '카탈레게스도'(*
)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말로서 당시의 과부들에 대
한 물질적 원조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었음을 나타낸다. 명부에 이름이 올라 제도적으로
생계를 보장받은 과부들은 특별한 자격을 구비(具備)한 자들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Ellicott, Robertson, Scott). 또한 혹자는 당시 과부 제도가 있었
을 것이라고 주장하며(Bernard, Hendriksen), 이성간의 접촉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상
황 속에서 교회에서 남자들이 하기 곤란한 일들을 이들 과부들이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Hendriksen).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 나이를 육십으로 제한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재
혼할 의도나 재혼할 가능성이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Lenski). 또한 노령으로
인해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규정을 두었을 가능
성이 높다.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 - 본문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고대에는 과부들에게 특별한 정절(貞節)을 요구하여 재혼을 삼가하
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성경의 증거로 눅 2:36, 37의 과부 안나가 84년 동안 재혼하
지 않고 혼자 지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한 남편 외에는 재혼한 경험이 없는 과부를
말한다(Scott, Guthrie). (2) 혹자는 바울이 14절에서 젊은 과부에게 다시 시집갈 것
을 권면하면서 본절에서 재혼한 경험이 없는 과부만을 참과부의 명단에 올리라는 것은
모순이 되므로 (1) 의 견해에 반대한다(Hendriksen). 여기서는 (2) 의 견해가 전후 문
맥상 타당성을 가진다. 이렇게 볼 때 본문은 결혼 생활중에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관
계가 없던 자로 결혼 생활에 충실했던 자를 뜻한다.
=====5: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 과부의 명단에 올려 구제해야 할 참과부의 조건으로는
구체적 선행이 제시된다.
자녀를 양육하며 - 본절은 문자적 의미보다는 어머니다운 품성을 지녔는가 하는 점
을 강조한다. 혹자는 바울이 참다운 모성애를 실천하는 것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Lenski). 또
다른 견해로는 명부에 등록된 과부의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이었
다는 주장이 있다(Scott). 여기서는 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한 것 같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 초대 교회에서는 나그네를 접대하는 일이 하나의 공식적인 일
이었으므로 이런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필요하였다. 나그네를 대접한 과부의
실례로서 사르밧의 과부(왕상 17:9), 수넴 여자(왕하 4:8-11), 루디아(행 16:40) 등을
들 수 있다.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 이것은 종이나 하는 천한 일로서 여기서는 이웃과 나그네
를 위한 겸손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Hendriksen). 이러한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을 통해 가르치신 바이다(요 13:14).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 '환난'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신앙으로 인해 받은 박
해를 가리킨다(살전 1:6 ; 살후 1:4).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 '좇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콜루데
센'(* )은 '추구하다', '헌신하다'의 뜻이다. 결국
'선한 일을 좇는다'는 것은 단순히 선한 양심과 신앙을 갖는다기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선행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5:11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 '젊은 과부'는 60세 이하의 과부들을 지칭한다. 바울이 이
들을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한 이유는 일단 명부에 이름이 오른 과부는 그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온전한 헌신이 요구되었는데 젊은 과부는 다시 재혼할 가능성
이 컸기 때문이다.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 '정욕으로'의 헬라어
'카타스트레니아소신'(* )은 '성적인 욕망에 사로
잡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Robertson). 젊은 과부가 남편을 원하여 재혼하는 그 자체
는 죄가 아니나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5: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 과부의 명부에 이름이 오르기 위하여 그들은 다시 재
혼하지 않고 평생 동안 그리스도께 헌신할 것을 서약하였을 것이다(Robertson,
Rocke). 혹자에 의하면 후대에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배우자'(the spouse of
christ)라고 불렀다고 한다(Hanson). 따라서 본절의 '처음 믿음'(*
, 텐 프로텐 피스틴)이란 '젊은 과부들의 처음 서약'을 가리
키는 것으로 보는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저버렸으므로'에 해당하는 헬라
어 '에데테산'(* )의 문자적인 뜻은 계약이나 법률 따위를 '폐기
하다', '위반하다', '따로 떼어두다' 등이다.결국 이 말은 젊은 과부가 그리스도께 헌
신하겠다는 서약을 파기(破棄)한다는 의미이다.
심판을 받느니라 - '심판'(* , 크리마)은 KJV에서 '저주'(damnation)
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것은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옳
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리는 '심판'(judgment, NIV)으로 해석하여 그들의 잘못을 책망받
는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Guthrie).
=====5:13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 '게으름을 익혀'에 해당하는 '아르가이 만다누신'(*
)을 혹자는 '게으름을 배워 게으름뱅이들이 되
었다'로 번역하여 젊은 과부들의 게으름은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인 습관이 아니라 의
도적으로 배운 것임을 나타낸다(Scott).
