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날, 석모도에서 산에서 바다 풍경을 만끽하다
1. 일자 : 2010. 9. 23(추석)
2.
장소 : 해명산 (327m), 상봉산(316m)
3.
행로 및 시간
[외포리 선착장(09:00) -> 석모리 선착장(09:10)
-> (버스) -> 전득이고개(09:20. 해명산 1.8km, 낙가산 6.2km, 상봉산 7.3km) -> 전망바위(09:38) -> 해명산(10:05)
-> 방개고개(10:54, 낙가산 2.5km) -> (중식) -> 새가리고개(11:28) -> (고인돌) -> 낙가산(11:55) -> 보문사 갈림1(12:01, 보문사 0.8km, 상봉산 2.5km) -> 보문사 갈림2(12:07,
보문사 0.6km, 상봉산 1.7km, 석모리
면사무소 2.5km) -> 상봉산(12:37, 316m) -> (길
헤맴) -> 석모리 면사무소(13:30) -> 석모리 선착장(13:50)]
4. 동행 : 홀로
<
석모도 섬 산행을 준비하며 >
섬 산행을 몇 번 경험해
보았다. 제주도 한라산, 사량도 지리망산, 남해도 금산, 강화도 마니산이 기억에 남는데, 육지의 산과는 다른 시원한 조망이 인상 깊다, 특히 사량도 지리망산에서
바라다 본 포구와 인근 바다의 색채와 빛의 조화는 늘 마음 속 깊은 곳에 아름다운 풍광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가는 길에서 바라 본 겨울 서해 바다의 빛도 잊을 수 없다. 반면 그 좋다던 남해 금산의
일점선도의 감격은 흐린 날씨로 제대로 감상해 보지 못했다. 산은 늘 같으면서도 같지 않고, 계절과 시간, 코스와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오듯이, 산에서 보는 바다도 늘 같은 감동을 주지는 않는 다는 것이 섬 산행의 경험이다.
섬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향수, 망망대해, 절대 고독, 명징’ 등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명징(明澄)’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분명함과
깨끗하고 맑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다. 섬 산에서 바라다 본 풍경은 숨길 것 없는 개방감이 좋고 그래서
복잡한 상상을 하지 않아서 좋다.
흔히 삶이 팍팍해지면 무작정 바다가 그립다 한다. 그러나 정작 수평선 앞에 서면 왠지 불안해지곤 한다. 앞선 문장은
삶이 재미없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정서이고, 뒷 문장의 불안의 원인은 늘 보아오던 일상의 풍광과는 다른
낯설음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또 하나 수평선 너머로 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산이 있는 풍경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 코스를 머리 속에 그려본다. 차를 몰고 강화도 초지대교를 건너 외포리에
도착하면 9시 정도일 것이고, 배를 타고 버스를 갈아 타고 산행 들머리에 서면 10시, 전득이고개를 출발하여 해명산을 거쳐 낙가산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르고, 상봉산을 올랐다 다시 낙가산으로 돌아 온 후 보문사로 하산하면 2시 정도가 될 것이다.
<
희망사항 >
계절은 어느덧 추석이다. 이례적인 9월 하순 기습폭우로 수도권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파란 가을 햇살이 그립다. 오랜만에 섬 산행에서 명징한
바다와 초가을의 빛을 머금은 포구를 경관을 즐기고 싶다. 외포리에서 석모도로 이동하는 뱃 난간에서 갈매기들의
비상과 날개짓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낮은 섬 산에서 삶의 여유와 희망을 흠뻑 받고
돌아 왔으면 한다.
<
석모도 가는 길에 >
추석 연휴의 마지막날 일찌감치
일어나 채비를 갗추고 차를 몰아 강화도로 향한다. 날씨가 참 맑다. 불과
엊그제에도 260m가 넘는 비를 마포 본가에서 경험했기에, 청명한
날씨가 반갑다. ‘그래 모름지기 가을 날씨는 이래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8시 30분 외포리 포구에 도착했다. 방금
배가 한 대 떠난다. 주차를 하고 행장을 정비하고 9시
배를 기다린다. 포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배들이 항해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뒤편으로 마니산의 마루금이 펼쳐저있다.
