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정중학교앞은 한창 공사중.
룡정중학교는 1920년에 설립된 대성중학교가 전신이다.
복원한 대성중학교.
용정이 낳은 불세출의 시인 윤동주의 시비
윤동주는 사실 은진중학을 다녔지만 터가 남아있지 않은 까닭에 대성중학교울안에 시비가 세워졌다.
여기에서 윤동주의 서시를 안읽어볼수가 없다.
서시(序詩)
윤동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완성)
대성중학교 내부는 력사전시관으로 활용되고있다.
룡정시 실험소학교.
서전서숙 기념비
서전서숙은 1906년에 독립투사 이상설선생이 설립한 연변 최초의 근대화학교이다.
조선왕조 말기의 지식인으로서 과거에 급제하고 성균관 관장까지 담임하였던 이상설은 일제의 통치에 불복하고 독립에 뜻을 두고 간도로 건너와서 신교육을 펼쳤다.
하지만 일제의 마수는 간도에도 뻗쳐서 서전서숙은 비록 1년도 못되여 문을 닫아야 했지만 신학문과 민족정기를 키우던 그의 뜻은 이미 널리 펼쳐서 수많은 민족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룡정은 우리민족 교육의 중심지로 발돋움을 하게 되었다.
1917년 연해주에서 독립활동에 종사하던 이상설은 48세의 나이에 병으로 작고했다.
2005년 러시아 연해주로 들어가는 길, 우수리스크의 수이푼강옆에 허허롭게 서있는 이상설유허기념비를 만날수 있었다.
윤동주 생가입구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윤동주 생가는 룡정시 명동촌에 자리잡고있다.
복원한 윤동주생가.
윤동주의 생가는 1900년에 윤동주의 조부가 지었는데 1981년에 허물려졌다가 1994년에 다시 복원되였다.
윤동주 생가 내부모습.
어릴때 우리집도 이런 모양이였다. 부엌이 있는 칸은 정지라고 부르고 자는곳은 방. 방옆은 고방이라고 부른다. 독위에는 나무로 깎아만든 함지며 선반에 얹혀져있는 질 이남박도 다 낯설지가 않다.
명동교회옆에 자리잡고있는 김약연기념비
명동학교의 교장을 담임하였던 김약연목사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이며 시인 윤동주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광복후 김약연일가가 지주로 몰리면서 기념비마저 회손되였다. 나중에 기념비는 땅속에 숨겨졌다가 80년대에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였다. 그나저나 해설하시는 분 조인성 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