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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봄나들이나 가볼까?
김 길 수
“엄마, 이번 주말에 은경이 농촌체험학습 간다는 데…!”
영진이는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이다. 간밤에 늦게까지 야근하고 온 탓에 아침까지도 피곤한가보다. 냉장고에서 우유팩을 꺼내 식탁 앞에 걸터앉는다.
“그래? 그러면 미리 준비해야 할 건 따로 없고…?”
강 여사가 싱크대에 붙어 선 채, 믹서기에 토마토를 썰어 넣으며 묻는다.
“없어요. 근데, 은철이 데리고 우리도 같이 가야 된데”
“뭐? 너희들도? 그럼, 김 서방도 같이…?”
“그래. 엄마. 은경이 반 친구 부모들 몇몇이 함께 간대요. 1박 2일로….”
“김 서방은 그리 바쁜데 시간이 되나? 아침에 식사도 안하고 나갔어.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걸 좀 챙겨줘라”
“아이, 참 엄마도. 은경이 아빠 자기 스스로 알아서 잘 하잖아?”
영진이의 대답은 건성건성이다. 우유팩에 꽂힌 스트로를 빨며, 눈은 시종 스마트폰 화면에 가 있다. 강 여사가 힐끗 돌아보곤 이내 시선을 믹서기로 돌렸다.
‘저런, 철딱서니 없는 것. 그리고 체험학습은 무슨? 그 핑계로 학부모들끼리 놀러가는 거겠지…?’
하지만 이 말은 그냥 입속에 맴돌고 만다. 초등 3학년짜리들이 무슨 농촌체험을 할 거라고? 토마토 주스를 머그잔에 따라 영진이 앞에 놓아준다. 영진이 컵을 반쯤 비우고는 일어선다. 이내 세면장으로, 거실로, 안방으로 왔다갔다 출근준비로 옆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바쁘게 동동거린다.
“엄마, 다녀올게요. 아이들 준비물, 엄마가 좀 챙겨줘요.“
영진이 거실을 휘익 돌아보고는 곧장 현관으로 나선다.
‘아이고 저런 싸가지하고는? 또 아이들 준비물까지 챙겨주라고?’
강 여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단 몇 분만 일찍 서두르면 될 일을 꼭! 은근히 부아까지 치밀어 오른다. 아예 모르겠다며 내팽개쳤던 일이다. 제 새끼 학습준비물까지 챙겨주는 건 솔직히 싫었다. 아니, 싫었다기보다 까다로웠다. 무엇보다 학습 진도나 수업내용을 잘 아는 엄마가 챙겨주는 게 당연한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들 말마따나 할머니가 챙겨주려다 자칫 실수하면 곤란하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번번이 말만 툭 던지고 나가버리는 데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몇 번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타성에 젖어버렸는지 요즘은 더 당당하다.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이야 자주 하지만. 또 강 여사도 이왕 하는 일 흔쾌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솔직히 귀찮을 때가 많다.
“그래 알았어. 근데 오늘은 택배 올 거 없나?”
“택배…? 있지. 어, 라면하고 참기름. 저 가요 엄마”
영진이 후다닥 현관 밖으로 나가버렸다. 매일 이런 식이다. 엎드려 절 받듯, 미리 챙겨 물어야 하다니? 이게 뭐람? 강 여사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닫혀버린 현관문을 자그시 노려봤다. 라면과 참기름이라? 그런 것도 택배로 주문하나? 택배로 주문하는 게 무슨 자랑거린가? 움직이기 싫은 게으름뱅이들이나 하는 짓이 아닐까!.
집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코앞에 널린 게, 시장과 마트다. 시장 보는 재미도 쏠쏠할 텐데…! 강 여사에겐 그런 기회도 별로 없다. 갑갑증으로 짜증이 솟는다. 들고 있던 행주를 개수대에 패대기치고는 벽시계에 눈을 준다.
아직 손주들 깨울 시간은 좀 이르다. 베란다로 나가본다. 창 너머 일망무제로 펼쳐진 바다가운데 오륙도가 가물가물하고, 잔뜩 낀 해무 탓에 수평선도 흐릿하다.
