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지게, 지금은 흔치 않은 농기구 중의 하나이다. 짐을 얹어 등에 지는 운반도구인 지게는 농사에 필수품이고 고생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지게에 얹은 짐이 어깨를 눌러, 큰 부자 앞에 선 소작농처럼 짐 진 사람들, 허리를 굽히고 살아야 했다. 잘 먹어 배 나온 사람에게는 들뜨는 지게, 배를 곯아 등에 붙은 자들에게 맞아 들었다. 먹은 것도 없이 짐을 지고 살다보니 몸이 절로 지게에 맞은 것이다. 저변의 고달픔도 모른 채 개화기에 온 외인들은 그 편리함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지게로 살던 사람들은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추우나 더우나 밖에서 일해야 했던 사람들, 달리 본 것도 없어서 면서기나 군서기 같이 책상에 앉아 펜대 잡고 일하는 사람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였다. 공부에 먼 아이들에게, ‘지게 하나 만들어 줄 테니, 먼 산에 가서 나무나 하고 살래?’ 하면서 에둘러 말할 때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던 지게.
지게는 저 먼 예부터 이 나라에 쓰고 살던 생활도구였다. 고려장에도 쓰였다 하니, 그 역사는 충분히도 오래일 것이고, 그런 만큼 얹고 살던 고달픔도 길었다. 지게에 스치는 모든 것이 인생의 희비애환이었다. 아재들이 지게에 아이들을 앉혀 가는 것처럼, 다정을 얹기도 하거니와, 새 삶을 꿈꾸는 혼수를 지게에 실어 멀리에 보내기도 하였다. 초상집 관을 사서 오거나 죽은 아이를 둘둘 말아 슬픔도 같이 싸서 지고 나가던 지게, 나무를 지면 나무꾼이요, 소금을 지면 소금장수, 병 급한 사람을 얹어 급히 달리던 구급차였다.
우리의 애환을 통째로 얹고 살아온 지게. y자형 나무 두 개를 얽어 맨 단출한 물건, 편리하기도 하니, 여기에 기대어 살아온 세월이 길고도 길었다. 편리한 도구를 벗어나지 못하니, 평생 지게를 벗지 못하고, 평생을 지겟짐으로 살아왔던 사람들.
고생고생하던 사람들, 그 애달픈 삶이 이제 이 세상에 거의 계시지 않는다. 추수 가마니를 들이면서 웃던 모습들, 비 젖은 짐을 얹으며 힘들어 하던 시절들을 되돌아보면 그리움이자 가슴 아린 날들이고 타산지석이기도 하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둬야 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지게처럼 고생을 얹고 살던 시절이 다시 우리 세상에 와서는 아니 될 일이다. 반면에, 편리한 물건들을 별생각 없이 그저 쓰고만 있지는 않은지, 이를 대신할 무엇은 없겠는지, 가끔은 매의 눈으로 살피며 궁리하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