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 오늘은 시장을 떠나 동족 싼바오짜이를 보기위해 또 다른 지방 롱장으로 이동을 해야한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산책을 겸해 높은 지대에 올라 시장[西江]마을을 내려다 본다.


시장에서는 롱장으로 직접 가는 버스가 없다. 우선 레이산[雷山]으로 나가면 롱장가는 버스를 갈아탈 수가 있다고 한다.
시장에서 레이산까지 버스비 일인당 10위엔 ~ 1시간 20분 걸림

레이산 버스터미날에도 롱장으로 가는 버스가 없고 카이리에서 롱장으로 가는 버스에 좌석이 있을 경우
그 버스가 레이산에 들리면 탈 수 있다고 한다.

터미날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검은 돼지

흰 돼지도 있네요
레이산으로 오는 버스를 같이 타고 오면서 짧은 인사를 나누었던 두쌍의 중국인 중년부부가 자기들은 총장으로 간다고 한다,
두 부부중 한분이 약간의 영어를 해 마티노와 의사 소통이 된다.
이들도 역시 롱장까지만 가면 총장가는 버스는 많이 있다.
잠시후 카이리에서 롱장으로 가는 버스가 지나 가는데 좌석이 없다며 레이산에 서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우리는 정류장에 배낭을 깔고 앉아 빵을 꺼내 먹으며 느긋하게 다음 차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런데 두 부부중 한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일인당 55위엔이면 6명이 빵차로 롱장까지 갈 수 있는데 함께 가자고 한다.
중국인 부부들이 빵차를 흥정[330위엔]한 덕분에 우리는 빵차로 롱장까지 올 수 있었다.
레이산에서 11시 45분에 출발 롱장에 15시 45분에 도착... 점심도 못먹고 4시간이나 걸렸다.

어렵게 롱장에 도착해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롱장빈관을 찾아 갔더니 수리중이었고
사진을 찍은 창평빈관은 방이 있다고 하며 방값을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숙박을 거부 한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고 답답한 마음에 마티노가 공안을 부르겠다고 하니 잠시 후 정말 사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나타나
공안증을 보여 주며 영어로 우리를 도와 주겠다고 말한다.

길 건너 야신빈관으로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카운터에서 숙박절차를 모두 처리 해 주었다. 숙박비 80위엔 ( 14,400원 )
우리가 내일 처장 동족 산바오짜이에 구경간다고 하니 이 공안청년이 자신도 동족이라고 하며 반가워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콰이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버스터미날에서 내일 총장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본다.
********************************
5월 1일 ~ 롱장은 구이저우 동남쪽에서 가장 많은 동족들이 사는 마을로 가기 위한 첫번째 관문이다.
롱장 시내에서 5Km정도 떨어져 있는 처장 동족 산바오짜이는 세 마을이 나란히 붙어 있어 세 개의 보물이라는 뜻으로
산바오짜이[三寶寨]라고 불린다.
이 마을은 동족 언어의 발원지이면서 , 중국 전체 250만 동족 중에서 1만4천여명이 이곳에 살고 있어 최대의 동족마을 이다.

산바오짜이에 가기 위해 삼륜차를 알아보고 있다. 일인당 2위엔
4명이 타고 있어 우리가 타니 모두 6명이 인데 가다가 또 한 사람을 태우길래 내가 좁다고 불평을 했더니 막무가네다.
그런데 롱장으로 다시 돌아 올 때 차가 없어 6명이 타고 있는 삼륜차에 우리가 타 모두 8명이 타고 돌아 왔다.
이 곳의 순박한 사람들 모습을 보니 갈 때 불평을 한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고루는 21층에 높이 38.6m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은 고루로 세계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마을 중간에 작은 강[車江]이 흐르는데 이 강가를 따라 용수들이 줄지어 있다.
수령이 수백년 된 용수들이 수십 그루가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마을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고 돌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편직기

편직기를 이용해 천을 짜고 공터마다 잠사나 면사들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족 여인들의 옷은 미아오족에 비해 단순하다.

사람들이 나무 밑에 앉아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롱장 다리와 버스터미날 주변 풍경 ~ 도로 사정도 않 좋고 공사 차량이 많아 먼지가 무척 많다.
롱장에서 오전에 산바오짜이를 다녀와 총장가는 버스를 탔다. 롱장에서 총장까지 버스비 일인당 25위엔

롱장에서 총장가는 길에 버스안에서 마을을 지나가며 본 풍경


롱장에서 총장까지 2시간 30분 걸렸다. 버스터미날 옆에 숙소를 잡고 곧바로 바사촌을 가기 위해 총장대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바사마을까지 빵차를 타고 올라간다. 일인당 5위엔

바샤마을 입구 ~ 일인당 입장료 30위엔 ( 5,400원 )

이제 겨우 2,000 여명 밖에 남지 않은 구이저우 성에서만 볼 수 있는 민족이다.

가옥이나 생활풍습 옷차림 등을 옛날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운데만 남겨 놓은 독특한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15세가 되면 일종의 성인식처럼 낫으로 머리를 깎는데 그렇게 자른 머리는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성인 남자들은 맨발에 수제 총을 메고 다닌다.

고대 중국 중원 지역의 전투부대였다가 남하했다는 추측도 있고, 사냥하다 물을 찾아 이곳에서 정착했다는 말도 있다.

여자들은 틈만 나면 수를 놓고 있다.




오후 5시가 넘으니 총장으로 내려가는 빵차가 없단다. 왼쪽 두명은 중국인으로 먼저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 갔다
마티노 옆에 있는 사람은 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일본인 젊은이 이다.

우리도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20분 정도 산길을 달려 총장 읍내로 내려 왔다. ~ 뒷자리에 두명이 탑승 11위엔
총장읍에서 겨우 8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산속에서 옛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산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 내일은 구이저우성에서 두번째로 큰 동족 마을인 자오싱으로 떠날 예정이다.
흐르는 노래 : 축복 / 장학우
첫댓글 옛 모습 그대로, 옛날 그대로 자신들의 문화와 풍습을 지니고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중국땅이 넓고 그런 배려와 여유가 있는 것 같네요.
산너머 오지라서 그런지 몰라도 집도 옷도 머리모양도 옛 모습 그대로 살아 가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들어 간것 같았어요.
중국에선 도시와 마을사이를 이동하는 것이 도로사정이나 교통등이 불편하여 상당히 어려움을 겪어신것 같소이다.또 소수민족들의 의상도 각기 특색있게 차려입은것 같고요.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함은 한대로, 개발하면 한대로 멋이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만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지 그들은 원래 그려러니 하지요.
버스의 좌석과 좌석사이에 쪽의자를 놓고 앉아 가기도 하고, 삼륜차에 뒤에 8명 앞에 운전하는 사람 양옆으로 두사람정도는 더 태울 수도 있지요.
교통편이 없어 걸어 가는 것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해 불편하지만 함께 가는 것이 나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