혹시 딸에게서 피로가 감염이라도 된 걸까? 무연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사이 하품과 기지개가 절로 터져 나온다.
아이들은 아직 한 밤중이다. 그래도 이제 아이들을 깨워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초등 3학년생인 은경이와 유아원생 은철이를 깨워서,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학교와 유아원에 각각 보내야 한다. 강 여사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일과다.
생각보다 쉽지 않고, 또 힘도 드는 일이다. 아이들이 늦잠에 빠지거나, 밥투정을 하거나, 뺀질거리며 시간을 끌 때는, 시간에 쫓긴 나머지, 울화까지 치밀 때도 없지않다. 심지어 한 주먹씩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일을 줄일 방법은 없어 보인다. 기계화도 자동화도 통하지 않는 분야다. 그것도 시간차까지 둬가며 차근차근 해야 한다. 두 녀석의 등교시간이 각각 다르니까.
매일 숙제하듯, 아니 전쟁을 치르듯, 개미 쳇바퀴를 돈다. 손자보기? 그까짓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저 엄살로 여겼었다. 비록 힘이야 들겠지만, 대신 아이들과 함께하는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사돈네가 아이들을 봐 줄 때도 그게 뭐 그리 큰일이랴?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손자보기를 떠맡자 바로 알게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세상으로 변해있었다. 먹이고 입히는 것부터, 데리고 노는 일, 버릇이나 길들이기 따위도, 옛날식은 통하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투나 사투리 하나까지 조심해 달라는 게 딸년의 부탁이었다.
자칫 시골 할매 소리 듣게 된다는 게 이유였다. 시골 할매가 뭐 어때서? 했지만, 자칭 신세대주부라는 영진의 가당찮은 주문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더욱 가관인 것은 손주 돌보기도 주위로부터 암암리의 평가대상임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아파트단지 내에서도, 학교에서도, 유아원에서도 지켜보는 시선이 몰래카메라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뭔가 꼬였거나 익숙하지 못하다 싶은 일이 있으면, 거침없이 지적과 개선방안이 득달같이 딸년에게로 날아오는 모양이었다. 생활환경이 비슷하고 저희들 말대로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통해서였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설거지까지 마치자, 어느새 정오가 가깝다. 창문너머로 수평선이 윤곽을 드러냈다. 그새 안개가 사라졌나? 지금부터 두어 시간은 휴식시간이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TV를 켠다. 고부간의 갈등문제를 두고 인기 배우와 탤런트들의 웃음이 자지러진다. 매일 듣는, 그래서 그 말이 그 말이다 싶어 TV를 꺼버린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스르르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진이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식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아버지와 손을 맞잡고. 그런데 저 양반 얼굴이 왜 저래? 오늘따라 왜 저리 가무스름하고 수척해보이지? 영락없는 시골할배다. 영진이의 하얀 드레스에 대비된 탓일까?
‘저 양반이 왜 저래? 혹시 어디 안 좋은 데라도 있나?’
생뚱맞게도 이 좋은 시간에 무슨 망발이지? 잠간 스치는 생각치고는 너무 방정맞다. 순간, 장면이 바뀐다.
안방에 누운 영진이 아버지의 시선이 창밖 담장너머 벚나무에 가있다. 괭한 눈빛에 고엽같이 바싹 마른 얼굴이 안쓰럽다. 들릴락 말락 힘없이 말을 건넨다.
“여보, 우리가 손자 키울 일은 없을 것 같제?”
“아니, 그게 무신 말이요? 영진이가 임신했다는 이바구 금방 듣고도?”
“갸들은 아이가 태어나도 서울에서 살 거 아이가? 그런 께 시골에 사는 우리는 아예 아이 키우는 일하고는 인연이 없을 거 아이가!”
“아이고, 난 또 무신 이바구라고? 그야 당신 퇴직하고 몸 나은 후, 서울로 이사 가마 되지 무슨 걱정?”
“허, 참 그렇기는 하지만―!”