집집에 돌아다니고 - 이것은 (1) 명부에 올라 있는 과부들의 임무 중에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여 신앙적인 상담과 조언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악용(惡用)한 것으
로 볼 수도 있으며(Earle, Guthrie), (2) 그들이 가정에 매이지 않은 홀몸으로서 시간
적인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행해진 쓸데없는 방문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1)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 '망령된 폄론'에 해
당하는 헬라어 '플뤼아로이'(* )는 혹자에 의하면 '음식 등이 끓어
거품이 오르다'를 의미하는 '플뤼오'(* )에서 파생된 말로서(Robertson),
'쓸데없는 말을 경박하게 늘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을 만들며'의 헬라어
'페리에르고이'(* )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들에 간섭하기 좋아
한다'는 의미이다(Earle). 그러나 혹자는 이 단어가 행 19:19의 '마술을 행하던'의 헬
라어 '페리에르가'(* )와 동일한 단어이므로 본절의 '일을 만들
며'는 '마술적인 행위'를 나타낸다고 보며, '마땅히 아니할 말' 역시 '마술의 주문'
(呪文)이라고 주장하나(Hanson) 일반적인 견해는 아니다. 여기서 '마땅히 아니할 말'
이란 교회에 덕이 안 되는 해로운 말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바울은 젊은 과부들
이 모두 게으름을 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 중의 일부는 신앙 생활
과 자신의 일상 생활을 게을리 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긴장되어있지 못하고 쉽게 남
의 말이나 교회 전체의 문란을 초래하는 악담을 하고 비밀이 지켜져야 하는 사적인 이
야기들을 집집마다 하여 교회 내에 문제를 야기시켰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5:14
그러므로 젊은이는 - 본절이 접속사 '그러므로'(* , 운)로 이어지는 것으
로 보아서 바울이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11절
의 '젊은 과부'(* , 네오테라스 케라스)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젊은이'(* , 네오테라스)는 '젊은 과부'
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시집가서 - 바울은 여기서 젊은 과부들에게 재혼할 것을 권면하였는데 이것은 고전
7:25-29의 내용에서 결혼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26)고 한 말과 사뭇 다르다. 이에 대해 (1) 혹자는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할 때와는
달리 지금 본 서신을 쓸 때에는 그의 인생의 말년으로 '임박한 파루시아'에 대한 신념
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Scott). (2) 이와는 다른 견해로 본절의 '젊은이'는
이미 자제심(自制心)을 잃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Guthrie). 두 견해 중
(1)의 견해가 보다 타당하다. 왜냐하면 후대 교회, 즉 2, 3세기의 교회에서는 금욕주
의의 결과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였으나 바울은 금욕주의에 반대
(4:3)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허락하신 특권이자 사명이라
할 수 있는 출산하는 일과 집안을 관할하는 일을 바울은 적극 추천하였다. 혹자는 '집
을 다스리고'(* , 오이코데스포테인)라는 말에서 아
내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영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Liddon).
대적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티케이메노'(* )는 '반
대자', '대항자'의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Hendriksen, Earle). 그러나 '대적' 앞에 관사 '토'(* )가 붙었다고 하여 이
단어가 '마귀'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Lenski). 그런데 후자의 경우도 마
귀가 '사람'을 통해 역사한다는 해설을 덧붙여 말함으로써 두 견해가 궁극적으로는 동
일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 '훼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이
도리아스'(* )는 '욕하다', '매도하다', '조롱하다'의 강한 뜻
을 갖는 말로서 젊은 과부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교회가 받을 수 있는 비난에 대
한 바울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기회'의 헬라어 '아포르멘'(*
)은 '진격 기지'를 뜻하는 군사 용어로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다
(롬 7:8, 11 ; 고후 5:12 ; 11:12 ; 갈 5:13). 그는 늘 교회가 외부 세계로부터 악평
의 대상이 되지 말 것을 경고해 왔는데 그당시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
지 아니하고 참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성도
들의 사랑과 변화된 생활이었다(약 2:7, 8 ; 벧전 2:12 ; 4:4, 14, 15).
