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랑의 사정에 의해 순례를 11월2일, 3일로 연기했습니다. 충무공이 일본함대보다 형세가 외로워 계속 서쪽으로 진을 이동하면서 지형과 물때를 살피는 구간입니다. (명량해협 직전 구간 )
1. 난중일기 원문읽기(정유년8월20일-29일)
二十日戊寅。晴。前浦窄狹。移陣于梨津。(이십일무인。청。전포착협。이진우리진。)[무인/9월30일] 맑다. 앞 포구가 몹시 좁아서 진을 이진(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으로 옮겼다.
二十一日己卯。晴。曉。得霍亂重痛。不省人事。達夜坐曉。(이십일일기묘。청。효。득곽란중통。불성인사。달야좌효。)[기묘/10월1일] 맑다. 새벽에 도와리(곽란, 토사)가 일어나 몹시 아파 인사불성이 되었다. 밤을 앉아 새웠다.
二十二日庚辰。晴。霍亂漸重。不能起動。(이십이일경진。청。곽란점중。불능기동。)[경진/10월2일] 맑다. 도와리가 점점 심하여, 일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二十三日辛巳。晴。病勢極重。泊船不便。棄船出海而宿。(이십삼일신사。청。병세극중。박선불편。기선출해이숙。)[신사/10월3일] 맑다. 병세가 무척 심하여 정박한 배에서 지내기가 불편하므로 배타는 것을 포기하고 바다에서 나와서(물에서) 잤다.
二十四日壬午。晴。早到刀掛地。朝飯。到於蘭前洋。則到處已爲空虛。宿于洋中。(이십사일임오。청。조도도괘지。조반。도어란전양。즉도처이위공허。숙우양중。)[임모/10월4일] 맑다. 일찍 도괘 땅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었다. 어란 앞바다에 이르니 가는 곳마다 텅텅 비었다. 바다 위에서 잤다.
二十五日癸未。晴。唐浦鮑作。偸牛牽去。而虛警賊來。余已知其誣。拿虛警者二名。卽令斬之。軍中大定。(이십오일계미。청。당포포작。투우견거。이허경적래。여이지기무。나허경자이명。즉령참지。군중대정。)[계미/10월5일] 맑다. 당포의 보자기(어부)가 소를 훔쳐 끌고 가면서, "적이 쳐들어 왔다"고 헛소문을 내었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인 줄 알고 헛소문을 낸 두 사람을 잡아 곧 목을 베게 하니 군중 인심이 크게 안정되었다.
二十六日甲申。晴。任俊英騎馬而來奔。告賊兵到梨津云。○右水使來。(이십륙일갑신。청。임준영기마이래분。고적병도리진운。○우수사래。)[갑신/10월6일] 맑다. 임준영이 말을 타고 와서 급히 보고하는데, "적병이 이진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라우수사가 왔다.
二十七日乙酉。晴。裵楔來見。多有恐動之色。余曰。水使乃欲移避耶。(이십칠일을유。청。배설래견。다유공동지색。여왈。수사내욕이피야。)[을유/10월7일] 맑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와서 보는데, 많이 두려워하는 눈치다. 나는 "수사는 어찌 피하려고만 하시오!"라고 말하였다.
二十八日丙戌。晴。賊船八隻。不意入來。諸船恐㤼。慶尙水使欲爲避退。余不爲擾動。令角指旗追逐。賊船退去。追至葛頭而還。夕。移陣獐島。(이십팔일병술。청。적선팔척。불의입래。제선공겁。경상수사욕위피퇴。여불위요동。령각지기추축。적선퇴거。추지갈두이환。석。이진장도。)[병술/10월8일] 맑다. 적선 여덟 척이 뜻하지도 않았는데 들어왔다. 여러 배들이 두려워 겁을 먹고, 경상수사는 피하여 물러나려 하였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호각을 불고 깃발을 휘두르며 따라잡도록 명령하니 적선이 물러갔다. 뒤쫓아 갈두(새남군 송지면 갈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저녁에 진을 장도(노루섬)로 옮겼다.
二十九日丁亥。晴。到碧波津。(이십구일정해。청。도벽파진。)[정해/10월9일] 맑다. 벽파진(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대었다.
