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교회 공동체! → 세계 선교!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
춘천 한마음교회가 추구하는 세 가지 핵심 가치는 ‘복음! → 교회 공동체! → 세계선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이다. ‘복음’으로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고,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의 지상 사명인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것이다. 만약 이 순서를 거꾸로 하여 ‘세계 선교’가 사명인 사람들끼리 모여 교회 공동체를 만든다면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 공동체는 세워지지 않는다.
오직 교회 공동체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태동이 되고, 이러한 교회 공동체가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 16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교회 공동체는 ‘복음’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는 교회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마7:26~27).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2:36)”고 강력히 선포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십자가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재조명해 준다. 이것이 바로 내가 ‘부활의 복음’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죄를 사하는 대속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확증시켜 준다.
이렇게 부활로 예수님과 십자가 사건이 성령으로 조명이 될 때 회개와 굴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이 때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행2:38). 성령께서는 이렇게 회개와 굴복의 역사 위에 교회 공동체를 탄생시키신다. 즉 ‘복음’으로 교회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6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후사(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고 했다. 복음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지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복음’이 이방인과 유대인의 막힌 담을 헐고, 이 둘을 하나가 되게 한 것이다(엡2:14~15). 즉 ‘복음’으로 교회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복음으로 교회 공동체가 태동된다고 증거하고 있다.
나는 ‘복음으로 교회 공동체가 태동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왜 이 시대에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세워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지 않는 것은 ‘교회 공동체’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세워지지 않는 이유가 복음에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대교회를 세운 원형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었다.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 즉 주와 복음을 위해, 지체를 위해 죽는 것이 마땅하고 복음으로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공동체는 초대교회를 모방하여 물질을 통용하고 함께 산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인간적인 노력이나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교회 공동체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증거하고 있는 ‘복음’이 과연 초대교회가 선포하였던 ‘복음’과 동일한가 하는 것이다. 왜 사람이 변하지 않는가? 왜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세워지지 않는가? 그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초대교회에서 선포했던 ‘부활의 복음’이 사라지고 십자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복음으로 세워진 공동체란 자기가 주인된 악랄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세워진 공동체는 첫째, 사도행전4:32 말씀과 같이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는’ 공동체이다. 둘째, 고린도후서5:15 말씀과 같이 ‘다시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는’ 공동체이다.
셋째,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자는 고린도후서6:10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을 다 가졌기에’ 사도바울과 같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과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 공동체이다.
넷째, 복음으로 세워진 공동체는 요한일서3:16 말씀 같이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한 공동체이다. 다섯째,복음으로 세워진 공동체는 주(主)도, 믿음도, 성령도, 부르심의 소망도 하나인 공동체이다(엡4:4~5).
사람들이 모여 ‘우리들의 목적이 같으니 서로 하나가 되자’고 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이미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꿈꾸셨던 교회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 공동체의 참된 모습이다. 이렇게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가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것이다.
세계선교는 결코 개인의 힘만으로 될 수 없다. 교회 공동체가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세계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는 교회의 본질인 ‘사람을 키우는 일’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모든 것을 헌신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제자를 삼는 것(마28:18~19)이다.
교회에서 하는 찬양, 기도, 봉사, 구제 등도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제자를 삼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 교회는 몰락하게 되고 예수님의 지상 사명인 세계선교 또한 감당할 수 없다. 교회 공동체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생명을 낳으면 그 생명을 가진 자는 또 다른 생명을 낳게 된다.
이렇게 ‘복음의 생명력’은 제자 삼는 사역을 통해 전 세계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로 세계 선교가 가능한 이유이며 초대교회가 세계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 교회가 회복되어야 할 것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전략이 아닌 ‘복음의 생명력’인 것이다.
복음! → 교회 공동체! → 세계선교! 이것은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부활의 복음으로 서로 생명을 나누는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모든 침례교회 가운데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또한 이렇게 복음으로 세워진 침례교회를 통하여 세계선교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