의사는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준비를 서두르라고 했지만,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딸과 사위에게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내려오라는 연락까지 해 둔 상태다.
영진이 아버지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창밖에는 바람결에 벚꽃이 우수수 휘날리고 있었다. 영진이 아버지의 시선이 벚꽃 따라 흔들린다.
“옛날처럼 경주 벚꽃구경이라도 한 번 가고 싶네만…! 몸이 이래 갖고야―!”
영진이 아버지의 말이 모기소리다. 눈가에 물기가 보인다. 저토록 바싹 마른 몸체에서 눈물방울이라니! 순간, 강 여사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럼요. 얼른 나아 벚꽃구경 가입시다.”
강 여사가 애써 큰 소리로 답한다. 다시 벚꽃들이 우수수 날린다.
‘띵동띵동’
아니, 이 소리는? 초인종소리에 퍼뜩 잠이 깬다. 그새 잠이 들었나? 아이고 얄궂어라 백주 대낮에 무슨 꿈이? 1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
무슨 뚱딴지같은 꿈인가1 정말 백일몽이 따로 없구나! 싶다. 무슨 일로? 곧 다가오는 영감 제삿날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벚꽃 피는 봄이라서?
강 여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인터폰 앞으로 다가갔다.
“택배 왔습니다.”
모니터에 택배영감이 나타났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들리는 영감이다. 연령도 비슷하고 고향도 지리산 밑 인접한 군(郡)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현관문을 연다.
“아이쿠, 수고가 많으시네요 오늘은 또 뭡니까?”
“오늘은? 이거, 라면하고, 에 또, 참기름인가 봐요.”
아침에 영진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라면과 참기름까지? 하는 생각이 또 든다. 아무리 내 돈으로 구입한다지만…? 참 희한한 세상이다.
“라면까지? 이거 미안해서…! 어떡해요? 잠깐 음료수라도 한 잔 드시겠어요?‘
강 여사는 얼른 부엌으로 가 오렌지주스 한 잔을 들고 나왔다.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일망정 너무 수고를 끼치는 것 같다. 영감님이 엉거주춤 음료수 잔을 받으며 대답했다. .
“아,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리고 미안하다니요. 이런 일이 있어야 우리도 일거리가 있지요.”
“아, 이야기가 그리 되나요?”
“오늘도 배달 기다린다고 외출도 못 하신 것 같네.”
“맨날 그렇지요. 뭐. 택배도 받아야 하지만, 딱히 갈 데도 없으니까요”
“가까운 장산봉 산책이라도 자주 하시고, 시장에도 자주 가셔야지요?”
“시장 갈 일이 거의 없어요. 요즘 젊은 것들 워낙 인터넷 구매 좋아하니까”
“맞아요. 그렇긴 해요. 인터넷 구매라는 게 워낙 유행이라…”
“우리 집 딸년이 꼭 그래요. 저는 뭐 내가 힘 들까 봐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요”
“모두들 다 그래요. 세상이 원체 그런 세상이니까요.”
“그래요? 난 우리 아이만 유별난 줄 알았어요. 그 바람에 재래시장에 가는 재미도 싸악 없어 졌지 뭡니까?”
사실이 그랬다, 영진이는 뭐든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사소한 일상생필품까지. 어떤 것은 외국에까지 직접 인터넷구매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제 완연한 봄인데, 고향에라도 한 번 다녀오셔야지요?”
택배영감이 밋밋한 분위기 탓인지 빈 음료수 잔을 돌려주며 물었다.
“가 보고 싶기야 굴뚝같지만 어디…?그게 쉬워야지요.”
고요하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치미는 부아를 잠재우려고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봄이 온 탓에 베란다에 햇빛이 제법 길게 파고든다. 난분에 비치는 햇살의 음영이 선명하다.
거실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 거실바닥과 식탁은 아이들이 나간 후의 모습 그대로다. 영진이 말이 하도 괘씸해 청소와 설거지를 잠시 팽개쳤던 탓이다.
못된 것! 처음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혼자 애쓰는 게 너무 안쓰러워 도와주겠다고 했던 말이었는데―.