=====5:15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 '사단'에 대하여 글자 그대로 '대적자'의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11절의 '그리스도'와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Lenski). 그러나 혹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복음을 통해 얻은 자유를 남용하여 젊은 과
부들이 천박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Scott, Guthrie). 따라
서 본 구절은 젊은 과부 중에 일부는 이미 '처음 믿음'(12절)을 저버리고 여러 부도덕
한 행위에 빠져 교회에 물의(物議)를 일으켰음을 나타내며, 아울러 믿음의 생활을 떠
난 자는 반드시 사단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5:16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
'믿는 여자'(* , 피스테)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
다. 왜냐하면 앞의 8절에서 '누구든지...돌보지 아니하면'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에 본절에서는 '믿는 여자'로 국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런데 몇몇 후기 헬라
어 사본들에서 '피스토스'(* , '믿는 남자')를 첨가시켜 '피스토스
에 피스테'(* , '믿는 남자와 믿는 여자')로 표기
하고 있으며 흠정역(KJV)도 이에 준해 '남자나 여자'로 번역하고 있다. 심프슨
(Simpson)이나 거스리(Guthrie)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2) 그러나 대부분의 본문 비
평가들(Alford, Ellicott, Speaker, Moffat)은 보다 짧은 본문인 '피스테'만을 택하고
있다. 혹자는 몇몇 사본에서 '믿는 남자'를 삽입시킨 것은 필사자(筆寫者)들이 바울의
뜻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여기서의 '믿는 여자'란 신자가 아닌 남편을
둔 여자 교인이거나, 개인적인 경쟁력을 갖춘 과부나 미혼녀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Lenski). (3) 또다른 견해로는 '믿는 여자'가 14절에서 언급한 '젊은 과부'를 가리키
는 말로서 비록 그들이 교회에서 공식적인 일은 맡지 못하였으나 가정에 소속되어 다
른 과부를 도움으로써 교회에 덕을 끼치는 일을 하도록 바울이 권면한 것으로 본다
(Scott). 이상과 같이 '믿는 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
으나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친척 중에 과부가 있는 자로서 친척 과부를 돌보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여자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도움을
줄 능력이 있는 여자가 자기 친척 과부를 도와줌으로써, 교회는 아무 연고가 없어서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참과부'를 도울 수 있었다.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 '다스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스토테스'(*
)는 교회의 감독권을 시사하며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관장(管掌)
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장로'의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이'(*
)는 딛 1:7에 나오는 '에피스코폰'(* , '감독')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혹자는 이에 대해 교회의 행정적인 임무를 강조할때는 '감독'이라
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나이든 어른으로서 받아야 할 존경을 강조할 때는 '장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Hendriksen).
배나 존경해 자로 알되 - '존경'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메스'(* )는
원래 '가치', '가격'을 의미하는 말로서 '보상'으로 번역되거나(White) '사례금'으로
번역될 수 있다(Liddon). 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여기서는 물질
적인 '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고 정신적인 '존경'(honor)만을 주장한다(Lenski).
(2) 물질적인 의미와 정신적인 의미를 함께 수용하는 견해도 있다(Hendriksen). 후자
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배'의 헬라어 '디플레스'(* )에
대하여 몇 가지 주장이 있다. (1) 존경과 보상의 이중적인 의미. (2) 과부들보다 두
배의 존경과 보수(Calvin, Rocke). 그러나 일반적인 견해는 숫자적인 의미보다는 장로
들에대한 특별한 존경심과 풍족한 물질적인 공급을 뜻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
럽다(Guthrie, Scott).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 - '말씀과 가르침'에 대하여 혹자는 '전도와 가르
치는 일'로 해석한다(Robertson). 본 구절은 교회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장로들과 말
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장로들이 초대 교회에 있었음을 시사한
다. 이들은 아마 오늘날의 '목사'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이다.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 본 구절
은 신 25:4로부터 인용된 말씀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타작방법은 곡식단을 풀
어 타작마당에 펴 놓고 그 위를 소가 지나가게 하거나 소가 끄는 타작 기구가 지나가
게 하였다. 그때 주인은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고 일하는 동안 그 곡식을 마음대로
먹게 하였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 본 구절은 눅 10:7의 인용이다.
마 10:10에도 동일한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후자에서는 '먹을 것'(*
, 테스 트로페스)으로 나온 반면 여기서는 '삯'(*
, 투 미스두)으로 기록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바울은 누가복음을 인용하였다고 본
다. 특히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처음 투옥되었을 때 그와
함께 있었다(골 4:14 ; 몬 1:24). 또한 혹자는 누가복음이 그때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고 바울이 그것을 인용하였거나 그것에 대한 자료를 인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Hendriksen). 결국 본절의 요지는 일하는 짐승에게도 충분한 곡식을 제공하는데 하물
며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임을 강조한 것이다(고전 9:9, 14).
=====5:19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 모세 율법에 의하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죄를 판결(判決)할 수 있었다(신 19:15 ; 민 35:30). 이와
같은 규정은 초대 교회에서도 적용되었다(고후 13:1). 특히 장로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교회 안과 밖에서 늘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악의(惡意)와 근거없
는 비난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었으므로 두 세 명의 증인이 요구되었다.