9시 정각 석모도행 배가 출발한다. 갈매기가
나른다. 울릉도에서 지겹도록 본 경험이 없었더라면 매우 낭만적으로 보인 경관도 별 흥미가 없다. 이동하는 배에서 석모도의 산줄기를 가름해 본다. 해명산에서 시작된
능선이 섬을 따라 서쪽으로 쭉 이어져 가고 있다. 그 끝에는 오늘 가야할 상봉산도 있을 것이다.
< 석모도 가는
배 안에서의 바다 풍경 >
외포리 포구 출발 10여분 만에 배는 석모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바로 옆 버스 정거장에서 섬 순환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탑승하자
바로 출발한다. 확실한 연계 승차 시스템에 감동한다. 출발 10여분 만에 버스는 전득이 고개에 도착한다.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는다.
<
전득이고개에서 상봉산 >
< 해명산 가는
길의 바다 풍경 >
전득이 고개 입구에는 조그마한
주차장이 있고 건너편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들머리 안내판에는 ‘해명산 1.8km, 낙가산 6.2km, 상봉산 7.3km’이라는 표식이 있다. 일단 해명산을 목표로 발걸음을 내닫는다. 해명산의 높이가 327m, 전득이 고개의 고도가 대략 100m이니 고도에 대한 부담은 없어 좋다. 산 높이는 낮아도 오르막이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초반 15분 정도는 종아리에 알이
배길 정도로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이윽고 능선 안부에 올라선다(09:38). 사위가 시원하게 트여있다. 바로 건너편에 마니산 능선이 보이고, 저 멀리는 고려산, 혈구산, 퇴모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누렇게 변해가는 들녁 끝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서해 바다가 한 없이 풍요로운 모습으로 길게 누워있다. 참으로 평온한 풍경이다. 길가에는 붉은 야생화가 꽃망울을 피우려
하고 있다. 오므린 봉우리 안쪽으로 어떤 모습의 꽃 잎이 숨어 있는지 궁금해 질 정도로 요염한 자태다. 처음 보는 꽃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집에 돌아와 식물도감을
살펴도 이름은 알 수 없었다.)
10시가 조금 넘어
해명산에 도착했다(10:05).
새로 놓인 검은 빛깔의 정상석이 멋지다. 뒤편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지만 그리 넓지 않은 크기다. 흰구름 하나가
갈매기 모습을 한체 어디론지 떠가고 있다. 서쪽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가야할 산들이 보인다. 높이가 고만고만하여 이름을 가름하기는 여의치 않다.
< 해명산에서 본 강화도의 산 / 상봉산 방향의 전경 >
< 해명산의 들꽃 >
309봉은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나쳤고, 제법 구비가 긴
오르내리막이 연이어 나타난다. 지난 주 설악 공룡에서 아홉구비의 능선을 넘은 후유증인지 작은 언덕만
보아도 덜컥 겁이난다. 얼굴에 선블럭을 하지 않아 능선에서 따가운 햇살을 피할 곳이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무 그늘이 많아 얼굴 타는 걱정은 덜게 되었다. 간간이 불어 오는 바람은 서늘하다. 가을은 정말 어느덧 우리 가까이로 오고 있나 보다.
< 석모도 종주 길의 산꾼 >
방개고개에 도착했다(10:54).