오눌 아침 일이다, 엊저녁 저의 아버지 제사 모시느라 피곤하기야 했겠지만, 아침부터 너무 맥 빠진 모습이기에 한 마디 거들었다.
“그리 피곤하다피곤하다 하지 말고…, 먹거리 장보는 일은 앞으로 내가 봐 올게”
그러자 영진이가 지체 없이 되받았다.
“엄마는 싼 재료만 골라 사오잖아?”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가관이었다.
“난, 영양가도 계산하고, 신선도와 유기농식품인지도 따져보고 사온다구요”
강 여사는 기가 막혔다. 그동안 먹거리는 언제나 영진이가 사 왔었다. 그런데 싼 것만 사온다니? 언젠가 영진이가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다기에, 강 여사가 재래시장에서 먹거리를 몇 번인가 사왔던 일이 있었다. 아마 그때 엄마의 장보기가 영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촌뜨기 할매지만 먹는 식재료 고르기도 못할까? 평생 경험으로 봐서도 그렇지? 꼭 현대식 마트에서 사야하고, 말갛게 씻고, 모양 나게 다듬고, 랩으로 감싸야만 좋은 상품인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라 일시에 혼쭐이 나가버리고, 다리마저 휘청하는 것 같았다. 시시때때로 오금 박는 소리야 곧잘 하는 딸년이지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듯이, 언제나 예쁘게만 보였다. 더욱이 혼자 남은 엄마에겐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했고. 간혹 아니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때는 또 세상물정 속속들이 몰라 그렇겠지! 너그럽게(?) 받아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귀에 거슬렸다. 세상에, 저 따위 로 모진 말을 내뱉다니? 정말 그 순간 숨이 막혀 기절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무슨 망발인진 몰라도 그 순간엔 이미 고인이 된 지 한참인 영감까지 생각났다. 영감이 살아있었더라면 저런 말 듣고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새삼 세상에 우군이라곤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
‘세상물정 전혀 모르면서 오로지 돈만 밝히려는 할망구로 보고 있다니…?’
자존심 상하는 문제였다. 매일 피곤하단 말을 입에 달고 지내는 애가 아닌가! 두 아이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자, 회사의 중견간부라니 1인 3역이다. 거기다 주부라는 소임을 더하면 역할은 또 하나 늘어난다. 그러니 엄마나 힘이 들까! 때문에 언제나 대견스러운 딸이었다. 강 여사에게는 삶의 보람이자, 자랑거리였고, 유일하게 비빌 언덕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그랬을까? 너무 많은 역할에 또 열심히 사는 모습이 가끔은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영진이 하는 말은 제 아버지 이상으로 든든하고 대견스러운 버팀목이었다.
“엄마는? 내가 뭐 어린애요? 나이가 얼만데…”
어쩌다 강 여사가 위로 섞인 말이라도 던지면, 영진이가 웃으며 받아넘기는 말이다.
‘그래 영진이가 왜 안쓰러워?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데―!’
정말 쓸데없는 걱정 하고 있구나! 싶었다. 안쓰러운 사람은 바로 자신이 아닌가! 문득, 영진이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자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당신의 제사 파젯날 이렇게 딸내미에게 맘 상하고 있느냐? 고 핀잔하는 것 같아서다. 동시에 저 세상으로 가던 최후의 모습도 크게 오버랩 되었다.
영감은 손녀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간경화라는 어렵고 무서운 병마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영진이 결혼식 후 정밀진단 끝에 발견한 병명이었다. 1년 남짓 온갖 치료를 다 하느라고 했으나, 의사는 만날 때마다 너무 급속도로 진행된다며 설명인지 불만인지 투덜거렸다.
