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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색선백(羅字色鮮白)
공점이엄지(空點以嚴之)
여피계명주(如彼 明珠)
치지어정상(置之於頂上)
색깔도 선명하게 글자로 풀어서 기록한 이 천수경은 한 귀절 한 귀절이 모두 다 부처님의 점, 공점으로 장엄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공점'이란 부처님의 점, 공의마음, 부처님의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수경은 중요한 것이고 그 공덕이 무량한 것입니다. 천수경에 쓰인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부처님의 마음으로 장엄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피계명주', 흡사 계명주 같다는 뜻입니다. `계'는 꿸 계자로 흡사 밝은 구슬이 꿰어져 있는 것 같은 것을 말하며, `치지어정상'은 항상 처음과 정상에 두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다같이 생각을 좀 해 봅시다. 눈앞에 새로운 신천지가 열리고 아름다운 보석들이 줄줄이 꿰어져 있는 세계를 말입니다. 제가 예전에 뉴욕에 갔을 때 티파니란 유명한 보석상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더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보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천수경에 나오는 보석은 티파니보석상의 그런 보석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방울다이아가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천수경을 부지런히 독경하게 되면 수천 캐럿트 다이아몬드 목거리보다 더 값있는 보석을 가슴에 달게 되는 것입니다.
천수경을 독송하고 기도하게 되면, 여러분들 마음에 그만큼 아름다운 보석으로 꿰어진 마음의 목걸이를 거시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걸려있는 빛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보이십니까? 다이아몬드 한알도 비싸다는데, 그 비싼 다이아몬드를 줄줄이알사탕으로 엮어 놓았으니 이렇게 값진 보석을 어디에 보관하겠습니까? 물론 최정상의 자리에 보관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경은 소중한 것이기에 그래서 소중하게 보관해야만 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만, 스님들이 공부하시는 어느 강원에서 스님들끼리 싸움이 났습니다. 싸우는 도중 한 스님이 화가 나서 보고 있던 경전을 던졌는데, 나중에 그 스님이 내려가다가 차에 치여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경전들이 우리 눈에는 그냥 종이로 보이지만, 허공에 계시는 화엄신장님들의 눈에는 아주 밝은 황금빛 덩어리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이 들어있는 책들이나 경전을 함부로 다루지 말고 정성스럽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진언동법계(眞言同法界)
무량중죄제(無量衆罪除)
일체촉예처(一切觸穢處)
당가차자문(當加此字門)
`진언동법계'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진리란 영원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천년 전 진리는 지금도 진리인 것이고 미국에서 진리인 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차원 더 나아간다면 지구에서 진리인 것은 저 멀고 먼 우주의 어느 별에서도 진리인 것입니다.
진언이란 진리의 말이고 진실된 말입니다. 우리들의 진실된 말 역시 법계와 하나 된다는 의미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진언동법계'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만, 법계(法界)의 의미는 법이 유통되는 세계, 즉 광대무변한 우주를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참말을 하면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뜻은, 참말을 하면 우주가 그를 가호하게 되고 우주의 도움을 힘입게 된다는 가르침과 통합니다. 우리가 참말을 하고 기도를 하게 되면 우주가 나를 가호하게 됩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세계가 열립니다.
우리는 참말, 진실된 말을 하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릇된 말, 삿된 말을 하게 될 경우 우주는 그를 저버립니다. 그는 결코 우주 법계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존재로 전락될 것이고 크나큰 재앙이 그를 압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말 중의 참말은 역시 염불이요,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란 우주의 복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항상 기도하라고 읊어대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 있습니다.
참말 중의 참말은 기도이고, 또 부처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부처님 말씀을 독경하고 항상 그같은 가르침을 생활화하면 그 역시 우주의 복이 내립니다. 진실로 부처님의 힘, 법계의 힘을 부릅니다.
진언이 법계와 하나되는 위신력을 가지고 있다면, 법계는 청정하고 법계 자체가 부처님이니까 참말을 하고 사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쌓여진 무량한 중죄는 녹아져 내립니다. 기도를 하면 업장소멸이 되고 무량한 중죄가 다 녹아진다는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합니다. `기도는 진심으로의 참회이며, 기도는 헌신적인 참회이다'라고 했듯이, 기도 가운데 참회가 되고 참회 가운데 무량한 중죄가 녹아집니다. 그래서 `무량중죄제(無量衆罪除)'라 한 것입니다.
천수경은 바로 부처님 말씀이고 진언이기에 천수경은 부처님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기에 천수경을 독송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피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촉'은 접촉할 때의 촉자이며 `예처'란 괴롭고 힘겨운 곳이란 말씀입니다. `일체촉예처(一切觸穢處)'란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괴롭고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천수경을 독경하게 되면 모든 것이 순순히 풀려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당가차자문(當加此字門)'이 바로 그 같은 의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천수경의 문을 열고 나가라는 의미입니다. 천수경을 끊임없이 독송하고 기도하고 나아가면,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모든 일들이 모두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슬기롭게 극복되어 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남(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