=====5: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 '범죄한 자들'은 장로들을 가리킨다(19
절). '모든 사람 앞에'로 번역된 헬라어 '에노피온 판톤'(*
)은 '모든 장로들 앞에'를 뜻할 수도 있고(Earle), 혹은 '온 교회 앞에'
를 뜻할 수도 있다(Guthrie). 일단 장로의 범죄가 발견되었을 때는 그에 대한 징계를
공개적으로 행하여야 했다.
=====5: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 이와 같은 표현은 예배
의식적인 표현으로서, 여기에 언급된 것은 이 세 존재가 최후 심판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상에서 기인한다(눅 9:26 ; 계 14:10). 특히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란 말은 바울
특유의 표현으로 자기 초소를 떠난 타락한 천사들(계 18:1 ; 19:17 ; 20:1 ; 21:9)과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내가 엄히 명하노니 - 헬라어 '디아마르튀로마이'(*
)는 '엄숙히 단언하다', '엄숙히 선언하다'의 뜻을 갖는 강의 복합어로서 교회 지
도자들의 징계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신중해야 함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명령은 바울
개인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하는 엄숙한 것이었다.
편벽되이 하지 말며 - '편벽'(偏僻)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클리신'(*
)은 '저울을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다'는 뜻의 동사 '프로스클리
노'(* )에서 파생된 말로 '편애'(favoritism, NIV)로 번역될
수 있다. 즉 디모데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개인적인 편견이나 편애를 철저히 배제하고,
사랑과 의에 입각한 공정한 판결을 하여야 했다.
=====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 본절의 '안수'(* , 에피
티데이)가 어떠한 성격을 갖는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다. (1) 타락한 장로들을 다시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의식으로서의 안수이다(Rocke, White, Robertson). (2) 장로를
비롯한 다른 성직을 임명하는 의식으로서 행해진 것이다(Earle, Kelly, Theodoret).
(3) 본절은 장로에 관한 문제를 취급한 것으로서 장로를 임명할 때 행한 공개적인 의
식 이었다(Lenski). 위 의견들 중에 두번째 것이 가장 지배적이다. 교회의 중요한 직
분을 맡기기위해 안수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이나 인품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중직자들
의 과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 '간섭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네이'(*
)는 '함께 나누다', '동반자가 되다'의 뜻을 갖는다. 이에 대해 (1)
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타락한 일부 장로들이 짓는 죄에 동참하지 말아야 할 것을
권면한 것으로 보는 견해(Lenski)와 (2) 어떤 사람을 안수하여 장로로 임명하는 것은
그 사람을 보증하는 것이 되므로, 그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공동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Earle). 문맥상 후자의 견해가 타당
하다. 바울은 본절을 통해 안수의 중요성을 디모데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5:23
물만 마시지 말고...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금욕주의적인 계
율이 있었다. 즉 나실인 서약자는 포도주나 포도로 만든 것을 먹지 않았으며(민
6:1-21), 레갑인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렘 35:5-8). 따라서 디모데는 이러한 유
대 계율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고 22절에서 바울이 요구한 대로 자신의 정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Scott). 그 결과 그는 나름대로 금기(禁忌) 사항을
마련해 두고 오직 물만 마시고 포도주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근동 지방의 물
들은 대개 병균들로 오염되어 있었으므로 끓이지 않고 계속 마실 경우 이질이나 위장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서의 '비위'(* , 스토마콘)는
'위장'을 뜻한다. 즉 디모데는 위장병과 다른 질병을 앓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바울
은 그의 질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하였다. 한편 당시의 포도주는 도
수가 약하였고 특히 유대인들 사이에서 사용된 포도주는 흔히 물이 섞인 포도주였다
(Earle).
=====5: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 바울은 본절에서 다시 17절 이후에서 그가 다루어 왔던 문제
로 돌아가 장로의 임직(任職)뿐만 아니라 교회의 규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혹자는 23
절에 기록된 대로 디모데가 병약하였으므로 교회를 처리하는 면에 있어서 미비한 점
이 있었을 것으로 가정한 바울이 처리에 도움이 되는 말을 디모데에게 한 것으로 생각
한다(Alford).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 '밝히'의
헬라어 '프로델로이'(* )는 '이미 알려진' 혹은 '명백한'이란 뜻
으로서 그들의 죄는 판단에 있어서 문제가 없는 명백한 죄들이다. 또한 '좇나니'의 헬
라어 '에파콜루두신'(* )은 '뒤를 따라 가다'의 뜻
으로 '어떤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죄임을 나타낸다(Hendriksen). 그
러나 이것 역시 앞의 '밝히 드러난 죄'의 전철(前轍)을 밟아 밝혀지게 된다.
=====5: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 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성급한 판단을 피하라는 의미로 본 구절을 쓴 것으로 본다
(Alford). 즉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은 처음에는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본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이므로 경솔한 판단을 삼가하라는 뜻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