강 여사는 소파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옆구리 쪽이 찌뿌드드하다. 주먹으로 가볍게 옆구리 쪽을 툭툭 두드리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반복했다. TV를 켰다. 갑자기 고요가 싫어진 탓이다. 뉴스시간이다. 사망한 지 일주일 만에 발견한 독거노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래, 어쩌다 저런 일이?‘
혼자 혀를 차는데, 갑자기 엊그제 오후의 일이 뒤따라 생각났다. 오랜만에 재래시장에 들렀었다. 영감 제수용품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볼 일을 마치고 시장 입구로 나오다 택배 영감과 마주쳤다. 놀랍게도 택배 영감은 리어카를 끌고 있었는데, 종이 박스 등 고물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이런 일도 하시네요?”
“요즘 말로 투 잡 합니다. 오전에 택배일 하고요. 오후에…”
택배영감이 허허 웃었다. 심심하지도 않고, 생활비에 보탤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집이 가까운 데 있느냐고 묻자. 아파트 단지에 붙은 주택단지를 가리켰다.
“저쪽 윗동네 친구 집에 더부살이 하고 있어요.”
택배물건 배달할 때와는 판이하게 대답이 거리낌이 없었다.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는 이렇다. 며 연신 허허 웃었다. 아파트 쪽으로 걸으며 마누라와는 사별하고 하나 있는 아들이 강원도 속초에 살고 있다고도 했다. 생활비에 보태야하기에 이런 일도 시간 나면 해야 한다며, 갑자기 만난 일이 계면쩍은지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내기도 했다.
“왜, 아드님과 합가하지 않으세요?”
“퇴직금까지 보태주며 합가를 했더랬지요. 그런데 사업 실패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혼자 사는 게 더 편해요”
TV를 꺼버렸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거지 뭐! 죽은 지 1주 만에 발견되는 영감도 있다 하질 않는가? 택배영감도 얼마나 힘이 들까?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방을 치운다. 딸네 방을 힐끗 들여다보곤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다가가서 문을 연다. 흩어진 옷가지며, 화장대를 정리한다. 연신 끌끌 혀를 찼다. 이래놓고도 아이들이나 엄마한테 잔소리 할 체면이 있을까? 어릴 적부터 그렇게 지청구까지 해가며 가르쳤음에도…, 피식 헛웃음이 터진다.
벽시계를 바라본다. 어느덧 은철이가 돌아올 시간이다. 부엌 쪽 베란다 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본다. 아파트 마당이 까마득해 보인다. 19층 아래가 새삼 어질어질하다. 가디건을 걸친다. 은철이 마중을 나가야지. 노란 바탕에 무지개가 그려진 유아원버스가 은철이를 데려다 줄 것이다.
아파트 단지 화단 울타리에 노란 개나리꽃이 한창이다. 그 옆으로 목련 한그루 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잎보다 먼저 나온 꽃이 왠지 외로워 보인다. 문득, 작년에도 이 나무가 있었던가! 잊고 있었던 친구소식을 새로 접하는 기분이다.
단지 내, 차도를 따라 줄 지어 선 벚나무들도 잔뜩 긴장상태인 것 같다. 원체 벚꽃으로 유명한 동네가 아닌가. 해마다 마을벚꽃축제를 열 정도다. 조만간 꽃봉오리들을 앞 다퉈 터뜨리고자 잔뜩 긴장한 것 같다. 마치 출발선에 선 단거리 선수처럼.
새삼 봄이 이런 것이었구나! 싶다. 처음 맞이해보는 것처럼 생경하다. 수없이 많은 봄을 맞이하고 또 보냈음에도…!
유아원 통근차를 기다리며 팔각 정자에 걸터앉는다. 할머니들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젊은 엄마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영진이보다 어려보이는 엄마들이 더 많다. 그런대도 모두 영진이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건 웬일일까?.
“손자 마중 나왔나 보네?”
돌아보니 207동 박 할머니다.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고등학교 음악교사 출신으로 복지관 노래교실강사라고 했었지. 매일같이 노래교실에 가자며 조른다. 자신은 이미 예전에 손주들 봐주기 끝냈다며 자랑이다.
“네. 벌써 귀가하시네요. 아이가 유아원에서 올 시간이라…”
“노래교실에도 한 번씩 가자니까. 손자 다 봐 주려면 한도 끝도 없어”
“그야, 알지만 지금 형편이 되어야지요.”