2. 교통편
11월2일(일) 서울센트럴시티(08:10) --5시간--완도(13:10) 운임: 우등 37,200
11월3일(월) 해남(17:30) --4시간25분--서울(21:55) 운임: 일반 23,100
3. 소요 경비 예상(각자 부담): -왕복교통비(65,000 내외) -식비(40,000 내외); 2일 중식, 석식, 3일 조식, 중식 -숙박비(15,000). 계(120,000)
4. 도보 일정: 32km, 10.5시간 (2일 14km, 4.5시간, 3일 18km, 6시간)
2일(일): 서울(08:10)--(고속버스로이동)-->완도(13:10, 중식 후 출발 14:00) >북평면소(3km, 14:50) >이진리(4km, 15:10) >서흥리(7km, 16:00) >영전리(10km,17:00) >사구미해변, 자연사박물관(14km, 18:30) >석식(18:40-20:40) >소등(22:00)1박
3일(월): 기상(06:00), 조식(07:00), 사구미 출발(07:50) >땅끝(4km, 08:50) >송호리(7km, 09:40) >소죽리(11km, 10:50) > 송지면소(13km, 12:20) >어란리(15km, 13:00) >어란진(18km, 13:50, 중식 후 출발 15:40) >(시내버스로 이동) >해남(16:30) 해남출발(17:30)>(고속버스로 이동) >서울(21:55)
5. 기타: 참고자료 제공. 연락처: 금오랑(010-3160-2591) *폭우 예보 시 하루 전에 취소 공지
(참고) 임진년 이후, 정유년 이전(1593-1596) 주요 사건
1593. 명군(제독 이여송)의 숙천 집결. 1군 부총병 이여백(이여송 아우) 11,500, 2군 부총병 양원 11,700, 3군 부총병 장세작 11,500.
1.8 평양성 포위 탈환. 이여송 북, 서 방면. 조선군(순변사 이일) 13,700 남쪽 방향 담당
1.9 평양성 버린 고니시. 남은 병력 1/3 한성으로 후퇴 시작.
1.27 벽제관에서 이여송 패.
2.12 권율, 행주산성 지킴. 조선군 2,300명 대 일군 3만명.
2.18 진주, 김천일 전사. 함락.
6.22-29 퇴각 왜군이 전주 공격. 수만 명 학살. 휴전회담 속개. 왕자 임해군, 순화군 석방.
7.14 전라좌수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이동.
8.15 조정은 삼도수군통제사임명, 이순신은 10.9 임명장 받음(69일 후).
10.1 선조 한성 귀환. 정릉 월산대군 집으로.
히데요시의 의심과 망상. 첩 챠챠의 아들 쓰루마쓰 요절. 절망한 히데요시는 히데쓰쿠(히데요시 누이의 외아들)에게 관백을 물려주고 자신은 태합.
1593. 히데요시는 두번째 아들(히데요리) 얻음. 앞날을 걱정.
1595년 히데쓰쿠(28세. 관백)를 절간에 유폐 후 할복 명령, 처첩과 자녀 39명 처형. 수많은 연루자발생. 가신 절반이 크게 꾸지람. 불만자는 후에 히데요리 배반, 이에야스 편이 됨.
1594. 휴전회담. 1.20 심유경과 고니시, 웅천에서 히데요시의 항복문서 작성. 12월에 명에 보냄
3.29 유성룡, 제승방략 비판, 진관체제 복귀 주장.
8.15 사명(유정)이 가토와 회담. 일본은 조선의 4도 할양 요구
1596년 선조, 허준에게 동의보감 저술 지시. (1608.2.1 선조승하 후 1610.8 동의보감 25권 완성.)
7.6 이몽학의 난.
8.23 김덕룡, 이몽학의 난 관련 무고로 고문 받고 죽음. 의병 사라짐.
8월. 명과 조선 통신사 향일.
9.3 “회담은 사기극” 도요토미 노함. 재침 명령. 9월. 히데요시, 사신 만나고 속은 것 인식. 고니시 변명(4명의 연판장: 우키다 히데이아, 이시다 미츠나리, 마츠다).
12월 가짜 항복문서 받은 명 신종은 이종성, 양방형을 책봉사로 임명. “왕위책봉만 허락. 무역조공 불허”. 심유경, 고니시 “사신은 항복하러 오는 것”이라 히데요시 속임. 히데요시는 전쟁 끝. 철군명령. 부산포에 2만 명 남기고 모두 철군(9월).
1597년 1월13일 가토기요마사 다대포 상륙. 정유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