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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의 아르카디아를 찾아... 원문보기 글쓴이: 아우라
갤러리 바이올렛 1주년 개관기념 초대전
右松 김 경 인
2011.3.23(WED) - 4. 5(TUE) GALLERY VIOLET
右松 김경인(대한민국 인천, 1941~)
스승 右松 김경인 화백과 소낭구,
미리 밝힌다. 우송 김경인은 대학에서 필자인 나를 가르친 진심으로 존경하는 스승이시다. 신세대들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스승은 곧 하늘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스승의 그림자를 함부로 밟지 않는다.
스승이신 우송 김경인은 50년 화력의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시다. 이 계산법은 당신이 진정으로 붓은 든 시기인 대학 때부터이다. 그간 수많은 날을 통해 쏟아냈던 작품들. 국내 기라성 같은 미술관계자와 미술평론가의 입과 붓에서 회자하였다. 난 그 글들을 거의 남김없이 봐왔다. 정말 내가 봐도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고급스러운 언어들이었다. 하지만, 난 그 언어들을 뛰어넘을 자신이 없다. 난 글 쓰는 사람이 아닌 화가이기에... 다만, 그동안 내가 지켜본 스승 김경인을 조심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그리고 싶을 뿐이다. 이 순간, 내 컴퓨터 안에서는 인상적이었던 TV드라마 ‘하얀거탑’ ost, 바비킴의 ‘소나무야’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에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이 노랫말처럼 우송 김경인은 늘 처음처럼 변함이 없으시다. 강렬한 눈빛도 그대로이시다. 곧은 심지와 같은 당신의 의식세계, 격동의 70년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초지일관이시다. 또 이 땅의 사람으로 나라와 민족을 누구보다 걱정하며 살아오셨다. 그리고 쉼 없는 독서와 많은 경험을 통해, 대학에서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아 부었고, 지금은 명예교수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히 당신의 눈으로 본 요지경 같은 세상과 자연을 예리한 직관과 감성으로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별똥별이 밤하늘에 붓칠하듯이 화폭을 채우며 사신다.
70년~80년대의 스승 김경인의 작품세계를 보면, 한마디로 ‘어둠의 肖像’ 집결 판이기도 하다. 이때는 내가 스승의 정신세계를 열심히 배우는 시기였다. 당시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승의 변을 들어보면, “나는 60년대부터 한국학에 많은 관심을 두고 그림에서 우리 것,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조선 시대 것으로 남아 있는 유물들과 정서, 민속, 민예품들은 분명히 이 땅과 유기적인 관계가 있지만, 이 시대의 양식은 아니라는 것, 시대성과 오늘 이 땅에서 내가 처해있는 현실적 삶에는 우리 것이 내재하여 있으므로 이 시대정신을 시각화한다는 뜻에 따라 1974년, ‘창작미협’展과 ‘제 3그룹’展에 ‘문맹자 시리즈’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 ‘문맹자 시리즈’의 작품을 직접 보면 그 당시 무소불위의 군사 정권 압제에 대한 저항, 그 암울했던 시대 반영 ‘어둠의 肖像’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인간의 섬뜩한 잔상들 그리고 어둠의 색조들은 그 아픔의 상처들을 대변하듯이 한층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이미 한국미술사에 기술되어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승 김경인은 서서히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그 소재의 대상을 찾던 중 평소 마음의 벗처럼 늘 가슴에 품고 다녔던 민족의 얼 소나무, 어느 날 ‘바로 이거다.’ 머리를 치며 당연한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소나무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풍류객이 되어 얼-소낭구가 있는 곳이라면 힘든 길 마다치 않고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나그네처럼 찾아 나섰다. 가장 깊은 강원도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최남단 전라도 땅끝마을까지 샅샅이 뒤졌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나무를 보고 자랐다. 아마도 스승 김경인도 그 길은 절대 외롭지 않았을 것이고 즐거움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가장 권위 있는 조선일보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하게 됐고, 그 수상 기념 초대전을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치르게 되었다. 그 결과는 제2의 김경인 전성시대를 도래시켰다. 아울러 일명 ‘소낭구화가’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란 시공은 右松 김경인을 제2의 고향인 당진 아미산 자락으로 끌고 들어갔다. 지금은 그곳에서 도인에 가까울 정도로 풍류를 즐기며 노년의 삶을 자연과 동행하고 계신다.
인사동, 갤러리 바이올렛에서는 ‘개관 1주년 기념전’ 준비과정에서 이 명분을 내세워 산속에서 조용히 묻혀 잘 지내고 계신, 스승 김경인을 집요하게 설득하여 인사동으로 끌어내는 데 극적(?)으로 성공하였다. 이번에 출품할 작품들은 2~3년 전에 제작한 것부터 최근에 제작된 적당한 크기의 청량한 산소와도 같은 신작들이다.
우송 김경인, 예술의 종착점은 자유다. 그건 일정한 어느 세계에 묶이는 그 자체를 거부했던 당신의 삶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담고 있는 소낭구 또한 끊임없이 자유롭게 변화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품한 20여 점의 작품에는 ‘소낭구와 세발 달린 새’를 비롯해 ‘노오란 소낭구’, ‘소나무 사이에서 보일 듯 말 듯 춤추는 형상들’, ‘칼레의 시민처럼 서 있는 소나무 群’, 이밖에 또 다른 많은 소나무가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난 짧은 감상을 통해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지만, 내용과 형식에서는 예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새로운 관점과 시점을 통해 당신만의 패러독스로 풀어나갔음을 강하게 느꼈다. 이는 예전에 비해 거칠어진 터치는 오히려 더 세련된 모습으로 다가왔고, 구성도 많이 단순화되어 있었다. 특히 내가 퍽 놀란 것은 그동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뇌리에 박힌 소나무에 대한 관념과 속성들, 즉 가장 중요한 ‘푸름’을 정반대의 시각에서 시도하려는 흔적이 보였다. 마치 소나무가 비정상적 단풍나무처럼 보였는데, 이것은 인상주의에서 사물에 접근한 방식과 전혀 다른 ‘아우라’였다. 역설적으로, 더 강한 민족의 소나무로 내게 다가섰다. 우주의 진통이 만물을 소생하는 새봄을 발아시키듯이, 그렇게 새 빛으로 당신은 우리 앞에 다가선 것이다.
난, 얼마 전 인사동의 한 음식점 ‘된장예술-툇마루’에서 존경하는 스승님을 모시고 동문수학했던 친구 몇 명과 함께 식사와 술잔을 같이한 기억이 있다. 그때도 여전히 스승님은 구수하고 텁텁한 된장 냄새의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스승님의 눈빛은 여전히 인상적으로 살아있었다. 그 경이로운 눈을 통해 무슨 일에나 묵시하고 끊임없이 토해낼 것처럼 보였다. 그 의미는 아직도 스승님의 잠재력은 무한한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으로 내게 다가온 것이다.
끝으로, 스승 김경인님께 바라는 마음이다. 풍류객이 酒를 멀리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건강을 오래 지키셔서 당신의 맑은 영혼의 샘, 어둠을 밝혀주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더 많이 남겨주길 희망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두려운 마음으로 여기서 마친다.
“나의 스승, 우송 김경인 님이여! 당신의 평화를 진심으로 빕니다.”
-불초제자 화가 이성완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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