“딸내미한테 단단히 이야기 좀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병나지. 병 나”
당연한 말이다. 발설하지는 못하지만, 누가 그걸 모르겠어요? 하며 되묻고 싶다..
정말, 영감인 영진이 아버지 말마따나 아이 볼 일이 있을까? 했었다. 아예 예상도 생각도 없었던 일이 아니었던가.
영진이가 서울로 유학을 갈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시골에서 중학을 마치고 고등학교부터 아예 서울로 보냈다. 영진이 아버지에겐 오로지 영진이가 삶의 전부였다. 초등학생이던 영진이 남동생을 사고로 잃은 후 부터다. 여름날 폭우에 불어난 냇물을 건너다 실족한 탓이었다. 그때부터 근무지는 시골학교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마음은 서울의 영진이에게 가 있는 삶이었다.
따라서 영진이가 서울에서 살게 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도 서울에서 다녔지만, 졸업 후 직장도 서울에 있었다. 사위는 처음부터 서울 사람이었고.
강 여사로서야 혼자 고향마을에 살 때까지만 해도, 영진이 아버지 생각처럼 손주 돌보기는 언감생심이었다. 친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울에 살고 계시니까, 설사 그렇게 하고 싶어도 어림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랬는데, 사위가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정부시책에 따라 근무지가 바뀐 탓이었다. 한두 해 부산근무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주말부부를 피해 영진이까지 부산지사를 희망해 내려오게 되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사돈네가 내려올 형편이야 물론 아니었다.
그때부터 강 여사의 손주보기가 시작됐다. 지리산 인근에 살았던 강 여사에게 딸과 사위의 요청은 집요했다. 진작부터의 일이었다. 시골에서 혼자 살기보다 딸네에게 합가해 주기를 원했다.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었다. 내심 반가운 측면도 없지 않았다. 혼자 사는 외로움 대신 손자들과 함께 산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게 벌써 만 1년이 넘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봄이다.
퇴근해 온 영진이가 베란다에 모아둔 종이박스를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엄마, 이거 왜 버리지 않고 쌓아두었어요?”
“아, 그거 내일 버릴 거야. 며칠씩 모았다가 한 번에 버리면 되잖아?”
“아이 참 엄마도 쓰레기 따위는 매일 매일 갖다 버려야지. 구질구질하게”
“뭐라고? 구질구질…?”
도대체 모를 일이다. 예의 바르고 똑똑한 아이라고 자랑했던 아이였는데―, 저렇게 억세고 버릇없이 변하다니? 하는 일이 잘못되고 있나?. 은근히 화증마저 솟는다.
택배영감의 처지가 너무 딱해보였다. 헌 종이박스나마 모아주면 어떨까? 해서 버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택배 영감한테 그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웬 오지랖? 할 것 같았으니까.
하루 이틀 미루다가 영진이의 지청구를 듣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일도 아닌지라, 이튿날 곧바로 택배물건을 갖고 온 영감님께 이야기를 건넸다.
“저기, 종이 박스가 좀 모여 있는데 가져가실래요?”
택배영감은 무슨 말씀? 하는 표정을 짓더니 엄청 고마워했다. 거리낌이라곤 전혀 느끼지 않는 모습으로 활짝 웃었다. 내심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신경 써주시니 고맙습니다.”
택배영감은 연신 고맙다 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씀을 요? 제가 고마워요. 이렇게까지 청소를 해주시니―”
강 여사도 거듭 인사를 했다. 괜히 도와준다는 생색만 낸 것 같아 엄청 부끄럽기도 했다. 그저 외롭고 안됐다 싶은 생각에서 그랬는데…!.
“여사님께서는 따님 댁에 사시니 무척이나 좋으시겠습니다.”
택배영감이 현관문을 나서면서 덕담을 했다.
“아이고, 영감님. 그런 거 아니에요. 눈치구덩입니다. 아니, 눈치 주는 사람이야 물론 없지만, 제 맘이 그래요. 사위눈치도 은근히 보이고. 딸년은 또 딸년대로 이거 원. 식모에다 완전 감옥소나 다름없다니까요.”