해명산 출발 50분만이다. 작은 안부 평지에
벤치가 놓여 있다. 잠시 앉아 물 한 모금을 마신다. 걸음을
멈추니 서늘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방개고개에서 낙가산까지는
2.5km라 한다.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다. 우측편, 떠나온 외포리 방향은 나뭇잎이 무성하여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매양
같은 서쪽의 바다 풍경을 보고 걷는다. 내가 걷는 것에 맞추어 바닷가의 전경도 변한다. 어느 때는 누런 논이 주류이더니, 곧 잿빛의 개뻘이 넓게 펼쳐지고, 어느 곳에서는 염전의 모습도 보인다. 다채로운 빛깔의 집들의 지붕들을
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방개고개에서 새가리고개 가는 길에
점심을 먹었다. 방개에서 새가리고개 갈림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11:28). 밥 힘을 얻어 다시
길을 나선다. 길가에 커다란 돌들이 보인다(11:42). 본래 이곳에 있을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이것도 고인돌의 일종인가 보다. 자세히 보니 자연 상태로 놓인
돌이 아니라, 누군가가 무슨 목적으로 포개 놓은 돌인 것 같다. 무슨
신앙의 힘이 이리 크길래 이 험한 산에도 고인돌을 만들었단 말인가? 신기할 따름이다.
고인돌 무덤에서 고개 하나를 올라서자
또다시 시원한 풍경이 이어진다. 커다란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낙가산
정상이다(11:55).
널찍널찍한 반석들이 땅속에 뿌리가 박힌 채 가을햇살 아래 한가로이 등허리를 드러내고 있다. 산
아래에는 마을이 보이고 마을 좌측에는 보문사의 절집이 얌전히 앉아 있다. 그 뒤편으로는 넓은 갯벌이
펼처져 있다. 평화롭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석모도의 산은
육지의 1000m대 산에 못지 않게 기운차고 아기자기한 산등성이들이 이어진다. 그 능선 위를 걸으며 은빛 바다를 조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낙가산 정상 눈썹바위는 지나며 보니 거대한 통짜 화강암이다. 그 가파른 고도감이 아찔하다. 바위 아래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이자 대표적인 해수관음이 있을 것이다. 주변 마을의 경관도
보문사의 그것 못지 않다. 언제 기회가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1박 2일 나들이를 오면 참 좋은 곳이다.
< 낙가산 전망바위에서 >
낙가산을 내려서니 보문사 갈림이 나온다. 보문사 0.8km 상봉산까지는 2.5km가 남았다. 보문사로 하산하고쁜 유혹을 물리치고 다시 산으로 기어 오른다. 작은
고개를 넘으니 다시 이정표가 있다. 보문사 0.6km, 상봉산 1.7km. 불과 6분만에 거리를
0.8km를 줄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짧은 고개에 올라서니 산불감시탑이 보인다. 멀리 상봉산 봉우리가 우뚝하다. 한 30분 죽었다 하며 걸어야겠다.
머릿속에 기억된 상봉산의 높이는 400m 이상인데, 지도로
확인해 보니 316m다. 100m를 거저 먹었다는 기분에
단숨에 상봉산 정상에 오른다(12:37).
< 상봉산 정상 / 포구를 출발하는 배 >
상봉산 정상에서의 풍경은 오늘 산행의 백미다. 남동쪽으로 해명산까지 긴
능선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바다로는 푸른빛 바닷물과 암회색 갯벌,
푸르고 누런 논, 그 옆으로 마을, 그리고 다시
녹색의 산들이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다채롭다. 역시 산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와 해안은 근사하기가
이를데 없다. 눈이 즐거워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
에필로그
>
상봉산 정상에서의 경치가
너무 황홀했나, 하산 하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 침착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다시 상봉상 부근까지 왔다가 내려갔지만, 도중에 또 길을 잃고 작은 오솔길을 따라 간혹
길이 없으면 잡목을 헤치고 길을 만들며 내려 갔더니, 도착한 곳은 보문사 부근이 아니라 반대편 석모리
면사무소 부근이다. 애고애고 스마트폰 들고 나침반 달고 다니면 뭐하나,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니 까막눈과 다르지 않다. 다행히 전화위복이라할까, 선착장행 버스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와 주어서 길을 잃은 자괴감이 길게 가지는 않았다.
맑은 가을날 섬 산을 종주하고 나니 가슴 속에 밝은 별 하나를 얻은 기분이다. 우울하거나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 또는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 차지한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섬 산행에서 명징한 바다와 초가을의 빛을 머금은 포구를 경관을
즐기고 삶의 희망을 얻고 다시 육지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