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달리기를 시작한 뒤로 맞은 어느해 보다도 운동량이 적었던 시기였다.
대신에 각종 술자리는 해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訟事에 휘말리고 구설에 휘말리고....
동아대회에 갈 발판 삼아 신청한 대회였지만 풀코스대회의 준비를 하는 것 치곤 너무도 부족했기에 애당초 기록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엄연한 대회를 두고 연습차원에서 뛴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고 '어찌 어찌 개인기록 정도는 넘어서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안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도 정직한 운동인지라 ....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 한보따리 숙제 더미를 안고 끙끙거리고 있는 것이다.
대회장인 고성공설운동장에 단체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9시 무렵, 대회 출발전 한시간 남짓한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줄서서 한참을 까먹고 ...
문선생님 찾아서 또 한참동안 헤메고...
천막에 돌아오니 30분이 채 남지 않아 마음이 바쁘다.
한켠에선 체조하자고 아우성이지...
테이프는 잘라서 붙이랴 옷갈아 입으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출발점에 서면서 저마다 목표를 묻는다.
낚시하는 사람하고 뭐하는 사람치고 거짓말 안하는 사람이 없다더니...앵~
몸이 어디 이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니 컨디션은 괜찮은 편인 것 같아 일단 안심이다.
경기장을 벗어나며 일찌감치 내빼는 완수형의 뒷모습이 벌써 저만치 앞에 보이고 철수형님이 적당히 앞에 가고 있다.
3Km쯤이나 갔을까?
철수형님을 간신히 따라섰더니 태근이 옆에 나란히 선다.
곧이어 진국이가 또 나란히 서고...
넷이서 그룹이 이뤄 넉넉하고 든든하게 가는데 5Km지점에서 시간을 보니 20'08"
"오메! 이것 큰일났네!"
좀 빠르다 싶었는데 역시나 대단히 빠른 속도로 대열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브3 아니면 중도하차 둘중에 하나일텐데!'
'그렇다고 대열을 보내고 혼자서 퍽퍽하게 갈 수도 없고...'
'아~이것 참 위험한 선택인데....'
그동안 내내 풀코스를 뛰는 도중 혼자서만 달려봤기 때문에 동료의 절실함을 너무나도 많이 느껴본지라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미 5Km를 달려놓고 이제부터 페이스를 늦춘다고 해서 후반에 힘이 펄펄 날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일찌감치 끈떨어진 연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더군다나 태근이도 함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아무리 연습을 게을리 했기로서니 태근이가 저렇게 쌩쌩하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설마하니 뭔일이 있을라고????
그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아파지며 서브3가 남는 페이스로 대열을 따라 간다.
10km 지점 21'34" [41'43"]
여전히 걱정되는 대열의 흐름인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길섭이까지 합류한다.
"엥? 넌 그냥 LSD한다고 했쟎여?"
'하기야 뭐 진국이도 3시간 20분대로 그냥 달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믿을놈 하나도 없어!'
다섯으로 늘어난 대열이 든든하긴 하지만 여기서 누군가는 대박이 터질 것이고 누군가는 피박을 쓸것이 뻔한데....
15Km 20'13" [1: 1'56"]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처럼 어디에서 부딧치거나 폭발할지 모르는 대열은 그렇게 김을 내뿜으며 달려가고 있다.
여전히 눈앞에 가물가물 완수형이 보이고 준호씨는 아에 첨부터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에구 완수형 40Km지점에서 꼭 만날 것 같은디..."
"여기도 무리인 사람 몇 있는디 저건 너무 무리여~ 암!"
'이제 조금 있으면 반환점을 돈 선두그룹이 마주쳐 지날때가 올 것이다'고 생각할 무렵에 슬그머니 태근이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17.5Km지점 급수대 무렵,
곧이어 진국이도 제 갈길로 가속을 해서 점점 멀어져 간다.
철수형님, 길섭,나 이렇게 세사람이 남았는데 반환점이 가까워질 무렵에 함께 가던 사람들도 다 제각기 흩어진다.
철수형님이 앞에 나서고 길섭이 그리고 나
20Km 22'43" [1: 24'39"]
반환점은 1시간 29분을 막 넘기며 돈다.
이미 철수형님과는 차이가 상당히 벌어졌다.