“아니, 무슨 말씀을…! 그래도 손주들 보는 재미도 있으실 테고!”
“그렇지요. 손주들 보는 재미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힘도 내지요.”
택배영감이 씩 웃었다. 그렇게 봐 그럴까? 웃음 뒤로 외로움의 그늘이 지나갔다.
“그럴수록 더 활기차게 생활하셔야 합니다. 자주 뒷산이나 동네 산책도 하시고, 가까운 곳 소풍도 자주 다니셔야 합니다.”
“소풍이라…?”
“언제 시간 나시거든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이 도시의 토박이나 다름없을 정도니까 근교 지리는 제가 어디든지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세요.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저녁시간이다. 모처럼 가족이 모두 함께 모였다.
“엄마, 이번 주말 은경이 체험학습에 따라간다는 거 알고 있죠?”
영진이의 말이다. 사위가 보충설명을 했다.
“전에처럼 은경이 친구 학부모들 하고 1박 2일 동안 거제도에 간다고 합니다..”
“그래 걱정 말고 잘들 다녀오시게”
“근데, 엄마 혼자서 집 지켜야 되는데…, 그래도 괜찮아?”
영진이가 거들었다. 정말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야가 새삼 뭐라카노? 언제는 안 그랬어?”
강 여사가 심드렁하게 받았다. 사위가 약간 미안한 표정이다.
“엄마 미안해요. 모두 참석하기로 약속했으니까. 빠질 수가 없어요.”
“거 왜? 갑자기 신경을 쓰지. 괜찮아, 난”
“…에이, 우리엄마 삐졌나 봐. ”
“허 참, 그래. 삐졌다 왜? 어쩔래?”
강 여사가 웃으며 되받았다. 전혀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은연중 말투 속에 약간의 섭섭함도 묻어났나보다.
“같이 가시지도 못하고, 우리끼리만 놀러 가는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듣고 있던 김 서방의 말이었다. 표정이 진지했다.
“아니, 김 서방. 그런 걱정 마시게. 하루 종일 편하게 쉰다 생각하면 되지.”
TV에서는 기상예보와 함께 잇따라 봄소식이 흘러나왔다. 해마다 그랬듯이 제주 도의 유채꽃개화를 필두로 차츰 북상해오는 벚꽃소식이 주를 이루었다. 축제가 열리는 지역과 일정소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안 벚꽃들도 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쪽은 이미 만개한 채, 화사한 자태를 뽐냈다.
‘정말 봄나들이라도 가볼까?’ 옛날의 영진이 아버지와 경주보문단지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터널을 이룬 벚꽃들과 호수에 띄워놓은 커다란 백조생각도 함께.
그럼 언제 가지? 아이들이 체험학습 떠나는 날이 좋겠지. 기차를 타고, 당일 날 갔다 올 수 있다고 택배영감님이 귀띔해주지 않았던가.
그러자 박 여사가 하던 말도 생각났다.
“끝까지 다 봐준다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고마워할 줄 알아?.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인 줄로 만 알지. 강 여사는 그러고 보니 엄청 순진하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아야지. 언제까지 아이들한테 희생만 하는 건…”
“옛날처럼 경주 벚꽃구경이라도 한 번 가고 싶네만…! 몸이 이래 갖고야―!”
임종 직전, 영감이 했던 이 말이 또 마음에 걸린다.
“그래! 이 기회에 봄나들이는 한 번 가볼만하지 않은가!”
강 여사는 자문자답했다. 그래 떠나보자! 잠시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자. 아마 영진이 아버지도 따라오시겠지. 그토록 가고 싶어 헸던 곳이니까. 그러면 뭔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근데, 누구랑 가지? 박할머니? 아니, 택배 영감? ’
입가에 킥 웃음이 터졌다. 어느새 강 여사의 마음은 경주의 벚꽃터널 속으로 내달았다. 봄바람에 꽃잎이 함박눈처럼 흩날리는 보문호숫가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