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노령연금 주요 쟁점에 대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입장(초안)
지난 2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 문제에 대해 노인빈곤층 문제가 심각해 반드시 도입해야하며, 이에 대한 재원은 조세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발언은 기초노령연금 인상 공약의 충실한 이행을 다시 한 번 약속하는 한편, 노인빈곤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전히 쟁점은 남아있다. 아직까지 기초노령연금을 어떻게 기초연금으로 발전시켜가고, 국민연금과의 통합의 상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현재의 노인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다. 이를 부양해야하는 현 세대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민연금의 급격한 급여삭감으로 더욱 노후가 불안해진 전 국민, 모든 세대의 문제이다. 특히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저임금·비정규노동자와 중소·영세자영업자를 노후빈곤의 나락으로부터 지켜줄 버팀목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노령연금은 제대로 된 기초연금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하며, 이에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연금바로세우기 국민행동(약칭 연금행동)’은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1. 조속히 기초노령연금 두 배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
기초노령연금 두 배 인상은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기 이전에, 이미 기초노령연금법 부칙(제4조의2)에 명기되어 있는 사항이다. 지난 2007년 국민연금 급여를 2028년까지 40%로 낮추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2008년 50%까지 낮아졌고, 이후 매년 0.5%씩 인하되는 것이다. 국민연금 삭감계획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반면, 10%까지 올리기로 한 기초노령연금은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 의미를 갖는 것은 법 부칙의 충실한 이행을 넘어, ‘2014년부터’ 이를 조속히 이행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노후빈곤문제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한국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그것도 OECD 국가평균의 3.3배가 넘는 최고의 노인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이제라도 기초노령연금 10%로의 확대가 조속히 이뤄져야 하며, 박근혜 당선인은 약속한대로 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2. 전체노인을 대상으로 하되, 부유층은 재정적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현행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하위 70% 대상을 전체노인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으며,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체 노인에게 확대하되 소득 상위 30%에는 감액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노인에게 확대하면, 자산조사 없이 연령에 따른 기준만으로 지원받게 되므로 복잡한 선정과정을 없애고 전달체계를 단일화해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시민적 권리를 강조하는 기초연금의 본래성격에 더욱 부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재벌회장에게도 줘야하는가’라는 비판처럼 상위 30%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 상당수의 사회적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이는 ‘지급’에만 초점이 맞춰있을 뿐, 재정적 책임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지급하되, 연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나 연금과세 등이 함께 이뤄져야 불필요한 논쟁을 최소화하고 재정마련 뿐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가능할 것이다.
3. 기초노령연금에 소요되는 재원은 마땅히 감당해야 하며,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여전히 일부에서는 기초노령연금을 인상하면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고, 마치 한국경제가 파탄날 것처럼 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노인인구 및 연금지출규모를 OECD 국가들과 비교해봤을 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후에 대한 공적지출 비중은 GDP대비 1.7%수준으로 멕시코(1.4%)에 이어 가장 낮고, OECD 평균 공적지출의 1/4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론 국민연금제도가 성숙해짐에 따라 공적지출은 자연스레 증가하겠지만, 현재 노인 빈곤율이나 경제규모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기초노령연금을 10%로 확대하면(대상자 100%기준), 향후 2050년 기초노령연금 지출은 GDP대비 4.34%를 차지하며, 국민연금 지출액까지 감안하면 약 9.84%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OECD 28개국은 노인인구가 14.7%일 때 GDP평균 9.3%를 지출했고, 2050년에는 노인인구가 약 26% 수준에서 GDP 약 11.7%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에 비한다면, 여전히 낮으며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어쨌든 부담비용의 총량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를 개인의 능력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놔둘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제도적으로 함께 부양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4. 과도한 ‘연금 적립금’의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박근혜 당선인은 기초노령연금에 소요되는 재원을 “세금”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현재도 조세를 재원으로 하고 있고, 제도취지를 고려할 때 조세를 통해 충당하는 것이 기본방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재원충당방안을 둘러싼 논쟁에서 드러난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한다. ‘국민연금 적립금 활용’이야기가 나오자, 많은 국민들이 이를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으로 활용하면 제대로 연금을 못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는 그동안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연금재정이 고갈난다며 자극적으로 선동하며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을 부추겨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도 국민연금의 지급보장의무 법제화를 거부하면서 사실상 이런 분위기를 조장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지급받고, 현재의 국민연금 가입자는 민간보험과는 달리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더 받도록 되어 있는 세대 간 연대에 기초해 있는 공적제도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거나 기금고갈로 연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이런 오해와 불신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반드시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기금의 과도한 적립금과 기금운용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GDP의 30%에 달하는 기금은 주식이나 대체투자 등의 비중을 높이며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며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금처럼 금융 수익률 중심으로 운용되면 연금자산 뿐 아니라 금융시장과 경제전반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있다.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5.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핑계로, 국민연금을 개악해서는 안 된다.
향후 더욱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은 국민연금과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통합하느냐는 것이다. 가장 유력하고, 그만큼 우려되는 것은 국민연금을 소득비례형태로 변경하는 것과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중복수급을 금지하는 것이다.
먼저, 국민연금을 소득비례연금으로 한다는 의미는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A값)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 급여 40%는 균등부문(A값, 20%)과 비례부문(B값, 20%)로 이뤄져있다. 기초연금이 도입되어 이론상 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더라도, 실제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이 축소되면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보다 낮을수록 급여인하폭은 클 수밖에 없고, 소득에 따른 급여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예컨대 2013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해당되는 약 57만원의 기준소득을 가진 경우 20년 가입기준 약 24만 6천원의 연금급여를 받게 되나, A값의 비중이 절반으로 축소되면 약 18만원으로 6만 원 가량 낮아진다.
둘째, 국민연금을 받는 경우 기초노령연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 급여인하로 인해 더욱 불안해진 노후소득을 보완하는 의미가 상실된 방안일 뿐 아니라,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와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간 갈등을 부추기는 한편 국민연금의 이탈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예컨대, 10년 동안 평균소득 186만원을 받는 경우 매월 보험료를 16만 7,400원 내서 받게 되는 연금급여는 월 214,550원이다(2012년 신규가입 기준). 이 경우에는 국민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을 주지 않는 반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아도 월 189,200원을 받는다면 국민연금에 대한 이탈과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요구한다.
이번 인수위원회는 공약이행뿐 아니라, 향후 5년의 국정과제를 매우 폐쇄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다뤄나가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나가야할 방향과 국가의 책무는 밀실에서 측근 몇 사람과 논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라도 기초노령연금을 포함한 주요 민생 문제에 대해 입과 귀를 열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공론화하고 지혜를 모아나갈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