돌아가는 길은 전체적으로 내리막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일차 이차에 걸쳐서 이미 촉이 떨어진지라 우려했던 페이스저하가 금방이라도 사람을 괴롭힐 것만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아~준비 안된 자의 불안감이여!'
25Km 21'52" [1: 46'32"]
여기쯤에서 완수형이 점점 가까워진다.
길섭이가 눈에 저만치 들어오고 철수형님은 25Km를 넘어서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태근이도 반환점을 돌아 내려오는 도중에 만나지를 못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30Km가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걱정은 깊어간다.
내몸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일 것이다.
완수형이 거의 맥이 풀린 것 같다.
저만치 뒤로 쳐지는 것 같은데 ...
하이고 괜히 나도 덩달아 맥이 쭉쭉 빠지기 시작한다.
30Km 23'18" [2: 9'51"]
대구의 진애자씨가 여자1위로 달리고 있는데 25Km쯤에서 만났을때는 힘이 남아있더니 여기쯤 오니까 어디가 안좋은지 자꾸만 삑사리가 나는 것 같다.
거리가 50미터쯤 차이가 났다가 30미터쯤으로 좁혀졌다가 한때는 추월도 했다가 다시또 추월 당하고....
작년 거제대회때나 동아때나 몇차례 대회에서 이런식으로 경합을 벌이다가 늘 이기곤 했었는데 오늘은 내가 죄인(?)이라 애초부터 자신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도 진선수의 난조로 본의 아니게 앞서게 되면 '이건 자력으로 앞선게 아닌데...'라며 씁쓰름해진다.
35Km 24'55" [2:34'46"]
이미 긴장감은 살아진지 오래고 기록도 물건너 갔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면서도 몸은 더 무거워진다.
아까 초반에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하따 긍게로 우리가 지금 말여~
초반에 5Km당 1분씩 벌어놓고는 말여~
나중엔 1Km당 1분씩을 까먹는당게로~"
"긍게 그나마 그것도 잘 했을때 야그고~
잘못하면 기냥 「핼로스키」되가지고 퍼진당게~ 큰일여!"
'에구 말이 씨가 된다고....'
37Km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갑자기 예상치도 않았던 복병까지 나타난다.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아마도 근력이 떨어지니까 발딛는 것이 퍽퍽거리고 해서 무릅부근의 고질병이 나타난 것 같다.
어쨓거나 보폭이 반으로 확 줄고 속도는 거의 초반의 절반이나 될 법한 요상한 자세로 "변신"되었다.
중간에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그린넷마'회원도 가다서다를 몇번씩 반복하는데 한참을 섰다가도 다시 달리면 나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이 아닌가?
'지기미럴~ 저렇게 달릴 수 있을 거면 미쳤다고 서서 지랄이여!'
'나사 몸이 안따라 준께로 이렇지만....'
경기장에 다 와가면서 곳곳에서 사진찍는 사람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엠뱅~"
사진이 보나마나 개떡같이 나올 것이 뻔한데 그렇다고 신경이 안쓰이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내셔날지오그래픽'에다가나 올리면 될법한 사진이 나오겠지 뭐!
"마라톤 최후의 승자! 그 고난의 몸짓을 보라!" 뭐 이런식으로 제목이 그럴싸하게 붙어가지고...
경기장에 들어선다.
"온고을"을 외치는 사람도 있고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다.
"에구 쑥쓰러워라!"
검찰청에 출두하는 정치인들은 목에다 힘주고 뻣뻣하게 잘도 들어가던데 난 죄진사람마냥 이렇게 쪽팔리는지 원!
죽을 상을 쓰고 들어가도 시원찮을 판에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또 손을 흔들어 보이며 트랙을 돈다.
중간에 찔끔!
하마터면 곡선주로에서 주저앉을뻔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피니쉬매트를 밟는다.
'에구 힘들다! 하지만 이제 달리기는 끝났다!'
3시간 15분, 이렇게 요란과 추접을 다 떨면서 경기를 마친다.
........ ....................
경기는 끝나고 기대했던대로 맛있는 횟감은 마음껏 먹고 분위기도 참 좋고...
하지만 죄지은 사람처럼 마음은 편할리가 없다.
자신에 대해 철저하지 못했던 반성을 되풀이 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앞으로는 모든 여건이 희망적이다.
나만 게으르지 않으면 답은 얻을 수 있겠는데 다리가 문제다.
이놈의 다리가 협조를 해줘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